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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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에 생명을 부여했다

골퍼는 신선

  • 글 | 김종업 ‘도 나누는 마을’ 대표 up4983@daum.net

    입력2012-09-24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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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공에 생명을 부여했다
    나는 수행자다. 몸만으로 수행하는 기공수련자도, 마음만으로 생각을 붙잡는 불도인(佛道人)도 아니다. 단어를 골라 쓰며 느낌, 감각을 표현하는 철학자도 아니다. 그저 생각 너머의 생각, 느낌 너머의 감각을 찾아가는 의식 초월 탐구여행 구도자일 뿐이다. 구도(求道)를 하다 보니 골프가 구도의 훌륭한 수단임을 알게 됐다.

    구도하는 사람은 길을 찾는 사람이다. 물리적 길이 아닌 마음의 회로를 찾아 그 쓰임새와 용도를 확인하고, 단단하게 굳어진 길 외에 정글 속 무한한 미개척지를 길로 바꾸는 노릇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찾은 길을 알려줘야 후학이 헤매지 않기 때문이다.

    구도의 회로를 찾는 데는 도구가 필요하다. 물리적 길에는 정글도(刀)가 필요하지만 마음의 길을 찾는 데는 몸의 경험이 그 도구다. 몸 쓰임새를 통해 세포에 기록된 기억이라는 이름의 도구가 그것이다. 몸의 경험이 도가 아닌 돈, 생존을 위한 먹이활동, 짝을 찾는 도구로 쓰인다. 목적성과 방향성 모두 몸의 쓰임을 통한 경험이 필요하기에 나 스스로가 만든 놀이의 저장이 곧 기억이다. 그 기억이라는 도구를 통해 삶의 방향을 찾고 영혼 확장 재료를 얻는다.

    도구 외의 수단으로는 하늘과 땅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지혜를 가지는 것이 중간 단계다. 지식이나 지성이 아닌 지혜를 얻는 활동, 이것이 수단이다. 옛 선인(仙人)은 산에서 살며 자연과의 하나 됨을 활동수단으로 삼았기에 산에 머물렀다. 사람(人)과 산(山)이 결합한 용어가 선(仙)이다. 선인은 신(神)이 되기 위한 중간 단계다. 요즘 나는 선인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 산으로 가라는 말 대신 골프를 하라고 말한다. 몸의 한계를 알아야 무한대 의식을 가진 신에 접근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의식과 육체의 경계를 경험하는 놀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를 끝내고 자연과의 관계를 구도 수단으로 삼아 놀아보라고 하는 것이다.

    나도 어느 순간 두뇌 회로가 열렸을 때 인간관계를 끝내고 산으로 가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오묘한 조화가 현존하는 물질세계를 만들어내는 뿌리임을 알았을 때 먹이와 짝을 찾고 보존하는 삶의 여정이 다 끝났음을 알았다. 이제부터는 존재하는 모든 놀이를 내 것으로 삼아 선인에서 신선으로 올라가는 여정만이 존재함을 알았다. 어떤 놀이를 즐길 것인가. 내가 만든 이 세계를 경험하는 데 어떤 도구와 수단이 필요한가라는 내면의 물음은 나를 자연스럽게 골프로 인도했다. 남들처럼 사업상, 자기 과시용이나 재미용이 아니라 의식과 육체의 관계를 시시때때로 점검할 수 있고 나 자신이 신임을 확신시켜주는 놀이가 골프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살면서 나는 다른 존재에게 생명을 부여한 적이 있는가. 생명 그 자체를 탄생시켜본 적이 있는가. 골프를 생명으로 접근해봤을 때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공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순간, 나는 신이면서 동시에 선인임을 알 수 있었다.

