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현대 미술의 성지로 부르는 런던 사치갤러리의 운영자 찰스 사치. 그가 최근 ‘가디언’지에 ‘미술계의 타락(Vileness of the Art World)’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는 기고문을 통해 예술적, 미술사적 가치에 대한 논의 없이 작가의 이름이 브랜드화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또한 진정한 감상은 배제된 채 극소수의 허세와 사치만으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진 미술계 규모를 염려했다. 그리고 미술계에 종사하는 바이어와 딜러 그 누구도 “좋은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를 구분하지 못한다”고 비난했다. “비엔날레가 신인 작가 발굴의 장에서 멀어진 지는 오래”라며 안목 없는 미술계 종사자를 겨냥해 “자기애 수준에서 자위하는 격”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이는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했던 베니스 비엔날레가 유럽 부유층의 사교모임으로 전락한 현실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사치가 “천박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미술계의 현 실태는 어떨까. 순수한 열정만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과 작가를 찾아 기꺼이 투자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미술사라는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개인적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을 찾아 수집하는 사람도 줄었다. 오히려 미술이 상징하는 ‘지성’과 ‘고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술품 수집의 동기가 됐다. 이제 미술은 유럽 재력가의 값비싼 레저 활동으로 전락했다. 누구의 작품인지 단번에 알아맞혀 관련 미술사적 지식을 자랑하거나, 값비싼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재기하는 것으로 부를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 애호가임을 자부하는 재력가가 경매에 뛰어들어 미술품 가격을 배로 올려놓거나, 사재기한 작품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방치하기도 한다. 이제 작가의 이름은 하나의 명품 브랜드처럼 불린다. “쿤스(제프 쿤스· 미국 팝아티스트) 작품 하나 사고 구찌 하나 사야지(I’ll have a Koons and a Gucci)”라는 말이 더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작품 하나 사고 구찌 하나 사고
사치의 직언은 미술 작품이 일개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을 꼬집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미술 시장을 안전한 투자 혹은 투기의 최적소로 꼽는 사람이 늘고 있다. 종래에는 바젤아트페어나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유명 미술품 경매가 대부분 유럽에서 열렸다. 그런데 중국 미술 시장에 신인 작가와 대부호 컬렉터가 대거 등장하면서 시장 규모 자체가 커진 데다, 전통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유럽과 미국 컬렉터까지 경쟁에 나서면서 미술품 거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2011년 영국 서부의 라이슬립 경매장에서 중국 골동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5300만 파운드(약 946억 원)를 기록한 청도 도자기는 경매 이전부터 뛰어난 예술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낙찰 후 6개월이 지나도록 대금이 지불되지 않아 일각에서는 한 번 지불이 유예된 경매품은 가격이 떨어지는 점을 노리고 누군가 싼 가격에 되사려 한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중국계 대부호는 중국 근현대 미술품 값을 올려놓은 것은 물론, 서양 현대 미술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이제 미술계의 중심축이 유럽과 미국에서 홍콩과 상하이로 옮겨졌다고 할 만큼 중국의 미술품 투자 세력은 막강하다.
엘리트 문화인 이기적 항변 지적도
미국 미술 시장 월간지 ‘아트+옥션’지의 특집 ‘2011년 미술계 파워인물 100’에서 1위는 카타르 국왕의 딸 셰이크 알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공주, 4위는 러시아 출신 다샤 주크보바가 차지했다. 오일머니로 무장한 중동 왕족과 러시아 재벌이 발 빠르게 고가 미술품 거래에 동참한 것이다.
