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서동만(57) 교수팀이 4월 13일 생후 4개월 만에 뇌사에 빠진 남아의 심장을 11개월 된 아기에게 이식하는 데 성공하면서 국내 최연소 심장이식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 소식을 접하고 서 교수에게 연락했지만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과거에 인터뷰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 일을 반복하는 것은 비생산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서 교수는 심장이 한쪽만 발달한 아이에게 시행하는 ‘폰탄 수술’ ‘대혈관전위 이중 치환술’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기자가 직접 찾아가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묻는 사람에 따라 인터뷰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득하고 나서야 이튿날 그는 ‘오키. 5월 8일 오전 9시에 봅시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날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교수 연구실로 헐레벌떡 뛰어간 기자와 달리 서 교수는 아침의 고요함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평일 아침 7시 반이면 어김없이 전공의들과 학술지를 읽고 토론한 뒤 회진을 돌기 때문에 이 시간은 비교적 여유롭다고 했다. 커피로 아침을 대신한다는 그가 미소 지으며 아이스커피를 권했다. 소음에 민감한 그가 노트북 자판 치는 소리를 부담스러워하기에 기자는 대학노트에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의 느릿한 말투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환자에게 받은 감사편지가 곳곳에 놓인 연구실에서 서 교수는 환자 부모에게 상황을 설명하듯 심사숙고하며 답했다.
11개월 아이 이번 주에 퇴원
▼ 국내 기록을 경신했는데 소회가 어떤가.
“환자도 나도 운이 좋았다. 아기의 심장박출량(심장박동으로 송출되는 혈액량)이 정상 아기의 15% 수준밖에 안 돼 위독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심장이식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나는 이 아기보다 2주 전 복잡한 수술을 한 아기에게 더 많은 공을 들였다. 나는 한 환자에게 관심이 머물지 않는다. 두 아이 모두 호전돼 이번 주 퇴원한다. 기분이 좋다.”
▼ 소아심장 전문의가 된 계기는 뭔가.
“인턴 때 입술이 파랬던 아기가 심장수술을 받고 나서 발그레한 얼굴로 퇴원하는 모습을 보고 이 분야만큼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심장 전문병원인 부천 세종병원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한 뒤 대전 을지병원을 거쳐 서울아산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소아뿐 아니라 성인 심장수술도 했다. 하지만 소아 심장수술 성공률이 높아 그만큼 의뢰가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분야를 더욱 파고들게 됐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소아 심장수술이 다른 영역에 비해 좀 더 복잡한 측면이 있다.”
▼ 소아 심장전문의가 따로 있을 만큼 소아 심장병 발병률이 높은가.
“소아 100명 중 1명은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난다. 소아 심장병 발병률뿐 아니라 심장병의 발병 유형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혈액은 온몸을 돌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정맥을 통해 우심방으로 들어온다. 이 피는 우심실, 폐동맥을 거쳐 폐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이산화탄소를 버리고 산소를 담는 과정을 통해 깨끗해진 피는 폐정맥, 좌심방, 좌심실을 거쳐 대동맥을 통해 다시 온몸을 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있거나 심장의 위치 및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혈액이 제대로 흐르지 않아 성장을 저해하거나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다.
▼ 선천성 심장병 완치율은 높은 편인가.
“90% 이상 치료 가능하다. 심장이식을 선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내가 지금까지 5000건 이상 소아 심장수술을 하면서 심장이식은 40건밖에 하지 않았다. 물론 이식도 어려운 수술은 아니다. 나는 국내 소아 심장치료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 왜 그런가.
“산모가 임신 중 초음파를 통해 ‘태아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겁먹은 나머지 아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산모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낳으라’고 권한다. 어제도 한 엄마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출산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종교제례와 같은 심장수술
▼ 소아를 환자로 대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
“성인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의료진을 대한다. 하지만 아이는 진료를 볼 때 불필요한 감정을 허비하지 않는다. 의사가 자신을 지켜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걸 느껴선지 진료할 때 울지 않고 도리어 웃는다. 나는 아이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려고 외래를 볼 때 의사 가운을 입지 않는다.”
▼ 심장수술이라는 생사를 오가는 작업을 하다 보면 종교를 갖게 될 것 같다.
“종교는 없다. 다만 신의 존재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어쩌면 심장수술이라는 것이 종교제례 같다. 수술 준비를 하고 수술을 진행하고 환자가 회복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드라마다. 그래선지 인터넷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휴심정’에서 글을 자주 읽는다.”
▼ 글을 자주 읽나 보다.
“생각이 복잡할 때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지만 글을 보는 편이다. 대만 작가 채지충이 동양사상을 만화로 풀어낸 책을 보면서 도(道)란 무엇인지 생각하고, 법정 스님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리영희 선생의 ‘自由人, 자유인’도 읽고 ‘성서 밖의 예수’도 자주 꺼내 본다. 아무래도 환자한테 기도하는 심정으로 진료에 임하기 때문에 종교를 생각하는 것 같다. 일요일에도 병원에 나와 환자 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경건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다.”
