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를 기억하십니까.”
한국에선 머리가 벗어진 군인 출신 대통령이 연일 비장하고 단호한 어조로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던 때다. 미국에선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이 농담 섞인 유창한 연설로 자국민과 세계인에게 ‘강력한 미국’에 대해 역설했다. 한국은 군사 독재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 시대였고, 미국은 신보수주의와 레이거노믹스 시대였다.
하지만 당대 청춘에게도 그 시절이 ‘전두환의 5공화국’ 혹은 ‘레이거노믹스 시대’였을까. 한국 젊은이에겐 오히려 들국화와 시나위(이상 1985년 데뷔) 혹은 부활, 백두산(이상 1986년 데뷔) 시대였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 10대와 20대에겐 모틀리 크루, 건스 앤 로지스, 콰이어트 라이어트, 데프 레퍼드가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던 때가 바로 1980년대다.
1985년 대중음악을 감시하려고 결성한 미국 학부모 음악연구소(PMRC)는 특히 헤비메탈 음악의 가사가 불온하다며 그룹 활동을 제한하라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PMRC의 주요 표적은 모틀리 크루, 데프 레퍼드, 콰이어트 라이어트, AC-DC 등 1980년대 메인스트림 록밴드들이었다. PMRC를 비롯한 당시 보수주의자들은 록밴드 음악이 청소년에게 섹스와 음주, 마약, 사탄 숭배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풍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삽화인 동시에 록음악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에피소드다.
록음악을 지옥으로 보내버려?
할리우드 영화 ‘락 오브 에이지’는 1980년대 록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니만큼 일단 귀가 즐겁다. 콰이어트 라이어트의 ‘Cum on feel the noize’(1983), 데프 레퍼드의 ‘Pour some sugar on me’(1987), 포리너의 ‘Waiting for a girl like you’(1981), 스타십의 ‘We built this city’(1985), 그리고 본 조비와 스키드 로, 건스 앤 로지스, 저니, 트위스티드 시스터, 애로스, 조앤 제트까지. 1980년대 전설적인 밴드와 록의 명곡이 영화 내내 흐른다.
1987년 할리우드 ‘선셋 스트립’이 배경이다. 선셋 스트립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웨스트 할리우드를 가로지르는 선셋대로의 서쪽 경계에서부터 비벌리힐스까지 2.4km에 이르는 상업지구다. 명품 숍과 고급 레스토랑뿐 아니라 록클럽과 나이트클럽이 즐비해 미국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도 중요한 지역으로 꼽힌다. 1980년대에는 메인스트림의 헤비메탈 밴드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벌여 록스타 산실로 통하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비롯한 뮤지컬과 영화에서 숱하게 반복한 ‘꿈을 안고 상경한 소녀’라는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만큼 스토리가 단순하다. 가수 꿈을 안고 오디션을 보려고 할리우드에 온 쉐리(줄리앤 허프 분)는 여행 가방을 도난당하고, 우왕좌왕하던 중 우연히 만난 청년 드류 볼리(디에고 보네타 분)의 주선으로 선셋 스트립의 유명 클럽 ‘버번 룸’에 종업원으로 취직한다. 버번 룸의 사장(앨릭 볼드윈 분)이 쉐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당시 할리우드 스타를 동경하던 젊은이들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압축한다.
“성가대 출신이겠지? 고등학생 때 뮤지컬에서 주연을 맡으며 노래 좀 한다는 칭찬을 들었을 거야. 그래서 부와 명성을 찾아 이곳에 온 거지. 숙모는 크게 될 가수 재목이라며 부추겼을 테고. 고향을 떠나면서 운동선수인 남자친구에겐 이별을 통고했겠지?”
톰 크루즈의 강렬한 연기
당대 풍경이 여러 장면에서 삽화처럼 등장한다. 대중은 “마이클 잭슨이 갈수록 하얘진다”며 웃는다. 유명 음반판매 체인점인 타워레코드의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로고도 선명하다. 국내 록 팬 사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스키드 로의 ‘18 and life’가 매장 안에 울려 퍼진다. TV에선 LA시장 부인(캐서린 제타존스 분)이 ‘록음악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연설을 한다. 아이들에게 로큰롤은 질병이며 사탄의 음악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선셋 스트립을 깨끗하게 ‘청소’해 자식들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사탄은 지옥으로 보내겠다.” 버번 룸 앞에선 보수적인 학부모들이 연일 시위를 벌인다.
