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부터 아내가 짜증이 심해. 처음엔 달래고 했는데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고. 이유도 당최 모르겠고. 나도 지쳤다고. 왜 그러냐고 물으면 자기도 모른다면서 외려 화를 내요. 그리고 이건 말하기 좀 그런데, 부부관계를 하면 더 토라지는 거, 이건 또 뭔 조화인지.”
말끝을 짧게 끊는 습관을 가진 김대수(가명·38) 씨는 다부진 체격에 큼직한 두 손으로 쩍 벌린 양다리를 잡고 앉아 말했다. 작은 부품공장 사장인 김씨는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하고 3년 전 중매로 결혼했다. 부인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자기와는 전혀 딴판이라며 말끝에 “선녀인데 맹꽁이 같아”라고 덧붙이곤 킥킥 웃었다. 김씨 부인에 대해 사적 호기심이 생겼다.
김씨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천대와 구박을 받고 자랐다. 공고를 졸업하고 요즘 사람이 꺼려하는 기계밥을 먹으며 가난을 벗겠다는 일념으로 성실히 일해 자수성가했다.
김씨의 아내 조은희(가명·32) 씨가 찾아왔다. 선녀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첫눈엔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조신한 여자였다. 조씨의 얼굴을 뜯어보며 앉다가 고꾸라질 뻔하자, 조씨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웃고 나서는 입을 한 일 자로 꾹 다물고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그때서야 김씨가 왜 부인을 선녀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다. 표정이 변하자 얼굴도 시시각각 달라 보였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조신했다가 소녀같이 풋풋했다가 다시 요염하게 변하는 조씨의 얼굴을 보며 김씨가 말하고픈 것이 맹꽁이가 아닌 ‘카멜레온’이 아니었나 싶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의 마음속은 어떤지 궁금했다.
“남편분 말에 의하면 6개월 전부터 부인이 자주 짜증을 낸다고 하던데요, 무슨 일 있으셨나요?”
“없습니다.”
부부관계 빼고는 문제없는 생활
조씨가 한쪽 눈썹을 꿈틀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몸에 이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습니다”, 남편 행동에 불만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습니다”, 친정식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마지막으로 부부관계를 물었다. 조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상담실 밖으로 나갔다. 그날 조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의자 옆에 두고 간 조씨의 책만 썰렁한 자리를 지켰다.
다음번 상담시간에도 조씨는 오지 않았다. 조씨가 두고 간 책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들쳐봤다. 메모 한 줄, 밑줄 하나 없었다. 책을 덮고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부인의 상황을 알렸다. 얼마 후 김씨가 더는 상담을 못 할 것 같다고 통보해왔다.
김씨가 씩씩거리며 다시 상담실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3주가 지나서였다. 조씨의 손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끌고 상담실에 들어와서는 앉지도 않고 소리쳤다.
“이 여편네 좀 고쳐줘요. 내가 미치고 환장하겠어!”
흥분한 김씨를 달래서 보내고, 고개를 푹 숙인 조씨를 상담실 벽 쪽에 놓인 3인용 소파에 앉게 했다. 조명을 끄자 어둠 속에서 조씨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등을 쓸어주자 조씨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다시 온 첫 상담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다음 시간부터 조씨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판을 벌여 근근히 3남매를 키웠고, 장녀였던 조씨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탓에 포기해야 했다. 작은 회사 경리로 일하던 중 김씨와 선을 봤는데 김씨가 밀어 붙여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할 때 부모와 동생들 걱정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남편이 착해서 친정에 다달이 생활비를 대주고 남동생도 데려다 공장 주임을 시켜줬다며 고마워했다.
부부관계에 대해 묻고 상담이 단절된 이후 섣불리 같은 주제를 꺼내지 않았다. 김씨에 따르면 조씨의 짜증이 점점 줄어 부부 사이는 좋아지고 있으나 부부관계만 하면 여저히 짜증을 낸다고 했다. 그런 상태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갔다.
