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초기에 이명박이 추구하던 정책은 ‘중도통합’이었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다 포용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다. 그것이 대한민국, 나아가 북한까지 포함된 통일한국에 가장 적합한 정책처럼 보였다.
그런데 광우병 난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좌익, 그리고 종북세력에게 이명박의 중도통합은 놀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나 같았다. 따라서 우익에게 이명박의 중도통합론은 극렬 좌익의 반발을 겁낸 ‘비겁한’ 수단이며, 이명박은 ‘겁쟁이’로 매도됐던 것이다. 나아가 이명박의 교우관계와 전력을 상기시켜 이명박은 ‘위장된 보수’였으며 실체는 ‘좌익’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이명박을 지지했고 결국 530만 표차로 사상 최대 차의 승리를 창출한 보수 우익의 배신감과 실망감은 제 손가락을 잘라낼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일 이명박이 계속 중도통합을 밀고 나갔다면 내치(內治)는 거의 하나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두 정권에서 암세포처럼 배양된 종북세력이 2012년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까지 확보하게 될 수도 있었다. 이것은 모두 이명박의 책임이 될 것이다. 지지자의 염원을 업고 얼마든지 종북세력을 척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 이명박이 종북세력을 다 척결했다. 대한민국이 이승만의 건국에서부터 군사혁명, 10월 유신, 군사정권, 그리고 정치가들의 정권에 이르러 국가 부도, 두 좌익정권까지 겪는 60년사를 기록한 후에 처음으로 안정된 대한민국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명박 시대에서 대한민국의 ‘신풍’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도 경제 때문에 이명박 찍었어.”
그렇게 말한 사내는 서울 영등포에서 철물점을 하는 오종근이다. 52세. 고향은 대전. 철물점 점원에서 시작해 3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당산동의 30평형 아파트가 전 재산이며 가게는 세로 얻었다. 작년에 큰딸을 시집보내느라 적금과 저금을 다 썼기 때문이다. 집에는 아내와 대학 3학년짜리 딸까지 세 식구가 산다. 오종근이 말을 잇는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 글고 다 그게 그거 아닌가? 돈 안 먹어본 놈이 어딨어? BBK니 바비큐니 그까짓 게 무신 상관이여? 나는 그런 거 상관 안 했지.”
지금 오종근은 가게 안에서 옆집 박경술하고 소주를 마시는 중이다. 오후 6시밖에 안 되었지만 손님이 없는 터라 상관없다. 오징어 다리를 집으며 오종근이 쓴웃음을 지었다.
“광우병 난동 때까정 이명박이가 대여섯 달 동안 허는 꼬라지를 보고 나서 아예 손목을 잘라내고 싶었지. 빌빌거리고 숨고, 거기에다 고소영 인사에다 중도실용.”
오종근이 한 모금에 소주를 삼키고는 말을 잇는다.
“시청에서부터 따라댕기던 놈들을 덥석덥석 요직에 앉히는 걸 보자니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 아, 내가 착각했구나.”
“….”
“나 같은 오너가 대통령 되어야지 월급쟁이는 회장 할애비라도 대통령 시키면 안 되겠구나 하고 그때서야 깨닫게 되더라고.”
“왜?”
박경술은 53세로 바로 옆집 철물점 사장이다. 거기도 고만고만한 매출액에다 살림도 비슷하다. 박경술이 묻자 오종근이 한 모금에 술을 삼키고는 말했다.
“삥땅 안 먹는 월급쟁이 본 적 있나? 없어. 다 먹는다. 그럼 혼자만 먹나? 그럼 그놈은 출세 못 한다. 다 위아래하고 주고받으면서 크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지?”
“이명박이도 돈 먹고 컸단 말이구마.”
“밑에 놈들하고 사이좋게.”
“그렇다면….”
“지난번에 구속된 놈들도 전에 이명박이하고 삥땅 나눠 먹은 놈들일 것이다.”
“에이, 설마.”
“지금 교도소에서 씨발, 씨발 하고 있을껴.”
“갑자기 칼같이 다 잘랐다고 말이지?”
박경술이 술기운으로 벌게진 눈으로 오종근을 보았다.
“이명박이 인기가 역대 최고여. 넌 손가락 안 잘라도 돼.”
30년 전 전라남도 장성에서 상경한 박경술은 정동영을 찍었다. 그래서 손가락을 자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 김정일이 탄 고려항공 전용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2009년 3월 5일 오전 10시 반이다. 전용기는 김포나 가까운 성남 서울공항에 내릴 수도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사정상’ 인천공항을 고집했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인천공항은 5년째 공항 서비스, 관리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세계 최고 공항이다. 규모는 물론 물동량도 세계 5위권에 드는 데다 시설이 압도적이다. 평양 순안공항의 150배는 된다.
