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인 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중국 화웨이의 스마트폰.
MWC 관람객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 정보기술(IT)의 현 주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출입카드에 이르기까지 관람객은 중국의 위용에 압도당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화웨이가 스마트폰으로 만든 비마상이 눈에 띄었다. 첨단 스마트폰을 날개 삼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비마상은 중국 IT 산업의 비상을 상징했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ZTE는 MWC의 메인스폰서로, MWC 출입카드 오른쪽 상단에 ZTE라는 브랜드를 당당히 새겨 넣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MWC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던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 ZTE가 당당히 메인 스폰서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IT 분야에서 중국은 이제 ‘짝퉁’ 기기를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세계 각지에서 첨단 기술을 배우고 돌아온 무수한 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중국은 IT 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LG전자 제치고 애플도 위협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ZTE는 2011년 4분기 세계 4위 휴대전화 제조업체로 올라섰다. 판매대수 기준으로 LG전자를 제친 것이다. ZTE는 이 기간에 1891만 대를 팔아치웠다. 점유율은 4.0%로 LG전자(3.6%)를 근소한 차이로 따돌렸다. ZTE의 상승세가 중국 내에서 어느 정도인지는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ZTE의 내수시장 점유율은 11.1%에 이른다. ZTE의 상승세로 애플 아이폰의 점유율이 반 토막 났을 정도다.
물론 ZTE의 주력 상품은 1000위안(약 18만 원) 이하의 저가폰이다. 하지만 고성능 제품도 선보인다. 엔비디아가 통신 베이스밴드 모뎀업체인 아이세라를 인수한 후 기술력을 뽐낼 첫 파트너로 지목한 곳도 ZTE다. 올 하반기에는 인텔과 협력해 인텔의 ‘아톰’ 프로세서를 탑재한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ZTE는 지난해부터 자사 브랜드를 알리는 데도 과감히 투자하고 있다. MWC를 후원한 것도 그 일환이다. 얼마 전엔 ZTE가 리서치 인 모션(RIM)을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RIM은 스마트폰 블랙베리를 출시한 캐나다 회사로, 최근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중국 화웨이는 MWC에서 쿼드코어폰을 공개하며 일약 스타가 됐다. 관람객은 화웨이의 쿼드코어폰을 써보려고 줄지어 기다렸다. 어센드D 쿼드는 구글 아이스크림 샌드위치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사용자 인터페이스(UI)를 탑재했다. 쿼드코어폰을 사용해본 관람객은 속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관람객은 “속도가 확실히 빠르다”며 “뛰어난 그래픽을 구현하는 게임 속 캐릭터도 부드럽게 움직인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의 무서운 성장은 스마트폰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남미 등 디지털, 고선명(HD) 방송을 시작하는 이머징마켓에서 중국 업체들은 놀랄 만큼 선전 중이다. 중국 화웨이와 ZTE는 각종 방송 장비에서부터 시청자에게 필요한 셋톱박스에 이르기까지 풀라인업을 갖추고 시장을 공략한다.
더 무서운 것은 중국의 기술력이다. 핵심 부품은 외부에서 들여오고 겉모양만 흉내 내던 중국이 더는 아니다. 물론 아직도 짝퉁이 넘쳐나기는 하지만, 주요 업체는 ‘메이드 인 차이나’의 기술력을 뽐내며 세계 시장을 공략한다.
휴대전화 관련 특허 출원 동향을 분석한 톰슨 로이터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에릭슨, 노키아, 애플, 퀄컴 등을 제치고 지난해 가장 많은 휴대전화 특허를 출원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ZTE가 특허 확보에도 적극성을 보여 톱10에 진입했다는 점이다.
전 세계 1400개 업체가 참가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에서 중국 화웨이 전시관에 관람객이 몰렸다.
IT 단말기의 기능을 구현하는 데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도체 기술도 한국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어떤 점에서는 한국을 이미 능가했다. 중국의 공정 기술은 아직 한국보다 낙후했지만 설계 기술력은 부분적으로 오히려 한국을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반도체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팹리스업체는 오히려 국내 기업 매출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에서는 최대 팹리스업체가 매출 3000억 원을 갓 넘긴 수준이지만, 중국은 5000억 원 이상을 기록하는 업체가 다수다. 올해에는 매출 1조 원 업체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화웨이와 ZTE는 수천 명의 반도체 설계 인력을 확보해 반도체 개발에도 나섰다. 화웨이가 내놓은 쿼드코어 AP ‘K3V2’도 화웨이와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함께 개발한 제품이다. 하이실리콘은 최근 LTE-FDD와 TD-LTE(통신), 3GPP릴리스9을 함께 지원하는 세계 최초 멀티모드 베이스밴드 칩을 선보이기도 했다.
베이스밴드와 RF 칩을 전문으로 하는 스프레드트럼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다. 2011년 매출은 전년 대비 94.7% 증가한 6억7430만 달러로 껑충 뛰었으며, 올해에도 그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수출하는 갤럭시S2, 갤럭시 노트에도 스프레드트럼 모뎀 칩을 사용했다.
중국 기업들이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핵심 기술을 보유한 인재, 넓은 시장, 정부의 적극적 지원이라는 3박자를 갖췄기 때문이다. 과거 중국의 인력이라고 하면 값싼 인건비를 떠올렸지만 지금은 최고급 인재풀을 연상시킨다. 최근 주목받는 중국 반도체 기업의 창업자는 모두 실리콘밸리 출신이다.
반도체를 수탁 생산하는 파운드리업체의 한 마케터는 “고객 가운데 중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이 많은데, 대만 고객은 영어를 잘 못 하는 경우가 많지만 중국 고객은 100% 영어 능통자”라며 “모두 미국이나 유럽에서 유학한 이들로, 특히 실리콘밸리 IT 기업에서 일을 배우다 중국으로 돌아온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은 화웨이와 ZTE 등 세계적인 세트업체의 든든한 배경이다. 중국은 먼저 중국 시장에 맞는 독자 표준을 키워 중국 업체들의 기술력을 발달시켰다. TD-LTE, CMMB(디지털방송) 등은 모두 중국 독자 표준으로, 중국 업체들은 다른 시장에 나가지 못해도 이 표준에 따르면서 기술력을 키운다. 핵심 기술이라고 판단한 분야는 정부가 직접 투자해 운영한다. 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SMIC나 LCD 패널업체인 BOE는 모두 공기업이라 할 수 있다. 수년 동안 적자를 내도 기술력을 키우겠다는 목표하에 정부가 이들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