상담이 후반기로 접어든 어느 날, 조씨가 풍성한 상아색 블라우스를 입고 찾아왔다. 낭만주의시대의 귀부인 같다고 칭찬하다가 문득 조씨가 두고 간 책이 생각났다. 서랍 속 책을 찾아 조씨에게 내밀었다. 어떤 의도도 없었다. 그런데 조씨 얼굴이 확 붉어지더니 벌떡 일어나 상담실을 나갔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황금 풍뎅이’일까.
나는 초조 반 기대 반으로 시계만 자꾸 쳐다봤다. 30분이 지나서야 울어서 눈과 코가 빨개진 조씨가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 조씨가 코맹맹이 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선생님, 채털리 부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은희 씨는 어떻게 생각하죠?”
“코니(채털리 부인의 이름)는 나쁜 여자예요. 저는 코니가 싫어요.”
“나는 코니가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워요. 같은 여자로서 이해도 되고요.”
조씨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티슈를 뽑아 건넸다. 조씨의 흐느낌과 째깍대는 시계 소리만 상담실을 채웠다.
“상담시간이 10분 남았군요. 혹 하고픈 말 있으세요?”
조씨는 벽시계를 흘끔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곧이어 혀로 입술을 몇 번 적시더니 숨을 크게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남편과 잠자리가 좋지 않아요. 애무도 없이 무작정 밀고 들어와서는 내가 오르는지 아닌지는 관심없고, 자기만 헐떡이다 사정하고 끝내요. 저는 오르가슴이 뭔지 알아요. 남편과 섹스해 오르가슴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같이 자기 싫어요.”
조씨가 떠난 후 회전의자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 가득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는 여자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다음엔 조씨 대신 김씨를 불렀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김씨의 표정은 지금까지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복잡했다.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한 듯했다.
“그럼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세요. 좀 오르려고 하는데 아내가 ‘나는 끝났으니, 빼!’ 하면 좋겠어요?”
그러자 김씨가 갑자기 배를 그러잡고 오뚝이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어젖혔다. 웃음이 사그러들자 김씨는 너무 웃어 찔금 나온 눈물을 훔치며 어떡하면 아내가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지 대놓고 물어왔다. 전희와 후희 등 삼류 주간지에나 나올 법한 설명을 차분히 해줬다.
“기계도 기름칠을 해야 부드럽게 돌아가니까….”
김씨는 혼잣말을 해가며 내 말에 열중했다. 중간중간 동작을 해가며 이렇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김씨의 진지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기계도 기름칠해야 부드럽게 돌죠”
그다음 상담시간에 김씨가 조씨 손을 꼭 잡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인사도 건네기 전 김씨가 말을 쏟아냈다.
“아, 정말 좋드라고. 어여(아내)가 그렇게 자지러지는 건 첨 봤소. 기분 째지대.”
조씨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도 들지 못했다. 김씨는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얼굴이었다.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다며 김씨는 몇 번이고 좋은 것을 가르쳐줘 고맙다고 인사했다. 조씨와 단둘이 남자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수줍고 달뜬 얼굴에 한 줄기 그늘이 서려 있었다. 참 매혹적인 얼굴이었다.
“이제 상담을 끝내도 될 것 같습니다.”
“잠깐만요. 선생님께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선생님도 아실 거라 생각해요. 아시면서도 굳이 제게 묻지 않으신 거죠. 사실은….”
조씨는 6개월 전 동창 모임에서 못 먹는 술을 먹고 취해 합석한 남자 한 명과 모텔에 갔고, 그 남자의 능란한 애무에 처음으로 오르가슴을 느꼈다. 남편에게 너무 죄스럽고 미안하면서도 그 날 밤 느낌이 너무 강렬해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얼굴조차 기억 나지 않고, 오직 남편만을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사죄를 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슴속 비밀로 간직하고 평생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또 한 명의 채털리 부인이었다. 나는 애틋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끝을 짧게 끊는 습관을 가진 김대수(가명·38) 씨는 다부진 체격에 큼직한 두 손으로 쩍 벌린 양다리를 잡고 앉아 말했다. 작은 부품공장 사장인 김씨는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하고 3년 전 중매로 결혼했다. 부인이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자기와는 전혀 딴판이라며 말끝에 “선녀인데 맹꽁이 같아”라고 덧붙이곤 킥킥 웃었다. 김씨 부인에 대해 사적 호기심이 생겼다.