문제는 낙찰가가 전적으로 작품의 예술적 가치로 결정된 것인지, 아니면 투기 세력이 미술품을 되팔았을 때 발생할 이윤을 셈한 결과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영국 동시대 최고 작가라 추앙받는 데이미언 허스트는 생존 작가 가운데 세계 최고가 경매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허스트라는 브랜드가 차기 작품의 가치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그 누구도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투기 및 투자 세력의 계산을 배제한 감정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치 자신도 영국 젊은 작가 운동(Young British Artists’ Movement, 이하 YBA)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명성을 쌓았다. 지난 30여 년간 데이미언 허스트, 세라 루커스 등 영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를 신인시절부터 대거 발굴해 예술적,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이뤘다. 손수 발굴한 작가의 작품을 대량 구매해 자신의 갤러리를 채워놓았을 뿐 아니라, ‘찰스 사치가 인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가의 이름 값을 배로 올려놓은 인물이다. 현대 미술계는 그를 가장 탐욕스러운 수집가로 손꼽는 동시에 영국 미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미술계의 혜안이라고 칭한다.
사치는 1985~92년 당시 이름을 날렸던 작가 브루스 나우만, 신디 셔먼의 작품을 대거 구매했다. 그때만 해도 런던은 뉴욕이나 파리, 베를린 등 세계적인 예술 도시 근처에도 못 가는 수준이었다. 그 어떤 컬렉터도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 작품을 사들이지 않았다. 1990년대에 사치가 트레이시 에민, 개리 흄, 세라 루커스, 데이미언 허스트 등 젊은 작가의 후원자를 자처하면서 1992년 YBA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YBA 슬로건에 걸맞게 YBA 작가는 팝아트와 구조주의 미술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냈다. 평단에서는 사치와 YBA 작가가 미술을 더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재치 있고 재미난 모습으로 거듭나도록 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나아가 사치의 YBA는 ‘일본의 워홀’로 부르는 무라카미 타카시, ‘인도의 허스트’로 부르는 수보드 굽타, 중국 반체제 문화인사 아이 웨이웨이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토록 화려한 사치의 전적에도 일각에서는 그의 발언이 예술품 애호가 혹은 엘리트 문화인의 이기적인 항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신흥 컬렉터가 사치의 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나온, 한물간 거물의 투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985년부터 운영해온 갤러리가 2009년과 2010년 영국 내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았던 전시 6건 중 5건을 차지했으며, 사치갤러리를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2010년 공언한 터라 이번 사치의 발언에 미술계 및 대중이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치가 “천박하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미술계의 현 실태는 어떨까. 순수한 열정만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작품과 작가를 찾아 기꺼이 투자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미술사라는 거대 담론에서 벗어나 개인적 취향에 부합하는 작품을 찾아 수집하는 사람도 줄었다. 오히려 미술이 상징하는 ‘지성’과 ‘고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예술품 수집의 동기가 됐다. 이제 미술은 유럽 재력가의 값비싼 레저 활동으로 전락했다. 누구의 작품인지 단번에 알아맞혀 관련 미술사적 지식을 자랑하거나, 값비싼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재기하는 것으로 부를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 애호가임을 자부하는 재력가가 경매에 뛰어들어 미술품 가격을 배로 올려놓거나, 사재기한 작품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방치하기도 한다. 이제 작가의 이름은 하나의 명품 브랜드처럼 불린다. “쿤스(제프 쿤스· 미국 팝아티스트) 작품 하나 사고 구찌 하나 사야지(I’ll have a Koons and a Gucci)”라는 말이 더는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작품 하나 사고 구찌 하나 사고
사치의 직언은 미술 작품이 일개 투기 수단으로 전락한 상황을 꼬집는 것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미술 시장을 안전한 투자 혹은 투기의 최적소로 꼽는 사람이 늘고 있다. 종래에는 바젤아트페어나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유명 미술품 경매가 대부분 유럽에서 열렸다. 그런데 중국 미술 시장에 신인 작가와 대부호 컬렉터가 대거 등장하면서 시장 규모 자체가 커진 데다, 전통적으로 우위를 점했던 유럽과 미국 컬렉터까지 경쟁에 나서면서 미술품 거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2011년 영국 서부의 라이슬립 경매장에서 중국 골동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5300만 파운드(약 946억 원)를 기록한 청도 도자기는 경매 이전부터 뛰어난 예술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낙찰 후 6개월이 지나도록 대금이 지불되지 않아 일각에서는 한 번 지불이 유예된 경매품은 가격이 떨어지는 점을 노리고 누군가 싼 가격에 되사려 한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중국계 대부호는 중국 근현대 미술품 값을 올려놓은 것은 물론, 서양 현대 미술에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 이제 미술계의 중심축이 유럽과 미국에서 홍콩과 상하이로 옮겨졌다고 할 만큼 중국의 미술품 투자 세력은 막강하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모습. 찰스 사치는 비엔날레가 제구실을 못한다고 비판했다.
