1·2·4등급 짝퉁은 진짜와 비슷하게 만들어졌지만 3·5등급은 그렇지 못하다. 구두, 핸드백 등 패션 브랜드는 유행을 좇아 대부분 제조와 동시에 유통되고 소비된다. 따라서 3·5등급 짝퉁은 초짜나 손댄다.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 무엇이든 불분명해진다는 데 있다. 소비 품목이 아닌 고서화 작품의 경우 컬렉터들조차 1·2·4등급 짝퉁은 물론 3·5등급 짝퉁에도 쉽게 속는다.
여러 작품이 하나로 꾸며진 고서화첩의 경우, 위조자를 만나면 진짜와 가짜가 뒤섞이거나 전부 가짜로 꾸며진다. 오랜 세월 여러 위조자가 다양한 방법으로 위조한 고서화첩으로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김홍도(1745~?)의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보물 제527호)을 꼽을 수 있다.
필자가 ‘주간동아’ 871호에서 말했던 것처럼 ‘김홍도필 풍속도 화첩’ 25점 중 진짜는 6점으로, ‘서당’ ‘서화감상’ ‘무동’ ‘씨름’ ‘활쏘기’ ‘대장간’이다. 그중 ‘서화감상’에는 무식한 위조자가 작품 위에 종이를 직접 대고 베끼다가 먹물 얼룩을 남겼다(그림1).
1 김홍도의 ‘서화감상’에 남은 먹물 얼룩. 2 김홍도의 가짜 ‘포의풍류’. 3 김홍도의 가짜 ‘월하취생’.
고서화 작품 중엔 5등급 짝퉁이 마치 작가의 대표작인 양 둔갑한 예가 적지 않다. 서울 한남동 리움이 소장한 김홍도의 ‘포의풍류’(그림2)와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김홍도의 ‘월하취생’(그림3)은 우리 미술사학계에서 노년의 병고와 실의를 담은 작가의 자화상 같은 작품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림2’ ‘그림3’은 김홍도와 전혀 상관없는 졸렬한 가짜다.
평소 ‘꼭 닮게 그리는 것’을 강조했던 강세황(1713~1791)은 1786년 김홍도에게 써준 ‘단원기(檀園記) 우일본’에서 그가 천부적 재능을 갖춘 조선 최고 화가라고 말했다.
“김홍도는 일찍이 세상에 둘도 없이 그림 솜씨가 뛰어나 궁중화사 중에 이름났던 진재해, 박동보, 변상벽, 장경주도 그보다는 못했다. 무릇 누각, 산수, 인물, 화훼, 벌레, 물고기, 새 등을 그 모습대로 꼭 닮게 그려 늘 하늘의 조화를 빼앗았다. 조선 400년에 처음 있는 일이라 말할 만하다. 더욱이 사람이 살면서 날마다 겪는 수많은 일과 같은, 세상 풍속을 그리는 데 뛰어났다. 길거리, 나루터, 가게, 시장점포, 시험장, 놀이마당을 그리기만 하면 사람들이 손뼉 치며 신기하다고 외쳤다. 세간에서 말하는 김홍도의 ‘풍속화(風俗畵)’가 이것이다. 진실로 신령스러운 마음과 지혜로운 머리로 영원하고 교묘한 이치를 홀로 깨치지 않고서야 어찌 능히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김홍도가 그린 ‘서당’(그림4)과 ‘그림2’ ‘그림3’을 비교하면, ‘그림2’ ‘그림3’은 기본적으로 필획에 힘이 없을 뿐 아니라 사물 묘사도 정확지 않다. 김홍도가 아주 옅은 먹물로 사물 윤곽선을 먼저 그린 후 그림을 그린 데 반해, ‘그림2’ ‘그림3’은 옅은 윤곽선도 없고 먹물 농담도 조절하지 못했다. 구체적으로 ‘그림4’와 ‘그림2’ ‘그림3’에 그려진 사방건(四方巾)을 비교하면, ‘그림2’ ‘그림3’은 ‘그림4’와 달리 먹물 농담을 이용해 입체감을 표현하지 못했다(그림5).
4 김홍도의 ‘서당’. 5 김홍도의 진짜, 가짜 사방건 비교. 6 1700년대 초상화에 그려진 사방건 비교.
7 김양기의 가짜 ‘신선’. 8 신윤복의 가짜 ‘파안흥취’. 9 김홍도의 1778년 작 ‘행려풍속도병’ 중 ‘파안흥취’.
강세황은 김홍도가 장경주보다 그림을 잘 그렸다고 했다. 또한 김홍도 그림은 같은 시기 활동했던 화단 선배 신한평보다 언제나 나았다. 1773, 1781, 1791년 세 번에 걸친 임금 초상화 제작에서 김홍도는 동참화사, 신한평은 한 단계 아래인 수종화사로 참여했다. 1804년과 1805년 김홍도와 신한평 두 사람은 당시 규장각 소속 최고 궁중화사로 그림 시험에 참여했는데, 김홍도가 신한평보다 성적이 높았다.
위조자는 가짜를 진짜와 닮게 그릴 뿐 아니라, 사람들이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선에서 만든다. 작가의 작품을 근거로 그 작가와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던 스승, 선배, 제자, 후배의 작품을 위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김홍도의 아들인 김양기가 그렸다고 알려진 ‘신선’(그림7)은 위조자가 ‘그림3’을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고 베낀 가짜다. 따라서 ‘그림7’은 가짜를 보고 거듭 위조한 가짜다.
한편 동아대학교박물관이 소장한 신윤복의 ‘파안흥취’(그림8)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김홍도의 1778년 작 ‘행려풍속도병’ 중 ‘파안흥취’(그림9)를 위조한 가짜다. 이렇듯 가짜는 작가의 예술세계와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림을 배운 위조자가 만든 가짜는 위조 대상이 된 작가의 예술세계보다 오히려 자신이 배웠던 작가의 화풍을 보여준다. 필자는 ‘주간동아’ 872호에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활동했던, 한국 미술사를 바꾼 전문 위조꾼 ‘소루 이광직’을 소개한 적이 있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김홍도의 ‘월하고문’(그림10)과 리움이 소장한 보물 제782호‘김홍도필 병진년 화첩’(그림11)은 바로 소루가 위조한 것으로, 김홍도가 아닌 이한철(1808~?) 화법으로 그렸다. ‘그림10’ ‘그림11’을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이한철의 ‘방화수류도’(그림12)와 비교하면 소루 그림의 뿌리가 이한철임을 알 수 있다.
가짜에 질린 중국인들은 “오랜 시간 가짜를 진짜로 알면, 가짜가 진짜가 되고 진짜는 가짜가 된다(假作眞時眞亦假)”는 말을 자주한다. 가짜는 전염병과 같아 순식간에 또 다른 가짜를 만든다. 가짜에 익숙해지면, 정작 진짜는 놓친다. 미술시장에서 “진짜는 안 팔리고 가짜만 팔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10 이광직이 그린 김홍도의 가짜 ‘월하고문’. 11 이광직이 그린 김홍도의 가짜 ‘김홍도필 병진년 화첩’. 12 이한철의 ‘방화수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