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처세술과 골프 매너의 관계를 보면 보통 사람의 인생살이 수준을 알 수 있다. 무엇을 배우든 배움이란 결국 인간의 사회생활 수준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인간 행동 중 한 가지만 보면 대략 그 사람의 배움 수준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인간성의 격(格)을 느끼려면 두 가지만 보면 된다. 골프와 고도리다. 골프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자연에서 노니는 것이지만 고도리는 화투짝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골프는 놀이고 고도리는 곧 노름이 된다. 격 차이다. 하지만 골프할 때도 놀이보다 노름의 격으로 떨어지는 천한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놀이하는 사람은 상격이고 노름하는 사람은 하격이다. 골프 대중화가 이 노름꾼들에 의해 방해받는 것이다.
내가 골프를 할 때 가장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는 친구들 모임이 있다. 졸죽회라 부르는 모임인데, ‘졸면 죽는다’는 뜻이다. 이 친구들 실력이 걸출해 80대를 치는 순간 지갑이 다 털린다. 매 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언제 타수가 올라갈지 몰라 ‘졸지 마라’는 뜻으로 동반한 캐디가 붙여준 이름이다. 70대 중반 실력으로 하는 모임인 만큼 라운딩 자체가 짜릿하다. 침묵하는 동반, 도인끼리 하는 말로 묵언 골프! 남들이 몇 타를 치든 어떤 불법 매너를 보이든 말든 말없이 골프에만 집중한다. 한 홀 끝나면 몇 타 쳤느니 확인하지 않고 그냥 돈만 계산해서 주고받는다. 다 알기 때문이다. 이게 골프의 멋이다. 진정한 고수끼리는 내공을 겨룰 때 말이 필요치 않음을 확인해주는 동반자들이다.
놀이를 즐길 줄 알기에 그들은 처세술에도 달인이다. 사업을 해도 절대 상대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이익을 줄까 고심한다. 윈윈(win-win)게임의 법칙을 알기에 상대방 마음을 살 줄 안다. 당연히 신뢰가 쌓이고 사업도 번창한다. 공무원인 친구는 자신만의 골프철학과 처세술을 하나로 결합해 조직 내에서 인격자로 불리며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그만의 세 가지 법칙을 듣고 한참 웃었다. 첫째, 철저히 아부한다. 아부가 아부로 인식되면 그건 아부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칭찬이다. 오로지 칭찬과 격려가 상관과 부하의 기를 살린다. 둘째, 약간의 실력이다. 프로보다는 못해도 아마추어로서의 실력은 갖춰야 한다. 특히 상관은 반드시 프로로 인정해주고 자신은 아마추어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약간의 실력, 이것이 처세술이다. 셋째, ‘책임은 나에게’라는 법칙을 실생활에서도 철저히 지킨다. 캐디 탓을 하거나 핑곗거리를 다른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봐 회개하고 반성한다. 상관에게 공을 돌리고 부하에게 상을 돌리며 책임은 자신이 지는 처세를 몇 년간 하다 보니, 조직에서 인정받아 자꾸 등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접대골프는 고문과 지겨움의 연속이다. 나에게 무슨 대단한 힘이 있어 해주는 접대가 아니라, 고위직에 있는 친구 녀석에게 접대를 하려는 모임에 인원이 부족해 대타로 나간 라운딩이 있었다. 이건 숫제 고문이었다. 접대자가 미리 현금을 준비해와 스킨스 형태로 게임을 진행하는데, 따는 대로 가져가는 놀이동산이었다. 왜 고문이고 지겨움인가. 이게 나한테 접대해주는 것이 아닌데 딸 수가 있나.
매 홀마다 상대 눈치를 봐가며 실수한 척 안 따려니, 골프가 아닌 져주기 게임이었다. 하여간 18홀을 어떻게 돌았는지 모르게 찝찝했다.
그날 한 접(100개를 뜻함)을 쳤다. 돈을 딴 게 아니라 독을 딴 기분이었다. 그 친구한테도 미안하고, 접대자한테도 미안하고, 캐디 보기도 영 쑥스러웠다. 다시는 이런 접대골프는 하지 않으리라. 라운딩 후 식사하면서 대놓고 물었다. “이렇게 재미없는 골프가 괜찮아?”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이게 접대 중에 제일 싸. 술집 가면 더 비싸고 건강에도 안 좋고 서로 찝찝하고 그래.”
로비로서의 골프는 목적이 다른 골프다. 건강이나 자연과의 교감으로 그 호쾌함을 세포가 인식하게 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 삶의 처세수단으로서 응용하는 것이다. 접대받는 사람이 신나게 한판 돌았다는 느낌이 들면 목적은 달성된다.
