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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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수-남재준 ‘내 사람 내 곁에’

기무사령관 임명 김 실장 판정승…안보라인 인사 때마다 ‘선 찾기’ 불꽃 튈 듯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3-05-13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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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수-남재준 ‘내 사람 내 곁에’

    3월 8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안보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정현 정무수석, 박흥렬 경호실장, 허태열 비서실장, 박 대통령,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이남기 홍보수석.

    북한의 ‘말 폭탄’이 정점을 향해 치닫던 4월 초, 군 주변에서 그에 못지않게 촉각을 곤두세운 또 다른 이슈가 있었다. 곧 예정돼 있던 장성급 간부 정기 진급 및 보직 인사였다. 특히 관심의 초점은 교체가 확실시되던 국군기무사령부 사령관에 누가 임명되느냐는 것이었다. 역대 정부의 첫 기무사령관 인사가 이후 청와대와 군의 관계 혹은 군내 역학관계를 가늠할 수 있는 잣대 구실을 해온 까닭이다. 한 안보부처 당국자의 말이다.

    “새 정부 들어 군 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진출하면서 이들 사이의 관계를 아는 게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됐다. ‘누가 누구와 가깝다’거나 ‘누구누구는 어떤 인연 혹은 악연이 있다’ 같은 얘기 말이다. 이런 정보를 대한민국 전체에서 가장 잘 아는 조직이 바로 기무사다. 이들의 행보 하나하나, 기무사령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명박(MB) 정부 초기 기무사는 ‘튀는 행동’으로 수차례 구설에 오른 바 있다. ‘실세 중 실세’였던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의 고교 동창이자 인척관계였던 김종태 당시 기무사령관이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7월 말 종교계 고위인사를 접촉하는 등 직무 범위를 넘어서는 ‘정무적 행보’를 펼쳤던 게 대표적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독대보고를 기반으로 이른바 ‘문고리 권력’을 거머쥔 기무사는 소속 직원들이 여러 차례 민간인 사찰에 연루된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경호실장 안보회의 참석 앞뒤 안 맞아

    육군사관학교 37기 출신 장성들이 이번 기무사령관 후보군에 포함되는 기수라는 점도 기름을 부었다. 37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지만 씨의 육사 동기생들. MB정부 초기의 기무사 행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진 이유다. 후보로 거론된 이들은 “박지만 씨와 개인적 친분이 전혀 없다”고 일제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37기 기무사령관’ 설을 둘러싼 소문은 가시지 않았다.



    한편 인선을 앞두고 관심을 모은 또 다른 포인트는 김장수 대통령 국가안보실장과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사이의 구도에 관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새 기무사령관에 특정인과 가까운 사람이 임명된다면, 향후 군 내부나 안보라인 전반에 걸쳐 ‘영향력의 균형’이 한쪽으로 확 기울어질 수 있다는 것. 이는 외견상 청와대에서 안보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김 실장이 모든 일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임명장을 받은 시점부터 지속된 북한과의 강 대 강 대결국면에서 김 실장은 거의 귀가를 하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마련한 인근 숙소에서 잠깐씩 눈을 붙이는 게 전부였다는 것. 상황이 엄중하다 보니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까닭에서였다. 박 대통령의 방미 일정이 이어지던 5월 초순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상시 비상체제였던 셈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국가안보실이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실장 산하 국가위기관리실(수석비서관급) 임무를 고스란히 대체한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기만 해도 각 안보부처를 통할하는 컨트롤타워, 즉 노무현 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를 부활하는 방안이 유력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모습을 드러낸 국가안보실은 오히려 MB정부의 국가위기관리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선 40명 내외로 전해진 현재 국가안보실 직원은 대부분 국가위기관리실에서 그대로 넘어온 인력이다. 신설된 국제협력비서관을 포함해 실무자 선까지 모두 합해 4~5명만이 김장수 실장 임명 후 충원된 직원들. 김 실장의 옛 부관 등 깊은 인연을 가진 사람이 포함됐다고는 해도, 근본적으로 함께 손발을 맞춰온 ‘김장수 사람’의 수는 제한적이다.

