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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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클리어링 룰 있기? 없기?

빈볼 시비 이은 ‘집단 몸싸움’에서 욕은 넘지 말아야 할 선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2-08-06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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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치클리어링 룰 있기? 없기?

    2011년 5월 30일, LG와 넥센 경기에서 9회 초 LG 윤요섭이 빈볼성 투구를 피한 후 넥센 포수 허준(현 NC 다이노스)과 신경전을 벌이자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달려 나왔다.

    프로야구 초창기만 해도 빈볼(bean ball)과 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은 ‘무조건 나쁜 것’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1982년 출범 당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한국 프로야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빈볼도 벤치클리어링도 정상적인 야구의 일부분이다. 복잡하고 함축적인 뜻을 내포한 유의미한 행위인 것이다. 야구가 개인 기록을 명확하게 수치화할 수 있음에도 결코 개인 종목이 아닌 단체 종목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빈볼의 통상적 의미는 콩을 뜻하는 빈(bean)이 속어로 머리를 가리키는 데서 유추할 수 있다. 즉 투수가 고의적으로 타자 머리 부분을 겨누고 던지는 반칙투구다. 머리를 향해 오는 공을 피하려고 타자들이 뒤로 벌렁 넘어진다고 해서 녹다운 피치(knockdown pitch)라고도 한다. 국내에서는 몸 쪽 위협구까지 빈볼로 통칭한다. 심판이 빈볼을 적발했을 때는 투수에게 경고나 퇴장을 명령할 수 있다.

    타자도 직감적으로 아는 빈볼

    빈볼을 던지는 주체는 투수다. 투수는 보통 상대 팀이나 타자가 야구의 불문율을 지키지 않았을 때 빈볼을 던진다. 큰 점수 차로 이기는 상황에서 번트를 대거나 도루를 하는 것을 야구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는 예의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인다. 과도한 세리머니도 예의에 어긋난다. 이럴 때 투수는 고의적으로 타자 머리에 근접하게 공을 던진다. 이처럼 빈볼의 목적은 분명하다.



    또 다른 목적의 빈볼도 있다. 공을 타자 몸 쪽에 붙을 만큼 가깝게 던져 심리적으로 위축시킴으로써 ‘볼싸움’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려는 ‘얌전한’ 빈볼이 그것이다. 흔히 위협구라고 부르는데, 삼성 이승엽이 일본에서 뛸 당시 바로 이런 투구 패턴에 고전했다. 투수들이 몸 쪽으로 바짝 붙게 날아가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으로 방망이를 유인한 것이다.

    빈볼을 던지고서 “일부러 그랬다”고 인정하는 투수는 없다. 때에 따라서는 코치나 감독이 빈볼을 지시하기도 하지만 “내가 시켰다”고 선선히 말하는 지도자도 보기 힘들다. 1960년대 빈볼을 심리전에 활용한 리오 듀로셔 시카고 컵스 감독이나, “타석에서 내 공을 조심하라”는 경고로 빈볼을 예고한 메이저리그 ‘헤드헌터’ 로저 클레멘스는 극히 예외적인 존재다. 보수적인 우리나라 현실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타자들은 투수가 의도적으로 빈볼을 던졌는지, 아니면 정상적으로 던졌는데 손에서 공이 ‘빠진 것인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투수 눈빛과 공을 놓는 손의 위치, 그리고 게임 상황 등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자신이나 팀 동료가 불문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는 ‘내게 빈볼이 날아올 수 있겠구나’라고 짐작하고 일부러 타석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있기도 한다. 이런 때는 설령 공이 몸에 맞더라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타자로서도 투수가 충분히 그럴 만한 상황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수가 빈볼을 던지고 타자가 거칠게 반응하면 대개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진다. ‘집단 몸싸움’으로 바꿔 표현할 수 있는 벤치클리어링은 야구나 아이스하키 등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야구에선 특히 빈볼이나 판정 시비 또는 코칭스태프나 선수 간 불협화음으로 양 팀 선수가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와 대치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빈볼과 마찬가지로 벤치클리어링도 우발적으로 보이지만 대부분 이런저런 이유가 잠복해 있다. 폭발할 만한 이유와 사정이 있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한 경기 혹은 한국시리즈 같은 단기전에서 전체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SK와 두산이 맞붙었던 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이 대표적이다. SK가 9대 0,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을 때 두산 투수 이혜천이 SK 타자 김재현에게 빈볼을 던졌다. 누가 보더라도 목적이 있는 공이었다. 두산은 앞서 베테랑 안경현이 골절상을 당하는 등 SK 투수들의 몸 쪽 공에 여러 번 위협을 느꼈고, 이미 승부가 기운 상태에서 SK 타자들에게 ‘너희도 다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려 한 것이다. 그런데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졌고, 두산 선수들이 흥분하며 자제력을 잃었다. 결국 두산은 이날 경기부터 6차전까지 내리 4연패하면서 한국시리즈 승리를 내주고 말았다.

    머리 쪽으로 던지면 절대 안 돼

    벤치클리어링 룰 있기? 없기?

    7월 3일 KIA와 두산 경기에서 KIA 나지완이 두산 프록터의 빈볼성 투구에 항의하고 있다.

    7월 초 한국 프로야구는 두산 용병 투수 프록터의 빈볼과 그 표적이 된 KIA 나지완, 그리고 나지완과 두산 김현수의 갈등이 얽히고설키면서 한동안 시끄러웠다. 나지완은 타석에서 프록터를 상대할 때 이미 자신에게 빈볼이 날아올 것을 예감했다. 이전 게임에서 홈런성 타구를 날린 뒤 프록터를 자극할 만한 세리머니를 했기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프록터가 던진 빈볼 방향이다. 초구는 나지완의 머리 쪽을 향했다. 빈볼이라는 사전적 의미와 별도로, 상대가 아무리 자기 팀을 자극했다 하더라도 일종의 메시지를 보내려는 차원의 고의적 사구가 머리를 향해서는 안 된다. 기본적인 동업자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 초창기인 1956년 선린상고 소속 최운식이 빈볼을 맞아 사망했고, 메이저리그에서도 1920년 레이 채프먼이 빈볼로 유명을 달리한 바 있다. 엉덩이나 종아리 쪽으로 던져 뼈를 부러뜨릴지언정 생명과 직결되는 머리 쪽으로 빈볼을 던져서는 안 된다. 빈볼을 던질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다.

    프록터의 빈볼에 이어진 양 팀 간 벤치클리어링에서 나지완과 김현수가 주고받은 말싸움이 논란이 됐다. 두 사람은 신일고 선후배 사이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고교 2년 후배인 김현수가 선배에게 육두문자를 썼다는 사실로 그동안 쌓아온 김현수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김현수가 선후배 의식이 엄격한 한국 현실에서 자신보다 나이 많은 선배에게 욕을 한 행동은 충분히 지적받을 만하다.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면 때에 따라 상대팀 선수와 몸싸움을 벌일 수도 있다. 심하면 주먹을 휘두르기도 한다. 벤치클리어링은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 욕을 해선 안 된다. 지극히 한국적인 현실을 고려한 것이지만, 벤치클리어링에서 꼭 지켜야 할 선이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벤치클리어링 때도 마찬가지다. 속된 말로 피 튀는 싸움이 아니라면 벤치클리어링 역시 팬들에게 어느 정도 긴장감을 유발하는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빈볼이든 벤치클리어링이든 ‘지켜야 할 선’만 지킨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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