하지만 이것도 인격과 놀이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냥 굽신거리며 눈에 띄게 잃어주고 기분만 맞춰주는 접대골프는 받는 사람도 찝찝하다.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번은 놀아주지만 두 번 다시 놀 기분이 나지 않는다. 신뢰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목적의 지속성도 이어질 수 없다. 다음에 다시 만나 한판 붙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적당한 실력과 인격을 보여줘야만 관계가 지속되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군 원로들과의 라운딩은 원숙한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재미있는 기회가 됐다. 나이 70 넘은, YS시대 한 가닥 했던 분들이었는데, 실력도 에이지(AGE) 싱글이었다. 자기 나이에 맞는 타수를 치니, ‘경로당 골프’라는 게 똑딱 골프라지만 어프로치와 퍼팅이 천하 고수인지라 당하기도 엄청 당했다. 거리는 여성들과 비슷한데도 세컨드 샷은 무조건 우드로 해 그린 근처에만 가면 붙여서 파다. 그냥 어른들 즐겁게 해주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전반 홀 끝나고 타수를 보니, 이건 영 아니었다.
후반 홀 들어가며 왜 이런 타수가 나왔나 생각해보니, 노인네들 심리전술에 당한 것이다. 기분 나쁘게 ‘구찌 겐세이’(골프장에서만 통용되는 일본말로, 말로 시비 거는 것을 뜻함)가 아니라, 상대를 칭찬하며 마음을 흔드는 전법에 당한 것이다. 드라이버 치기 전에 “젊은 사람이 우리보다 10m는 더 나가야지. 아이구 50m 더 나갔네” 이래 놓고 세컨드 샷을 할 때는 “와, 저 힘 좀 봐라. 마눌님이 엄청 좋아하겄다” 등 요상하게 칭찬하며 집중을 못 하게 만드는 전술에 당한 것이다.
후반전에 가서야 도사 기질을 발휘, 게임에 집중해 창피를 면할 수 있었다. 그날 배운 인생철학은 노인네의 지혜란 곧 경험으로 쌓은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자신만의 목적을 달성하는 골프, 인생이든 골프든 지혜다. 처세술이다. 노인네는 용도폐기된 것이 절대 아니다. 뒷방 늙은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고집이 아닌, 지혜가 쌓이고 철학이 깃든 말이라면 언제든 경청해 배워야 한다.
교수 친구들과 라운딩 했을 때는 쩨쩨함의 극치를 경험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여간 그날 라운딩 한 세 교수는 다 쩨쩨했다. 1000원짜리 스트로크 게임을 하는데, 목숨 걸고 인상 쓰며 서로가 직설적인 방해 작전을 펴는데, 아주 흥겨웠다.
한 녀석은 공을 얼마나 오랫동안 썼는지 딤플(골프공 표면의 홈) 자국이 다 낡아 맨질맨질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얼마나 사용했느냐고 물었더니 3년째 쓰고 있단다. 잊어버리지도 않았느냐고 묻자, 숲으로 들어가거나 연못에 빠져도 절대 버리는 법이 없었다니, 그 집착 수준을 가히 알 만했다.
또 다른 녀석은 상대가 친 공을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못 찾도록 하는 것이 주특기인데, 공이 잔디 속에 들어가 주인 눈에 안 보인다 싶으면 발로 꾸욱 밟아 땅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자기와 비슷한 위치에 공이 있으면 확인하는 척하면서 공을 바꿔버리는데, 그 수법이 저잣거리 깡패보다 못했다. 즉 바지 주머니 속을 터놓고 하단으로 공을 흘려 바꿔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미리 준비하고 나왔단다. 그래놓고 딴 돈과 잃은 돈의 합계를 보니 전부 만 원 이하였다.
하여간 나는 국외자로서 그들의 내기게임을 관찰하는 터라 뭐라고 시비 걸 처지는 못 됐지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52059;도 모르는 게 면장이라더니, 골프 기본철학도 모르면서 교수라. 저녁을 먹으며 왜 그리 쪼잔하게 치느냐고 물었다.
“김 도사, 박사라는 말은 배우고 가르치는 데 자유로운 사람이란 뜻이네. 라틴어에서 나왔지. 말로 설명하고 이론을 가르치는 건 쉬워. 하지만 행동으로 여러 가르침을 전수할 때는 인간성의 말단까지 가보면 의외로 쉽게 깨치지. 주먹이 배움의 원초적 방법인 건 모르지? 세포에 각인되기 때문일세. 아주 더러운 매너를 공유해보면 최고 매너가 무엇인지 알게 돼. 다른 사람하고 칠 때는 품격 높게 행동하지.”
아하. 이것도 가르침의 한 방법이구나. 하여간 인생, 삶의 방법은 참 다양하다.
