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오후 2시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피해자인 김종익 씨(NS한마음 전 대표)가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 조사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선 검찰이 올해 초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 중 일부다. 지원관실이 민간인을 사찰한 일은 물론 수집한 증거도 법적으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이 스스로 부인한 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불법사찰 피해자로 알려진 김종익(56) 씨 측 최강욱 변호사(법무법인 청맥)는 “검찰은 명백한 직무유기를 저질렀다”며 “검찰이 이번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려면 검찰 내부의 직무유기에 대한 부분도 함께 다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원관실 수집 증거도 적법”
김씨 측은 지난해 10월 19일 검찰이 김씨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기소유예에 따른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곧바로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국가기관의 불법사찰을 인정한 것으로 김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심판 청구의 취지다. 검찰은 올해 2월 1일 김씨의 헌법소원에 대한 의견을 답변서 형태로 헌재에 제출했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검찰 답변서에 따르면 김씨 측은 “청구인(김씨)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곳은 수사기관이 아니었으므로, 이 사건 동영상을 캡처한 화면이나 동영상이 담긴 CD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수집된 증거로 볼 수 없어 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이 적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사건 동영상은 김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 동영상, 일명 ‘쥐코 동영상’을 말한다.
김씨 측은 이와 함께 “동영상의 내용이 허위의 사실이 아니라는 점, 김씨가 이 동영상을 블로그에 게시한 것은 피해자(이명박 대통령)를 비방할 목적이 없었던 점 등에 비춰 ‘혐의 없음’ 처분이 내려져야 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에 대해 하나하나 법리적 근거를 들어 반박했다. 하지만 논리적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한 대목이 적지 않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검찰 답변서.
검찰은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수사는 물론 아무런 법리적 판단도 내리지 않았다. 대신 “국가기관이 획득했다는 이유만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볼 수 없다”는 논리를 들이댔다. 증거를 수집한 ‘행위나 과정’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은 채 증거 ‘자체’에 대해서만 판단한 것이다.
최 변호사는 “이 같은 논리대로라면 검찰은 민간인을 상대로 협박해 빼앗은 돈을 자선단체에 기부한 강도도 처벌할 수 없을 것이다. 강도의 돈이라고 해서 나쁜 돈이라고 할 수 없다는 논리와 뭐가 다른가”라고 반박했다.
이어지는 검찰의 답변서 내용을 보면 검찰 스스로 논리적 모순을 드러냈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이 사인에 의해 수집된 증거도 그 수집 과정에서 중대한 위법이 없는 한 적법하게 수집된 증거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 사건 동영상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돼 있던 김씨의 인터넷 블로그에 게시돼 있었고, 국무총리실 지원관실에서는 그 블로그에 접속해 동영상을 시청하고 그 화면을 캡처한 것이므로 증거 수집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위법도 없다.”
조원동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오른쪽)은 5일 브리핑에서 자체조사 결과 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을 시인했다.
검찰은 또 김씨가 올린 동영상이 허위사실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별도의 수사 없이 단정 지었다. 검찰 답변서 내용 중 일부다.
“사건 동영상에는 ‘이 대통령은 무려 30개의 전과를 가진 범죄자이다. 이 대통령이 대운하를 추진하는 이유는 그가 대운하 개발 예정지에 엄청난 땅을 사 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국영기업을 1개당 수십억 불에 팔아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는 바, 이는 객관적인 자료에 비춰 허위임을 쉽게 알 수 있고, 김씨 역시 이 점에 대해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검찰은 또 “김씨가 이 동영상의 내용을 충분히 인식한 상태에서 불특정 다수가 접속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인터넷 블로그에 게시한 것은 이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수사기록을 보면, 검찰이 동영상의 허위사실 여부를 판단한 기준으로 삼은 객관적인 자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로부터 제출받은 이 대통령의 전과기록 관련 서류가 유일하다. 2007년 대선 당시 이 대통령은 선관위에 단 1건의 전과기록만 신고했다. 선거법상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경우에 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이 대통령의 전과기록은 더 있다.
순진한 오류냐 의도한 외면이냐
최 변호사는 “실제 동영상 제작자와 번역자 등에 대해서는 전혀 수사하지 않고 동영상 내용을 허위사실이라고 단정 지은 것은 무리가 있다. 특히 문제의 동영상을 한번 보고 나중에 다시 보기 위해 자신의 블로그에 잠시 캡처해놓은 것이 과연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씨가 블로그를 운영한 기간은 2008년 5월 29일부터 9월 28일까지 4개월 남짓. 이 기간 동안 김씨의 블로그 방문자는 하루 평균 20명에 불과했고, 방문자들도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김씨에 대한 지원관실의 불법 표적사찰에 이은 검찰의 표적수사 의혹이 제기된 배경이다.
그럼에도 검찰의 답변서는 “김씨 등 관련자들의 진술 및 사건 동영상 등의 증거에 의해 김씨의 범죄혐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김씨에 대한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은 사실관계에 대한 충실한 규명과 적법한 법리 적용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김씨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맺고 있다.
2008년 사건 당시 김씨의 수사를 담당했던 곳은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현재 대전지검 천안지청에서 근무 중인 박모 검사가 실무를 진행했고, 결재라인에 있던 당시 안상돈 형사2부장은 현직에 그대로 있다.
민간인 김씨에 대한 지원관실 불법사찰 의혹 수사를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새롭게 꾸려진 특별수사팀은 형사1부 오정돈 부장검사와 장기석 부부장검사, 특수3부 신자용 검사, 인천지검에서 파견된 최호영 검사 등 15명 규모다. 이들이 과연 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의혹과 함께 검찰 내부의 문제까지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최 변호사는 검찰 수사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나타냈다.
“국가기관은 법에 정한 만큼의 권력을 갖고, 그 범위 내에서 권력을 집행해야 한다. 법치주의는 헌법에 규정돼 있다. 국가기관이 그 헌법정신을 어기는 일을 했는데, 검찰은 이를 묵인했다.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지 묻고 싶다. 도대체 뭐 하는 기관인지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믿을 수 없을 것 같다.”
검찰은 이와 관련 아직까지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주당 한 고위관계자는 “만약 검찰이 헌재에 그와 같은 내용의 답변서를 제출했다면 검찰의 특별수사는 무의미하다. 국정조사나 특검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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