▼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각별한 것 같다. 어떤 환자가 기억에 남나.
“수술 후 퇴원해 엄마 품에 안겨 첫 외래 방문하는 아기 환자들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 그럴 때마다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 환자가 아니라 여러 환자를 마음속에 담고 산다. 선천적으로 하나의 심실을 갖고 태어난 환자들은 평생 의학적인 새로운 지식과 정서적인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각나고, 2008년 최연소 심장이식을 했던 아기도 잊을 수 없다.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심장과 간을 동시에 이식한 아이였는데, 수술하고 나서 암모니아 수치가 높아져 뇌손상이 와 끝내 (아이를) 잃어버렸다.”
▼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나.
“좀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너무 많아도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나쁜 결과까지도 반추하면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의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의료사고가 생겨 대법원까지 소송을 간 적이 있다. 피할 수 있는 사고(incident)와 피할 수 없는 사고(accident)가 있는데 이 두 사고를 줄이지 못해 발생한 것이다. 의료진을 엄격하게 교육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도 있다.”
다작, 다독, 다상량이 성공 비결
이야기는 그가 ‘소아 심장수술의 일인자가 된 이유’라는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하듯이 심장수술을 잘하는 데도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심장 학술잡지를 매일 아침 전공의들과 함께 읽고(다독), 수술 환자 데이터를 반복해 생각하며(다상량), 많은 수술을 하면서(다작)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 실력을 쌓은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다. 다음에 들어갈 수술 환자의 상태와 진료기록을 분석해 예습한다. 수술이 끝나면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정리하는 복습 과정을 거친다. 쉬운 것 같지만 모든 의사가 이를 실천하는 건 아니다. 물론 재능도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
▼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나.
“내 나름대로는 그 부분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 심장수술의 대가인 로저 미 호주 멜버른 왕립어린이병원 교수가 한국 학회에 참석했다가 당시 내 발표를 보고 ‘매우 특별한 의사’라고 평하면서 연수를 제안해 받아들였다. 이후 로저 미 교수가 심장병 수술의 메카인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연수를 초청해 그와 함께 공부하면서 소아 심장수술에 전념했다. 내가 동년배보다 앞서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회도 잘 잡았다.”
▼ 어떻게 기회를 잡았나. 장기적인 로드맵이 있었나.
“장기적인 계획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꿈도 우상도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다만 매일매일 주어진 갈림길에서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자신이 상황을 만드는 것보다 상황이 주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그렇다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일일개선도 실천해야 한다.”
▼ 일일개선이 뭔가.
“우리나라에서 소아 심장 분야를 개척한 홍창의 교수님이 ‘작은 노력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지금까지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나는 나이 마흔에 스키를 배웠지만 지금은 친구들 중에서 스키를 잘 타는 편에 속한다. 영상과 책을 보고 기술을 분석하고 연습을 거듭해 실력을 쌓은 것이다. 나는 회진을 돌 때 생긴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매일매일 노력했다.”
▼ 그렇다면 매일같이 심장을 연구한 건가.
“아니다. 한 가지 일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문가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일에서 자기 분야를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산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문득문득 환자를 생각한다. 일보 후퇴해 사안을 바라보면 열 발 내디딜 수 있다.”
▼ 그동안 전진만 하면서 살았나.
“그럴 리가…. 공개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실은 많이 가난했다. 7남매 중 막내아들로 자랐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뒤론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이 기뻐하고 선생님이 예뻐하니까 그런 게 좋아서 열심히 했다. 돌이켜보면 의사가 된 것도 아버지가 ‘사변적인 삶보다 체(體), 용(用)을 중시하는 삶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으니 의사가 되라’고 간곡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생각이 깊고 사랑이 많아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서 교수는 한 인터뷰를 통해 “현재 관심을 둔 것은 저개발국가에서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들을 살리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계 빈곤아동을 돕는 국제기구 ‘세이브 더 칠드런’ 한국지부의 이사를 맡은 그는 2001년부터 외국에서 무료수술을 해왔다. 2009년에는 이 공적으로 대한적십자사 적십자박애장 은장을 받았다.
▼ 10년 전부터 동남아 아이들을 진료한다고 들었는데 이와 관련된 일인가.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는 말할 수 없지만 계획해둔 것이 있다. 그때 만나게 되면 말하겠다. 꼭 다시 만나자(웃음).”
