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버블붕괴 후 일본 도쿄 시내 거리.
일주일에 한 번 서울 서초구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동양고전과 명리학을 강의하는 동양철학자 김태규(58) 씨의 강연 내용이다. 그는 “오늘과 내일의 한국을 알고 싶다면 20년 전 일본과 그 이후 그들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라”고 말한다. 이같이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인생살이가 60년(60甲子)을 한 주기로 잡아 30년은 상승 운세, 나머지 30년은 하강 운세이듯이, 한 나라 운도 60년 주기로 흥(興)과 쇠(衰)를 반복한다. 물론 나라의 경우 대주기인 360년 사이클도 있지만, 사람이 실제적으로 흥과 쇠를 느낄 수 있는 건 60년 사이클이다. ‘30년 하동(河東), 30년 하서(河西)’라는 중국 속담도 바로 이런 주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아무튼 일본은 60년 소주기에서 1993년을 기점으로 30년 하강 운세에 들어갔고, 앞으로도 10년을 더 버텨야 상승 주기에 접어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12년부터 본격 하강 운세에 접어들어 현재 일본과 20년 시차(정확히 19년)로 일본 뒤를 그대로 쫓는 상황이다.”
김태규 씨의 국운 풀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올해부터 30년에 걸친 퇴조 물길을 탄 셈이다. 어찌 보면 섬뜩한 예언인데, 실제로도 그러할까. 김씨 주장을 검증하는 차원에서 운세 하강기에 나타난다는 사회현상을 20년 전 일본과 오늘의 한국을 비교하면서 찾아봤다.
국운 하강기 유사한 현상 속출
일본은 1990년대 중반 ‘히키코모리’, 즉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문제로 부각했다.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히키코모리는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일본이 본격 하강 운세에 접어들면서 이들 존재가 보통명사화할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2010년 이후 광범위하게 퍼진 ‘방콕족’(방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이 그들과 아주 유사하다.
또 일본 경제가 급속도로 침체되는 1993년을 기준으로 기업의 신규 채용이 대폭 줄면서 니트족(neet족·취업 의욕을 상실하고 주로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집단), 프리터족(free arbeiter족·필요한 돈이 모일 때까지 한시적으로 일하고 쉽게 일자리를 떠나는 집단) 등 새로운 집단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일본 취업정보기관 ‘리쿠르트 윅스’ 조사에 따르면, 1991년 84만 명에 이르던 기업의 신규 채용 인력이 1997년 49만 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고, 그 무렵 취업전선에서 낙오한 이들 집단이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우리나라 역시 최근 청년백수시대에 접어들면서 ‘알바’(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를 하는 젊은이가 급속도로 늘어나는 추세다.
프리터족이나 니트족의 증가 현상에 대해 히구치 게이오대학 교수는 “이는 결혼율 하락과 출생 인구 감소 등 사회 활력 요소 상실로 이어진다”고 우려했다. 또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겐다 유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02년 15~34세 니트족이 85만 명이었는데,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부양 능력이 없어진 부모와 니트족 자식이 함께 빈곤에 빠지거나 자식의 노인 학대 같은 범죄 행위로 이어지고 있다. 이 역시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넘어갈 상황은 아닌 듯하다.
한 나라의 운이 상승기에 있는지 하강기에 있는지 가늠하는 척도는 당연히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다. 그러니까 일본의 경우 1993년 버블 경기, 이른바 ‘헤이세이 경기(平成景氣)’에 한껏 취해 있다가 뭔가 잘못됐다고 자각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전까지는 그야말로 잔칫집 분위기였다. 1986년 12월부터 91년 2월까지 51개월간 일본은 자산가격 상승과 그로 인한 호경기로 들떠 있었다. ‘부동산은 반드시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를 믿고 투기를 목적으로 한 부동산개발과 부동산담보대출이 급속도로 늘었고, 구미 각국의 상징적인 건물을 매수하는 등 기업의 해외 부동산 투자도 급속도로 늘어났다.
게다가 버블시대에 자산운용으로 큰 이익을 본 사례가 속출하면서 일본인 사이에서 재테크 붐이 일었다. 재테크 대상은 금융자산과 부동산에서 차츰 확대돼 주식투자, 그리고 페라리, 롤스로이스, 벤틀리 같은 고급 수입차, 롤렉스와 샤넬 등 고급 브랜드 물품, 골동품, 회화 미술품 등 다양했다. 1986년 550만 명이던 일본인 해외여행자는 1991년 1000만 명으로 급증했고, 명품 열풍도 덩달아 정점을 찍었다.
무역수지 악화 땐 치명적 결과
그러다 엔화가 급격하게 상승하며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를 맞았다. 학자들은 버블붕괴가 1990년 11월부터 시작됐다고 하지만, 일본 국민이 이를 체감하기 시작한 것은 1993~97년이라고 한다. 이 무렵 발표된 ‘토지 관련 융자규제법’으로 부동산을 통한 재테크 신화가 붕괴하고, 불량채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업에 위기가 찾아왔다.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 취소, 도산, 대규모 정리해고,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 등 사회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으로 표현되는 디플레이션 시대를 살았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한국 국운 주기로는 상승의 마지막 피치를 올리는 시기였다. 우리 역시 지난 20년간의 상승기에 일본에서 유행하던 것을 그대로 따랐다. 부동산 투기 바람, 온갖 종류의 재테크 열풍, 명품 수집 붐, 해외여행 바람 등 일본인이 누린 호사를 그대로 재현했던 것. 물론 한국 경제는 쭉쭉 성장가도를 달려 전자 분야에서는 일본을 녹다운시키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고, 생활수준도 더는 일본을 부러워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다. 문화적으로도 한류가 일본을 누를 정도로 앞섰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그런데 김태규 씨는 국운상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30년 하강 시기에 접어들었고, 일본과 아주 흡사하게 쇠락의 길을 걸으리라고 예측한다.
“하락기에 일본이 걸어온 길과 우리의 현실에 차이점이 있다면 부동산, 특히 아파트 거품 문제다. 일본은 1990년대 초·중반 거품이 급속히 꺼졌지만, 우리나라는 2010년부터 주택 시세가 서서히 꺾이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일본과 크게 다른 길을 걸으리라고 낙관하기엔 이르다. 일본은 부동산 거품이 급속히 꺼진 이후 지금까지 완만한 하락세를 이어간다면, 우리는 순서만 바뀌어 완만한 하락세를 이어가다 어느 순간 급속한 부동산 붕괴를 맞을 수도 있다.”
동양학자가 지적한 ‘어느 순간’이라는 말은 경제학 시각으로 보자면 무역수지 문제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경우, 무역수지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하고 그것이 단기가 아닌 장기적 추세로 확인되는 바로 그 순간 잠재하던 거품 요소들이 일제히 소멸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나라 경제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우리의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다.
결론적으로 김태규 씨는 일본 사례에서 하강기 운세를 살아갈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사람이든 나라든 운세가 하강기에 접어들면 판단 착오를 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올해와 내년에 결정하는 여러 정책이 우리 미래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인과 경제인의 현명한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것도 바로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