김정일은 비행기 창밖으로 공항 게이트에 늘어서 있는 수백 대의 항공기를 보았다. 대부분 한국 국적기였고 그 크기가 자신이 타고 온 옛 소련제 전용기보다 5배씩은 컸다. 의도적으로 착륙지를 인천공항으로 바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압도당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압도당한 느낌은 병균처럼 머릿속에 가라앉는다. 이것이 쌓이면 기가 꺾인다.
“잘 오셨습니다.”
공항 활주로에서 전용기 앞까지 마중 나간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김정일을 맞는다. 트랩을 내려온 김정일도 얼굴을 펴고 웃으며 이명박의 손을 잡았다.
“날씨가 좋습니다.”
“제가 공항 당국에 지시했습니다. 위원장 오시는데 공항 날씨 좋게 하라고요.”
썰렁한 농담이었지만 김정일이 소리 내어 웃자 뒤로 줄줄이 따르던 수행원들도 웃는다.
# 한국은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연달아 평양을 방문한 터라 김정일에게는 ‘답방’이라는 명목이 붙어 체면 상할 이유가 없다. 공항 환영식은 의장대 사열만으로 간단히 끝나고 남북한 두 정상은 리무진에 나란히 앉아 서울로 향한다. 인천공항에서 서울까지는 고속도로가 뻥 뚫렸다. 리무진은 시속 150km로 달린다. 이명박이 머리를 돌려 김정일을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다.
“제가 취임하고 나서 체제정비를 좀 했더니 글쎄, 통일이 꼭 되어야 한다는 비율이 확 줄었습니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통일에 대한 환상이 꺼진 거지요. 이제는 계산적,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 환상을 조장한 조직을 이명박이 깨뜨린 것이다. 심지어 북한이 도발해도 한국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맞대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야당 국회의원도 있었다. 지금 그 의원은 교도소에서 TV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때 김정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북조선에도 계산적,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동무가 많지요.”
이제는 이명박이 시선을 주었고 김정일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 동무들이 북조선의 지도급, 주류 세력입니다. 그들도 통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색한 이명박이 묻자 김정일이 길게 숨을 뱉는다.
“현상유지.”
“평화공존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그렇지요.”
그러고는 김정일이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북조선의 공산당원 계급, 군부 지도층이 사회 주류층입니다. 그들은 결속력이 강해서 무너지지 않아요. 그것이 북조선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이명박은 이제는 앞만 보았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께서 6월 말까지의 분위기로 나가셨다면 2015년에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요. 6·25 시대보다 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으니까요.”
“….”
“아니, 그 이전에 됐을지도 모릅니다. 올해나 아니면 내년에 됐을 수도….”
“….”
“우리는 몇십만 명 죽는 건 일도 아닙니다. 여기선 군인 하나가 자살해도 난리가 나지요? 지휘관이 잘리고 말입니다. 하룻밤에 수천 명이 죽어나가면 남조선 인민들은 항복하자고 할 것입니다.”
“….”
“우리 동지들도 들고일어날 것이고요.”
그러더니 김정일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그 동지들을 다 정리하셨더군요.”
# 북한 외무성 부상 리용호와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은 그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두 번 비밀회동을 한 후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 그리고 양측이 주고받을 내용까지 협의했다. 정상회담이 바이어 상담처럼 계산기와 오퍼시트만 가지고 덤벼들 일은 아닌 것이다. 남북 의제는 첫째, 핵 폐기 둘째, 식량 및 경제 지원 셋째, 민간교류 등 세 가지로 나뉘었다.
“문제는 핵이야. 이것만 확실하면 다른 건 덤으로 끝내줄 수 있어.”
오후 3시로 예정된 제1차 회담을 준비하면서 청와대 비서실장 조순형이 말했다. 김정일은 지금 숙소인 신라호텔에 도착해 쉬는 중이다. 그러나 12시에 호텔에서 이명박과 점심식사를 하고 정상회담에 들어갈 것이다.
“공개를 안 하는 조건이라니 그것이 걸립니다. 우리만 비밀리에 안다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IAEA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외교안보수석 김성환이 지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어차피 회담 내용이 다 알려질 텐데 김정일 씨가 고집을 부리는 것 아닙니까?”
“대내용 같아.”
조순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북한 쪽에만 알리지 않으려는 거야.”
한국이라면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북한처럼 통제가 심한 사회에서는 통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 “하다못해 아웅산 폭발에 대한 사과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쇼?”
