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병 치료의 역사는 ‘혈당과의 전쟁’이었다. 당뇨병은 신체 각 세포로 흡수되지 못한 혈당이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온갖 나쁜 짓을 해 발병하는 질환이다. 따라서 당뇨병 치료의 최대 목표는 어떻게 해서든 혈관 속에 남은 혈당을 제거하는 것, 즉 ‘혈당강하’일 수밖에 없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췌장 베타세포에 의해 생성되며, 혈당을 각 세포에 흡수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해서 ‘혈당 청소부’라고도 불린다. 신체가 자체 생산하는 혈당강하 치료제인 셈. 당뇨병은 인슐린이 아예 없거나, 조금 부족하거나, 있어도 몸에서 인슐린을 감지하지 못해(인슐린 저항성) 생긴다. 인슐린 분비 기능이 전혀 없는 경우를 제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형)이라 하고, 나머지의 경우를 제2형 당뇨병(인슐린 비의존형)이라고 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2형 당뇨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1형 당뇨병 환자의 경우, 외부에서 인슐린 제제를 제때 공급하지 않으면 각종 당뇨합병증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췌장 베타세포 괴롭히는 기존 치료제
서양 최초의 당뇨병 치료제는 동물에서 유래한 인슐린 제제였다. 국내에선 당뇨병을 아직 ‘소갈증’이라고 부르던 1922년, 서양에선 이미 동물의 췌장에서 뽑아낸 인슐린을 당뇨병 환자에게 주사했다. 사람에게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도록 복잡한 정제 과정을 거쳤지만 역시 사람의 것이 아니기에 장기간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큰 효용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안이 없었기에 이후 60년간 유일한 당뇨병 치료제로 군림했다.
그러던 1982년 인체의 인슐린과 물리화학적, 생화학적, 면역학적으로 동등한 인슐린 제제(휴물린, 일라이 릴리社)가 유전자 조작기술에 의해 탄생했다. 오랜 투병으로 인슐린 분비 기능이 상실된 제1형 당뇨병 환자들에겐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동물 인슐린 제제와 비교해 혈중 인슐린 농도의 상승이 빠르고 혈당강하 작용이 신속하며 불순물도 나오지 않았다.
지방조직 위축, 알레르기 같은 부작용도 없었다. 이후 당뇨병 환자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환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여러 종류의 인슐린 제제가 선을 보였다. 문제는 당뇨병 환자의 대부분이 인슐린 분비 능력이 남아 있거나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제2형 당뇨병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부족한 인슐린의 분비를 늘리거나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는 치료제가 쏟아져 나왔다.
크게 나누면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강제하는 계열(인슐린 분비 촉진제), 그리고 간에서의 포도당 과잉 생산을 막고 근육 등 말초조직에서의 포도당 사용을 증가시켜 상대적으로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는 계열의 치료제가 주류를 이뤘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이들 치료제가 주로 처방된다. 지난해 국내 당뇨병 치료제의 매출액(건강보험 적용 치료제에 한정)은 3320억원으로, 그중 인슐린 분비 촉진제의 시장점유율은 32.1%, 인슐린 저항성과 간에서의 포도당 분비 감소에 관계하는 치료제의 시장점유율은 33.7%였다.
인슐린 제제의 매출은 이들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강제 촉진하는 계열의 치료제는 올 상반기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동기 대비 3.2%포인트 감소했다.
제약업계에서 한 약물군의 시장점유율이 이처럼 단기간에 10%나 격감하는 일은 드문 현상.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슐린 분비 촉진제는 단기적으로 혈당강하 효과가 좋은 반면, 저체중 또는 체증 증가 같은 부작용이 적지 않고,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단점을 지녔다.
