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계의 서태지로 불린 이명진이 직접 기획한 온라인게임 ‘라그나로크’.
‘소년챔프’가 ‘코믹챔프’가 되기까지 20년,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점프’와 ‘챔프’의 라이벌 경쟁
‘챔프’는 1988년 창간돼 만화계를 휩쓸던 ‘아이큐점프’에 자극받아 출발했다. 당대 최고의 만화가였던 이현세, 이상무를 투톱으로 내세운 ‘아이큐점프’는 1000원이라는 저가로 동네 문방구에서도 구매 가능한 주간 연재 만화잡지였다. 88서울올림픽 이후 학교 앞 만화방이 사라지면서 새 활로를 찾던 만화계와 경제 성장기의 대중 소비심리가 맞물리면서 빅뱅 수준의 흥행 폭탄이 터졌다.
이런 상황에서 ‘독고탁’ 시리즈, ‘떠돌이 까치’ ‘달려라 하니’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을 주로 제작하던 대원동화가 ‘점프’ 천하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 바로 ‘챔프’다. ‘챔프’ 창간호는 ‘점프’의 콘셉트를 유지했으나 대원동화만의 특징을 가미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한국 만화와 일본 만화 1편씩을 투톱으로 내세운 전략이다. 고행석의 ‘마법사의 아들 코리’, 타카다 유조의 ‘3×3 아이즈(EYES)’를 중심으로 배금택, 이원복, 김지원, 김대지 등의 작품을 실었다.
국내 창작애니메이션 제작과 일본 애니메이션 하청 제작 등으로 구축한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한 결과였다. 이 시기에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이 ‘점프’에 연재 중이었는데,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슬램덩크’가 ‘챔프’에 연재되면서 일본 만화가들이 한국 만화계에서 인기 싸움을 벌이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한국 만화계는 일본 만화의 소비시장’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점프’ ‘챔프’로 불리던 두 매체의 뜨거운 라이벌 경쟁은 당대 소년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무엇보다 두 매체를 통해 등장한 신세대 만화가들이 전통적인 만화 스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만한 파괴력을 보여줬다.
20~30만 부가 판매되던 두 매체에서 일본 만화 게재 비율이 높아지자 일군의 만화 스타가 매체를 강력히 비판하며 연재를 거부한 채 지면을 떠났다. 이 빈자리를 색다른 이력의 신세대 만화가들이 채워가면서 ‘점프’ ‘챔프’는 만화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이명진(‘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저녁’)은 고등학생 때 공모전을 통해 등장해 일약 만화계의 서태지가 됐고, 백댄서 출신 김수용(‘힙합’)은 ‘춤’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이면서 전문 소재 만화의 길을 열었다. 애니메이터였던 박산하(‘진짜사나이’)는 학원 액션물이라는 병합하기 어려운 요소를 하나의 장르로 만들었으며, 양경일과 윤인완은 판타지라는 색다른 무대를 만화에서 펼쳐보였다. 만화왕국 일본에서 선별된 최고의 작품과 한국의 신예 만화가들의 작품이 한자리에서 경쟁했지만 이들은 결코 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도전과 성과는 시간이 갈수록 폭풍우처럼 밀려오는 일본 만화의 파도에 빨려 들어갔다.
1 이현세와 이상무를 투톱으로 내세웠던 ‘아이큐점프’ 창간호. 2 한국 작가와 일본 작가를 투톱으로 내세웠던 ‘소년챔프’. 3 일본 자본으로 제작한 양경일과 윤인완의 애니메이션 ‘신암행어사’의 극장 포스터. 4 ‘야뇌 백동수’를 원작으로 한 TV 드라마 ‘무사 백동수’. 5 ‘점프’와 ‘챔프’의 라이벌전에서 공격수였던 일본 만화 ‘슬램덩크’.
수렁처럼 깊었던 외환위기와 뉴미디어 환경의 도래, 그리고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하에 만화의 상상력이 통제되는 사이, 승승장구하던 한국 만화의 신세대들도 나이를 먹었다. 1990년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만화잡지는 딱 10년 만에 손에 꼽을 정도로 줄었고 일본 만화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다. 만화잡지의 폐간 소식이 줄을 이으면서 만화가들의 ‘밥줄’도 끊겼다. 그로부터 또 10년이 흐른 뒤에도 소비자는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 인터넷, 케이블TV로 대표되는 뉴미디어 매체에 오락시간의 대부분을 소비하는 지금의 ‘소년’들은 만화잡지가 보여줬던 상상의 세계를 온라인게임, 3D영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스토어 등에서 찾고 있다.
소년들을 위한 주간 만화잡지라는 콘셉트에서 ‘소년’을 떼고, ‘주간’을 ‘격주간’으로 바꾸면서 ‘점프’ ‘챔프’는 타깃층을 넓힌 대신 몸집을 줄였다. 그리고 뉴미디어를 좇는 새로운 소비자층에 걸맞은 방식으로 만화 콘텐츠의 생애주기를 관리하고 영화영상, 애니메이션, 게임, 캐릭터 분야로 만화가 상품화될 수 있도록 프로세스를 정비했다. 즉 만화책을 만들기 위해 연재 만화를 게재하는 잡지가 아니라, 다양한 만화 관련 콘텐츠(상품)를 만들어가기 위한 터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현재 ‘챔프’에는 얼마 전 TV 드라마로 방송됐던 ‘무사 백동수’의 원작 ‘야뇌 백동수’와 미국 시장에서도 선풍적인 판매고를 기록한 바 있는 ‘마제’, 게임 등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낸 ‘짱’, 일본 수출을 염두에 두고 제작한 ‘다크에어’ 등이 연재되고 있다.
이제 만화잡지 기자는 어떤 작품이 다양한 콘텐츠 상품이 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만화가와 함께 이를 구현해가는 파트너 구실을 담당한다. 그 시절의 만화가들 역시 변화된 환경에 따라 변신했다. 이명진은 ‘라그나로크’라는 작품을 인터넷게임으로 만들어 대박 신화를 이어가고 있고, 김수용은 작화 환경을 디지털로 전환한 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좌우’라는 제목의 웹툰을 연재하는가 하면 방송드라마 작가로도 활동한다. 양경일과 윤인완은 ‘망가(manga)’의 본고장인 일본에서 한국적 정서를 담은 작품으로 100만 부 판매 신화를 이어가는 한편, ‘신암행어사’라는 한국적 제목의 작품을 일본 자본으로 애니메이션화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만화 작품의 다양한 상품화 전략은 일본 만화, 즉 망가라 부르는 일본식 만화 스타일과 산업이 주도해온 전략이다. ‘점프’ ‘챔프’로 대표되던 만화잡지 시스템 역시 일본식 운영체제를 도입한 것이었다.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본다면 망가는 세계 만화시장을 점유한 한 스타일로 인정받는다. 일본 만화가 정비해온 이러한 상품화 전략을 망가노믹스(Manga-nomics)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점프’ ‘챔프’는 어쩌면 한국 만화의 세계화를 위한 첫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챔프’20주년은 한국형 망가, 망가노믹스를 꿈꾸어 온 이들의 도전과 좌절, 그리고 또 다른 출발의 상징이기도 하다. 스무 살 청춘, 무엇을 해도 불안해 보였던 사춘기 시절과 지난 이야기는 이제 접어도 좋다. 무엇을 해도 멋스러운 스무 살 ‘챔프’를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