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오동진
당연히 화제가 골프 금지령으로 이어졌다.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안보 일선에 있는 현역 장교의 골프 금지령은 당연한 수순이라, 그해 군 골프장은 사상 최대 흑자를 올렸다. 일반인 한 명의 군 골프장 사용비가 군인 4명보다 높으니, 당연한 얘기다.
2011년 수도권에 있는 군 골프장 사장이 했던 말이다.
“작년 겨울 이상 한파로 큰 적자를 봤어요. 해마다 연말이면 지휘관의 부대 복지비가 여기서 나오는데, 골프장이 적자라 예하 단위부대들에 연말 저녁식사 값도 하달하지 못했습니다. 하여간 저만 작살났어요. 그런데 금년에는 5월에 이미 예상 수익을 넘어섰고 지금부터 들어오는 수익은 전부 흑자입니다.”
그해 나 같은 예비역은 티 풍년이 났다. 현역을 위해 주말에는 부킹을 아예 하지 않고 인원이 모자라면 대타 정도로만 나가는 수준이었는데, 그해에는 주말마다 티가 풍성했다. 남북 대치 시 볼 수 있는 우리 군인의 서글픈 자화상이다.
그런데 올해 새 정부 첫 국무회의에서 군 장성들의 골프에 대해 대통령이 분노 서린 한마디를 내뱉었으니, 이 정부 5년 동안 장군들 골프는 안 봐도 뻔하다. 국방부 장관까지 청문회 자리에서 복무기간에 골프를 안 치겠다고 선언하라는 주문까지 받은 마당에 더 말해 무엇 하랴. 복지 안동(腹地眼動). 배를 땅에 납작 대고 눈알만 요리조리 움직인다는 눈치통 내공을 십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 시점에서 요란하게 두들겨 맞는 군인들의 골프에 대해 변명 하나쯤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골프는 나쁘다는 언론의 고정관념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고, 입은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영혼까지 없다는 자조 섞인 한탄을 늘어놓는 우리 군인들에게 위로를 보내며, 30년 넘게 군 생활을 한 어느 후배 장군에 대한 얘기로 대신하고자 한다.
고급놀이? 장삼이사 심정 이해
나는 군인이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강해 군인 체질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당연히 집에 돈은 없고 공부는 좀 하고 체력도 있어 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친구들이 대학생활을 즐길 때 지독한 교육과 얽매인 생활로 자신을 단련했다. 금주, 금연, 금혼으로 몸을 다듬었으며 청춘을 산악과 야전에서, 숲과 들에서 보냈다. 그 흔한 연애도 할 기회가 없어, 아니 여자 만날 기회조차 없어 중매로 결혼했다. 집에 들어오는 기간을 달력으로 표시한 집사람은 1년에 남편 얼굴 볼 기회가 30일도 안 된다면서도 묵묵히 내조만 했다.
그래도 조국, 민족이라는 단어와 개인의 진급이 상호작용해 집보다 부대, 가정보다 조직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았다. 늘어나는 스트레스는 당연히 운동으로 풀었다. 젊어서는 축구공 하나로 정열을 불살랐으며, 중년에는 테니스로 일과를 마감했다.
중령 때 겨우 골프채를 잡았다. 야전에서 노닐다 정책부서로 처음 발령받아 부대 근처 골프장을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에 가족이 있고 주말에도 올라가지 못해 집사람이 내려오는 삶이기에, 주말에는 할 일이 골프 연습밖에 없었다. 여행은 꿈도 못 꾸고 일가친척 방문도 장거리는 안 됐다. 전우들과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골프 아니면 테니스였다.
북쪽 저 친구들이 한 방씩 쏴주는 덕에 1년에 절반 이상이 대기였다. 항상 비상체제를 유지하고 경계강화는 밥 먹듯이 하달돼 대기, 또 대기였다. 집사람이 내려와도 영내 대기하는 경우가 많아 가장 구실은 포기 또 포기해야 했다.
주중 스스로를 닦는 유일한 소일거리는 골프 연습이었다. 골프에 내재된 철학을 배우고, 도덕을 배웠다. 단결심을 배우고 남을 배려하는 겸양을 익혔으며 내 탓임을 배웠다. 그래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고, 부하를 아꼈으며, 상사를 존경할 수 있는 터를 알았다. 가히 남을 비방할 줄 모르고 정부를 탓할 줄도 몰랐으며 명령에 충실한 군인으로서의 자세가 몸에 배었다. 싸게 해주는 그린피는 얄팍한 봉급으로도 충분했기에 국가에 고마웠고 국민에게 감사했다.
