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주말이면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브런치 카페로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서울 한남동 ‘패션5’ 매장 내부. 왼쪽이 360도 회전하는 쇼케이스다. ② 패션5의 ‘얼굴’로 통하는 병푸딩. 이곳에서의 성공으로 파리바게트는 지난해 병푸딩을 출시했다. ③ ‘홈 인테리어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한샘 잠실직매장 내부 전경.
지난해 10월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잠실병원이 종합홈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로 변신했다. 국제 축구경기장(6400㎡)과 맞먹는 규모의 7층짜리 빌딩 전체가 인테리어 쇼룸으로 채워진 것. 침실, 거실, 부엌, 서재, 자녀방 등이 실제 집이라 해도 될 만큼 디테일하게 꾸며졌고 카페, 아트홀, 야외 테라스, 어린이 놀이방까지 갖췄다. 개장 100일을 갓 넘겼지만 벌써 인천, 대전 등 멀리에서도 고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이곳 한샘 잠실직매장의 모토는 ‘Beyond Shopping’. 즉 한샘이 제안하는 주거환경 트렌드를 고객이 직접 경험하게 한다는 것이다.
서울 명동 압구정동 청담동 일대에는 패션업체들의 안테나숍과 플래그십 스토어들이 대거 몰려 있다. 유행에 민감한 업계 특성상 트렌드를 선도하고,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 취향을 한 발 먼저 파악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 이런 목적의 달성에 고객 감성을 자극해 발길을 묶어두는 스페이스(Space) 마케팅만큼 적절한 것도 없다. 그런데 최근 이런 마케팅 전략이 타 업계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다. 식품, 가구, 화장품, 제약 등 다양한 업계에서 소비자 오감(五感)을 자극하기 위한 ‘공간 투자’에 심혈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
500억짜리 매장 “투자 아깝지 않아”
패션5에는 100억원이 넘는 자본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바게트 매장 하나에 드는 시설비용이 2억원가량인 점을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투자인 셈. 한샘 잠실직매장에는 약 500억원이 소요됐다. 수십억원의 보증금과 1억원에 가까운 월 임대료, 직원 130여 명의 인건비, 잦은 디스플레이 교체에 수반되는 비용 등 운영비 또한 만만치 않다.
서울 명동과 홍대 등 전국에 8개 매장이 있는 프리스비(Frisbee)는 아이폰, 아이팟 등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애플 스토어(Apple Store)’의 한국판으로 금강제화 계열사다. 프리스비는 넓은 공간을 들여 고객에게 애플의 모든 제품을 체험하게 하고, A/S를 실시하며, 세미나 공간까지 제공하는 콘셉트를 고수하기 때문에 운영비 부담이 크다. 클라란스, 한율, 설화수 등 국내외 화장품 브랜드들도 서울의 번화가에서 스파(Spa)를 운영한다. 최근 삼일제약은 제약회사로는 드물게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자사 미백치료제를 홍보하는 팝업 스토어(Pop-up Store)를 열었다. 이들 회사는 “부동산 임대료, 인건비 부담이 커 실제 수익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말한다.
이처럼 ‘비용 대비 매출’이 크지 않음에도 기업들이 스페이스 마케팅을 놓지 않는 이유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중요한 성과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즉, 고객들로 하여금 제품을 직접 만지고 사용하게 함으로써 브랜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요, ‘소비자 취향’을 세심하게 파악, 신제품 개발에도 활용할 수 있는 것.
④ 한국판 ‘애플 스토어’를 표방하는 프리스비 강남점. 아이폰과 아이팟, 맥 컴퓨터 등 애플 제품들을 시연해볼 수 있다. ⑤ 서울 강남 도산공원 인근에 자리한 클라란스 스킨스파. 이곳을 찾는 고객들이 이야기하는 제품 평가, 요구사항 등은 즉각 프랑스 파리 본사로 전달돼 신제품 개발에 반영된다. ⑥ 삼일제약이 미백치료제를 홍보하기 위해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에 연 팝업 스토어. 4월4일까지만 운영한다.
SPC그룹은 패션5에서 성공한 아이템을 파리크라상, 파리바게트 등으로 확산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패션5를 통해 신제품의 대중화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 그 대표적 사례가 병푸딩과 냉장 롤케이크, 바움쿠헨(나이테 모양의 독일 정통 케이크) 등이다. 특히 요즘 유행하는 ‘병푸딩 디저트’는 패션5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될 정도. SPC그룹 관계자는 “패션5를 통해 한국인들의 디저트 선호 현상이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느낀다”며 “따라서 그룹이 소유한 브랜드마다 디저트 제품군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품 독창성 창출이 관건”
한샘은 직매장을 전국에 20개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런 전략은 ‘1등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국내 가구시장의 규모는 연간 2조4000억원으로, 10년간 변함이 없었다. 성장이 정체된 시장에서의 생존법이 점유율을 끌어올리는 것임은 자명한 일. 한샘은 직매장에서 잘 치장된 쇼룸을 선보이고, 인테리어 상담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매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런 전략이 적중해 직매장 매출은 수직상승 중이다. 한샘 관계자는 “잠실직매장은 월 매출이 벌써 35억원을 넘었고, 올봄 성수기에는 50억원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공간을 통한 마케팅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고객에게 브랜드를 확실히 각인시킨 기업만이 날로 치열해지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 모든 제품이 트렌드에 따라 ‘철마다 다시 구입하는’ 패션화 경향을 나타내는 추세 또한 이런 마케팅이 중요해지는 배경 중 하나다. ‘스페이스 마케팅’(삼성경제연구소 펴냄)의 저자인 모이도시건축디자인 홍성용 대표는 “모든 공간 마케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서 베낀 것 같은 공간이 아닌, 브랜드의 정체성을 독창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관건”이라고 조언했다.
*안테나숍
자사 제품에 대한 소비자 평가와 트렌드 파악을 위한 매장. 판매보다는 제품 기획과 생산에 필요한 정보 입수를 우선 과제로 삼는다. 전파를 잡아내는 안테나 같은 기능을 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
*플래그십 스토어
브랜드의 성격과 이미지를 극대화해 꾸민 매장. 제품 판매보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알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해군 함대를 진두지휘하는 기함(flagship) 같은 구실을 한다는 데서 따온 이름.
*팝업 스토어
사람이 많이 모이는 특정 장소에 갑자기 나타나 신상품을 전시, 판매하다가 사라지는 매장.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신제품을 홍보 및 테스트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인터넷 팝업창처럼 갑자기 나타난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