정두언이 던지듯 말하자 강용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핵문제도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놈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럼 괜히 부른 거요. 김정일 위상만 높여준 거라니깐.”
“언제는 안 그랬습니까?”
의사당의 정두언 의원실에서 마주 보고 앉은 강용석이 말을 잇는다.
“평양에서 받아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는데, 이번에는 끌어들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잘된 겁니다.”
“그런가요?”
“말씀대로 대통령이 아웅산이나 KAL기 납치사건, 또는 박왕자 씨 피살사건이라도 사과를 받는다면 우리 체면이 서겠지요. 물론 꿈같은 소리지만요.”
“그렇다면 내가 팬티만 입고 의사당을 한 바퀴 돌 거요.”
정색한 정두언이 말을 잇는다.
“진정한 남북 화해, 이해의 기념으로 말이요. 소문내도 돼요.”
“안 될 일 소문내봐야 싱겁지요. 정 의원님만 싱거운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러더니 강용석이 정두언 앞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기업체에서 돈이나 뜯어먹는 환경단체 명단입니다. 서명해주시지요.”
“어이구.”
서류를 들여다본 정두언이 입을 딱 벌렸다가 닫았다. 서류에는 36개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강용석이 탁자에 올려놓은 꽤 두툼한 서류를 다시 정두언 앞으로 밀었다.
“여기 증거자료가 있습니다. 환경단체라는 간판을 걸고 기업체에서 기부금을 받은 내용입니다. 그 기금을 반정부투쟁, 미군철수 데모, 보안법 폐지운동 자금으로 쓴 것입니다.”
잠자코 자료를 들쳐본 정두언이 숨을 길게 뱉더니 펜을 집어 서명했다. 서명한 의원이 47명이나 된다. 이제 이 서류는 고소장으로 만들어져 검찰로 넘겨질 것이었다. 정두언이 서류를 챙기는 강용석에게 정색하고 묻는다.
“도대체 고소, 고발한 사람이 몇이나 돼요?”
“한 350명 됩니다.”
눈썹을 치켜올린 강용석이 말을 잇는다.
“아직도 많이 남았어요.”
그래서 시중에서 강용석의 별명이 ‘고발남’이다. 열심히 자기 일을 알리는 데다 트위터 팔로가 10만 명이나 될 정도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 정두언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강용석에게 말했다.
“강 의원은 입만 조금 다듬으면 다음 총선 끝나고 바로 대변인 감이오.”
# 김정일이 데려온 고위급 인사는 42명이나 됐다. 장군, 부부장급 이상 인사만으로도 그렇다. 주요 인사 면면을 볼작시면 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외무성 부상 리용호, 무력부장 조철진, 매제이며 군사위 부위원장 장성택, 호위총국장 오금렬, 선전선동부장 박성출까지 얼굴을 드러냈다. 북한의 권력 실세는 다 옮겨왔고 평양에는 껍질만 남았다는 뉴스가 케이블 TV에 나올 정도다.
오후 3시 30분. 제1차 회담은 청와대에서 열렸다. 회담장에는 양국 정상과 수행원 10여 명이 입장했고, 문이 딱 닫히면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그래서 시청률 평균 64%를 기록했지만 방송국 TV는 계속해서 청와대의 닫힌 문짝만 비치며 기다렸다. 물론 그사이에 정치평론을 맡은 각 대학의 교수가 쉴 새 없이 말하고 있다.
# “저 씨발놈은 말은 사납게 허지만 다 듣고 나면 중도통합여, 개시키.”
방송국의 정치평론을 듣던 서상국이 분통을 터뜨렸다. 오후 5시 반, 둘은 오종택의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TV를 보는 중이다. 시간이 어중간했기 때문에 서상국이 동교동에 있는 오종택의 사무실로 와버린 것이다. 그때 고동대학 이차반 교수가 서상국을 응시하고 말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결과가 어떻든 남북한 간 관계를 업그레이드한 것입니다. 이로써 남북한은 평화공존, 협력관계로 속도를 내게 될 것입니다.”
“야, 돌려!”
서상국이 소리치자 리모컨을 눌렀던 오종택이 곧 머리를 내저었다.
“야, 그놈이 다 그놈이여. 끌까?”
“놔둬.”
화면은 다시 이차반한테 돌아갔다.
“개차반 같은 새끼. 차라리 내가 평론을 하는 게 낫겠다.”
이차반을 노려보며 서상국이 으르렁거렸을 때 오종택이 머리를 끄덕였다.
“요짐은 개나 소나 다 평론가 행세를 허도만. 허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평론가는 못 봤다.”