영화는 이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지금은 비록 술잔을 나르지만 가슴에는 스타의 꿈을 안은 쉐리와 볼리 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와 음악을 향한 열정을 담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당대 최고 록스타 ‘스테이시 젝스’로 분한 톰 크루즈다. 그는 긴 머리에 가죽바지를 즐겨 입고, 상의를 벗은 채 근육질 몸매를 과시한다. 무대 위에선 늘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무대 뒤에선 술과 마약, 여자에 취해 기행을 일삼는 인물이다. 숙소와 무대 뒤 대기실엔 항상 이교도 제단 같은 괴이한 물건을 늘어놓고, 술에 취해 교주 같은 망상과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코러스든, 그루피(록스타를 쫓아다니는 극성 여성 팬)든, 기자든 가리지 않고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인다. 극단적인 남성미를 과시하는 1980년대 마초형 록스타를 빼어나게 재현한 톰 크루즈의 연기는 한편으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강렬하고 진지해 감탄을 자아낸다.
‘락 오브 에이지’는 1980년대에 대한 송가(頌歌) 같은 작품이다. 1980년대에 10, 20대를 보낸 40, 50대 관객이 열광할 만한 록음악 축제 같은 작품이다. 최근 ‘건축학개론’을 필두로 ‘범죄와의 전쟁’ ‘댄싱 퀸’ 등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한국 영화가 인기를 끄는 가운데, 할리우드 영화마저 ‘복고’를 콘셉트로 한 작품이 잇따를 예정이라 관객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헤비메탈이 음악계를 지배할 때 스크린 스타는 누구였나. 마초와 터프가이, 액션영웅 전성시대였다.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 ‘코만도’의 아널드 슈워제네거,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델타 포스’의 척 노리스가 영화에서 종횡무진 ‘무력시위’를 벌이던 때다. 환갑이 넘고 할아버지가 됐지만 여전히 ‘형님’ 호칭이 더 어울리는 그들도 귀환한다. 9월 개봉하는 ‘익스펜더블 2’가 그것이다. 40대 전후 관객이 크게 늘어나는 국내 극장가의 판도 변화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에선 머리가 벗어진 군인 출신 대통령이 연일 비장하고 단호한 어조로 뉴스 첫머리를 장식하던 때다. 미국에선 영화배우 출신 대통령이 농담 섞인 유창한 연설로 자국민과 세계인에게 ‘강력한 미국’에 대해 역설했다. 한국은 군사 독재에 기반을 둔 권위주의 시대였고, 미국은 신보수주의와 레이거노믹스 시대였다.
하지만 당대 청춘에게도 그 시절이 ‘전두환의 5공화국’ 혹은 ‘레이거노믹스 시대’였을까. 한국 젊은이에겐 오히려 들국화와 시나위(이상 1985년 데뷔) 혹은 부활, 백두산(이상 1986년 데뷔) 시대였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당시 미국 10대와 20대에겐 모틀리 크루, 건스 앤 로지스, 콰이어트 라이어트, 데프 레퍼드가 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던 때가 바로 1980년대다.
1985년 대중음악을 감시하려고 결성한 미국 학부모 음악연구소(PMRC)는 특히 헤비메탈 음악의 가사가 불온하다며 그룹 활동을 제한하라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PMRC의 주요 표적은 모틀리 크루, 데프 레퍼드, 콰이어트 라이어트, AC-DC 등 1980년대 메인스트림 록밴드들이었다. PMRC를 비롯한 당시 보수주의자들은 록밴드 음악이 청소년에게 섹스와 음주, 마약, 사탄 숭배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1980년대 풍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삽화인 동시에 록음악의 위력을 실감케 하는 에피소드다.
록음악을 지옥으로 보내버려?
할리우드 영화 ‘락 오브 에이지’는 1980년대 록음악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니만큼 일단 귀가 즐겁다. 콰이어트 라이어트의 ‘Cum on feel the noize’(1983), 데프 레퍼드의 ‘Pour some sugar on me’(1987), 포리너의 ‘Waiting for a girl like you’(1981), 스타십의 ‘We built this city’(1985), 그리고 본 조비와 스키드 로, 건스 앤 로지스, 저니, 트위스티드 시스터, 애로스, 조앤 제트까지. 1980년대 전설적인 밴드와 록의 명곡이 영화 내내 흐른다.
1987년 할리우드 ‘선셋 스트립’이 배경이다. 선셋 스트립은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LA) 웨스트 할리우드를 가로지르는 선셋대로의 서쪽 경계에서부터 비벌리힐스까지 2.4km에 이르는 상업지구다. 명품 숍과 고급 레스토랑뿐 아니라 록클럽과 나이트클럽이 즐비해 미국 엔터테인먼트산업에서도 중요한 지역으로 꼽힌다. 1980년대에는 메인스트림의 헤비메탈 밴드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벌여 록스타 산실로 통하기도 했다.