서 교수는 심장이 한쪽만 발달한 아이에게 시행하는 ‘폰탄 수술’ ‘대혈관전위 이중 치환술’ 등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다. 기자가 직접 찾아가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묻는 사람에 따라 인터뷰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득하고 나서야 이튿날 그는 ‘오키. 5월 8일 오전 9시에 봅시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날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 교수 연구실로 헐레벌떡 뛰어간 기자와 달리 서 교수는 아침의 고요함을 한껏 누리고 있었다. 평일 아침 7시 반이면 어김없이 전공의들과 학술지를 읽고 토론한 뒤 회진을 돌기 때문에 이 시간은 비교적 여유롭다고 했다. 커피로 아침을 대신한다는 그가 미소 지으며 아이스커피를 권했다. 소음에 민감한 그가 노트북 자판 치는 소리를 부담스러워하기에 기자는 대학노트에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의 느릿한 말투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환자에게 받은 감사편지가 곳곳에 놓인 연구실에서 서 교수는 환자 부모에게 상황을 설명하듯 심사숙고하며 답했다.
11개월 아이 이번 주에 퇴원
▼ 국내 기록을 경신했는데 소회가 어떤가.
“환자도 나도 운이 좋았다. 아기의 심장박출량(심장박동으로 송출되는 혈액량)이 정상 아기의 15% 수준밖에 안 돼 위독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심장이식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나는 이 아기보다 2주 전 복잡한 수술을 한 아기에게 더 많은 공을 들였다. 나는 한 환자에게 관심이 머물지 않는다. 두 아이 모두 호전돼 이번 주 퇴원한다. 기분이 좋다.”
▼ 소아심장 전문의가 된 계기는 뭔가.
“인턴 때 입술이 파랬던 아기가 심장수술을 받고 나서 발그레한 얼굴로 퇴원하는 모습을 보고 이 분야만큼 감동적인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후 심장 전문병원인 부천 세종병원에서 공중보건의사로 근무한 뒤 대전 을지병원을 거쳐 서울아산병원에서 흉부외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소아뿐 아니라 성인 심장수술도 했다. 하지만 소아 심장수술 성공률이 높아 그만큼 의뢰가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 분야를 더욱 파고들게 됐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소아 심장수술이 다른 영역에 비해 좀 더 복잡한 측면이 있다.”
▼ 소아 심장전문의가 따로 있을 만큼 소아 심장병 발병률이 높은가.
“소아 100명 중 1명은 선천성 심장병을 안고 태어난다. 소아 심장병 발병률뿐 아니라 심장병의 발병 유형도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혈액은 온몸을 돌면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정맥을 통해 우심방으로 들어온다. 이 피는 우심실, 폐동맥을 거쳐 폐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이산화탄소를 버리고 산소를 담는 과정을 통해 깨끗해진 피는 폐정맥, 좌심방, 좌심실을 거쳐 대동맥을 통해 다시 온몸을 돈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있거나 심장의 위치 및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혈액이 제대로 흐르지 않아 성장을 저해하거나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다.
▼ 선천성 심장병 완치율은 높은 편인가.
“90% 이상 치료 가능하다. 심장이식을 선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내가 지금까지 5000건 이상 소아 심장수술을 하면서 심장이식은 40건밖에 하지 않았다. 물론 이식도 어려운 수술은 아니다. 나는 국내 소아 심장치료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
▼ 왜 그런가.
“산모가 임신 중 초음파를 통해 ‘태아 심장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겁먹은 나머지 아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산모들에게 ‘걱정하지 말고 낳으라’고 권한다. 어제도 한 엄마가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출산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종교제례와 같은 심장수술
▼ 소아를 환자로 대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
이번에 심장이식 수술을 받은 11개월 된 아기와 함께한 서동만 교수.
▼ 심장수술이라는 생사를 오가는 작업을 하다 보면 종교를 갖게 될 것 같다.
“종교는 없다. 다만 신의 존재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어쩌면 심장수술이라는 것이 종교제례 같다. 수술 준비를 하고 수술을 진행하고 환자가 회복하는 과정은 그 자체가 드라마다. 그래선지 인터넷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휴심정’에서 글을 자주 읽는다.”
▼ 글을 자주 읽나 보다.
“생각이 복잡할 때 스스로에게 묻기도 하지만 글을 보는 편이다. 대만 작가 채지충이 동양사상을 만화로 풀어낸 책을 보면서 도(道)란 무엇인지 생각하고, 법정 스님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리영희 선생의 ‘自由人, 자유인’도 읽고 ‘성서 밖의 예수’도 자주 꺼내 본다. 아무래도 환자한테 기도하는 심정으로 진료에 임하기 때문에 종교를 생각하는 것 같다. 일요일에도 병원에 나와 환자 상황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경건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다.”
▼ 환자에 대한 책임감이 각별한 것 같다. 어떤 환자가 기억에 남나.