    외교안보수석을 비롯해 외교·통일·국방비서관 같은 안보 분야 핵심 참모들이 직제상 국가안보실장이 아니라 비서실장 휘하에 있는 이중구조도 문제를 심화했다. 한마디로 청와대 안보담당 수석·비서관실의 군정과 군령이 분리된 셈. 이 때문에 청와대는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국가안보실 차장을 겸임토록 별도의 계선을 만드는 궁여지책을 내놓아야 했다. 각 비서관실이 외교부·통일부·국방부와 일대일로 이어지는 구성 역시 전략기획·정보관리 등 업무를 기준으로 부서를 나눴던 NSC 시스템과는 거리가 있다. MB정부 청와대 안보라인에서 운용하던 이러한 구조는 각 비서관실이 해당 실무부처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당초 박 대통령의 의중이 실렸다던 ‘강력한 컨트롤타워’와는 거리가 있는 국가안보실의 현재 모습과 관련해, 인수위 논의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다양한 안이 있었지만 총괄조정 과정에서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분야 인수위원들이 의견을 제시하긴 했지만, 최종 선택은 전체 정부부처 업무조정을 맡았던 국정기획조정분과에서 당선인 뜻에 따라 결론지었다는 얘기다.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상황실에서 열린 대통령 주재 회의에 박흥렬 경호실장이 참석한 것을 두고도 이와 연관지어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 업무성격상 경호실장의 안보 관련 회의 참석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기 때문. 박흥렬 실장은 김장수 실장으로부터 육군참모총장을 연이어 물려받은 탓에 대표적인 ‘김장수 사람’으로 분류됐다. 쉽게 말해 ‘가용한 자원이 부족한 탓에 오랜 인연을 이어온 경호실장까지 불러들이는 무리수를 범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국정원 총무실장 해병대 출신 임명 구설수

    김장수 실장이 당초 예상과 달리 여러모로 녹록지 않은 상황에 놓인 데 비해,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의 최근 행보는 단연 대조적이다. 실국장·지부장 30여 명 가운데 80~90%를 교체하는 대대적인 인사태풍의 와중에 본인과 깊은 인연을 가진 인물을 포함해 외부인사들을 주요 직위에 발탁하는가 하면, 인사와 관련해 군에서 운용해온 제도를 이식하는 등 대대적인 ‘색깔 바꾸기’ 작업에 나서고 있기 때문.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국정원 직원의 댓글 관련 수사에 적극 호응하며 전임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주목할 만하다.

    김규석 전 육군본부 지휘통신 참모부장의 국정원 3차장 임명이 대표적이다. 육사 29기인 김 차장은 참모부장 시절 참모총장이던 남 원장 밑에서 근무한 뒤 10년 가까이 가깝게 지냈다고 예비역 군 고위관계자들은 전한다. 이러한 관계는 남 원장이 군복을 벗은 뒤에도 꾸준히 이어져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도 함께 일했다는 것. 외부인사 발탁 전례가 없던 국정원 총무실장에는 해병대 준장 출신이 임명되기도 했다. 인사 등 국정원 살림을 담당하는 자리를 군 출신이 맡은 것을 두고 뒷말이 나온 이유다. 국방담당 보좌관과 특보 자리도 통상 육군본부 추천 인물을 받았던 통례를 깨고 본인과 가까운 인사들을 불러들였다.