그런데 왜 무슨 일만 생기면 우리만 탓할까. “군인이 왜 저럴까?” “군인이 이 시기에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아니, 이런 시기에 골프를 쳐? 에라, 쳐죽일 놈들….”
나는 반문하고 싶다. 그럼 이 시기에 뭘 할까. 휴일에 산에 가면 아무 말도 안 할까. 이 나이에 방 안에 틀어박혀 TV 채널이나 돌리란 말인가. 아니, 이런 욕을 들을 때면 집사람하고 침대에 있는 것도 욕먹는 일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기에 집사람하고 침대에 있다니.” 뭘 하든 욕 듣기는 매한가지일 텐데, 하필이면 골프 하나만 잡고 이런 시비를 한단 말인가.
욕하는 장삼이사 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들에게 박힌 골프에 대한 고정관념은 ‘있는 사람들의 고급 놀이’다. 하루에 40만 원 이상 드는 데다, 어울리는 사람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계급 아닌가. 골프는 김지하 시인이 말한 오적이 즐기는 놀이다. 더한 추리를 해보면 군 사병생활에 대한 혐오감 때문은 아닐까. 내가 죽도록 박박 기던 시절 장교랍시고 거들먹거리던 사람에 대한 내재적 질투가 아닐까.
그냥 영내 운동으로 이해를
감히 말하건대 군인 골프는 유한계급의 놀이가 아니다. 접대하는 사교도 아니고, 돈이 많아 하루를 즐기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사회적 통념으로 군 골프를 적대시하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일주일 내내 지하 벙커에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 우리는 산과 들이 그립다. 젊어서부터 고지전 훈련을 한 우리는 야전 흙냄새가 그립고 산하의 땀 냄새가 그립다. 유일하게 그리움을 해소하고 전투대비 훈련을 하는 장소로서 골프를 즐긴다. 도덕을 논하고 단결을 배우는 장소로서 골프장을 찾는다.
축구를 하기엔 늙었다. 휴일 집 안에 박힌 노인네는 되기 싫다. 먼 거리는 꿈도 못 꾸고 그저 부대 안에 있는 골프장에서 대기한다. 그것이 왜 그리 지탄받을 일인가. 골프장이 부대 밖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영내에 있다. 그린피에 세금이 없다. 당구보다 싸다. 우리가 도둑질해 돈이 많아 골프를 하는가. 아니다. 그냥 체력 단련 시설이다.
공군 친구들 변명은 더 들을 만하다. 활주로 옆에 자리한 비상시 물자 대기 장소에 잔디를 입혀놓았는데, 그곳을 골프장이라 한다. 일반 골프장에 비하면 이건 골프장도 아니다. 그래도 조종사들은 대기한다. 5분 대기는 아예 꿈도 안 꾸고 10분 대기도 마찬가지다. 30분 대기자는 채를 들고 나간다. 비행장 바깥으로는 아예 못 나가기에 영내에서만 대기하는 것이다.
이것이 죄인가. 나라를 지키려고 부대 안에 있는 체력장을 이용하는 것이 그리도 지탄받을 일인가. 북쪽 녀석들이 공갈 몇 번 친다고 달달 떨면서 대기하는 것이 진정 군인 자세인가. 저놈들이 깝죽대는 테러에 화들짝 놀라 앗 뜨거워라 하고, 전 국민을 겁에 질리게 만드는 술법에 놀아나는 어리석은 군인이 되길 바라는가. 최소한 미국과 연합훈련을 하는 시기에는 저들도 옴짝하지 못한다. 북한은 자기 나름의 생존전략으로 말 폭탄을 퍼붓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놀란 표정으로 지하벙커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국민에게 위안이 되는가.
직접적인 대비 직책에 있는 군인은 알아서 준비한다. 골프장에 가라고 해도 안 간다. 자기 할 일은 알아서 한다. 30년 군 생활에 이 정도 감이 없다면 그는 이미 군인이 아니다. 진급으로 겁을 줄 일도 아니다. 우리 군인은 일단 일이 벌어지면 국가에 목숨을 바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이다. 목숨을 담보로 영내 골프장에 다니고, 봉급을 받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욕하려면, 깨지고 터지면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자세를 비난하라. 대기하면서 체력 단련을 위해 하는 골프를 욕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우리 바람이다.
변명을 들을 줄 아는 자세, 열린 마음으로 포용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다. 우리가 용병인가. 돈 주고 사온 외국인인가. 다 당신들 이웃이고 삼촌이고 아들이다. 필요할 때 나 대신 죽어달라고 부탁해야 할 대상, 우리 군인이다. 전시에는 골프를 하라고 등 떼밀어도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