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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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라이 낙마는 새로운 권력투쟁 신호탄

중국 차세대 지도부 일부 독자적 목소리

  • 윤근노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연구교수 ykr@yonsei.ac.kr

    입력2012-03-26 10: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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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근 망명 사건으로 중국 정계를 뒤흔든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가 전격 해임됐다. 부패 혐의에 대한 단죄 형식을 띠었지만, 중국 지도부의 권력 암투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서방의 관심을 끈다.

    중국 공산당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흔히 간과하는 구조적 특징으로 당의 이중구조를 꼽을 수 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를 대내외적으로 대표하는 기관과 기관장은 시장이다. 그러나 모든 기관에는 기관 대표와 함께 당 조직이 존재한다. 중국의 4개 직할시와 각 성에는 시장(성장)과 함께 당서기가 있다. 특히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당서기는 당 서열로 보면 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관행처럼 베이징과 상하이의 당서기는 정치국 위원을 겸하며 당 서열 상위를 차지한다.

    핵심 엘리트 충원이 갈등관계 형성

    직할시 당서기 이후의 거취는 공산당 16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황으로 대략 파악할 수 있다. 당시 정치국 위원인 자칭린 베이징 당서기와 황쥐 상하이 당서기가 면직되고, 후임으로 각각 베이징과 상하이 시장이던 류치와 천량위가 임명됐다. 황쥐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 라인으로 불리는 상하이방의 중심 인물로, 그해 중앙 정치국 진입이 사실상 어려웠음에도 기존 7명이던 상무위원이 2명 더 늘어나 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이런 맥락에서 사람들은 보시라이 전 충칭 당서기 역시 차세대 지도부에 포함되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보시라이가 해임되자 언론들은 중국 권력투쟁의 결과라 보도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대대적인 좌파숙청, 군 병력 충돌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전하기도 한다. 표면적으로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방과 공산당 원로의 자제들인 태자당 대 후진타오 중심의 공청단 간 대립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중국 정치에서 부패 혐의만으로 핵심 엘리트가 정치 생명을 잃은 적은 없다. 하지만 권력투쟁의 끝은 비리 혐의로 마무리 되는 게 사실이다. 반면 몇 해 전 사스(SARS) 때문에 베이징 시장이 당직을 잃은 것이나 신장 위구르지역 폭동으로 최근 왕러취안 당서기가 해임된 것 모두 문책성 인사다.



    보시라이 해임에 대한 해외 언론 보도를 재인용하면, 정치 파벌 간 투쟁을 넘어 개혁이냐 아니냐 하는 근본 문제를 담고 있다는 시각(정용녠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그리고 보시라이를 대가로 제5세대로의 권력 이동을 성취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앤드류 나탄 컬럼비아대 교수)이 있다. 보시라이가 추진했던 ‘충칭 모델’이 중앙의 정책 노선과 차이를 보였던 만큼 음모론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1995년 베이징 시장과 2006년 상하이 당서기의 부패 혐의가 제기되고 이들 당적이 박탈된 것을 두고 권력투쟁으로 보는 의견이 많다. 당시 상하이방은 베이징과 공청단을 누르고 집권 기반을 다지려고 권력투쟁 과정에서 천시퉁 베이징 시장에게 부패 혐의로 징역형을 내린 뒤 당적을 박탈했다. 천량위 상하이 당서기는 사회보장기금 유용 혐의로 체포돼 18년 징역형을 받았으며, 공직과 당적을 박탈당했다. 천량위 당서기는 중앙 정부의 부동산 시장 과열에 대한 거시경제 통제 정책을 반대했지만, 당시 상하이 시민들에겐 개혁개방에 적합하고 능력 있는 인물로 평가받았다.

    2006년 17기 당대회를 앞두고 천량위가 물러나자 시진핑이 상하이 당서기 자리에 올랐다. 시진핑은 시중쉰 전 부총리의 아들로, 포스트 후진타오 시대를 이끌어갈 제5세대 지도자로 꼽힌다. 시중쉰은 덩샤오핑에게 경제특구를 건의한 인물이다.

    이번 보시라이 해임을 통해 중국 권력 형태를 들여다본 결과, 핵심 엘리트를 충원하는 데 새로운 갈등관계가 생겨난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기존 지도자 집단과 차기 지도자 집단이 견제 및 협의를 하며 정치적 결과물을 얻어낸 데 반해, 태자당이 차세대 지도부를 구성할 것이 현실화하면서 새로운 역학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기존의 기술관료나 공청단 출신 지도자들이 개인의 능력에 바탕을 둔 것과 달리, 태자당은 혁명원로의 자제들이라 당내 갈등과 조정이 녹록지 않을 수 있다. 과거 당 정치국 핵심으로 충원될 인물들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은 부패혐의로 승부가 정해졌으나, 태자당 세력이 늘어나면서 당내 서열과 합의보다 집안이나 정치적 관계에 의한 간섭이 늘어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이 출현한 것이다.

    혁명원로 집단 영향력 중요한 변수

    보시라이 낙마는 새로운 권력투쟁 신호탄

    2007년 9월 한중정상회담을 가진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이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과 보시라이 상무장관(맨 오른쪽)의 협약서명식을 지켜보고 있다.



    보시라이는 그동안 천량위 후임이 될 가능성과 함께 중앙 정부와는 차별화한 독자적인 정치 형태를 보여 왔다. 결과적으로 중국 부총리를 지낸 보이보의 아들 보시라이가 해임 전후에 보인 모습은 과거 해임됐던 지도자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최근 중국 정치권력의 갈등 양상은 엘리트를 충원하는 데 제도적 제약이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의 엘리트 충원은 당내 지도자들의 합의로 결정됐다. 당의 정치 문화는 사회적 압력이나 대중의 요구 혹은 제도적 제약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갈등이 표출되거나 정책 논쟁이 공개되는 것을 억제해왔다. 그 대신 비공개 혹은 비공식 형태로 후견인-피후견인 관계나 특수 이익에 기초한 정치적 관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차세대 지도자 일부가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독립된 정치 형태를 제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중국 정치지도부는 통상 세대로 구분한다. 마오쩌둥의 제1세대와 덩샤오핑 중심의 항일전쟁 세대인 제2세대, 장쩌민 주석 시절 기술 관료들을 가리키는 제3세대, 그리고 문화대혁명 세대인 제4세대로 나눈다. 여기에 차세대 지도부로 경제개혁 세대인 제5세대가 더해진다. 제3세대부터는 1인 지배체제가 아닌 집단 지도체제 성격이 강하며, 제4세대 지도부는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정치적 혜택을 받지 못한 정치 엘리트다. 이러한 구분의 연장선에서 제5세대의 주축으로 태자당 출신 시진핑과 보시라이가 거론되고 있었다.

    보시라이 해임을 전후해 전개된 흐름은 중국 지도부가 핵심 엘리트를 충원하면서 겪는 한계와 변화를 담고 있다고 봐야 한다. 상하이방이나 태자당, 나아가 공청단의 구분이 모호하고 중첩되는 점을 이해한다면 향후 제5세대 지도부에서는 혁명원로 가족 집단의 정치적 영향력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으며,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개혁개방 과정에서 성장 위주 정책을 편 상하이방 이후 분배, 조화, 평등을 중시하는 후진타오의 제4세대는 개인의 정치 역량에 무게를 둔다. 반면 최근 세력이 확대되고 있는 태자당은 혁명세대의 정치적 자원을 이용해 정치 생명 연장은 물론, 독자적인 행보도 가능하다. 최근 중국의 갈등 양상은 이러한 가능성을 확인시키는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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