“수술 후 퇴원해 엄마 품에 안겨 첫 외래 방문하는 아기 환자들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 그럴 때마다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한 환자가 아니라 여러 환자를 마음속에 담고 산다. 선천적으로 하나의 심실을 갖고 태어난 환자들은 평생 의학적인 새로운 지식과 정서적인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각나고, 2008년 최연소 심장이식을 했던 아기도 잊을 수 없다. 동양에서는 처음으로 심장과 간을 동시에 이식한 아이였는데, 수술하고 나서 암모니아 수치가 높아져 뇌손상이 와 끝내 (아이를) 잃어버렸다.”
▼ 잃어버린 아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나.
“좀 있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너무 많아도 안 되는 측면이 있다. 나쁜 결과까지도 반추하면서 더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의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의료사고가 생겨 대법원까지 소송을 간 적이 있다. 피할 수 있는 사고(incident)와 피할 수 없는 사고(accident)가 있는데 이 두 사고를 줄이지 못해 발생한 것이다. 의료진을 엄격하게 교육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도 있다.”
서동만 교수 연구실 곳곳에는 환자들이 보낸 감사편지가 놓여 있다.
이야기는 그가 ‘소아 심장수술의 일인자가 된 이유’라는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야 하듯이 심장수술을 잘하는 데도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심장 학술잡지를 매일 아침 전공의들과 함께 읽고(다독), 수술 환자 데이터를 반복해 생각하며(다상량), 많은 수술을 하면서(다작) 실력을 쌓았다고 한다.
▼ 실력을 쌓은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예습 복습을 철저히 했다. 다음에 들어갈 수술 환자의 상태와 진료기록을 분석해 예습한다. 수술이 끝나면 그 과정을 돌이켜보면서 정리하는 복습 과정을 거친다. 쉬운 것 같지만 모든 의사가 이를 실천하는 건 아니다. 물론 재능도 어느 정도 타고나야 한다.”
▼ 스스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나.
“내 나름대로는 그 부분에 대해 감사히 생각한다. 심장수술의 대가인 로저 미 호주 멜버른 왕립어린이병원 교수가 한국 학회에 참석했다가 당시 내 발표를 보고 ‘매우 특별한 의사’라고 평하면서 연수를 제안해 받아들였다. 이후 로저 미 교수가 심장병 수술의 메카인 미국 클리블랜드 클리닉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연수를 초청해 그와 함께 공부하면서 소아 심장수술에 전념했다. 내가 동년배보다 앞서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기회도 잘 잡았다.”
▼ 어떻게 기회를 잡았나. 장기적인 로드맵이 있었나.
“장기적인 계획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꿈도 우상도 이데올로기도 없었다. 다만 매일매일 주어진 갈림길에서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자신이 상황을 만드는 것보다 상황이 주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 않나. 그렇다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일일개선도 실천해야 한다.”
▼ 일일개선이 뭔가.
“우리나라에서 소아 심장 분야를 개척한 홍창의 교수님이 ‘작은 노력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는데, 그 말씀이 지금까지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다. 예컨대 나는 나이 마흔에 스키를 배웠지만 지금은 친구들 중에서 스키를 잘 타는 편에 속한다. 영상과 책을 보고 기술을 분석하고 연습을 거듭해 실력을 쌓은 것이다. 나는 회진을 돌 때 생긴 궁금증을 해결하려고 매일매일 노력했다.”
▼ 그렇다면 매일같이 심장을 연구한 건가.
“아니다. 한 가지 일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문가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일에서 자기 분야를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산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문득문득 환자를 생각한다. 일보 후퇴해 사안을 바라보면 열 발 내디딜 수 있다.”
▼ 그동안 전진만 하면서 살았나.
“그럴 리가…. 공개하긴 어렵지만 개인적인 아픔도 있었다. 실은 많이 가난했다. 7남매 중 막내아들로 자랐고,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 온 뒤론 경제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면 부모님이 기뻐하고 선생님이 예뻐하니까 그런 게 좋아서 열심히 했다. 돌이켜보면 의사가 된 것도 아버지가 ‘사변적인 삶보다 체(體), 용(用)을 중시하는 삶이 세파에 흔들리지 않으니 의사가 되라’고 간곡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생각이 깊고 사랑이 많아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서 교수는 한 인터뷰를 통해 “현재 관심을 둔 것은 저개발국가에서 심장병을 갖고 태어난 아기들을 살리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세계 빈곤아동을 돕는 국제기구 ‘세이브 더 칠드런’ 한국지부의 이사를 맡은 그는 2001년부터 외국에서 무료수술을 해왔다. 2009년에는 이 공적으로 대한적십자사 적십자박애장 은장을 받았다.
▼ 10년 전부터 동남아 아이들을 진료한다고 들었는데 이와 관련된 일인가.
“결과물이 나오기 전에는 말할 수 없지만 계획해둔 것이 있다. 그때 만나게 되면 말하겠다. 꼭 다시 만나자(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