오종택이 눈만 껌벅이는 서상국을 향해 말을 이었다.
“가물에 콩 나듯이 나오는 놈들을 보면 전라도 사투리를 감추고 안 쓰더만.”
“….”
“유식헌 체 헐라면 전라도 사투리가 안 어울리는개벼.”
# 4시 50분이 됐을 때 제1차 회담이 끝나고 이명박과 김정일이 회담실을 나온다. 둘 다 웃음 띤 표정으로 청와대 현관까지 나오더니 김정일이 호텔로 돌아간다. 저녁 8시 반에는 김정일이 머무는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양국 정상의 만찬이 있다. 오늘 만찬은 이명박이 주최하고 내일 저녁은 김정일이 주최한다. 2박3일 일정이어서 양국 정상은 모레 오전에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 “양국 정상은 핵 문제를 포함한 경제협력, 이산가족 문제에 이르기까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오후 제2차 회담이 시작될 때 방송국 아나운서들이 한 멘트다. 양국 정부 당국자는 철저히 보도 통제를 해서 회담 내용에 대한 어떤 코멘트도 나오지 않았다. 추측 기사도 흘러나오지 않는 것은 그만큼 언론사들도 협조한다는 증거였다.
# 둘째 날 김정일이 주최한 신라호텔 만찬 직전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기회를 고대하던 전 세계 매스컴에 대특종을 안겼다. 홍익대 근처 지하슈퍼에서 정육점을 하는 윤재덕의 부친인 90세 윤봉수 씨가 호텔 현관에서 발악하듯 소리쳤던 것이다.
“김정일이는 함흥에 있는 내 누이 윤막내를 찾아내라!”
말쑥한 정장을 입은 윤봉수 씨가 아우성을 치자 마침 로비를 지나가던 김정일이 그 장면을 보았다. 멀리서만 바라봐 소리는 못 들었는데, 측근을 시켜 내막을 들은 뒤 윤봉수 씨를 1층 대기실로 부른 것이다. 기자들은 따라가지 못해 발버둥쳤지만 20분쯤 후 현관으로 나온 윤봉수 씨가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더니 눈물, 콧물범벅이 된 얼굴로 냅다 만세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눈도 깜박하지 않고 지켜보던 수천만 시청자는 영문도 모르고 같이 눈물 바람을 했다. 만세가 끝나고 지쳐 늘어진 노인한테 기자들이 모기떼처럼 달려들어 물었지만 영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떠났다. 청와대 경호요원이 경호하고 떠났다고 했다.
# 그리고 2009년 3월 7일 오전 10시, 이번에는 성남 서울공항에 화려하게 마련한 송별식장. 활주로에 사방이 트인 거대한 정자가 세워져 있다. 진짜 정자다. 마치 요술처럼 며칠 만에 세워진 것이다. 그 정자 연단에 이명박과 김정일이 나란히 서 있다. 화창한 봄 날씨, 하늘은 푸르고 구름 한 점 없다. 부드러운 미풍에 개나리, 진달래꽃 향기가 날아왔다. 연단 아래쪽에는 수백 명의 취재진, 그 뒤쪽은 수천 명의 국내외 귀빈이 자리했다. 그때 사회자의 안내로 먼저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김정일이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서 말했다.
“친애하는 남조선 동포 여러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내외 귀빈 여러분.”
연단 귀퉁이를 두 손으로 쥔 김정일이 TV 화면을 똑바로 봤다.
“나는 북조선 지도자로서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것을 사과합니다. 한민족을 통일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전쟁으로 수백만 동포가 희생되었으며, 지금도 이산가족이 남아 있습니다.”
김정일이 안경을 벗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동작이 침착하다.
김정일이 든 손수건이 눈으로 올라갈 때 수천만 시청자는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 “엉엉엉.”
오종택이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소리 내어 운다. 사무실에 여직원 미스 고가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 서상국은 출판사에서 흐느낌을 참다가 딸꾹질을 했다. 그러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다. 이애주가 휴지로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 하늘이, 세상이 참 밝은 날씨였다.
그런데 광우병 난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좌익, 그리고 종북세력에게 이명박의 중도통합은 놀 자리를 만들어준 것이나 같았다. 따라서 우익에게 이명박의 중도통합론은 극렬 좌익의 반발을 겁낸 ‘비겁한’ 수단이며, 이명박은 ‘겁쟁이’로 매도됐던 것이다. 나아가 이명박의 교우관계와 전력을 상기시켜 이명박은 ‘위장된 보수’였으며 실체는 ‘좌익’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이명박을 지지했고 결국 530만 표차로 사상 최대 차의 승리를 창출한 보수 우익의 배신감과 실망감은 제 손가락을 잘라낼 정도가 아니었던 것이다.