‘브로드웨이 42번가’를 비롯한 뮤지컬과 영화에서 숱하게 반복한 ‘꿈을 안고 상경한 소녀’라는 설정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만큼 스토리가 단순하다. 가수 꿈을 안고 오디션을 보려고 할리우드에 온 쉐리(줄리앤 허프 분)는 여행 가방을 도난당하고, 우왕좌왕하던 중 우연히 만난 청년 드류 볼리(디에고 보네타 분)의 주선으로 선셋 스트립의 유명 클럽 ‘버번 룸’에 종업원으로 취직한다. 버번 룸의 사장(앨릭 볼드윈 분)이 쉐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당시 할리우드 스타를 동경하던 젊은이들의 전형적인 스토리를 압축한다.
“성가대 출신이겠지? 고등학생 때 뮤지컬에서 주연을 맡으며 노래 좀 한다는 칭찬을 들었을 거야. 그래서 부와 명성을 찾아 이곳에 온 거지. 숙모는 크게 될 가수 재목이라며 부추겼을 테고. 고향을 떠나면서 운동선수인 남자친구에겐 이별을 통고했겠지?”
톰 크루즈의 강렬한 연기
당대 풍경이 여러 장면에서 삽화처럼 등장한다. 대중은 “마이클 잭슨이 갈수록 하얘진다”며 웃는다. 유명 음반판매 체인점인 타워레코드의 노란색 바탕에 빨간색 로고도 선명하다. 국내 록 팬 사이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스키드 로의 ‘18 and life’가 매장 안에 울려 퍼진다. TV에선 LA시장 부인(캐서린 제타존스 분)이 ‘록음악과의 전쟁’을 선포하는 연설을 한다. 아이들에게 로큰롤은 질병이며 사탄의 음악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선셋 스트립을 깨끗하게 ‘청소’해 자식들을 마음 놓고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사탄은 지옥으로 보내겠다.” 버번 룸 앞에선 보수적인 학부모들이 연일 시위를 벌인다.
영화는 이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지금은 비록 술잔을 나르지만 가슴에는 스타의 꿈을 안은 쉐리와 볼리 두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와 음악을 향한 열정을 담았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진정한 주인공은 당대 최고 록스타 ‘스테이시 젝스’로 분한 톰 크루즈다. 그는 긴 머리에 가죽바지를 즐겨 입고, 상의를 벗은 채 근육질 몸매를 과시한다. 무대 위에선 늘 최고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만 무대 뒤에선 술과 마약, 여자에 취해 기행을 일삼는 인물이다. 숙소와 무대 뒤 대기실엔 항상 이교도 제단 같은 괴이한 물건을 늘어놓고, 술에 취해 교주 같은 망상과 헛소리를 늘어놓는다. 코러스든, 그루피(록스타를 쫓아다니는 극성 여성 팬)든, 기자든 가리지 않고 여자를 침대로 끌어들인다. 극단적인 남성미를 과시하는 1980년대 마초형 록스타를 빼어나게 재현한 톰 크루즈의 연기는 한편으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강렬하고 진지해 감탄을 자아낸다.
‘락 오브 에이지’는 1980년대에 대한 송가(頌歌) 같은 작품이다. 1980년대에 10, 20대를 보낸 40, 50대 관객이 열광할 만한 록음악 축제 같은 작품이다. 최근 ‘건축학개론’을 필두로 ‘범죄와의 전쟁’ ‘댄싱 퀸’ 등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한국 영화가 인기를 끄는 가운데, 할리우드 영화마저 ‘복고’를 콘셉트로 한 작품이 잇따를 예정이라 관객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헤비메탈이 음악계를 지배할 때 스크린 스타는 누구였나. 마초와 터프가이, 액션영웅 전성시대였다. ‘람보’의 실베스터 스탤론, ‘코만도’의 아널드 슈워제네거, ‘다이하드’의 브루스 윌리스, ‘델타 포스’의 척 노리스가 영화에서 종횡무진 ‘무력시위’를 벌이던 때다. 환갑이 넘고 할아버지가 됐지만 여전히 ‘형님’ 호칭이 더 어울리는 그들도 귀환한다. 9월 개봉하는 ‘익스펜더블 2’가 그것이다. 40대 전후 관객이 크게 늘어나는 국내 극장가의 판도 변화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