김씨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천대와 구박을 받고 자랐다. 공고를 졸업하고 요즘 사람이 꺼려하는 기계밥을 먹으며 가난을 벗겠다는 일념으로 성실히 일해 자수성가했다.
김씨의 아내 조은희(가명·32) 씨가 찾아왔다. 선녀라고 해서 궁금했는데 첫눈엔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조신한 여자였다. 조씨의 얼굴을 뜯어보며 앉다가 고꾸라질 뻔하자, 조씨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웃고 나서는 입을 한 일 자로 꾹 다물고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그때서야 김씨가 왜 부인을 선녀라고 표현했는지 알 것 같았다. 표정이 변하자 얼굴도 시시각각 달라 보였다. 얼마 되지 않은 시간에 조신했다가 소녀같이 풋풋했다가 다시 요염하게 변하는 조씨의 얼굴을 보며 김씨가 말하고픈 것이 맹꽁이가 아닌 ‘카멜레온’이 아니었나 싶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의 마음속은 어떤지 궁금했다.
“남편분 말에 의하면 6개월 전부터 부인이 자주 짜증을 낸다고 하던데요, 무슨 일 있으셨나요?”
“없습니다.”
부부관계 빼고는 문제없는 생활
조씨가 한쪽 눈썹을 꿈틀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몸에 이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습니다”, 남편 행동에 불만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습니다”, 친정식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없습니다”라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마지막으로 부부관계를 물었다. 조씨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상담실 밖으로 나갔다. 그날 조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의자 옆에 두고 간 조씨의 책만 썰렁한 자리를 지켰다.
다음번 상담시간에도 조씨는 오지 않았다. 조씨가 두고 간 책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들쳐봤다. 메모 한 줄, 밑줄 하나 없었다. 책을 덮고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 부인의 상황을 알렸다. 얼마 후 김씨가 더는 상담을 못 할 것 같다고 통보해왔다.
김씨가 씩씩거리며 다시 상담실을 찾은 것은 그로부터 3주가 지나서였다. 조씨의 손을 무지막지하게 잡아끌고 상담실에 들어와서는 앉지도 않고 소리쳤다.
“이 여편네 좀 고쳐줘요. 내가 미치고 환장하겠어!”
흥분한 김씨를 달래서 보내고, 고개를 푹 숙인 조씨를 상담실 벽 쪽에 놓인 3인용 소파에 앉게 했다. 조명을 끄자 어둠 속에서 조씨의 몸이 가늘게 떨렸다. 그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등을 쓸어주자 조씨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다시 온 첫 상담 시간은 그렇게 지나갔다.
그다음 시간부터 조씨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판을 벌여 근근히 3남매를 키웠고, 장녀였던 조씨는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 탓에 포기해야 했다. 작은 회사 경리로 일하던 중 김씨와 선을 봤는데 김씨가 밀어 붙여 결혼에 이르렀다. 결혼할 때 부모와 동생들 걱정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남편이 착해서 친정에 다달이 생활비를 대주고 남동생도 데려다 공장 주임을 시켜줬다며 고마워했다.
부부관계에 대해 묻고 상담이 단절된 이후 섣불리 같은 주제를 꺼내지 않았다. 김씨에 따르면 조씨의 짜증이 점점 줄어 부부 사이는 좋아지고 있으나 부부관계만 하면 여저히 짜증을 낸다고 했다. 그런 상태로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갔다.
상담이 후반기로 접어든 어느 날, 조씨가 풍성한 상아색 블라우스를 입고 찾아왔다. 낭만주의시대의 귀부인 같다고 칭찬하다가 문득 조씨가 두고 간 책이 생각났다. 서랍 속 책을 찾아 조씨에게 내밀었다. 어떤 의도도 없었다. 그런데 조씨 얼굴이 확 붉어지더니 벌떡 일어나 상담실을 나갔다.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 ‘황금 풍뎅이’일까.