만일 이명박이 계속 중도통합을 밀고 나갔다면 내치(內治)는 거의 하나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두 정권에서 암세포처럼 배양된 종북세력이 2012년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까지 확보하게 될 수도 있었다. 이것은 모두 이명박의 책임이 될 것이다. 지지자의 염원을 업고 얼마든지 종북세력을 척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달라졌다. 이명박이 종북세력을 다 척결했다. 대한민국이 이승만의 건국에서부터 군사혁명, 10월 유신, 군사정권, 그리고 정치가들의 정권에 이르러 국가 부도, 두 좌익정권까지 겪는 60년사를 기록한 후에 처음으로 안정된 대한민국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명박 시대에서 대한민국의 ‘신풍’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도 경제 때문에 이명박 찍었어.”
그렇게 말한 사내는 서울 영등포에서 철물점을 하는 오종근이다. 52세. 고향은 대전. 철물점 점원에서 시작해 30년 동안 한 우물을 팠다. 당산동의 30평형 아파트가 전 재산이며 가게는 세로 얻었다. 작년에 큰딸을 시집보내느라 적금과 저금을 다 썼기 때문이다. 집에는 아내와 대학 3학년짜리 딸까지 세 식구가 산다. 오종근이 말을 잇는다.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 글고 다 그게 그거 아닌가? 돈 안 먹어본 놈이 어딨어? BBK니 바비큐니 그까짓 게 무신 상관이여? 나는 그런 거 상관 안 했지.”
지금 오종근은 가게 안에서 옆집 박경술하고 소주를 마시는 중이다. 오후 6시밖에 안 되었지만 손님이 없는 터라 상관없다. 오징어 다리를 집으며 오종근이 쓴웃음을 지었다.
“광우병 난동 때까정 이명박이가 대여섯 달 동안 허는 꼬라지를 보고 나서 아예 손목을 잘라내고 싶었지. 빌빌거리고 숨고, 거기에다 고소영 인사에다 중도실용.”
오종근이 한 모금에 소주를 삼키고는 말을 잇는다.
“시청에서부터 따라댕기던 놈들을 덥석덥석 요직에 앉히는 걸 보자니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 아, 내가 착각했구나.”
“….”
“나 같은 오너가 대통령 되어야지 월급쟁이는 회장 할애비라도 대통령 시키면 안 되겠구나 하고 그때서야 깨닫게 되더라고.”
“왜?”
박경술은 53세로 바로 옆집 철물점 사장이다. 거기도 고만고만한 매출액에다 살림도 비슷하다. 박경술이 묻자 오종근이 한 모금에 술을 삼키고는 말했다.
“삥땅 안 먹는 월급쟁이 본 적 있나? 없어. 다 먹는다. 그럼 혼자만 먹나? 그럼 그놈은 출세 못 한다. 다 위아래하고 주고받으면서 크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지?”
“이명박이도 돈 먹고 컸단 말이구마.”
“밑에 놈들하고 사이좋게.”
“그렇다면….”
“지난번에 구속된 놈들도 전에 이명박이하고 삥땅 나눠 먹은 놈들일 것이다.”
“에이, 설마.”
“지금 교도소에서 씨발, 씨발 하고 있을껴.”
“갑자기 칼같이 다 잘랐다고 말이지?”
박경술이 술기운으로 벌게진 눈으로 오종근을 보았다.
“이명박이 인기가 역대 최고여. 넌 손가락 안 잘라도 돼.”
30년 전 전라남도 장성에서 상경한 박경술은 정동영을 찍었다. 그래서 손가락을 자르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 김정일이 탄 고려항공 전용기가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2009년 3월 5일 오전 10시 반이다. 전용기는 김포나 가까운 성남 서울공항에 내릴 수도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사정상’ 인천공항을 고집했다. 일부러 그런 것이다. 인천공항은 5년째 공항 서비스, 관리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세계 최고 공항이다. 규모는 물론 물동량도 세계 5위권에 드는 데다 시설이 압도적이다. 평양 순안공항의 150배는 된다.
김정일은 비행기 창밖으로 공항 게이트에 늘어서 있는 수백 대의 항공기를 보았다. 대부분 한국 국적기였고 그 크기가 자신이 타고 온 옛 소련제 전용기보다 5배씩은 컸다. 의도적으로 착륙지를 인천공항으로 바꾼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압도당했다. 기분은 나빴지만 압도당한 느낌은 병균처럼 머릿속에 가라앉는다. 이것이 쌓이면 기가 꺾인다.
