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는 지난해 ‘반값 TV’로 인기를 끌었던 32인치 LED TV를 1월에 다시 선보였다.
‘반값 TV’의 시작은 지난해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통큰 치킨’으로 홍역을 치른 롯데마트가 가격을 대폭 낮춘 노트북을 내놓아 성공하자 얼마 뒤 ‘통큰 TV’를 출시했다. 중소 제조기업인 모뉴엘과 손잡고 40만 원대 32인치 LCD TV를 출시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LCD TV에 비하면 30% 정도 저렴하고, 고급 기종과 비교하면 절반 가격에 불과했다. 저가형에 속하는 제품보다도 훨씬 싼 가격이었다. 그러면서도 LCD TV의 특징은 모두 갖췄다. 구매 후 7년 동안 모뉴엘 AS센터에서 수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해 AS에 대한 불안 문제도 해소했다. 모뉴엘은 로봇청소기와 개인용 컴퓨터(PC)를 생산하던 회사였으나 당시 이벤트를 통해 TV 부문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유통회사와 중소 제조사의 협업으로 내놓은 반값 TV는 판매망이 대형마트를 넘어 온라인과 전문양판점으로까지 확산됐다. 온라인쇼핑몰 인터파크는 2월 27일 오전 10시 42인치 풀 고화질(HD) LED 제품인 ‘iTV’를 첫 반값 TV로 내놓았다. 500대 한정이었는데 2시간 만에 매진됐다.
온라인과 전문양판점까지 확산
인터파크의 iTV가 성공적으로 론칭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존 반값 제품에 비해 고급(high end) 제품이라는 점이 크다. 물론 고급 TV를 반값으로 내놓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월 옥션이 42인치 풀 HD LED TV를 59만9000원에 300대 한정 판매했다. 이는 옥션의 네 번째 ‘올킬 TV’로, 옥션은 42인치 LCD TV에 이어 32인치 LED TV와 42인치 LED TV로 고급 제품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온라인쇼핑몰 G마켓도 32인치와 42인치 LED TV 3개 모델을 판매했다. ‘굿 TV’라는 브랜드로, 중소기업과 공동 기획해 AS도 보장했다.
이들은 LED TV 성공을 발판으로 3D TV도 반값 제품을 준비한다. 인터파크는 42인치 3D TV도 선보일 계획이다. 11번가와 G마켓도 마찬가지다. 저가 TV 열풍을 주도했던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유통회사 역시 40인치대 고기능 TV 출시를 검토 중이다.
반값 TV는 유통회사가 제조사와 손잡고 내놓은 한정 기획상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제조사가 직접 대규모로 반값 TV를 준비한다. 방송 프로그램 제공자(PP)로 활동해온 빅앤소프트는 ‘빅스트림’이라는 이름의 스마트TV를 3월 말 공식 출시할 예정이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진저브레드 2.3)를 탑재한 명실상부한 스마트TV다. TV에서 인터넷을 즐길 수 있으며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도 이용 가능하다. 와이파이, 블루투스 기능도 탑재해 최근 화두인 커넥티비티(connectivity)까지 갖췄다.
인사이드디지털은 B2B(business to business)용으로 반값 스마트TV를 내놓는다. 미국 RMG(Resort Media Group)와 협약을 맺고 미국 호텔과 리조트에 2만 대 규모로 스마트TV를 공급키로 한 것이다. 인터파크 등과 손잡고 반값 TV를 출시했던 GPNC도 안드로이드 OS를 탑재한 스마트TV ‘레드로이’ 새 버전을 내놓을 계획이다.
반값 제품이 인기 있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정말로 반값으로 제품을 내놓는 것이 가능하냐는 점이다. 이벤트를 위한 마케팅 비용이라 생각하고 손해를 보면서 혹은 마진을 최소화하면서 제품을 팔 수는 있다. 그런 경우 반값 TV 물량은 몇백 대 수준에 그치는 것이 보통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기존 TV 제조업체는 유통업체의 반값 전략에 한계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국내에서만도 연간 100만 대 이상의 TV를 팔고 있어 유통업체가 월 1만 대 수준으로 벌이는 공격적 마케팅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지난해 기준 TV 내수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브랜드가 95% 이상을 장악한 상태다.
중소 제조사 B2B 시장에도 진출
한 소비자가 인터넷쇼핑몰에 나온 50만 원대 32인치 LED TV를 살펴보고 있다.
반값 TV가 판매에 성공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 것으로 업계는 분석한다. 먼저 연말이면 아날로그방송이 종료되기 때문에 저소득층의 TV 교체 수요가 쏟아져 나온다는 점이다. 이미 많은 소비자가 최근 몇 년간 고가 TV 구매에 상당한 비용을 쏟아부은 상황이라, 반값 TV가 세컨드 TV 수요를 자극했다는 분석도 있다. 런던올림픽을 비롯한 스포츠 특수를 앞두고 세컨드 TV도 LED TV, 3D TV 등으로 교체하고 싶어 하는 수요가 발생한 것이다.
TV에 대한 인식 변화도 크게 작용했다. 최근 인터넷쇼핑몰 11번가는 TV 구입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대해 소비자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화질(23%)’ ‘가격(22%)’이었으며 화면 크기(17%)와 브랜드(16%), 다양한 기능(11%)이 그 뒤를 이었다. TV 구매에서 삼성전자나 LG전자 같은 대기업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가 구매 결정의 절대요소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반값 TV에서 성능을 인정받은 중소기업은 이를 발판으로 B2B 시장에도 진출하고 있다. 인사이드디지털의 사례처럼 호텔이나 리조트용으로 저가 3D TV와 스마트TV를 대량 공급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 올림픽과 디지털 전환 이슈 등으로 내수시장이 크게 성장해 중소기업에도 많은 기회가 올 것”이라면서 “해외에서는 마케팅 협업을 통한 시장 진출을 추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돌풍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보급형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LG전자는 국내 출시 신제품 가운데 80%를 3D TV로 내놓는다. 3D TV는 보급형에서 프리미엄까지 전 방위로 확산되며, 스마트 기능은 기본 기능으로 탑재된다. 삼성전자도 이르면 이번 달 안으로 저가 TV를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TV에 비해 30%가량 싼 직하형 LED TV가 유력하다.
반값 제품은 TV로 한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반값 TV에 이어 가전 영역의 다른 저가 제품도 잇따라 출시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반값 냉장고’ ‘반값 세탁기’까지 나올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