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서 경제1분과 업무보고를 받은 뒤 인수위를 나서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언론과 국회에서 주로 인사 검증 대상으로 삼는 도덕성에 대해서는 인사 과정에서 치밀하게 확인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적재적소라고 여겨 임명한 인사에게 도덕적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고, 전문성이 있는 인사가 잡음을 일으키는 사례도 있다. 이번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 낙마 사태도 그런 간극에서 벌어졌다는 평가가 많다.
언론의 도덕성 검증 과정이 적은 대통령선거(대선) 때는 당선인의 적재적소 우선 원칙이 빛을 발할 수 있지만, 국정운영에서는 도덕성과 지역 안배 등 이른바 정치 영역 인선이 선거 때보다 훨씬 중요해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가 많다.
적재적소 최우선, 도덕성 검증은 후순위
“일면식도 없는데 찾아와 홍보본부장을 맡아달라 하더라. 30분 만나고 그 직을 맡기로 결정했다.”
박 당선인은 지난해 1월 정치에 전혀 발을 담가본 적 없는 광고업계 출신 조동원 씨에게 만나자고 연락했고, 첫 만남자리에서 당 홍보본부장 자리를 제안했다. 조 본부장은 “나는 새누리당 성향도 아니고 ‘나꼼수’(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즐겨 듣는다”고 말했지만 박 당선인은 “새누리당을 바꾸는 데 기여해달라”고 청했다고 한다.
조 본부장은 “전문가라는 이유로 총선 과정에서 나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여주는 게 감사했다. 오히려 내가 민주당 성향의 사람이라 당선인의 등 뒤에 칼을 꽂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당선인이 좀 순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본인이 잘 아는 인물이 아닌 추천받은 인사라도 전문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앞뒤 재지 않고 과감하게 쓰는 스타일이다. 인사 때마다 언론에 한 번도 거론되지 않은 깜짝 인사가 나오는 이유다.
깜짝 인사가 도덕적으로 문제없고 실제 능력을 발휘해준다면 대박이지만,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만큼 문제를 일으킬 소지도 크다. 선거 국면에서는 깜짝 인사가 제구실을 충분히 한 경우가 많았다. 야권 인사로 알려졌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비상대책위원 때부터 ‘경제민주화’ 화두를 선점해 중도층 공략에 큰 도움이 됐다. 또한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의 2002년 대선 불법 정치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해 ‘차떼기당’이란 오명을 씌운 안대희 전 대법관을 영입해 정치쇄신 이미지도 선점했다.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을 영입한 것도 젊은 층과 수도권, 여성 표심을 얻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 적도 있었다. 4월 총선 공천심사위원으로 임명했다 이틀 만에 낙마한 진영아 씨가 대표적이다. 진씨는 ‘우리 아이 지킴이’를 자처하며 시민단체 패트롤맘 회장을 지내 영입했으나, 실제로는 정치권을 오랫동안 맴돌고 여러 구설수에 오른 인물이었다. 진씨는 박 당선인이 평소 아는 사람이 아니라, 측근에게 추천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당내에서 새누리당 당원 조회만 했어도 그의 과거 경력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박 당선인이 인사를 할 때마다 잡음이 일면서 3연타석이라는 비아냥거리는 말도 나온다. 윤창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대변인,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김 전 총리 후보자를 뜻하는 말이다.
윤 대변인은 인선 당시부터 이념 편향 논란이 제기되고, 인수위 기간 내내 언론과 적대적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박 당선인이 이명박 대통령과 협의를 거쳐 임명한 이 후보자는 특정업무경비 횡령 의혹 등 갖가지 도덕성 논란을 겪었다. 김 전 총리 후보자는 역대 최초로 정권 초대 총리 후보 낙마라는 기록을 세웠다.
보안을 강조하느라 검증을 제대로 못 하는 본말이 전도된 인사 시스템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누가 인선 작업을 하는지, 어떤 검증 작업을 거치는지 정확히 아는 인사가 없다. 박 당선인 비서실장, 대변인, 정무팀장 등 핵심 관계자도 한결같이 “누가 하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모두 이재만 전 후보 보좌관이 서울 삼성동 박 당선인 자택에서 당선인과 인선 작업을 진행 중이며, 실무 검증 작업을 하는 별도 팀이 있으리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검증 과정은 더 깜깜이다. 박 당선인이 검증 협조를 요청할 수 있는 청와대 측에서는 “우리는 검증 작업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와중에 김 전 총리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허술함이 드러나자 불만이 더 커지고 있다. 언론이 하루 만에 검증할 수 있는 갖가지 의혹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 당선인 주변에서는 “당선인이 김 전 후보자가 헌법재판소장과 대법관을 지낸 경력을 가진 만큼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검증을 거쳤다고 착각한 것 같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김 전 총리 후보자는 1994년 헌법재판소장 임명 당시 재산은 공개했으나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전이라 공식 검증은 거치지 않았다.
인사위원회 구성한다고 나아질까
박근혜 당선인과 국무총리 후보자에서 낙마한 김용준 인수위원장.
박 당선인은 1월 21일 대통령실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기존 인사기획관실을 폐지하고 대통령비서실 내 인사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동안 인사기획관실이 각 부처 국장까지 스크린하고, 무늬만 공모제로 하는 등 권한을 남용하며, 밀실에서 이뤄지는 불투명한 인사 구조를 구축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합의제 기구인 인사위원회를 통해 시스템 인사를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지금 같은 보안 위주의 인선이라면 인사위원회가 구성된다 해도 별로 달라질 게 없으리라는 김빠지는 예측이 나온다. 지금까지 박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보면 시스템 인사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쌓인 인사 자료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청와대 측에 합법적 인사 검증도 요청하지 않고 있다. 박 당선인이 지정한 극소수 실무진이 인사 작업과 검증 작업을 하고, 그 과정 자체를 철저히 비밀에 붙이고 있는 것이다.
인사위원회 위원장을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고 인사위원회 구성까지 수석비서관으로 채운다면 합의제 기구라는 것은 그저 허울일 뿐, 인사 논의 대상이 많아지는 것 외에는 지금과 별 차이가 없다. 또 어차피 인사위원회도 실무진이 인사 검증 작업을 할 테고, 박 당선인 스타일상 지금 같은 극소수 실무진이 극비리에 진행할 개연성이 크다.
박 당선인의 한 측근은 “제도 개선보다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을 바꾸는 게 급선무”라면서 “대선 때는 언론의 치열한 검증도, 인사청문회도 없는 데다 대체제가 많아 검증보다 소임의 적재적소가 더 중시되는 측면이 있지만, 국정운영은 다르다는 사실을 당선인이 빨리 알아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