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특집에 출연한 가수 아이유(왼쪽)와 이야기를 나누는 유희열.
내가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대칭이 되는 가운데 선을 기준으로 새로운 음악을 비교적 빨리 받아들이는 사람과 뒤늦게 수용하는 사람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할 가능성이다. 언젠가 자메이카에서는 ‘과학(science)’을 ‘미신(superstition)’이라는 의미로, ‘미신’을 ‘과학’이라는 의미로 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족(語族)이 완전히 다른 수준은 아닐지라도, 음악 측면에서 새로운 것에 호의적인 사람과 익숙한 스타일에 만족하는 사람의 언어도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음악을 하면서 깜짝깜짝 놀랄 때는 각자 쓰는 말의 함의가 현저히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죽인다’ 혹은 ‘구리다’같이 가치 판단적인 언어는 물론이고, ‘업템포’ ‘훅’ ‘발라드’같이 비교적 가치 중립적이고 사용자 사이에 모종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어야 할 음악용어조차 쓰는 사람에 따라 정의가 다른 것이다. 내가 빠르다고 생각하는 음악이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고, 누군가에게 클라이맥스로 느껴진 부분이 내게는 그저 변형된 세 번째 버스(verse)다. 인디 뮤지션들이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처음 녹음할 때 소통의 벽에 부딪힌다는 흔한 에피소드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음악 언어의 바이링구얼(bilingual·두 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될까. 그 자신이 뮤지션이자 TV에서는 ‘스케치북’, 라디오에서는 ‘라디오 천국’을 진행하는 유희열 말이다. 단순히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을 통해 대중 가수와 인디 뮤지션을 동시에 소개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방송이라는 포맷에 익숙하지 않고 다수(majority)의 청중을 상대로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는 데 서투른 아티스트와 매끄럽게 대화를 풀어가는 그의 모습은 단지 방송을 잘한다는 설명이나 공감능력이 풍부하다는 해석만으론 부족하다. 그는 실제로 ‘그들의 언어’를 쓰는 게 아닐까.
현재 공중파 유일의 음악전문 프로그램인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얼마 전 100회를 맞았다. 프로듀서, 레이블 관계자, 세션 연주자 등 비교적 스포트라이트를 적게 받지만 분명 음악이 만들어지는 데 한 축이 되는 사람들을 당당히 무대 전면으로 이끌어낸 이례적인 기획이었다. 그 균형 감각이 아름답고 또 반갑다. 따지고 보면 이상적인 표준편차 그래프도 양쪽이 대칭과 균형을 갖추어야 한다. 유희열이 자신의 음악과 방송에서 선사하는 아름다운 균형미를 언젠가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도 갖게 되기를, 그래서 좀 더 많은 뮤지션과 음악 팬이 당당히 자기 언어로 소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정바비는 1995년 인디밴드 ‘언니네이발관’ 원년 멤버로 데뷔한 인디 뮤지션. ‘줄리아 하트’ ‘바비빌’ 등 밴드를 거쳐 2009년 ‘블로컬리 너마저’ 출신 계피와 함께 ‘가을방학’을 결성, 2010년 1집 ‘가을방학’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