인간 행동 중 한 가지만 보면 대략 그 사람의 배움 수준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인간성의 격(格)을 느끼려면 두 가지만 보면 된다. 골프와 고도리다. 골프는 비싼 대가를 지불하고 자연에서 노니는 것이지만 고도리는 화투짝 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골프는 놀이고 고도리는 곧 노름이 된다. 격 차이다. 하지만 골프할 때도 놀이보다 노름의 격으로 떨어지는 천한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놀이하는 사람은 상격이고 노름하는 사람은 하격이다. 골프 대중화가 이 노름꾼들에 의해 방해받는 것이다.
내가 골프를 할 때 가장 짜릿한 즐거움을 느끼는 친구들 모임이 있다. 졸죽회라 부르는 모임인데, ‘졸면 죽는다’는 뜻이다. 이 친구들 실력이 걸출해 80대를 치는 순간 지갑이 다 털린다. 매 순간 집중하지 않으면 언제 타수가 올라갈지 몰라 ‘졸지 마라’는 뜻으로 동반한 캐디가 붙여준 이름이다. 70대 중반 실력으로 하는 모임인 만큼 라운딩 자체가 짜릿하다. 침묵하는 동반, 도인끼리 하는 말로 묵언 골프! 남들이 몇 타를 치든 어떤 불법 매너를 보이든 말든 말없이 골프에만 집중한다. 한 홀 끝나면 몇 타 쳤느니 확인하지 않고 그냥 돈만 계산해서 주고받는다. 다 알기 때문이다. 이게 골프의 멋이다. 진정한 고수끼리는 내공을 겨룰 때 말이 필요치 않음을 확인해주는 동반자들이다.
놀이를 즐길 줄 알기에 그들은 처세술에도 달인이다. 사업을 해도 절대 상대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이익을 줄까 고심한다. 윈윈(win-win)게임의 법칙을 알기에 상대방 마음을 살 줄 안다. 당연히 신뢰가 쌓이고 사업도 번창한다. 공무원인 친구는 자신만의 골프철학과 처세술을 하나로 결합해 조직 내에서 인격자로 불리며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그만의 세 가지 법칙을 듣고 한참 웃었다. 첫째, 철저히 아부한다. 아부가 아부로 인식되면 그건 아부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칭찬이다. 오로지 칭찬과 격려가 상관과 부하의 기를 살린다. 둘째, 약간의 실력이다. 프로보다는 못해도 아마추어로서의 실력은 갖춰야 한다. 특히 상관은 반드시 프로로 인정해주고 자신은 아마추어라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약간의 실력, 이것이 처세술이다. 셋째, ‘책임은 나에게’라는 법칙을 실생활에서도 철저히 지킨다. 캐디 탓을 하거나 핑곗거리를 다른 데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봐 회개하고 반성한다. 상관에게 공을 돌리고 부하에게 상을 돌리며 책임은 자신이 지는 처세를 몇 년간 하다 보니, 조직에서 인정받아 자꾸 등용되는 것이다.
하지만 접대골프는 고문과 지겨움의 연속이다. 나에게 무슨 대단한 힘이 있어 해주는 접대가 아니라, 고위직에 있는 친구 녀석에게 접대를 하려는 모임에 인원이 부족해 대타로 나간 라운딩이 있었다. 이건 숫제 고문이었다. 접대자가 미리 현금을 준비해와 스킨스 형태로 게임을 진행하는데, 따는 대로 가져가는 놀이동산이었다. 왜 고문이고 지겨움인가. 이게 나한테 접대해주는 것이 아닌데 딸 수가 있나.
매 홀마다 상대 눈치를 봐가며 실수한 척 안 따려니, 골프가 아닌 져주기 게임이었다. 하여간 18홀을 어떻게 돌았는지 모르게 찝찝했다.
그날 한 접(100개를 뜻함)을 쳤다. 돈을 딴 게 아니라 독을 딴 기분이었다. 그 친구한테도 미안하고, 접대자한테도 미안하고, 캐디 보기도 영 쑥스러웠다. 다시는 이런 접대골프는 하지 않으리라. 라운딩 후 식사하면서 대놓고 물었다. “이렇게 재미없는 골프가 괜찮아?” 그 친구 대답이 걸작이다. “이게 접대 중에 제일 싸. 술집 가면 더 비싸고 건강에도 안 좋고 서로 찝찝하고 그래.”
로비로서의 골프는 목적이 다른 골프다. 건강이나 자연과의 교감으로 그 호쾌함을 세포가 인식하게 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아닌, 삶의 처세수단으로서 응용하는 것이다. 접대받는 사람이 신나게 한판 돌았다는 느낌이 들면 목적은 달성된다.