“잘 오셨습니다.”
공항 활주로에서 전용기 앞까지 마중 나간 이명박이 웃음 띤 얼굴로 김정일을 맞는다. 트랩을 내려온 김정일도 얼굴을 펴고 웃으며 이명박의 손을 잡았다.
“날씨가 좋습니다.”
“제가 공항 당국에 지시했습니다. 위원장 오시는데 공항 날씨 좋게 하라고요.”
썰렁한 농담이었지만 김정일이 소리 내어 웃자 뒤로 줄줄이 따르던 수행원들도 웃는다.
# 한국은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연달아 평양을 방문한 터라 김정일에게는 ‘답방’이라는 명목이 붙어 체면 상할 이유가 없다. 공항 환영식은 의장대 사열만으로 간단히 끝나고 남북한 두 정상은 리무진에 나란히 앉아 서울로 향한다. 인천공항에서 서울까지는 고속도로가 뻥 뚫렸다. 리무진은 시속 150km로 달린다. 이명박이 머리를 돌려 김정일을 보았다. 웃음 띤 얼굴이다.
“제가 취임하고 나서 체제정비를 좀 했더니 글쎄, 통일이 꼭 되어야 한다는 비율이 확 줄었습니다.”
김정일의 시선을 받은 이명박이 말을 잇는다.
“통일에 대한 환상이 꺼진 거지요. 이제는 계산적, 이성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 환상을 조장한 조직을 이명박이 깨뜨린 것이다. 심지어 북한이 도발해도 한국은 전쟁을 피하기 위해 맞대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야당 국회의원도 있었다. 지금 그 의원은 교도소에서 TV를 보고 있을 것이다. 그때 김정일이 쓴웃음을 지었다.
“북조선에도 계산적, 이성적으로 접근하는 동무가 많지요.”
이제는 이명박이 시선을 주었고 김정일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 동무들이 북조선의 지도급, 주류 세력입니다. 그들도 통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색한 이명박이 묻자 김정일이 길게 숨을 뱉는다.
“현상유지.”
“평화공존이라는 말씀이군요.”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그렇지요.”
그러고는 김정일이 등받이에 등을 붙였다.
“북조선의 공산당원 계급, 군부 지도층이 사회 주류층입니다. 그들은 결속력이 강해서 무너지지 않아요. 그것이 북조선을 지탱하는 힘의 원천입니다.”
이명박은 이제는 앞만 보았고 김정일의 말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께서 6월 말까지의 분위기로 나가셨다면 2015년에 통일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요. 6·25 시대보다 더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으니까요.”
“….”
“아니, 그 이전에 됐을지도 모릅니다. 올해나 아니면 내년에 됐을 수도….”
“….”
“우리는 몇십만 명 죽는 건 일도 아닙니다. 여기선 군인 하나가 자살해도 난리가 나지요? 지휘관이 잘리고 말입니다. 하룻밤에 수천 명이 죽어나가면 남조선 인민들은 항복하자고 할 것입니다.”
“….”
“우리 동지들도 들고일어날 것이고요.”
그러더니 김정일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런데 그 동지들을 다 정리하셨더군요.”
# 북한 외무성 부상 리용호와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은 그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두 번 비밀회동을 한 후에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 그리고 양측이 주고받을 내용까지 협의했다. 정상회담이 바이어 상담처럼 계산기와 오퍼시트만 가지고 덤벼들 일은 아닌 것이다. 남북 의제는 첫째, 핵 폐기 둘째, 식량 및 경제 지원 셋째, 민간교류 등 세 가지로 나뉘었다.
“문제는 핵이야. 이것만 확실하면 다른 건 덤으로 끝내줄 수 있어.”
오후 3시로 예정된 제1차 회담을 준비하면서 청와대 비서실장 조순형이 말했다. 김정일은 지금 숙소인 신라호텔에 도착해 쉬는 중이다. 그러나 12시에 호텔에서 이명박과 점심식사를 하고 정상회담에 들어갈 것이다.
“공개를 안 하는 조건이라니 그것이 걸립니다. 우리만 비밀리에 안다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IAEA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외교안보수석 김성환이 지친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어차피 회담 내용이 다 알려질 텐데 김정일 씨가 고집을 부리는 것 아닙니까?”
“대내용 같아.”
조순형이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하는 표정을 지었다.
“북한 쪽에만 알리지 않으려는 거야.”
한국이라면 말도 안 되는 짓이지만 북한처럼 통제가 심한 사회에서는 통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 “하다못해 아웅산 폭발에 대한 사과 정도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쇼?”