췌장 베타세포의 수를 늘려가거나 손상을 줄이면서 인슐린 분비 능력을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계속 자극만 하다 보니 췌장 베타세포가 견디지를 못하는 것. 췌장 베타세포가 심각하게 손상되면 인체는 인슐린 분비 능력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인체의 혈당강하 대사작용을 돕고, 그 시스템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치료제가 나와 인슐린 분비 촉진제 시장의 ‘틈’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한국 MSD의 ‘자누비아’와 한국릴리의 ‘바이에타’ 등 인크레틴 기반의 치료제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제2형 당뇨병 중에서도 마르고 젊은 사람이 잘 걸리는 ‘한국형 당뇨병’의 가장 적합한 치료제로 알려졌다. 앞의 기사에서도 설명했듯, 한국형 당뇨병의 특징은 인슐린 분비량을 좌우하는 췌장 베타세포의 수가 서양인에 비해 70~80% 적어 혈당조절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
그래서 마르고 젊은 당뇨병 환자가 전체 당뇨병 환자의 50~ 60%에 이른다. 이들 인크레틴 제제는 한국형 당뇨병의 가장 큰 취약점인 약한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향상시켜 자연스럽게 인슐린 분비를 늘리고 혈당조절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성모병원에는 인크레틴 기반의 치료를 전문으로 시행하는 ‘인크레틴 클리닉’도 생겨났다.
혈당조절의 ‘최고사령관’ 인크레틴
인크레틴 제제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기존 인슐린 분비 촉진제들의 고질적 부작용인 저혈당, 체증 증가 같은 부작용이 적기 때문. 기존 치료제들(주로 설포닐우레아 계열)은 환자의 현재 혈당 상태와 관계없이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을 쥐어짜내기 때문에 저혈당을 유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환자의 혈당이 정상 상태인데 강제로 인슐린이 공급되면 혈당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혈당은 당뇨병과 반대로 혈관 속 포도당이 필요량보다 모자라는 상태(혈당치 60mg/㎗ 이하, 2007 대한당뇨병학회). 저혈당 상태에 이르면 몸 떨림, 식은땀, 불안, 가슴 떨림, 어지럼, 공복감, 심한 피로감, 집중 장애, 무기력, 혼수상태 같은 증상이 나타나며 간혹 혼수상태가 사망으로 연결되는 등 매우 위협적인 질환이다. 또 과도한 인슐린 분비는 환자의 체중 증가로도 이어진다.
인슐린은 혈관 속에 남는 포도당을 체내에 축적하는 기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크레틴은 소장에서 분비되는 체내 호르몬으로,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분비 능력을 향상시킨다. 음식이 식도와 위를 거쳐 소장으로 내려가면 인크레틴은 일단 췌장 베타세포에게 인슐린을 어느 정도 합성할지를 지시한다. 하지만 음식이 들어온다고 무조건 인슐린 분비를 명령하는 것은 아니다.
혈중 포도당을 파악한 후 혈당이 높을 때만 인슐린 분비를 명령한다. 더욱이 인크레틴은 췌장 알파세포에게 간에서의 포도당 생성을 촉진하는 글루카곤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게 함으로써 인슐린의 혈당조절 기능을 우회적으로 돕는다. 이와 반대로 혈당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에는 혈당을 높여 혈당의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즉 알파세포에게 글루카곤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함으로써 포도당을 증가시키고, 베타세포에겐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도록 명령하는 것.
인크레틴 제제를 아무리 먹어도 저혈당 현상이 매우 적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야말로 혈당조절 대사의 중심에 있는 ‘컨트롤 타워’이자 ‘마에스트로’의 기능을 하는 존재가 인크레틴인 것이다. 인크레틴은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사멸을 억제시키는 데도 관여함으로써 비만 등으로 손상된 베타세포의 인슐린 생산 능력을 개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크레틴의 ‘똑똑한’ 혈당조절 능력과 췌장세포 보호기능을 이용한 치료제가 바로 인크레틴 제제로 총칭되는 약물이다.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한국 MSD의 DPP-4 억제제 ‘자누비아’(성분명 : 시타글립틴)와 한국릴리의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성분명 : 엑세나타이드)가 그것이다.
먹는 인크레틴 제제 ‘자누비아’
자누비아는 인크레틴의 활성화를 방해하는 ‘DPP-4’ 효소의 작용을 선택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인크레틴이 혈당조절 대사와 췌장 베타세포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약물이다.
DPP-4 효소는 인크레틴이 소장에서 생성되자마자 1~2분 사이에 그중 80%를 비활성화한다. 결국 식후에 분비된 인크레틴의 15~20%만이 췌장과 간에 도달해 혈당조절 기능을 하는 것. 인크레틴 분비량이 현저하게 감소돼 있는 당뇨병 환자의 경우 활성화한 인크레틴의 양이 더욱 적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자누비아는 이처럼 췌장 베타세포와 알파세포로 하여금 혈당이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을 막게끔 한다. 따라서 이 치료제는 저혈당,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이 적거나 거의 없다. 인크레틴이 제대로 작용하면 인슐린 분비가 최적화하기 때문에 과잉 생산된 인슐린에 의한 잉여 포도당 축적 대사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인크레틴에 식욕 억제 기능이 있다는 점에서 자누비아를 비롯한 DPP-4 억제제는 체중 조절에 기여할 수도 있다.