미국 미술 시장 월간지 ‘아트+옥션’지의 특집 ‘2011년 미술계 파워인물 100’에서 1위는 카타르 국왕의 딸 셰이크 알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공주, 4위는 러시아 출신 다샤 주크보바가 차지했다. 오일머니로 무장한 중동 왕족과 러시아 재벌이 발 빠르게 고가 미술품 거래에 동참한 것이다.
문제는 낙찰가가 전적으로 작품의 예술적 가치로 결정된 것인지, 아니면 투기 세력이 미술품을 되팔았을 때 발생할 이윤을 셈한 결과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영국 동시대 최고 작가라 추앙받는 데이미언 허스트는 생존 작가 가운데 세계 최고가 경매기록을 갖고 있다. 그러나 “허스트라는 브랜드가 차기 작품의 가치를 부풀리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그 누구도 선뜻 답을 하지 못한다. 투기 및 투자 세력의 계산을 배제한 감정은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치 자신도 영국 젊은 작가 운동(Young British Artists’ Movement, 이하 YBA)을 상업적으로 이용해 명성을 쌓았다. 지난 30여 년간 데이미언 허스트, 세라 루커스 등 영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를 신인시절부터 대거 발굴해 예술적,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이뤘다. 손수 발굴한 작가의 작품을 대량 구매해 자신의 갤러리를 채워놓았을 뿐 아니라, ‘찰스 사치가 인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가의 이름 값을 배로 올려놓은 인물이다. 현대 미술계는 그를 가장 탐욕스러운 수집가로 손꼽는 동시에 영국 미술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미술계의 혜안이라고 칭한다.
사치는 1985~92년 당시 이름을 날렸던 작가 브루스 나우만, 신디 셔먼의 작품을 대거 구매했다. 그때만 해도 런던은 뉴욕이나 파리, 베를린 등 세계적인 예술 도시 근처에도 못 가는 수준이었다. 그 어떤 컬렉터도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 작품을 사들이지 않았다. 1990년대에 사치가 트레이시 에민, 개리 흄, 세라 루커스, 데이미언 허스트 등 젊은 작가의 후원자를 자처하면서 1992년 YBA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YBA 슬로건에 걸맞게 YBA 작가는 팝아트와 구조주의 미술을 결합한 새로운 장르를 창조해냈다. 평단에서는 사치와 YBA 작가가 미술을 더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재치 있고 재미난 모습으로 거듭나도록 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 나아가 사치의 YBA는 ‘일본의 워홀’로 부르는 무라카미 타카시, ‘인도의 허스트’로 부르는 수보드 굽타, 중국 반체제 문화인사 아이 웨이웨이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토록 화려한 사치의 전적에도 일각에서는 그의 발언이 예술품 애호가 혹은 엘리트 문화인의 이기적인 항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신흥 컬렉터가 사치의 자리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나온, 한물간 거물의 투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985년부터 운영해온 갤러리가 2009년과 2010년 영국 내에서 방문객이 가장 많았던 전시 6건 중 5건을 차지했으며, 사치갤러리를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2010년 공언한 터라 이번 사치의 발언에 미술계 및 대중이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