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인도 중부 보팔에 위치한 유니언 카바이드사 살충제 공장에서 유독가스 메틸이소시안이 누출됐다. 이 사고는 ‘세계 최악의 산업재해’로 꼽히는 참극이었다. 피해 규모는 사망자 2만여 명, 피해자 약 50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피해자 보상과 후유 장애 치료, 선천성 기형을 타고난 2세들에 대한 대책 등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사고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은 채 살아가고 있다(주간동아 642호 참조).
피해자 대표 자격으로 인도 정부는 유니언 카바이드사에게 33억 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했으나, 1989년 인도 대법원의 판결로 4억7000만 달러를 받는 데 그쳤다. 또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모든 민사 책임을 정부가 떠안게 됐다. 그러다 2004년에 20년간 지연됐던 보상금 지급이 대법원 판결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어 사고 생존자들과 2세들에 대한 집단 의료보험이 도입됐다. 그리고 당시 폐기물 처리 등 환경개선 작업이 시작됐으나 아직까지도 끝이 안 나 식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징역 2년 벌금 250만 원’ 판결에 분노 폭발
당시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소송은 인도 법원에서 기각됐다가 정권이 바뀐 뒤 재판이 재개돼 지난 6월 7일, 23년의 긴 공방 끝에 1심 판결이 발표됐다. 법원이 당시 유니언 카바이드사 최고경영자였던 미국인 워런 앤더슨을 비롯한 7명의 경영진에게 과실치사 혐의로 내린 처벌은 징역 2년과 벌금 약 250만 원. 보석으로 석방된 사고 책임자들은 항소 신청을 했고, 이에 ‘보팔에 정의를!’이란 구호를 외치며 23년간 법정 투쟁을 벌여온 피해자 대표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인도 언론들은 ‘정의는 거부됐다’ 등의 제하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가져온 산업재해의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의 기사를 쏟아냈고, 솜방망이 처벌에 피해자들뿐 아니라 국민의 분노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특히 7명의 피고 중 유일한 외국인이며 최고책임자인 워런 앤더슨이 재판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데 비난이 쏟아지며 엄연히 범죄자 신분인 앤더슨의 소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재 89세의 노령으로 미국 뉴욕 교외에 거주하는 앤더슨이 인도 법정에 출두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인도 정부는 여론을 고려해 미국 정부에 앤더슨의 인도를 요청했다.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다.
또 1984년 사고 당시 인도에 잠시 연금됐던 앤더슨이 어떤 경위로 출국했는지, 이를 직접 결정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등에 대한 의혹이 끝없이 일고 있다. 앤더슨은 사고 발생 4일 후 마드야 프라데시 주 경찰에 의해 구속돼 보팔에서 연금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상황에 대한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인도 정부의 설명이지만, 몇몇 언론은 당시의 취재파일을 들추어내 상황을 재구성했다.
뿌린 대로 거둬야 하는 콩그레스당
앤더슨의 구속은 당시 아르준 씽 마드야 프라데시 주 총리가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와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 아르준 씽은 “라지브 간디의 사촌이며 권력 실세였던 아룬 네루로부터 ‘레이건 대통령이 총리에게 전화를 해 앤더슨을 즉시 풀어주라고 요청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 일에 개입했다는 정황은 다른 인도 고위 공직자들의 증언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앤더슨은 연금 하루 만에 보팔에서 델리, 델리에서 국제선 비행기로 환승해 국외로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팔에서 델리로 이동할 때는 마드야 프라데시 주의 총리 전용기를 이용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앤더슨이 20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으며 ‘인도에 머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가능하면 빨리 떠나라’는 마드야 프라데시 주 정부의 요청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통령이 석방에 직접 관여했다는 이런 정황은 결국 ‘인도 측 결정자는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아니었겠느냐’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상대는 당연히 총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경험이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전 총리의 유고로 갑자기 총리직을 맡아 취임 한 달째였던 라지브 간디는 백악관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권력 실세였던 아룬 네루가 아르준 씽 주 총리를 압박하기 위해 양국 정상을 ‘팔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고 주범이 본국으로 빠져나간 사실은 정의를 갈구하는 보팔 희생자들에게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인도 정치권은 책임 추궁을 통한 여당 ‘흠집내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라지브 간디 전 총리는 이미 고인이 됐으나 그의 미망인인 소니아 간디 여사가 여당인 콩그레스당(국민회의당)의 총재로 재임하고 있고, 아들 라훌 간디가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르는 등 아직도 네루-간디 집안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라지브 간디의 명성이 콩그레스의 대중적 인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콩그레스를 부패한 네루-간디 집안의 낡은 유물로 공격하며 자신들은 새롭고 발전된 인도를 건설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각인시키고 싶어 한다. 