한국 MSD 관계자는 “DPP-4 억제제는 인슐린 분비 능력이 약해진 당뇨병 환자의 췌장 베타세포를 직접 자극하지 않고 보호하는 기능을 하므로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임상을 통해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자누비아의 경우, 한국 중국 인도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18주간 조사한 결과, 평균 당화혈색소가 1.03% 감소했으며 특히 한국인은 평균 1.37% 감소로 가장 높은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아직 이론적으로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DPP-4 억제제가 췌장 베타세포의 재생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물실험에선 이미 재생효과가 입증됐으며, 인체에 대해서는 각종 지표를 통해 재생에 관한 자료가 축적되는 과정에 있다. 자누비아는 국내에 출시된 다른 DPP-4 억제제가 하루 2번 먹는 것과 달리, 식사와 관계없이 하루 100mg 한 알만 복용하면 된다. 12시간 이상 약효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오랜 당뇨병으로 신장 기능이 약화된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안전성도 검증됐다.
지난해 9월 유럽당뇨병학회(EASD)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임상시험 분석에 따르면, 총 613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2년간 자누비아와 위약 또는 기존 치료제를 투여한 후 이상반응을 비교한 결과 자누비아의 안전성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자누비아를 기존 치료제와 함께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줄어들고 추가로 혈당이 낮아지는 효과도 나타났다. 2009년 6월 미국당뇨병협회(ADA) 연례회의에서는 자누비아가 단독 요법 혹은 메트포민(간에서 포도당 생성 억제, 인슐린 저항성 약화)과의 병용요법을 통해 혈당이 유의미하게 강하되고, 이 효과가 최소 2년에 걸쳐 지속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한 메트포민으로 충분히 혈당조절이 되지 않은 환자에게 자누비아를 추가 투여한 결과, 다른 치료제처럼 혈당 개선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저혈당과 체중 감소 현상은 극히 드물었다. 이에 따라 한국 MSD가 지난 2월 선보인 치료제가 바로 자누비아와 메트포민을 섞어 만든 ‘자누메트’다. 자누비아와 메트포민의 장점을 아우른 약으로,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세 가지의 주된 결함, 즉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 저하, 인슐린 저항성, 간에서의 포도당 과다 생성을 한꺼번에 해결한다.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
당뇨병 치료의 트렌드가 인슐린에서 인크레틴으로 변화하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치료제는 2005년 릴리사(社)가 개발한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크레틴 유사체, ‘GLP-1(Glucagon Like Peptide·글루카곤 유사 펩티드) 효현제’라고도 불리는 바이에타는 혈당이 높아졌을 때에만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기전을 통해 저혈당의 위험을 현저히 낮추고,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를 복구해 당뇨병의 근본 원인을 치유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이에타는 자누비아 등의 DPP-4 억제제와 달리, 인체에 인크레틴과 같은 성분의 약물을 직접 주사함으로써 인크레틴이 수행하는 혈당조절과 간에서의 포도당 과잉 생성 억제 작용을 돕는다. 특히 기존의 먹는 치료제나 인슐린 주사제의 잠재적 부작용인 저혈당 쇼크, 심장발작, 고인슐린혈증, 비만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되살리는 등 좀더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 국내외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인크레틴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는 혈당 감소 효과는 비슷하지만 체중을 증가시키는 인슐린 제제와 달리 지속적인 체중 감량 효과도 거둘 수 있어 미국과 유럽에서 출시될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당뇨병학회, 유럽당뇨병학회가 생활습관 개선과 메트포민 복용으로 1차 치료 목표로 삼은 혈당 수치를 달성하거나 유지하지 못한 당뇨병 환자들에게 바이에타 같은 GLP-1 효현제 사용을 2차 표준 치료로 권고함으로써 새로운 치료제로 인정받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크레틴 유사체인 바이에타는 췌장 베타세포가 부족해 인슐린 분비 장애를 겪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 특히 적합한 치료제.