하지만 이것도 인격과 놀이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냥 굽신거리며 눈에 띄게 잃어주고 기분만 맞춰주는 접대골프는 받는 사람도 찝찝하다. 부담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 번은 놀아주지만 두 번 다시 놀 기분이 나지 않는다. 신뢰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목적의 지속성도 이어질 수 없다. 다음에 다시 만나 한판 붙고 싶다는 생각이 들도록 적당한 실력과 인격을 보여줘야만 관계가 지속되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군 원로들과의 라운딩은 원숙한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재미있는 기회가 됐다. 나이 70 넘은, YS시대 한 가닥 했던 분들이었는데, 실력도 에이지(AGE) 싱글이었다. 자기 나이에 맞는 타수를 치니, ‘경로당 골프’라는 게 똑딱 골프라지만 어프로치와 퍼팅이 천하 고수인지라 당하기도 엄청 당했다. 거리는 여성들과 비슷한데도 세컨드 샷은 무조건 우드로 해 그린 근처에만 가면 붙여서 파다. 그냥 어른들 즐겁게 해주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전반 홀 끝나고 타수를 보니, 이건 영 아니었다.
후반 홀 들어가며 왜 이런 타수가 나왔나 생각해보니, 노인네들 심리전술에 당한 것이다. 기분 나쁘게 ‘구찌 겐세이’(골프장에서만 통용되는 일본말로, 말로 시비 거는 것을 뜻함)가 아니라, 상대를 칭찬하며 마음을 흔드는 전법에 당한 것이다. 드라이버 치기 전에 “젊은 사람이 우리보다 10m는 더 나가야지. 아이구 50m 더 나갔네” 이래 놓고 세컨드 샷을 할 때는 “와, 저 힘 좀 봐라. 마눌님이 엄청 좋아하겄다” 등 요상하게 칭찬하며 집중을 못 하게 만드는 전술에 당한 것이다.
후반전에 가서야 도사 기질을 발휘, 게임에 집중해 창피를 면할 수 있었다. 그날 배운 인생철학은 노인네의 지혜란 곧 경험으로 쌓은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상대를 배려하면서 자신만의 목적을 달성하는 골프, 인생이든 골프든 지혜다. 처세술이다. 노인네는 용도폐기된 것이 절대 아니다. 뒷방 늙은이라고 무시하지 마라. 고집이 아닌, 지혜가 쌓이고 철학이 깃든 말이라면 언제든 경청해 배워야 한다.
교수 친구들과 라운딩 했을 때는 쩨쩨함의 극치를 경험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하여간 그날 라운딩 한 세 교수는 다 쩨쩨했다. 1000원짜리 스트로크 게임을 하는데, 목숨 걸고 인상 쓰며 서로가 직설적인 방해 작전을 펴는데, 아주 흥겨웠다.
한 녀석은 공을 얼마나 오랫동안 썼는지 딤플(골프공 표면의 홈) 자국이 다 낡아 맨질맨질한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얼마나 사용했느냐고 물었더니 3년째 쓰고 있단다. 잊어버리지도 않았느냐고 묻자, 숲으로 들어가거나 연못에 빠져도 절대 버리는 법이 없었다니, 그 집착 수준을 가히 알 만했다.
또 다른 녀석은 상대가 친 공을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못 찾도록 하는 것이 주특기인데, 공이 잔디 속에 들어가 주인 눈에 안 보인다 싶으면 발로 꾸욱 밟아 땅속으로 밀어넣는 것이다. 거기에 더해 자기와 비슷한 위치에 공이 있으면 확인하는 척하면서 공을 바꿔버리는데, 그 수법이 저잣거리 깡패보다 못했다. 즉 바지 주머니 속을 터놓고 하단으로 공을 흘려 바꿔치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미리 준비하고 나왔단다. 그래놓고 딴 돈과 잃은 돈의 합계를 보니 전부 만 원 이하였다.
하여간 나는 국외자로서 그들의 내기게임을 관찰하는 터라 뭐라고 시비 걸 처지는 못 됐지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52059;도 모르는 게 면장이라더니, 골프 기본철학도 모르면서 교수라. 저녁을 먹으며 왜 그리 쪼잔하게 치느냐고 물었다.
“김 도사, 박사라는 말은 배우고 가르치는 데 자유로운 사람이란 뜻이네. 라틴어에서 나왔지. 말로 설명하고 이론을 가르치는 건 쉬워. 하지만 행동으로 여러 가르침을 전수할 때는 인간성의 말단까지 가보면 의외로 쉽게 깨치지. 주먹이 배움의 원초적 방법인 건 모르지? 세포에 각인되기 때문일세. 아주 더러운 매너를 공유해보면 최고 매너가 무엇인지 알게 돼. 다른 사람하고 칠 때는 품격 높게 행동하지.”
아하. 이것도 가르침의 한 방법이구나. 하여간 인생, 삶의 방법은 참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