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닥 쇠줄을 이용한 드럼통 운반 훈련을 하는 부사관 후보생들.
6월 26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해병대 교육훈련단(이하 교훈단)의 전장 리더십 훈련장. 바람과 함께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4~5명이 한 팀을 이룬 부사관 후보생들(336기)이 머리를 맞대고 널빤지를 이용한 도하방법을 논의 중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지뢰지대를 건너 아군 소대에 보급품을 전달하는 것. 활용할 장비는 지뢰지대 안에 있는 철기둥 3개와 그들이 가진 널빤지뿐이다. 제한 사항으로 철기둥에 부비트랩이 설치돼 있다. 옆 훈련장에서는 두 가닥 쇠줄을 이용한 드럼통 운반 임무가 한창이다. 3인 1조로 허리에 로프를 맨 후보생들이 물 위를 아슬아슬 건너고 있다. 지켜보는 사람의 손에 땀이 난다.
리더와 팀원 간 적극적 소통“10분 후 적이 도착할 것이 예상됩니다. 7분 내에 신속하게 임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박상훈 훈련교관의 굵고 짧은 목소리를 시작으로 부사관 후보생들이 널빤지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2개를 설치하고 3개째 설치하던 중 두 번째 널빤지가 바람에 날려 추락하고 만다. 팀원이 모여 다시 도하방법을 논의하던 중 7분이 다 지나갔다. 이들은 결국 임무 수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분대장, 이번 실패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지뢰지대를 건널 새로운 방법은 있습니까?” “분대원, 맡은 임무가 무엇입니까?” “본인이 맡은 임무는 제대로 수행했다고 생각합니까?” “문제점이 무엇입니까?” 교관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전장 리더십 훈련의 핵심은 임무 수행보다 리더와 팀원의 적극적인 소통에 있다. 주어진 과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장교와 부사관 후보생들은 창의적인 사고와 소통능력, 협동심과 단결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군 부사관은 군사훈련과 전투기술 체득 위주의 훈련을 받았다. 따라서 임관 후 실무부대에 곧바로 배치되면 경험 부족으로 지휘 통솔에 애를 먹었다. 이제는 과제 해결을 위한 의사소통, 자율적 규칙 준수, 도전정신과 리더십을 배양함으로써 그런 어려움을 하나둘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분대장 임무를 맡은 김원호 부사관 후보생은 “과제를 하나하나 성공할 때는 자부심과 긍지가 생긴다”며 “실제 같은 전장을 체험함으로써 앞으로 부사관로서 어떻게 지휘해야 할지 스스로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병영문화 개선의 출발점널빤지를 이용한 도하 훈련.
전장 리더십 훈련장은 교훈단 영내에 있는 ‘팀 리더십 훈련장’과 영외교장에 위치한 ‘분대급 리더십 훈련장’으로 나눈다. 3200㎡(968평) 규모의 팀 리더십 훈련장은 20개 과제를 극복하면서 리더십과 창의력, 체력, 협동심을 배양하도록 조성됐다. 옛 월남교장에 위치한 11만6000㎡(3만5090평)에 달하는 분대급 리더십 훈련장은 팀 리더십 훈련 후 8~10명의 분대 규모 병력이 가상전투 공간에서 독도법을 이용해 전술기동, 완수신호 등 18개 과제를 수행하면서 전투기술을 체득하도록 구성됐다. 특히 6월 5일 완공된 팀 리더십 훈련장은 SKC가 2억9900만 원을 건립 후원금으로 기부해 ‘1사 1병영’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전군 최초로 만들어진 전장 리더십 훈련은 세계 최강 미 해병대에서 벤치마킹했지만, 한국군의 특성과 한국 지형에 맞는 걸림돌을 설치했다. 또한 널빤지와 드럼통, 하수도, 로프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장비들을 갖췄다.
교훈단은 지난해 김포 총기난사 사건 이후 해병대 병영문화의 본질을 개선하려고 교육훈련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해병대에 암암리에 남은 고질적인 악습을 끊는 출발점을 신병훈련으로 잡은 것이다. 따라서 예전처럼 훈련교관이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윽박지르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훈련교관은 목표를 제시하고 거기에 맞게 훈련병의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구실을 맡는다.
차동길 교육훈련단장(준장)은 “앞으로 장교와 부사관 후보생 양성 과정의 50%를 전장 리더십 훈련으로 구성할 계획”이라면서 “훈련병은 물론 실무부대 병사들의 체험도 늘리면 해병대 병영문화는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병대는 2017년부터 상륙기동헬기 36대를 차례로 확보해 기동헬기 2개 대대를 창설할 계획이다. 해병대의 숙원인 공지기동 해병대, 전략기동군의 면모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전력 보강에 걸맞게, 전장 리더십 훈련을 받은 부사관들이 실무부대에서 창의적이고 소통하는 리더십을 발휘한다면 해병대는 진짜 전투형 군대로 거듭날 것이다.
인터뷰Ⅰ차동길 해병대 교육훈련단장
“다양한 전장 상황 체험… 사고의 유연성 키울 것”
| 전장 리더십 훈련의 장점은 무엇인가.
“해병대를 전투형 군대로 만들기 위해 교육훈련을 혁신하고 있다. 전장 리더십 훈련이 핵심이다. 이전까지 여러 훈련이 입으로 혹은 도상훈련에만 그쳤다. 예를 들어, 탄약을 3m 높이에 보급하는 훈련을 받는다고 치자.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해서 탄약을 보급한다고 말해서는 훈련이 될 수 없다. 직접 탄약을 3m 높이에 올려야 훈련이 된다. 열 마디 말보다 한 번의 경험과 체험이 중요하다.”
전장 리더십 훈련을 받은 초급간부 후보생들의 반응은 어떤가.
“뛰고 구르던 훈련에서 머리를 쓰는 훈련을 하게 돼 매우 흥미롭게 생각한다. 앞으로 좀 더 많은 연구와 체계화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각자의 능력을 끌어올릴 것이다.”
해병대 훈련에서 소통을 강조하는 이유는.
“최근까지 해병대는 임무가 정해지면 무조건 ‘돌격 앞으로’였다. 하지만 시대도, 전장 상황도 변했다. 21세기 전장에서는 리더가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물론, 부하 각자가 지닌 능력을 찾아내야 최대 전투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요즘 신병은 덩치만 크고 나약하다고 하는데.
“단언컨대, 지금의 신병이 예전보다 훨씬 강하다. 해병대는 자원해서 오는 군대다. 그만큼 억지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의식을 갖고 훈련에 임한다. 요즘 젊은이들의 정신이 나약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도전과 어려움을 즐길 줄 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교훈단)이 지향하는 해병상은.
“교훈단 간부들에게 품격 높은 해병을 만들자고 주문한다. 즉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해병을 만들자는 것이다. 사고의 유연성과 행동의 당당함을 갖춘 해병이 돼야 한다. 교관들에게 반드시 목적과 이유를 설명해주도록 하고 있다. 강한 군대는 강제가 아닌 스스로 동참해야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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