바이에타는 힐러몬스터 도마뱀(Gila monster lizard)의 침에 췌장 기능을 되살리는 호르몬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개발됐다. 손상되거나 부족한 한국인의 췌장 베타세포를 바이에타가 복원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힐러몬스터 도마뱀은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의 사막지대에 서식하는 도마뱀으로 1년에 서너 번만 먹이를 먹고, 한 끼니에 자기 체중의 3분의 1에 달하는 먹이를 섭취한다. 이 도마뱀은 먹지 않는 기간에는 에너지를 보전하기 위해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 기능이 쇠퇴했다가 먹을 때가 되면 췌장 기능이 되살아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에타는 이에 주목, 힐러몬스터 도마뱀의 침 성분에서 ‘엑센딘-4’를 추출한 후 재합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주성분은 엑세나타이드.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엑센딘-4는 힐러몬스터 도마뱀이 섭취한 영양소를 처리 및 저장하는 작용을 돕고 쇠퇴한 췌장 기능을 되살리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된 바이에타는 펜 타입 주사제로 5mcg와 10mcg 두 종류가 있으며,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후 하루 2차례 환자가 직접 투여하면 된다. 미국은 2005년 4월, 유럽은 2006년 11월 시판을 승인했다.
췌장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은 췌장 베타세포에 의해 생성되며, 혈당을 각 세포에 흡수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해서 ‘혈당 청소부’라고도 불린다. 신체가 자체 생산하는 혈당강하 치료제인 셈. 당뇨병은 인슐린이 아예 없거나, 조금 부족하거나, 있어도 몸에서 인슐린을 감지하지 못해(인슐린 저항성) 생긴다. 인슐린 분비 기능이 전혀 없는 경우를 제1형 당뇨병(인슐린 의존형)이라 하고, 나머지의 경우를 제2형 당뇨병(인슐린 비의존형)이라고 하는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제2형 당뇨병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1형 당뇨병 환자의 경우, 외부에서 인슐린 제제를 제때 공급하지 않으면 각종 당뇨합병증으로 목숨을 잃게 된다.
췌장 베타세포 괴롭히는 기존 치료제
서양 최초의 당뇨병 치료제는 동물에서 유래한 인슐린 제제였다. 국내에선 당뇨병을 아직 ‘소갈증’이라고 부르던 1922년, 서양에선 이미 동물의 췌장에서 뽑아낸 인슐린을 당뇨병 환자에게 주사했다. 사람에게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도록 복잡한 정제 과정을 거쳤지만 역시 사람의 것이 아니기에 장기간 사용할 경우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큰 효용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안이 없었기에 이후 60년간 유일한 당뇨병 치료제로 군림했다.
그러던 1982년 인체의 인슐린과 물리화학적, 생화학적, 면역학적으로 동등한 인슐린 제제(휴물린, 일라이 릴리社)가 유전자 조작기술에 의해 탄생했다. 오랜 투병으로 인슐린 분비 기능이 상실된 제1형 당뇨병 환자들에겐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동물 인슐린 제제와 비교해 혈중 인슐린 농도의 상승이 빠르고 혈당강하 작용이 신속하며 불순물도 나오지 않았다.
지방조직 위축, 알레르기 같은 부작용도 없었다. 이후 당뇨병 환자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환자의 편의성을 고려한 여러 종류의 인슐린 제제가 선을 보였다. 문제는 당뇨병 환자의 대부분이 인슐린 분비 능력이 남아 있거나 인슐린 저항성이 있는 제2형 당뇨병이란 점이다. 그래서 이후에는 부족한 인슐린의 분비를 늘리거나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는 치료제가 쏟아져 나왔다.
크게 나누면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강제하는 계열(인슐린 분비 촉진제), 그리고 간에서의 포도당 과잉 생산을 막고 근육 등 말초조직에서의 포도당 사용을 증가시켜 상대적으로 인슐린 저항성을 줄이는 계열의 치료제가 주류를 이뤘다. 국내에서는 현재까지 이들 치료제가 주로 처방된다. 지난해 국내 당뇨병 치료제의 매출액(건강보험 적용 치료제에 한정)은 3320억원으로, 그중 인슐린 분비 촉진제의 시장점유율은 32.1%, 인슐린 저항성과 간에서의 포도당 분비 감소에 관계하는 치료제의 시장점유율은 33.7%였다.