향후 선거에서 인도국민당이 이 문제를 이슈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보팔 사건의 형사재판 결과는 인도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가 요구한 워런 앤더슨의 인도(引渡)를 미국이 거부한 것을 두고 양국 관계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고, 보다 현실적으로는 미국과 인도 사이의 핵 협정 실행을 위해 필수적인 ‘핵 책임 법안’ 처리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인도는 지난 2008년 민간핵개발협정이 발효되면서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핵 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유사시 핵 시설을 제공하는 측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핵 책임 법안이 인도에서 공식적으로 입법된 후 보험 가입 등이 가능해져야 실질적인 핵 시설의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지난 3월 인도 의회에 입안돼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핵 책임 법안은 보팔 참사의 선례 때문에 예상보다 훨씬 큰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관측된다. 보팔 참사가 위험시설물로 인한 산업재해라는 점에서 핵 시설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사고가 날 경우 배상 책임이 시설물의 제조자나 공급자가 아니라 관리자인 인도 국영기업에게 있으며, 제조와 공급 과정에서 결함이 입증될 경우에만 관리자가 제조자와 공급자에게 별도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때 제조자나 공급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배상액도 최고 50억 루피(약 1300억 원)에 불과하다.
인도 의회는 보팔 참사 이후 유니언 카바이드사를 인수한 다우 케미컬이 “사고의 책임이 공장시설의 공급자인 유니언 카바이드사가 아닌, 관리자인 유니언 카바이드 인디아에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던 것을 목도했다. 따라서 의회는 “핵 시설 사고 시 제조자, 공급자 측의 책임 소재가 있음을 법령에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대내적인 정치문제든, 법안 통과로 인한 미국과의 외교문제든 보팔 참사로 야기된 문제가 여당 콩그레스에게는 연립내각 2기에 넘어서야 할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당시 사고를 처리했던 중앙 정부도, 주 정부도 모두 콩그레스 내각이었으니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 대표 자격으로 인도 정부는 유니언 카바이드사에게 33억 달러의 보상금을 요구했으나, 1989년 인도 대법원의 판결로 4억7000만 달러를 받는 데 그쳤다. 또 유니언 카바이드사의 모든 민사 책임을 정부가 떠안게 됐다. 그러다 2004년에 20년간 지연됐던 보상금 지급이 대법원 판결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고, 이어 사고 생존자들과 2세들에 대한 집단 의료보험이 도입됐다. 그리고 당시 폐기물 처리 등 환경개선 작업이 시작됐으나 아직까지도 끝이 안 나 식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징역 2년 벌금 250만 원’ 판결에 분노 폭발
당시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형사소송은 인도 법원에서 기각됐다가 정권이 바뀐 뒤 재판이 재개돼 지난 6월 7일, 23년의 긴 공방 끝에 1심 판결이 발표됐다. 법원이 당시 유니언 카바이드사 최고경영자였던 미국인 워런 앤더슨을 비롯한 7명의 경영진에게 과실치사 혐의로 내린 처벌은 징역 2년과 벌금 약 250만 원. 보석으로 석방된 사고 책임자들은 항소 신청을 했고, 이에 ‘보팔에 정의를!’이란 구호를 외치며 23년간 법정 투쟁을 벌여온 피해자 대표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인도 언론들은 ‘정의는 거부됐다’ 등의 제하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가져온 산업재해의 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이 너무 가볍다는 비판의 기사를 쏟아냈고, 솜방망이 처벌에 피해자들뿐 아니라 국민의 분노도 하늘을 찌를 듯했다.
특히 7명의 피고 중 유일한 외국인이며 최고책임자인 워런 앤더슨이 재판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데 비난이 쏟아지며 엄연히 범죄자 신분인 앤더슨의 소환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현재 89세의 노령으로 미국 뉴욕 교외에 거주하는 앤더슨이 인도 법정에 출두할 가능성은 없어 보이지만, 인도 정부는 여론을 고려해 미국 정부에 앤더슨의 인도를 요청했다. 2004년에 이어 두 번째다.
또 1984년 사고 당시 인도에 잠시 연금됐던 앤더슨이 어떤 경위로 출국했는지, 이를 직접 결정한 사람은 누구였는지 등에 대한 의혹이 끝없이 일고 있다. 앤더슨은 사고 발생 4일 후 마드야 프라데시 주 경찰에 의해 구속돼 보팔에서 연금 상태로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상황에 대한 공식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 인도 정부의 설명이지만, 몇몇 언론은 당시의 취재파일을 들추어내 상황을 재구성했다.
