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은 서류 보관대가 아니다.
당장은 쓸데가 없다. 하지만 버리긴 아깝다. 바로 이 지점이 갈등의 출발점이다. 결혼 때 혼수 용품으로 마련한 초호화 그릇세트는 세월의 더께만 안은 채 부엌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찻잔, 접시, 냄비는 해마다 많아진다. 냉장고, 냉동실은 비닐봉지로 싼 온갖 음식물로 가득하다.
버릴 때가 됐다. 보관만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능수능란한 실천이란 당장 소용없는데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치솟을 때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다. 삶을 대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면 바로 내 심리적 용량이 한계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내부 수용량이 적정 기준을 넘어 넘실거릴 때 혼란해지고 심란해진다. 바로 이때가 비워야 할 시점이다. 비우지 않으면 용량 초과로 마음이 순환하지 않고 심리적 혈관이 막히기 시작한다.
편집력은 넘치기 전에 덜어내고 보관 전에 선별해 잘라내는 선구안이다. 소유할 것이 많아지고 알아두어야 할 관계가 넘쳐날 때 재배치와 재배열을 통한 편집행위가 필요하다. 뒤죽박죽 내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지름길은 바로 비움이다. 내 방, 내 집을 늘리는 길은 더 큰 뒤죽박죽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수납의 한계를 정하고 버릴 것을 선별하는 일이 최우선이다.
첫째, 수납 공간을 더는 늘리지 말아야 한다. 한 사람의 의식주 범위는 의외로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다. 따라서 최소한의 범주에서 먹고 입고 살아가는 간소화가 먼저다. 보관 능력이 커지면 낭비 공간도 늘어난다. 수만 권의 장서가 미덕인 시대는 지났다. 좋은 책은 좋은 벗과 공유해야 그 가치가 아름답게 빛난다. 사유를 줄이고 공유를 늘리는 것이 간소화의 묘책이다. 지난달 호주 시드니대 중앙도서관은 소장 도서의 절반에 달하는 50만 권의 종이책과 논문을 버린다고 했다. 전자책과 전자논문이 그 자리를 메울 것이다. 디지털은 공유의 훌륭한 수단이다.
둘째, 버려야 한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쓰지 않고 어둠 속에 방치했다면 새 주인을 찾아주는 것이 옳다. 일단 내 손에서 멀어진 물건은 떠나보내도 좋다. 행동반경에서 벗어난 대상은 내 것이라도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언제까지 묵은 물건을 창고와 벽장에 가둘 것인가. 저 깊숙한 수납 공간에 버려진 소품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둬라.
셋째, 본래 기능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편집력의 기본이다. 물건은 제 용도에 맞게 쓰는 것이 중요하다. 피아노가 소품 받침대가 돼선 안 된다. 책상이 서류 보관대가 되는 순간 지식의 산실 구실은 불가능해진다. 물건 용도가 혼란스러운 현장은 주인의 게으름만 드러낼 뿐이다. 집은 휴식공간이지 창고가 아니다. 생활은 과거에 사로잡힌 완료형이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고 현재를 만끽하는 진행형이다. 내 몸도 내 마음도 과도한 영양과 지방을 담고 있지 않아야 한다. 여백이 없는 인생, 편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