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햄메어트 지음/ 정경준·박용·임우선 옮김/ 레인메이커/ 256쪽/ 1만4800원
그동안 한국의 놀라운 성장을 부럽게 바라보던 세계인의 시선이 이제 질투로 변했다. 한국 기업이 지난 수십 년간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조선에 이르는 광범위한 산업에서 강력하고 지배적인 위치를 굳혀왔기 때문이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상대로 천문학적 손해배상을 청구한 ‘특허전쟁’은 한국 기업이 그만큼 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했음을 증명하는 대표적 사례다.
“한국 기업은 새로운 제품과 산업에 진입할 때 공격적인 전략을 펼친다. 이리 재고, 저리 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시기에도 과감하게 해외시장에 진출해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시장을 확보해나갔다. 위험보다 기회에 주목하고,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결과 생생한 현장감각과 어떤 시장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생존력을 터득했다.”
저자는 이렇게 저돌적인 한국 경영 스타일을 만든 요인을 몇 가지로 간추린다. 먼저 기업의 강한 조직력은 유교 전통을 토대로 한 위계질서가 만든 결과라고 분석한다. 또한 남다른 교육열,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통해 형성된 인내력과 생존력, 국가에 대한 충성심도 빼놓지 않고 거론한다.
2012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재벌’로 대표되는 한국 기업은 개혁 대상 일순위로 십자포화를 맞고 있다. 이는 그동안 한국식 경영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불투명하고 전문성이 결여됐으며 무모한 사업 다각화를 바탕으로 한 나쁜 지배구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생각을 달리한다”면서 “한국 사람은 스스로 지나치게 엄격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일갈한다.
“동료 교수나 한국 기업의 경영자도 한국 기업은 아직 갈 길이 멀고 더 개선돼야 한다고 얘기한다. 미국과 서구 기업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외국인이 한국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던 한국 기업은 금융위기를 통해 취약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과도한 차입 경영, 상호지급보증, 의사소통부재로 인한 제왕적 의사결정,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키운 몸집 등은 돌이킬 수 없는 경영상의 ‘죄악’이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은 좌절하지 않았다. 금융위기 극복을 통해 체질을 확실히 바꿨다. 단순히 위기에서 살아남은 데 그치지 않고 더 날렵한 사업 포트폴리오, 더 효율적인 조직구조, 현대화한 경영시스템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외국인 교수의 따뜻한 시선이 아니더라도, 불황과 경제위기에서도 성장하는 한국식 경영은 강력한 경쟁력을 지닌다. 기술 변화와 혁신만이 기업 및 국가의 생존을 보장하는 오늘날의 공격적 사업계획, 신속성, 유연성은 변덕스러운 경영환경에서 강력한 무기다. 위기에 더 강한 힘을 발휘하는 한국식 경영, ‘우리만 너무 저평가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물음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