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옷을 입은 채 얼어붙은 나무 주효(樹氷)를 벗삼아 달리는 핫코다산 스키코스(큰사진)와 도와다 호수의 절경.
일본의 속살 료칸의 하룻밤
핫코다(八甲田·1584m)산 중턱 스카유(酸ケ湯)온천. 산중의 겨울은 무채색이다. 하늘은 뿌옇고, 땅은 눈밭이다. 110년 전 지은 목조 건물이 고색창연하다. 남자, 여자가 나신(裸身)으로 혼욕한다. 탕 안은 수증기로 하얗다. 욕탕에 몸을 함께 담근 낯선 이성의 얼굴을 본다. 여인이 옷 벗는 소리가 들린다.
온천 료칸은 일본의 속살이다. 스카유온천은 300년 역사를 뽐낸다. 1954년 국민온천 제1호로 지정됐다. 탕치(湯治)는 일본인의 장수 비결. 노송으로 꾸민 욕탕에는 세월이 새겨놓은 흔적이 가득하다. 유황이 니코틴, 알코올에 찌든 몸을 간질인다. 몸이 보드랍다. 피부가 촉촉하다.
핫코다산은 일본에서 가장 큰 섬 혼슈(本州) 최북단 아오모리(靑森)현에 서 있다. 눈(眼)으로 눈(雪)을 보고 입으로 진미를 맛보면서 차갑게 달리고 뜨겁게 담그는 게 아오모리 겨울여행. 오감(五感)을 열고 북방의 색채를 느끼는 여정이다.
핫코다산은 거북 등딱지(甲)를 닮은 봉우리가 여덟이다. 주봉으로 객을 나르는 케이블카에 오른다. 눈옷을 입은 채 얼어붙은 나무[주효(樹氷·수빙)라 부른다]는 괴물을 닮았다. 주효를 벗 삼아 걷는 30분, 1시간 트래킹 코스가 있다. 스키에 올라타 하산하면서 찬바람을 맞는다. 눈이 부드럽고 가볍다. 스키어의 로망인 파우더 스노(powder snow)다.
점심으로 놋케동을 먹는다. 쌀밥에 취향대로 날것의 해산물을 얹어 먹는 덮밥. 고추냉이가 혀를 돋운다. 아오모리는 소문난 고추냉이 산지다.
오이라세(奧入瀨) 계류의 트래킹 코스를 따라 걷는다. 겨울 숲은 오연(傲然)하다. 두 발로 걸으면서 비장미를 만끽한다. 사람이 쳇바퀴 도는 산업사회에서 부품 구실에 안주한 쪼그라든 자아가 엄동설한에 당당히 맞선 나무의 오연한 자태에서 자극받아 몸태를 일으켜 세운다.
스카유 온천 혼욕탕(왼쪽), 오이라세 계류에 있는 폭포.
바라야키.
4km 트래킹 코스는 높낮이 차가 200m밖에 되지 않아 누구나 부담 없이 걷을 수 있다. 폭포 14개를 지나니 정상이다. 수평선이 펼쳐진다. 계류의 수원(水源)인 도와다(十和田) 호수. 20만 년 전 화산 폭발이 낳은 칼데라호(수심 327m)다. 둘레(46km)가 백두산 천지의 3배. 1월 하순부터 호반에서 축제(도와다호의 겨울 이야기)가 펼쳐진다.
눈이 강풍을 타고 하늘로 치솟는다. 어스름이 깔린다. 주린 배를 채울 때다. 아오모리산 쇠고기로 만든 바라야키를 먹는다. 기름기 가득한 쇠고기를 얇게 썰어 양파와 함께 간장에 버무려 숙성시킨 후 철판에 구워 먹는 음식. 식도를 타고 흐르는 얼음장같이 찬 아사히맥주가 짜릿하다. 게 눈 감추듯 바라야키가 사라진다.
리조트형 온천 료칸 고마키(古牧)온천 아오모리야에 여장을 푼다. 두루마기 모양의 긴 무명 홑옷(유카타·ゆかた)으로 갈아입고 온천으로 향한다. 농익은 여인의 눈썹을 닮은 달이 노천탕을 내려다본다. 입술이 마르다. 일행이 온천욕을 하면서 아오모리가 고향인 사케 오토코야마(男山)를 수작(酬酌)한다. 유키미자케(雪見酒·눈을 보며 마시는 술)요, 쓰키미자케(月見酒·달을 보며 마시는 술)다. 온기가 데운 몸을 한기가 식힌다. 몸은 따듯하고, 두뇌는 명징하다.
아오모리식 발마사지를 받은 후 삿포로맥주를 마신다. 다다미엔 새로 시친 이불과 요가 깔려 있다. 사랑을 나눠야 마땅한 밤이다. 목화솜 이불이 바스락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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