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부산저축은행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박태규 씨.
박씨는 2011년 9월 검찰의 부산저축은행 비리 수사과정에서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부산저축은행그룹 측으로부터 감사원과 금융당국에 로비한다는 명목으로 17억 원을 받은 혐의였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은 박씨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과 추징금 8억4865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씨가 박 대통령에게 고소당한 것은 지난해 5월. 당시 대선 후보이던 박 대통령은 김씨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김씨가 시사주간지 ‘한겨레21’,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 인터뷰 등을 통해 2010년 11월 서울 G20 정상회의 기간에 박씨가 부산저축은행 구명로비를 하려고 박 대통령을 만났다는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8월 김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결국 김씨는 대선 3주 전인 지난해 11월 26일 불구속 기소됐다.
대통령 취임 후에도 계속 진행
이 사건에 대한 첫 재판은 1월 8일 열렸다. 2회 공판 때는 수감 중인 박씨가 증인으로 나왔고, 3월 5일 열린 4회 공판에서는 3회 때와 마찬가지로 김씨의 지인이 증언대에 섰다. 5차 공판은 4월 30일 속개되는데 김씨의 또 다른 지인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김씨 측 증인들은 당시 김씨로부터 박태규 씨가 박 대통령을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사람들이다. 일종의 목격자들인 셈이다.
이 사건의 쟁점은 단순하다. 김씨는 박씨한테 직접 들은 얘기를 언론에 전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박씨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부인한다. 박 대통령은 “박씨와 일면식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법조계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 취임 후에도 이 사건 재판이 계속 진행되는 것에 대해 의아해한다. 한마디로 대통령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것. 집권하면 선거과정에서의 고소·고발을 취소하는 정치적 관행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씨는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2010년 11월 박 대통령과 만났다는 김씨의 주장을 부인했다. 김씨가 지어낸 얘기라고 했다. 두 당사자가 부인하는 데다 달리 입증할 증거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박 대통령의 명예는 회복된 셈이다. 이는 재판의 실효성이 없다는 뜻도 된다. 게다가 상대는 정치인도 아니고 힘없는 일반인이다.
지난해 박 대통령이 이 사건과 관련해 고소한 사람은 모두 4명. 김씨 외에 당시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이던 박지원 의원, 나꼼수 멤버 김어준 씨와 주진우 기자가 같은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그런데 박 의원과 나꼼수 멤버들은 불기소 처분됐다. 유일하게 김씨만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더라도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정황이 있었다면 명예훼손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의도성이나 고의성도 고려 요소다. 김씨는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은 박 대통령의 명예를 고의로 훼손할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공소장에 따르면 김씨는 2011년 9월 ‘한겨례21’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2010년 10월 서울 G20 정상회의 기간에 강남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 앞에서 승용차에 탑승한 박태규로부터 ‘방금 박근혜를 만났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박태규가 다른 사람과 통화하면서 ‘박근혜 씨 부친 박정희 대통령한테 실수한 것도 있고 사죄할 일이 있는데 딸인 박근혜 씨가 나를 봐서라도 이해해주고 잊어주면 고맙다’는 취지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런데 박태규가 말한 내용이 진짜인지 거짓말인지는 모르겠다.”
박태규와 박 대통령의 ‘인연’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박태규 접촉 의혹’을 제기했던 박지원 민주통합당 의원.
김씨는 ‘주간동아’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박지원 의원이 자꾸 의혹을 제기하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그런데 박 의원도, 나꼼수도 빠져나가고 힘없는 나만 재판받고 있다.”
▼ 지금도 박태규 씨 얘기가 사실이라고 믿나.
“실제로는 (박 대통령을) 안 만났으면서 그렇게 말한 것 같다. 허풍이 센 사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소망교회 식구로 헬스클럽에 함께 다녔다’고 말한 적이 있다.”
▼ 그런데 왜 언론에 얘기했나.
“처음엔 그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하니 그런 줄 알았다. 월급 받는 운전기사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지 않나.”
▼ 박태규 씨와 사이가 안 좋았나.
“이 일 때문에 틀어졌다.”
▼ 차후 재판에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내가 거짓말한 게 아니기 때문에 끝까지 싸울 것이다.”
김씨 변호인은 “김씨 말이 거짓이라면, 박태규가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이라거나 ‘일면식도 없다’는 박 대통령 얘기가 진실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두 가지 다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것은 박씨한테 부산저축은행 구명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김두우 전 대통령실 홍보수석비서관에 대한 법원 판결이다. 지난해 8월 이 사건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수석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박씨 진술이 신빙성이 없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의적으로 피고인을 모함하려고 말을 꾸며낸 것으로 보인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박씨가 비록 김씨의 주장을 부인하기는 하지만, 박 대통령과는 다른 얘기를 하는 점도 관심거리다. 박씨는 1월 29일 열린 이 사건 2차 공판 때 증인으로 나와 박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에 저와 언론인들이 골프를 하는 친목모임이 결성됐는데 각 신문사, 방송국 정치부장들의 모임이었습니다. (중략)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기간에 ‘취구회’ 멤버들인 편집국장들과 광화문에 있는 한정식집 ‘두마’에서 저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곳에 가니 멤버 외에 정치인 두어 명이 있었습니다. 잠시 후 박근혜 의원이 와서 인사를 했는데 편집국장들에게 술을 한 잔씩 돌리고 잠시 대화를 나누다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중략) 언론사와는 서로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모르지만 저와는 그런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후에는 전혀 만난 적이 없습니다.”
‘주간동아’는 박 대통령과 김씨의 소송과 관련해 청와대 대변인실에 질문서를 보냈다. 하지만 청와대 측에서는 마감 직전까지 아무런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