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의 손에 들린, 배에서 막 내린 ‘자연산’ 전어. 몸길이에 비해 폭이 좁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양식 전어는 운동량이 적어 몸의 폭이 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전어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다르므로 사진의 것이 반드시 자연산의 표준은 아니다.
당시 수도권에서는 전어를 잘 먹지 않았다. 기술이 부족해 수족관에 살려놓은 전어도 없었다. 노량진 수산시장의 전어는 먼 길에 냉장도 하지 않고 운송돼 그리 싱싱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노량진 시장의 죽은 전어 중 회로 먹을 만한 것을 골라야 했는데, 아가미 부분을 누르고 다니다 상인들에게 언짢은 소리를 듣기도 했다(죽은 전어라도 아가미를 눌렀을 때 핏물이 나오지 않으면 회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싱싱한 것이다).
1990년대 말부터 전어는 전국의 음식이 됐다. 가을이면 전어로 난리가 난다. 남해와 서해의 온갖 포구에서 전어 축제를 열고, 심지어 경기도 구리시에서도 축제를 한다. 그러면서 어느 틈엔가 우리 가족은 가을임에도 전어를 잘 먹지 않게 됐다. 우리 가족이 마산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가을 전어를 통해 확인했는데 온 국민이 가을 전어를 먹는 바람에 그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나 역시 가을이 와도 전어 쳐다보기를 꽁치처럼 한다. 지금의 가을 전어 붐이 우리 가족 처지에서는 참 불행한 일인 것이다.
전어는 난류성 바닷물고기다. 겨울에는 남쪽 바다로 내려갔다 4월 즈음에 연안에 붙기 시작, 7월까지 산란을 한다. 이때 전어는 맛이 없다. 살이 푸석이고 비린내도 심하며 고소함도 적다. 산란을 마친 후 근해에서 먹이 활동을 하면서 살을 찌우는데, 8월 중순을 넘어서야 기름이 지고 살에 탄력이 붙는다. 고소함이 최절정에 이르는 시기는 추석을 전후한 보름간이라는 게 일반적인 ‘설’이나, 해마다 날씨에 따른 변수가 커 정확한 것은 아니다. 가을 찬바람이 불어오면 전어는 남쪽의 깊은 바다로 나아가는데 그러기 바로 직전의 것이 가장 맛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맛이 최절정에 이르는 그 짧은 순간 전어를 즐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올해 날씨로 보자면 10월 중하순이 가장 맛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바닷물 온도가 낮아 전어가 연안에 잘 붙지 않았고 찬바람이 일기도 전에 먼 바다로 빠져나가 어획량이 극히 적다. 올해는 육지 것이든 바다의 것이든 다 비싸다.
가을 전어가 ‘전국구 음식’으로 바뀌면서 전어 양식업이 생겼다. 2000년대 초 양식에 성공해 내륙의 축재식 양식장과 연안의 가두리 양식장에서 전어를 키우고 있다. 그런데 시장과 식당 등에서는 자연산과 양식을 구분하지 않는다. 광어와 우럭, 대하 등 양식이 되는 것은 이를 구별해 판매하는 것이 상식으로 돼 있는데, 전어는 그렇지 않다. 항구와 포구의 어민은 전어가 안 잡혀 힘들다고 하는데 전어 축제장에는 전어가 넘친다. 축제장에는 양식 전어도 많을 것이다.
일부 미식가는 ‘양식 전어는 운동량이 적어 몸의 폭이 넓고 살의 찰기가 부족하며 고소한 맛이 덜하다’고 하지만 내 미각으로는 이를 구별해낼 재간이 없다. 자연산임에도 살이 푸석이고 고소하지 않은 전어도 있기 때문이다. 또 전어는 지역과 잡는 시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 눈으로 확인하기도 어렵다.
자연산이든 양식이든 맛이 비슷하면 크게 따질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때로는 잘 키운 양식 물고기가 자연산보다 맛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소비자가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자연산 전어임에도 맛이 없으면 “아직 가을이 익지 않았나 보다” “올해 바다가 이상하다고 하더니” 하며 자연의 숨결을 한 번 더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이 단지 입 안의 감각만을 좇는 일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