인슐린 제제의 매출은 이들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하지만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 분비를 강제 촉진하는 계열의 치료제는 올 상반기 시장점유율이 지난해 동기 대비 3.2%포인트 감소했다.
제약업계에서 한 약물군의 시장점유율이 이처럼 단기간에 10%나 격감하는 일은 드문 현상.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슐린 분비 촉진제는 단기적으로 혈당강하 효과가 좋은 반면, 저체중 또는 체증 증가 같은 부작용이 적지 않고,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단점을 지녔다.
췌장 베타세포의 수를 늘려가거나 손상을 줄이면서 인슐린 분비 능력을 활성화하는 게 아니라,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계속 자극만 하다 보니 췌장 베타세포가 견디지를 못하는 것. 췌장 베타세포가 심각하게 손상되면 인체는 인슐린 분비 능력을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인체의 혈당강하 대사작용을 돕고, 그 시스템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치료제가 나와 인슐린 분비 촉진제 시장의 ‘틈’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한국 MSD의 ‘자누비아’와 한국릴리의 ‘바이에타’ 등 인크레틴 기반의 치료제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제2형 당뇨병 중에서도 마르고 젊은 사람이 잘 걸리는 ‘한국형 당뇨병’의 가장 적합한 치료제로 알려졌다. 앞의 기사에서도 설명했듯, 한국형 당뇨병의 특징은 인슐린 분비량을 좌우하는 췌장 베타세포의 수가 서양인에 비해 70~80% 적어 혈당조절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
그래서 마르고 젊은 당뇨병 환자가 전체 당뇨병 환자의 50~ 60%에 이른다. 이들 인크레틴 제제는 한국형 당뇨병의 가장 큰 취약점인 약한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향상시켜 자연스럽게 인슐린 분비를 늘리고 혈당조절 능력을 키우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성모병원에는 인크레틴 기반의 치료를 전문으로 시행하는 ‘인크레틴 클리닉’도 생겨났다.
혈당조절의 ‘최고사령관’ 인크레틴
인크레틴 제제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기존 인슐린 분비 촉진제들의 고질적 부작용인 저혈당, 체증 증가 같은 부작용이 적기 때문. 기존 치료제들(주로 설포닐우레아 계열)은 환자의 현재 혈당 상태와 관계없이 췌장 베타세포를 자극해 인슐린을 쥐어짜내기 때문에 저혈당을 유발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환자의 혈당이 정상 상태인데 강제로 인슐린이 공급되면 혈당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혈당은 당뇨병과 반대로 혈관 속 포도당이 필요량보다 모자라는 상태(혈당치 60mg/㎗ 이하, 2007 대한당뇨병학회). 저혈당 상태에 이르면 몸 떨림, 식은땀, 불안, 가슴 떨림, 어지럼, 공복감, 심한 피로감, 집중 장애, 무기력, 혼수상태 같은 증상이 나타나며 간혹 혼수상태가 사망으로 연결되는 등 매우 위협적인 질환이다. 또 과도한 인슐린 분비는 환자의 체중 증가로도 이어진다.
인슐린은 혈관 속에 남는 포도당을 체내에 축적하는 기능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인크레틴은 소장에서 분비되는 체내 호르몬으로, 췌장 베타세포의 인슐린 분비 능력을 향상시킨다. 음식이 식도와 위를 거쳐 소장으로 내려가면 인크레틴은 일단 췌장 베타세포에게 인슐린을 어느 정도 합성할지를 지시한다. 하지만 음식이 들어온다고 무조건 인슐린 분비를 명령하는 것은 아니다.
혈중 포도당을 파악한 후 혈당이 높을 때만 인슐린 분비를 명령한다. 더욱이 인크레틴은 췌장 알파세포에게 간에서의 포도당 생성을 촉진하는 글루카곤 호르몬의 작용을 억제하게 함으로써 인슐린의 혈당조절 기능을 우회적으로 돕는다. 이와 반대로 혈당이 지나치게 낮을 경우에는 혈당을 높여 혈당의 균형을 맞추기도 한다. 즉 알파세포에게 글루카곤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함으로써 포도당을 증가시키고, 베타세포에겐 인슐린 분비를 억제하도록 명령하는 것.