    ‘남재준 사람들’의 발탁은 제도적 차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최근의 인사교체 과정에서 운영된 것으로 전해진 ‘복수 인사추천위원회’ 시스템. 분리된 3개의 인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각 위원회가 독립적인 인사안을 만들어 제출하면, 공통적으로 1순위에 오른 후보자를 해당 직위에 낙점하는 식이다. 이러한 인사추천제도는 사실 군 장성급 인사 과정에서 사용해온 시스템을 고스란히 이식한 것에 가깝다. 정보기관의 오랜 병폐로 손꼽혔던 정실·연고 편중 인사를 해결하려는 시스템 개혁이라고는 하지만, 국정원 주변에서 “육군본부인지 정보기관인지 알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부서 간 보안장벽이 높아 다른 직원의 업무 성과나 능력을 알기 어려운 조직 특성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육사 전성시대’의 우울한 그림자

    김장수-남재준 ‘내 사람 내 곁에’
    이렇듯 외견상 ‘김장수 천하’로 보이는 박근혜 정부 안보라인의 실제 판도는 사뭇 다르다는 게 정통한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기무사령관 인선까지 남재준 원장의 자장(磁場) 안에서 결정될 경우 균형추가 확 기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던 이유다. 특히 군 주변에서는 향후 진급 인사에 대한 영향력과 관련해 이 문제에 관심이 적지 않았다. 장성 진급 후보자에 관해 보고서를 작성하는 두 기관인 국정원과 기무사가 비슷한 성향의 인물로 채워지면, 남 원장의 군내 영향력이 비약적으로 커질 수 있는 까닭이다.

    4월 19일 발표한 장성급 진급인사는 이런 의미에서 복잡한 해석을 낳았다. 기무사령관에 임명된 장경욱 소장은 육사 36기로, 박지만 씨의 동기인 37기를 피한 것이 먼저 눈에 띈다. 합참 대북 군사정보 부서와 국군정보사령관 등을 거친 육군 내 정보 특기의 대표주자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 꼬장꼬장한 성격과 전문성을 지녀 윗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 독립적인 캐릭터라는 평도 있다. 오랜 기간 함께 근무했던 한 군 관계자는 “한마디로 ‘누구의 사람’으로 불리는 것을 극히 꺼리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기무사 관련 근무경력이 전혀 없다는 점을 들어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있지만, 최근 수년 사이 기무사령관 인선 가운데는 가장 ‘비정무적인 인선’이라는 얘기다.

    특유의 캐릭터 때문에 김장수 실장이나 남재준 원장과의 친소관계를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남 원장과는 겹치는 부분이 눈에 띄지 않는 반면, 김 실장이 국방부 장관으로 일했던 노무현 정부 말기에 합동참모본부 정보생산처장으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더욱이 장 사령관은 2008년 말 인사에서 ‘야전 출신 작전 특기를 우선한다’는 이상희 당시 국방부 장관의 인사방침에 따라 사단장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국군정보사령부 사령관에 부임한 바 있다. 소장으로 진급하면 특기에 상관없이 1차 보직인 사단장에 임명하던 이전 관행을 지키지 않은 것. 이 때문에 장 사령관은 ‘비작전 특기의 설움’을 대표하는 사례로 회자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군 안팎에서는 기무사령관 인사를 앞두고 쏟아졌던 당초의 ‘우려’에 비하면 일단 균형이 맞춰진 결론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굳이 따지자면 ‘1라운드는 김장수 실장의 판정승’이라는 것이다. 남재준 원장과 성향이 비슷했던 김병관 국방부 장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했다면 그림이 전혀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장경욱 사령관의 임명과 관련해 배경 설명 과정에서 “김관진 장관이 2010년 부임할 때 합참 군사정보부장으로 일하며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내용이 강조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박근혜 정부 안보라인의 두 핵심인사와 군에서 함께 근무한 경력을 따지는 설왕설래가 앞으로도 무수히 반복되리라는 점이다. 당장 김관진 장관의 후임 인선을 두고도 ‘김장수 사람이냐 남재준 사람이냐’는 시선은 피할 수 없을 테고, 이후 이어질 안보라인 요직 인사 때마다 계속 등장할 공산이 크다. 그간 군 진급인사 시기면 어김없이 떠돌던 ‘보이지 않는 선 찾기’가 훨씬 큰 판으로 확장된 셈. 새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육사 전성시대’의 우울한 그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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