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모 사립대 졸업반 이모(26) 군. 그는 대학 1학년이던 2006년 3월부터 ‘특이한’ 아르바이트를 수시로 해왔다. 20, 30대 젊은 층에서 일명 ‘마루타 알바’로 통하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Bioequivalence Test·이하 생동성시험)에 피험자로 참여해온 것.
생동성시험은 제약회사들이 흔히 ‘제네릭(Generic)’이라 부르는 복제의약품의 판매 허가를 받기 전에 실시하는 일종의 생체 내 실험을 뜻한다. 즉 이미 시판 중인 오리지널 약(대조약)과 동일한 약효성분으로 만든 제네릭(시험약)을 피험자에게 투약한 뒤 그 임상 결과를 비교분석해 두 제제가 인체 내에서 흡수되는 속도, 양(생체이용률)이 동등한지 등을 확인하는 것.
시험 절차는 제약회사로부터 의뢰받은 의료기관(병·의원)이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실시해 건강한 피험자를 선발한 뒤 시험 대상 의약품을 투여하고, 일정 시간마다 혈액을 채취해 혈중약물농도를 분석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시험 기간은 짧게는 1박2일에서부터 일주일 간격을 두고 2박3일씩이며, 병·의원이 지정한 장소에서 피험자들이 함께 투숙해야 한다. 피험자 처지에선 그야말로 약 먹고 수차례 피 뽑는 일이라서 스스로 ‘마루타’라는 자조적 표현을 쓰곤 한다.
단기 고수익에 너도나도 피험자로 지원
식약청은 ‘주간동아’가 요청한 생동성시험에 대한 행정 조치 자료 제공을 거절하는 대신, 자체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예전 언론 보도자료와 대동소이한 자료를 5월 16일 새삼 게시했다.
“처음엔 과 동기의 소개로 함께 생동성시험에 참여했는데, 한참을 망설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관리하니까 문제없다’는 동기의 말에 용기를 냈다. 그 후로는 혼자서 했다. 두 번째는 첫 시험 참여 병원에서 먼저 전화로 권유해와 했다. 그러다 한번은 시험 현장에서 같은 과 선배와 마주쳐 서로 멋쩍어한 적도 있다. 하지만 특별한 자격요건이 필요 없고 신체만 건강하면 누구나 피험자가 될 수 있으니 일단 맛들이면 자꾸 하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피험자를 남자에 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약 먹고 채혈할 때를 빼면 가만히 누워 책을 읽거나 인터넷게임도 할 수 있어서 남자 대학생들 사이에선 단기간에 편히 목돈을 쥘 수 있는 알바로 인기 짱이다.”
이군은 “시험 참여 도중에 설사, 구토 증상을 보이거나 어지럼증을 느껴 그만두는 피험자도 여럿 봤다”며 “몸 팔아서 돈 번다는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 요즘은 생동성시험 아르바이트를 일절 하지 않는다. 지인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처럼 단기 고수익 아르바이트로 꼽히는 생동성시험은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지정한 시험기관이 직접 피험자를 모집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인터넷상의 알선 사이트를 통해 모집을 대행하는 방식을 취한다. 식약청에 따르면 전국의 생동성시험기관은 분석기관(대부분이 제약회사) 20개, 의료기관(병·의원) 18개, 의료·분석기관(분석기관 요건을 갖춘 의료기관을 의미) 6개 등 44개소뿐이다. 반면 식약청이 밝힌 최근 5년간의 ‘연도별 생동성 인정 품목 현황’ 자료를 보면, 생동성시험을 통해 생동성을 인정받은 의약품목 수는 2007년 719건, 2008년 671건, 2009년 437건, 2010년 435건, 2011년 520건에 달한다. 생동성시험 한 건당 통상 20~50명의 피험자가 참여하는 점을 감안하면 2011년의 경우 1만~2만 명 이상이 생동성시험에 참여했음을 추산할 수 있다.
수많은 피험자가 필요하다 보니 피험자 모집은 시험기관의 의뢰를 받은 인터넷 알선 전문 사이트나 취업 및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의 몫이다. 이들은 저마다 ‘알바○ 생동성알바’ ‘생동성시험 알바○○○’ ‘생동성알바○○○’ ‘생동성알바 알바○○○’ ‘생동성알바 No. 1 알바○○’ ‘알바○○’ ‘알바○○○’ ‘○○알바’ ‘생동성시험 알바○’ 등의 이름을 내걸고 돈이 궁하거나 급전이 필요한 대학생, 취업준비생을 끌어모은다.
하지만 두둑한 사례비에 혹해 무턱대고 생동성시험에 참여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위험성도 상존한다. 사례비가 많은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 시험기관 측은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신약 임상시험과 복제약의 효능을 테스트하는 생동성시험은 다르다. 후자의 경우 이미 시판된 의약품을 복제한 것이므로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매우 낮고, 설령 발생한다 해도 오리지널 약에서 허용된 범위 안의 경미한 부작용 정도에 그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동성시험을 통해 복제약의 효능을 시험하는 것 자체가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것인 만큼 시험 과정에서나 이후에 예기치 못한 건강상 문제가 발생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시험 대상 의약품에 따라 피험자 사례비가 적게는 20여만 원부터 많게는 100여만 원에 이르기까지 차이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생동성시험을 통해 부작용을 겪었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서울 소재 대학생 임모(23) 군의 말이다.
