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푸아그라 마카롱도 판다. 비리고 산패한 기름내가 나지만 여느 마카롱보다 2배 비싸다. 신기한 일이다.
“한국 사람은 김치 맛을 잘 압니다. 한 젓가락만 먹어봐도 김치에 어떤 젓갈을 넣었고 양념을 잘했는지 못했는지 구별할 수 있습니다. 갓 버무린 것인지, 제대로 숙성한 것인지는 때깔만 보고도 압니다. 보관을 잘못해 발효가 된 것도 구별해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먹는 김치인데 그걸 모를 리 없죠. 만일 외국의 어느 유명한 요리평론가가 한국에 왔다고 칩시다. 그가 어느 식당의 김치를 두고 맛있는 김치니, 맛없는 김치니 평가한다면 어떨까요. 많은 한국인이 이럴 겁니다. ‘자기가 무슨 김치 맛을 안다고 그래.’ 마찬가지로 제가 파스타를 먹으며 토속적인 이탈리아 맛이네, 퓨전한 이탈리아 맛이네 한다면 이탈리아 사람이 뭐라고 할까요. ‘정말 웃기고 있네’라는 말은 듣기 싫습니다.”
음식이란 한 종류를 다양하게 많이 먹어봐야 그 맛을 구별하는 능력이 생기고, 그 많은 경험이 바탕이 돼야 음식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 이때까지 내 경험에 따르면, 파스타 맛에 대해 한두 마디 보탤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가지려면 이탈리아에 1년 정도 머물면서 수많은 파스타를 꾸준히 먹고 난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외국의 어떤 음식평론가가 한국 김치맛을 품평하려면 그 정도의 기간과 노력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요즘 방송을 보면 요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 예전엔 나이 많은 전문 요리사가 주로 나왔는데, 요즘에는 젊고 잘생긴 요리사가 대부분이다. 외국 요리학교를 나왔거나 외국 식당에서 근무한 것을 경력으로 내세운다. 그들이 만든 요리는 외국 음식인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국적 불명의 글로벌화한 요리로도 보인다. 나라 간 거리가 좁아져 한국의 젊은 요리사 머릿속에 나라별 요리라는 것이 흐릿해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요리하면서 최고의 맛이 나는 것처럼 포장하려고 꼭 넣는 재료가 꼭 있다. 푸아그라, 캐비아, 트러플이다. 한국어로는 거위 간, 철갑상어 알, 송로버섯이다. 이 세 재료는 서양 고급음식의 상징이 됐다. 서양에서도 그런지는 잘 몰라도 한국에서는 확실히 그렇다. 방송에 나오는 젊은 요리사들은 한국인의 마음속에 있는 서양 최고의 음식재료를 요리에 넣음으로써 자신의 요리 솜씨가 최고인 양 ‘술수’를 부리는 것이다. 이 세 음식재료 가운데 푸아그라 이야기 좀 하겠다. 과연 한국에서 쓰는 푸아그라가 서양 최고 요리를 만드는 재료일까.
푸아그라는 거위 간이다. 거위 간은 지방이 많아 쉽게 상한다. 그래서 푸아그라가 얼마나 싱싱한지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푸아그라가 극상의 맛을 내려면 싱싱한 상태의 것을 적절히 전처리를 해야 한다. 그러니까 서양에서 솜씨 있는 요리사라는 명성을 얻으려면 이 싱싱한 푸아그라를 어찌 다루는지가 중요하다. 한국에는 이 싱싱한 거위 간이 없다.
한국 요리사가 쓸 수 있는 푸아그라로는 전처리가 되지 않은 냉동 푸아그라와 전처리된 통조림이 있다. 통조림 푸아그라는 여러 첨가물로 조미했기 때문에 그냥 썰어놓거나 데우기만 해도 된다. 우리가 수입하는 통조림 푸아그라는 다양하다. 오리 간으로 만든 것도 있고, 닭 간이 섞인 것도 있으며, 돼지기름이 들어간 것도 있다. 그 냉동 또는 통조림 푸아그라로 최상의 서양음식을 내는 것처럼 ‘폼’ 잡는 것이다.
한국에는 거위는 귀하지만 오리는 흔하다. 이 오리 간도 거위 간만 한 맛을 낸다. 냉동이나 통조림 푸아그라로 ‘폼’을 잡을 것이 아니라, 국내의 싱싱한 오리 간으로 요리를 만들어볼 생각은 왜 안 하는 것일까. 그런 음식이 있다면 나는 맛을 보러 갈 테고, 품평도 할 것이다. 그런 요리는 서양에서 요리법을 가져온 것이라 해도 한국에서 난 재료로 한국 요리사가 조리했으니 한국 음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