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금발의 마라도나 끝없는 추락

대한민국 축구계가 승부조작 파문으로 흔들리는 가운데 프랑스에도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많은 축구팬에게 실망감을 안겨준 선수가 있다. 전 프랑스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토니 베렐이 바로 그다. 한때 실력 있는 선수로 인정받았지만 얼마 전 돌이킬 수 없는 폭력 사건에 연루되면서 프랑스 축구계와 팬을 실망시켰다.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끝없이 추락하는 그에게 미래는 있는 것일까.

화려한 기술과 득점력으로 명성

토니는 1973년 프랑스 로렌 지방의 낭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공을 다루는 데 탁월한 소질을 보였던 그는 18세에 고향 연고팀 낭시(현재 정조국 선수 소속팀)에 전격 발탁됐다. 데뷔 첫해 14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으며 성공적인 출발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듬해 낭시는 2부 리그로 강등됐다. 하지만 토니는 특유의 승부욕과 화려한 테크닉으로 2부 리그 최우수 선수상을 수상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이런 토니를 두고 축구계 인사들은 ‘금발의 마라도나’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의 성장을 지켜봤던 스포츠 캐스터 올리비에 후이에는 “토니는 마치 버터를 단번에 자르는 날카로운 칼처럼 민첩하다”고 평가했고, 아르센 웽거 아스널 감독은 “당시 어린 토니의 화려한 기술과 집중력에 매우 놀랐다”고 회상했다.

1995년 렁스 팀으로 스카우트된 그는 다시 놀라운 실력을 자랑했다. 1998년에는 주전 공격수로 수없이 골문을 가르며 소속팀 렁스를 프랑스 리그 통합우승과 프랑스컵 대회 1위 자리까지 끌어올렸다. 렁스에서 4년을 보낸 그는 영국 뉴캐슬과 이탈리아 SS 라치오의 영입 제안을 거절하고 자국 리그의 강팀인 리옹을 선택했다. 이어진 활약으로 1998년부터 2000년까지는 프랑스 국가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계속 비상할 것만 같았던 그의 선수생활은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리옹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 그는 곧 보르도로 6개월 임대됐고, 여기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2001년엔 코르시카 섬의 바스티아 팀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2002년 한일월드컵 출전을 준비하는 시즌에 걸맞게 긴장감이 고조돼 있던 리그 1 경기에서 30경기에 출전해 14골 득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내며 프랑스 국가대표 1차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축구인생의 새로운 서막이 열리는 듯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로저 르메르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은 토니를 최종 명단에서 제외했다. 대표팀이 외면한 이 스트라이커를 눈여겨본 전 소속팀 리옹의 구단주 장미셀 올라스가 그를 다시 불렀다.

그러나 그는 24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는등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존재감을 잃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벨기에 리그에 진출해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고, 끝내 프랑스로 돌아왔다. 한때 2부 리그 투르에서 뛰었으나, 4부 리그 CA 바스티아와 수준이 낮은 캐나다 리그를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가 반대했지만 2008년 축구 약소국 룩셈부르크 리그에 진출해 크게 활약함으로써 “어디서든 경기를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고, 축구계 인사도 그의 끝없는 열정에 박수를 보냈다.

토니는 룩셈부르크 성적을 바탕으로 자국 리그 복귀를 꿈꿨다. 당시 3부 리그에 머물렀던 귀뇽과 계약한 그는 선수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재정난에 시달리던 소속팀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그렇지만 하늘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 구단의 빚이 계속 늘어나면서 정부는 귀뇽팀 해단을 결정했다. 그는 막대한 손실을 봤지만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나가길 원했다. 연이어 낭시에 러브콜을 보냈으나 부정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결국 미국 리그에 진출할 생각을 밝혔지만 그의 아메리칸 드림은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술집서 권총 난사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

잡지 표지를 장식한 토니 베렐의 모습.

10월 23일 새벽, 토니의 남동생 지미와 지오반은 낭시 외곽의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만취한 형제는 음주와 흡연이 금지된 나이트클럽 댄스홀에서 술을 마시다 적발됐고 자리에 앉아달라는 지시를 받자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곧 경호원이 나서서 두 사람을 클럽 외부로 나가도록 조치했다. 그러나 술에 취해 판단력이 흐려진 형제는 야구 방망이와 쇠사슬을 들고 클럽 입구로 돌아와 출입을 통제하는 직원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직원들도 맞대응했고 결국 난투극이 벌어졌다.

수적으로 불리해진 형제는 휴대전화로 큰형 파브리스와 둘째 형 토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현장에 합류한 4형제는 총 3정의 권총으로 클럽 관계자들을 향해 난사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으나 3명의 클럽 종업원이 부상을 당했다. 한 명은 얼굴을 방어하려던 손에 총상을 입어 손가락 두 개를 잃었고 또 다른 부상자는 허벅지에 총을 맞아 중상을, 마지막 피해자는 척추에 중상을 입어 입원 중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나이트클럽 외벽에서 여러 개의 총알을 발견했고, 날이 밝자마자 도주한 베렐 형제를 체포했다. 이 사건을 담당하는 모레 검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증언에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수집한 증거와 증언으로 볼 때 4형제의 범죄는 명백해 보인다. 4형제는 각각 불법 무기 소지와 살인미수 혐의의 중범죄자로 정식 재판에 회부됐다.

11월 초, 4형제 측 변호사 비르지니 바르보사는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고 주장하며 낭시 법원에 네 사람의 석방을 요청했다. 이어 그는 “석방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이들이 행정법원 심사 앞에서 본인의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11월 8일 낭시 법원은 “살인미수 혐의를 받는 베렐 형제를 석방할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사건으로 시민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낭시팀 서포터스 로베르는 “토니는 낭시의 영웅이다. 그가 추락할 때도 그를 응원했다. 그런데 살인미수라니, 정말 어이없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아마추어 축구팀 코치 로렁은 “한때 토니와 경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젠틀맨이었다. 그가 이런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스포츠학 전공자 마튜는 “그도 사람인지라 끝없는 추락에 분별력을 잃은 것 같다. 그나마 이젠 더는 추락할 곳도 없을 만큼 끝까지 내려온 것 같다” 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혔다.

권총 난사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된 토니 베렐(왼쪽). ‘금발의 마라도나’라는 애칭을 듣던 토니 베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