나는 초조 반 기대 반으로 시계만 자꾸 쳐다봤다. 30분이 지나서야 울어서 눈과 코가 빨개진 조씨가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 조씨가 코맹맹이 소리로 조심스레 말했다.
“선생님, 채털리 부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은희 씨는 어떻게 생각하죠?”
“코니(채털리 부인의 이름)는 나쁜 여자예요. 저는 코니가 싫어요.”
“나는 코니가 나쁘다거나 좋다거나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그저 안타깝고 안쓰러워요. 같은 여자로서 이해도 되고요.”
조씨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티슈를 뽑아 건넸다. 조씨의 흐느낌과 째깍대는 시계 소리만 상담실을 채웠다.
“상담시간이 10분 남았군요. 혹 하고픈 말 있으세요?”
조씨는 벽시계를 흘끔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곧이어 혀로 입술을 몇 번 적시더니 숨을 크게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
“남편과 잠자리가 좋지 않아요. 애무도 없이 무작정 밀고 들어와서는 내가 오르는지 아닌지는 관심없고, 자기만 헐떡이다 사정하고 끝내요. 저는 오르가슴이 뭔지 알아요. 남편과 섹스해 오르가슴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 같이 자기 싫어요.”
조씨가 떠난 후 회전의자를 돌려 창문을 바라봤다. 창문 가득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읽는 여자의 얼굴이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그다음엔 조씨 대신 김씨를 불렀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김씨의 표정은 지금까지 내가 본 것 가운데 가장 복잡했다. 놀라기도 하고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한 듯했다.
“그럼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세요. 좀 오르려고 하는데 아내가 ‘나는 끝났으니, 빼!’ 하면 좋겠어요?”
그러자 김씨가 갑자기 배를 그러잡고 오뚝이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며 웃어젖혔다. 웃음이 사그러들자 김씨는 너무 웃어 찔금 나온 눈물을 훔치며 어떡하면 아내가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지 대놓고 물어왔다. 전희와 후희 등 삼류 주간지에나 나올 법한 설명을 차분히 해줬다.
“기계도 기름칠을 해야 부드럽게 돌아가니까….”
김씨는 혼잣말을 해가며 내 말에 열중했다. 중간중간 동작을 해가며 이렇게 하면 되느냐고 묻는 김씨의 진지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기계도 기름칠해야 부드럽게 돌죠”
그다음 상담시간에 김씨가 조씨 손을 꼭 잡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들어왔다. 인사도 건네기 전 김씨가 말을 쏟아냈다.
“아, 정말 좋드라고. 어여(아내)가 그렇게 자지러지는 건 첨 봤소. 기분 째지대.”
조씨는 얼굴이 붉어져 고개도 들지 못했다. 김씨는 그런 그녀가 사랑스러워 못 견디겠다는 얼굴이었다. 일이 있어 먼저 일어나겠다며 김씨는 몇 번이고 좋은 것을 가르쳐줘 고맙다고 인사했다. 조씨와 단둘이 남자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수줍고 달뜬 얼굴에 한 줄기 그늘이 서려 있었다. 참 매혹적인 얼굴이었다.
“이제 상담을 끝내도 될 것 같습니다.”
“잠깐만요. 선생님께 말하지 못한 게 있어요. 선생님도 아실 거라 생각해요. 아시면서도 굳이 제게 묻지 않으신 거죠. 사실은….”
조씨는 6개월 전 동창 모임에서 못 먹는 술을 먹고 취해 합석한 남자 한 명과 모텔에 갔고, 그 남자의 능란한 애무에 처음으로 오르가슴을 느꼈다. 남편에게 너무 죄스럽고 미안하면서도 그 날 밤 느낌이 너무 강렬해 잊지 못하고 그리워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얼굴조차 기억 나지 않고, 오직 남편만을 사랑한다고 덧붙였다. 남편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사죄를 구해야 하는지, 아니면 가슴속 비밀로 간직하고 평생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 말끝을 흐렸다.
그녀는 또 한 명의 채털리 부인이었다. 나는 애틋하게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