정두언이 던지듯 말하자 강용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핵문제도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놈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그럼 괜히 부른 거요. 김정일 위상만 높여준 거라니깐.”
“언제는 안 그랬습니까?”
의사당의 정두언 의원실에서 마주 보고 앉은 강용석이 말을 잇는다.
“평양에서 받아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는데, 이번에는 끌어들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잘된 겁니다.”
“그런가요?”
“말씀대로 대통령이 아웅산이나 KAL기 납치사건, 또는 박왕자 씨 피살사건이라도 사과를 받는다면 우리 체면이 서겠지요. 물론 꿈같은 소리지만요.”
“그렇다면 내가 팬티만 입고 의사당을 한 바퀴 돌 거요.”
정색한 정두언이 말을 잇는다.
“진정한 남북 화해, 이해의 기념으로 말이요. 소문내도 돼요.”
“안 될 일 소문내봐야 싱겁지요. 정 의원님만 싱거운 사람이 될 테니까요.”
그러더니 강용석이 정두언 앞으로 서류를 내밀었다.
“기업체에서 돈이나 뜯어먹는 환경단체 명단입니다. 서명해주시지요.”
“어이구.”
서류를 들여다본 정두언이 입을 딱 벌렸다가 닫았다. 서류에는 36개 환경단체와 시민단체 이름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강용석이 탁자에 올려놓은 꽤 두툼한 서류를 다시 정두언 앞으로 밀었다.
“여기 증거자료가 있습니다. 환경단체라는 간판을 걸고 기업체에서 기부금을 받은 내용입니다. 그 기금을 반정부투쟁, 미군철수 데모, 보안법 폐지운동 자금으로 쓴 것입니다.”
잠자코 자료를 들쳐본 정두언이 숨을 길게 뱉더니 펜을 집어 서명했다. 서명한 의원이 47명이나 된다. 이제 이 서류는 고소장으로 만들어져 검찰로 넘겨질 것이었다. 정두언이 서류를 챙기는 강용석에게 정색하고 묻는다.
“도대체 고소, 고발한 사람이 몇이나 돼요?”
“한 350명 됩니다.”
눈썹을 치켜올린 강용석이 말을 잇는다.
“아직도 많이 남았어요.”
그래서 시중에서 강용석의 별명이 ‘고발남’이다. 열심히 자기 일을 알리는 데다 트위터 팔로가 10만 명이나 될 정도로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 정두언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강용석에게 말했다.
“강 의원은 입만 조금 다듬으면 다음 총선 끝나고 바로 대변인 감이오.”
# 김정일이 데려온 고위급 인사는 42명이나 됐다. 장군, 부부장급 이상 인사만으로도 그렇다. 주요 인사 면면을 볼작시면 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영남, 인민군 총참모장 리영호, 외무성 부상 리용호, 무력부장 조철진, 매제이며 군사위 부위원장 장성택, 호위총국장 오금렬, 선전선동부장 박성출까지 얼굴을 드러냈다. 북한의 권력 실세는 다 옮겨왔고 평양에는 껍질만 남았다는 뉴스가 케이블 TV에 나올 정도다.
오후 3시 30분. 제1차 회담은 청와대에서 열렸다. 회담장에는 양국 정상과 수행원 10여 명이 입장했고, 문이 딱 닫히면서 비공개로 진행됐다. 그래서 시청률 평균 64%를 기록했지만 방송국 TV는 계속해서 청와대의 닫힌 문짝만 비치며 기다렸다. 물론 그사이에 정치평론을 맡은 각 대학의 교수가 쉴 새 없이 말하고 있다.
# “저 씨발놈은 말은 사납게 허지만 다 듣고 나면 중도통합여, 개시키.”
방송국의 정치평론을 듣던 서상국이 분통을 터뜨렸다. 오후 5시 반, 둘은 오종택의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TV를 보는 중이다. 시간이 어중간했기 때문에 서상국이 동교동에 있는 오종택의 사무실로 와버린 것이다. 그때 고동대학 이차반 교수가 서상국을 응시하고 말했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결과가 어떻든 남북한 간 관계를 업그레이드한 것입니다. 이로써 남북한은 평화공존, 협력관계로 속도를 내게 될 것입니다.”
“야, 돌려!”
서상국이 소리치자 리모컨을 눌렀던 오종택이 곧 머리를 내저었다.
“야, 그놈이 다 그놈이여. 끌까?”
“놔둬.”
화면은 다시 이차반한테 돌아갔다.