뿌린 대로 거둬야 하는 콩그레스당
앤더슨의 구속은 당시 아르준 씽 마드야 프라데시 주 총리가 라지브 간디 인도 총리와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이후 아르준 씽은 “라지브 간디의 사촌이며 권력 실세였던 아룬 네루로부터 ‘레이건 대통령이 총리에게 전화를 해 앤더슨을 즉시 풀어주라고 요청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폭로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이 일에 개입했다는 정황은 다른 인도 고위 공직자들의 증언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앤더슨은 연금 하루 만에 보팔에서 델리, 델리에서 국제선 비행기로 환승해 국외로 나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팔에서 델리로 이동할 때는 마드야 프라데시 주의 총리 전용기를 이용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앤더슨이 20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됐으며 ‘인도에 머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가능하면 빨리 떠나라’는 마드야 프라데시 주 정부의 요청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국 대통령이 석방에 직접 관여했다는 이런 정황은 결국 ‘인도 측 결정자는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아니었겠느냐’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직접 전화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상대는 당연히 총리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 경험이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어머니인 인디라 간디 전 총리의 유고로 갑자기 총리직을 맡아 취임 한 달째였던 라지브 간디는 백악관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권력 실세였던 아룬 네루가 아르준 씽 주 총리를 압박하기 위해 양국 정상을 ‘팔았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사고 주범이 본국으로 빠져나간 사실은 정의를 갈구하는 보팔 희생자들에게는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인도 정치권은 책임 추궁을 통한 여당 ‘흠집내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라지브 간디 전 총리는 이미 고인이 됐으나 그의 미망인인 소니아 간디 여사가 여당인 콩그레스당(국민회의당)의 총재로 재임하고 있고, 아들 라훌 간디가 차기 총리 물망에 오르는 등 아직도 네루-간디 집안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라지브 간디의 명성이 콩그레스의 대중적 인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야당인 인도국민당(BJP)은 콩그레스를 부패한 네루-간디 집안의 낡은 유물로 공격하며 자신들은 새롭고 발전된 인도를 건설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로 각인시키고 싶어 한다. 향후 선거에서 인도국민당이 이 문제를 이슈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보팔 사건의 형사재판 결과는 인도 국내 정치뿐 아니라 국제관계에서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가 요구한 워런 앤더슨의 인도(引渡)를 미국이 거부한 것을 두고 양국 관계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고, 보다 현실적으로는 미국과 인도 사이의 핵 협정 실행을 위해 필수적인 ‘핵 책임 법안’ 처리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과 인도는 지난 2008년 민간핵개발협정이 발효되면서 평화적 이용을 목적으로 하는 핵 거래를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유사시 핵 시설을 제공하는 측의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핵 책임 법안이 인도에서 공식적으로 입법된 후 보험 가입 등이 가능해져야 실질적인 핵 시설의 거래가 이뤄질 수 있다.
지난 3월 인도 의회에 입안돼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 핵 책임 법안은 보팔 참사의 선례 때문에 예상보다 훨씬 큰 반대에 부딪힐 것으로 관측된다. 보팔 참사가 위험시설물로 인한 산업재해라는 점에서 핵 시설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사고가 날 경우 배상 책임이 시설물의 제조자나 공급자가 아니라 관리자인 인도 국영기업에게 있으며, 제조와 공급 과정에서 결함이 입증될 경우에만 관리자가 제조자와 공급자에게 별도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때 제조자나 공급자에게 청구할 수 있는 배상액도 최고 50억 루피(약 1300억 원)에 불과하다.
인도 의회는 보팔 참사 이후 유니언 카바이드사를 인수한 다우 케미컬이 “사고의 책임이 공장시설의 공급자인 유니언 카바이드사가 아닌, 관리자인 유니언 카바이드 인디아에 있다”며 책임을 회피했던 것을 목도했다. 따라서 의회는 “핵 시설 사고 시 제조자, 공급자 측의 책임 소재가 있음을 법령에서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대내적인 정치문제든, 법안 통과로 인한 미국과의 외교문제든 보팔 참사로 야기된 문제가 여당 콩그레스에게는 연립내각 2기에 넘어서야 할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당시 사고를 처리했던 중앙 정부도, 주 정부도 모두 콩그레스 내각이었으니 ‘뿌린 대로 거둔다’고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