“(생동성)시험을 2주에 걸쳐 했는데, 첫 주에는 소화가 너무 안 되고 메스꺼워 일주일 동안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그래서 둘째 주에 시험기관에 증상을 말했더니 ‘그 정도는 경미한 것”이라며 무시했다.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식약청에 따르면, 시험기관은 기관 내에 심사위원회(IRB·피험자의 권리, 안전, 복지를 보호하기 위한 독립적인 상설위원회)를 두고 피험자 안전 보호 및 보상 등 피험자의 권익을 검토해야 한다. 따라서 생동성시험 실시 전 시험기관 측은 피험자에게 시험 대상 의약품, 시험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 약물유해반응 같은 피해가 생길 경우의 보상 조치에 대해 정확하게 충분히 설명해야 한다.
그럼에도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12월 생동성시험에 참여했던 취업준비생 백모(27) 씨의 토로.
“피험자들은 시험 전에 서면동의서를 꼼꼼히 살피지 않았다. 시험기관 관계자도 피해 보상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지 않았다. 내 경우 이미 두 번 생동성시험 경험이 있다고 했더니 아예 그냥 넘어가더라. 채혈이 잦아 쓰러지는 사람도 봤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이처럼 비교적 경미한 부작용은 식약청에 보고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해당 피험자는 자신의 건강에 어떤 이상이 생겼는지 알 수조차 없다. 더욱이 전문 의학지식이 없는 피험자들로선 생동성시험과 부작용 간 인과관계를 입증하기도 힘들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식약청 고시에 따르면, 피험자는 만 19~55세 성인으로 건강진단 시 병적 증상 또는 그러한 소견이 없는 사람에 한해서 선정해야 한다. 또한 당해 생동성시험 실시 전 3개월 이내에 이미 다른 생동성시험이나 기타 임상시험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중복 참여 방지 차원에서 피험자에서 제외토록 돼 있다.
하지만 이런 기준은 현실에선 엄격히 지키지 않는다. 피험자 본인 확인 절차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올해 3월 생동성시험에 참여한 고시생 고모(30) 씨는 “시험기관에선 주민등록증 사진과 본인 얼굴을 대조하지 않았다. 그냥 피험자들의 주민등록증을 한꺼번에 다 걷어가서 복사만 하고 돌려줬다”고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한 피험자는 “친구들의 주민등록증을 빌려 3개월이 안 지났는데도 각기 다른 생동성시험에 여러 번 참여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생동성시험에 참여한 피험자들이 여러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
사정이 이런데도 생동성시험에 대한 식약청의 관리 감독은 미온적이다. 식약청 약효동등성과 관계자는 “‘3개월 이내 피험자 제외’ 부분은 시험기관이 피험자의 주민등록번호 등 관련 정보를 식약청에 통보하면 식약청이 이를 피험자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중복 참여자를 걸러내므로 문제될 게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식약청은 지난해 10월 19일 ‘피험자 보호와 신뢰받는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관리체계 구축’이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국내 생동성시험을 피험자 윤리와 시험 결과의 신뢰성을 보장하는 시스템으로 철저히 관리한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 중엔 피험자 안전 및 보상 등 권익 보호도 포함돼 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청은 지난해 국내 생동성시험기관에 대해 총 277회의 운영 실태조사를 벌였다고 밝힌다.
그러나 식약청은 실태조사 시 피험자에게 시험 대상 의약품에 대해 충분히 설명했는지, 피험자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에 문제는 없었는지, 피험자 피해 보상은 어떻게 시행됐는지, ‘3개월 이내 피험자 제외’ 기준을 위반한 시험기관에 대한 행정 조치는 어떤지 등을 묻는 ‘주간동아’의 자료 요청에 관련 자료의 공개를 일절 거부했다.
식약청 임상제도과 관계자는 “실태조사를 통해 위반사항이 있는 시험기관에 주의, 경고 등 행정지도를 하지만 아직 지난해 결과도 취합하지 못한 데다 식약청 자체 사정으로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거듭 밝혔다.
그러면서도 새삼 식약청은 생동성시험에 대한 ‘주간동아’의 자료 요청 시한인 5월 16일 자체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생물학적 동등성 시험, 어떻게 관리되나-현장에서 생동성시험을 확인한다’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부랴부랴 올렸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지난해 10월에 낸 보도자료의 그것과 대동소이하다.
의약품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하려는 생동성시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반값등록금’이 사회 이슈로 떠오를 만큼 가뜩이나 살인적인 고액 등록금과 취업난에 시달리는 이 땅의 절박한 젊은이들이 자신의 건강을 팔아서라도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앞다퉈 몰리는 생동성시험의 현실에 태무심한 식약청의 태도는 ‘국민의 더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위한’다는 기관치곤 선뜻 이해하기 힘들다. 문득 KBS 2TV 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불편한 진실’ 코너에 등장하는 개그맨 황현희의 유행어가 생각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