“개차반 같은 새끼. 차라리 내가 평론을 하는 게 낫겠다.”
이차반을 노려보며 서상국이 으르렁거렸을 때 오종택이 머리를 끄덕였다.
“요짐은 개나 소나 다 평론가 행세를 허도만. 허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평론가는 못 봤다.”
오종택이 눈만 껌벅이는 서상국을 향해 말을 이었다.
“가물에 콩 나듯이 나오는 놈들을 보면 전라도 사투리를 감추고 안 쓰더만.”
“….”
“유식헌 체 헐라면 전라도 사투리가 안 어울리는개벼.”
# 4시 50분이 됐을 때 제1차 회담이 끝나고 이명박과 김정일이 회담실을 나온다. 둘 다 웃음 띤 표정으로 청와대 현관까지 나오더니 김정일이 호텔로 돌아간다. 저녁 8시 반에는 김정일이 머무는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양국 정상의 만찬이 있다. 오늘 만찬은 이명박이 주최하고 내일 저녁은 김정일이 주최한다. 2박3일 일정이어서 양국 정상은 모레 오전에 공동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 “양국 정상은 핵 문제를 포함한 경제협력, 이산가족 문제에 이르기까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누었고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갔습니다.”
다음 날 오후 제2차 회담이 시작될 때 방송국 아나운서들이 한 멘트다. 양국 정부 당국자는 철저히 보도 통제를 해서 회담 내용에 대한 어떤 코멘트도 나오지 않았다. 추측 기사도 흘러나오지 않는 것은 그만큼 언론사들도 협조한다는 증거였다.
# 둘째 날 김정일이 주최한 신라호텔 만찬 직전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그것이 기회를 고대하던 전 세계 매스컴에 대특종을 안겼다. 홍익대 근처 지하슈퍼에서 정육점을 하는 윤재덕의 부친인 90세 윤봉수 씨가 호텔 현관에서 발악하듯 소리쳤던 것이다.
“김정일이는 함흥에 있는 내 누이 윤막내를 찾아내라!”
말쑥한 정장을 입은 윤봉수 씨가 아우성을 치자 마침 로비를 지나가던 김정일이 그 장면을 보았다. 멀리서만 바라봐 소리는 못 들었는데, 측근을 시켜 내막을 들은 뒤 윤봉수 씨를 1층 대기실로 부른 것이다. 기자들은 따라가지 못해 발버둥쳤지만 20분쯤 후 현관으로 나온 윤봉수 씨가 소리 내어 울었다. 그러더니 눈물, 콧물범벅이 된 얼굴로 냅다 만세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장면을 눈도 깜박하지 않고 지켜보던 수천만 시청자는 영문도 모르고 같이 눈물 바람을 했다. 만세가 끝나고 지쳐 늘어진 노인한테 기자들이 모기떼처럼 달려들어 물었지만 영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떠났다. 청와대 경호요원이 경호하고 떠났다고 했다.
# 그리고 2009년 3월 7일 오전 10시, 이번에는 성남 서울공항에 화려하게 마련한 송별식장. 활주로에 사방이 트인 거대한 정자가 세워져 있다. 진짜 정자다. 마치 요술처럼 며칠 만에 세워진 것이다. 그 정자 연단에 이명박과 김정일이 나란히 서 있다. 화창한 봄 날씨, 하늘은 푸르고 구름 한 점 없다. 부드러운 미풍에 개나리, 진달래꽃 향기가 날아왔다. 연단 아래쪽에는 수백 명의 취재진, 그 뒤쪽은 수천 명의 국내외 귀빈이 자리했다. 그때 사회자의 안내로 먼저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주위는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김정일이 힐끗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서 말했다.
“친애하는 남조선 동포 여러분.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 내외 귀빈 여러분.”
연단 귀퉁이를 두 손으로 쥔 김정일이 TV 화면을 똑바로 봤다.
“나는 북조선 지도자로서 1950년 6월 25일 전쟁을 일으킨 것을 사과합니다. 한민족을 통일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전쟁으로 수백만 동포가 희생되었으며, 지금도 이산가족이 남아 있습니다.”
김정일이 안경을 벗더니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동작이 침착하다.
김정일이 든 손수건이 눈으로 올라갈 때 수천만 시청자는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 “엉엉엉.”
오종택이 인테리어 사무실에서 소리 내어 운다. 사무실에 여직원 미스 고가 있었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 서상국은 출판사에서 흐느낌을 참다가 딸꾹질을 했다. 그러나 얼굴은 눈물범벅이 되어 있다. 이애주가 휴지로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창밖 하늘이, 세상이 참 밝은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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