    티 위에 공을 올려놓는 순간 그 공은 생명을 가진다. 어느 누구도 간섭할 수 없고 손대서는 안 된다. 공 자체가 생명을 가지고 땅에서 흘러가는 것이다. 돌과 나무, 물과 풀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그 속에서 존재감을 가지는 것이다. 자신이 부여한 생명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다시 생명을 영위하려고 땅으로 회귀하는 모습, 다시 땅에서 적당히 날아올라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안착하는 모습을 봤을 때 내가 창조주임을 알 수 있었다. 무덤자리인 그린에 조용히 앉아 땅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신이 건드려주기를 기다리는 생명의 모습이 바로 내가 창조한 공이다. 생명이 신만의 영역, 신만이 할 수 있는 기능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인간인 나는 그 모든 존재를 탄생시킨 주역이었다.

    신의 고유한 기능인 창조와 유지, 파괴의 속성이 다른 식으로 표현된다. 투쟁과 경쟁, 시기와 질투를 통해 삶의 경험을 배우는 나는 작대기를 통해 파괴 본능을 경험한다. 공이라는 존재를 유지시키기 위해 힘껏 하늘로 보낸다. 파괴의 끝을 경험하기 위해 나 스스로를 죽음이라는 무의 공간에 가두는 대신 홀컵이라는 저장공간을 만들었다. 마지막 저장공간인 홀컵에 떨어지는 소리를 통해 신의 속성인 창조와 유지, 파괴의 마지막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가 바로 창조자인 신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행위였다.

    이러한 경지에 오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가. 백돌이 시절에는 고통을 배웠다. 무언가 자연과 대화하는 느낌이지만 그로부터 헐떡임과 산란함만 배웠다.

    90돌이 시절에는 술(術)을 배웠다. 기술, 무술, 예술 하는 그 술법은 팔과 어깨로 치고 머리를 쓰지 않았다. 의식의 진동수를 쓰는 것이 아닌, 만들어진 도구만 이용하다가 스스로의 주체타법을 알 때쯤에야 자신만의 술이 생겼다.

    80대를 칠 때는 환희와 즐거움을 알았다. 못 친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잘 친 순간만 기억한 것이다. 고통과 즐거움이 곧 존재를 확인하는 진동수의 높낮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비로소 선인의 문턱에 진입하게 됐다.

    70대를 칠 때쯤 자연을 이해했다. 스스로 존재하는 모든 것, 모든 존재는 자신을 나타내려고 이 땅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제야 겸손을 배우고 배려를 익히고 경외심을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이 끝나서야 신인(神人)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은 것을 알았다. 한두 번 언더파를 칠 때쯤 즐김의 미학, 느림의 아름다움, 정지의 고요함을 깨닫는다. 비로소 신임과 동시에 자연인이고 사람임을 고마워하는 수준이 된 것이다.

    입문자는 중생이다. 선인 준비과정에 있는 사람이다. 유식하게 말해 중생이지, 다른 말은 짐승이다. 짐승의 과정을 벗어나야 선인이 된다. 선인이 돼야 신이 된다. 신이 돼야 존재하는 모든 것에 이롭게 행동할 줄 안다. 풀잎 하나, 물 한 방울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바람과 햇빛을 소유하지 않는다. 동반자도 나와 같은 신이라는 의식이 몸에 기록돼 나같이 대우한다. 남이 또 다른 나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골퍼는 신선이다. 당신은 중생인가, 선인인가, 아니면 신선인가.

    내가 공에 생명을 부여했다
    필자 김종업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소령 때 야전생활을 거치며 자연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1989년 선도(仙道)에 입문했다. 골프는 1994년 시작했다. 대령 예편 후 수련자 생활을 즐기고 있으며, 골프는 최적의 수련 수단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대학에서 명상과 단전호흡을 강의했고, 한국정신과학학회 이사를 지냈다. 골프구력은 20여 년이며 핸디는 7 정도다. 수행만을 목적으로 핸디를 따지면 이븐(even)이고 어울림의 목적으로 따지면 15다. 현재 사단법인 ‘도 나누는 마을’ 대표. 저서로 ‘도란도란 도 이야기’ ‘진화하는 맘’ ‘암으로부터 얻은 자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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