인크레틴 제제를 아무리 먹어도 저혈당 현상이 매우 적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야말로 혈당조절 대사의 중심에 있는 ‘컨트롤 타워’이자 ‘마에스트로’의 기능을 하는 존재가 인크레틴인 것이다. 인크레틴은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향상시키고 사멸을 억제시키는 데도 관여함으로써 비만 등으로 손상된 베타세포의 인슐린 생산 능력을 개선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크레틴의 ‘똑똑한’ 혈당조절 능력과 췌장세포 보호기능을 이용한 치료제가 바로 인크레틴 제제로 총칭되는 약물이다.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한국 MSD의 DPP-4 억제제 ‘자누비아’(성분명 : 시타글립틴)와 한국릴리의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성분명 : 엑세나타이드)가 그것이다.
먹는 인크레틴 제제 ‘자누비아’
자누비아는 인크레틴의 활성화를 방해하는 ‘DPP-4’ 효소의 작용을 선택적으로 억제함으로써 인크레틴이 혈당조절 대사와 췌장 베타세포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약물이다.
DPP-4 효소는 인크레틴이 소장에서 생성되자마자 1~2분 사이에 그중 80%를 비활성화한다. 결국 식후에 분비된 인크레틴의 15~20%만이 췌장과 간에 도달해 혈당조절 기능을 하는 것. 인크레틴 분비량이 현저하게 감소돼 있는 당뇨병 환자의 경우 활성화한 인크레틴의 양이 더욱 적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자누비아는 이처럼 췌장 베타세포와 알파세포로 하여금 혈당이 지나치게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것을 막게끔 한다. 따라서 이 치료제는 저혈당, 체중 증가 등의 부작용이 적거나 거의 없다. 인크레틴이 제대로 작용하면 인슐린 분비가 최적화하기 때문에 과잉 생산된 인슐린에 의한 잉여 포도당 축적 대사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인크레틴에 식욕 억제 기능이 있다는 점에서 자누비아를 비롯한 DPP-4 억제제는 체중 조절에 기여할 수도 있다.
한국 MSD 관계자는 “DPP-4 억제제는 인슐린 분비 능력이 약해진 당뇨병 환자의 췌장 베타세포를 직접 자극하지 않고 보호하는 기능을 하므로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 더 큰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되며, 임상을 통해서도 이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자누비아의 경우, 한국 중국 인도의 제2형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18주간 조사한 결과, 평균 당화혈색소가 1.03% 감소했으며 특히 한국인은 평균 1.37% 감소로 가장 높은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아직 이론적으로 확정된 단계는 아니지만 DPP-4 억제제가 췌장 베타세포의 재생에 기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동물실험에선 이미 재생효과가 입증됐으며, 인체에 대해서는 각종 지표를 통해 재생에 관한 자료가 축적되는 과정에 있다. 자누비아는 국내에 출시된 다른 DPP-4 억제제가 하루 2번 먹는 것과 달리, 식사와 관계없이 하루 100mg 한 알만 복용하면 된다. 12시간 이상 약효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오랜 당뇨병으로 신장 기능이 약화된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안전성도 검증됐다.
지난해 9월 유럽당뇨병학회(EASD) 연례회의에서 발표된 임상시험 분석에 따르면, 총 6139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2년간 자누비아와 위약 또는 기존 치료제를 투여한 후 이상반응을 비교한 결과 자누비아의 안전성은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자누비아를 기존 치료제와 함께 복용할 경우 부작용이 줄어들고 추가로 혈당이 낮아지는 효과도 나타났다. 2009년 6월 미국당뇨병협회(ADA) 연례회의에서는 자누비아가 단독 요법 혹은 메트포민(간에서 포도당 생성 억제, 인슐린 저항성 약화)과의 병용요법을 통해 혈당이 유의미하게 강하되고, 이 효과가 최소 2년에 걸쳐 지속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한 메트포민으로 충분히 혈당조절이 되지 않은 환자에게 자누비아를 추가 투여한 결과, 다른 치료제처럼 혈당 개선 효과를 나타내면서도 저혈당과 체중 감소 현상은 극히 드물었다. 이에 따라 한국 MSD가 지난 2월 선보인 치료제가 바로 자누비아와 메트포민을 섞어 만든 ‘자누메트’다. 자누비아와 메트포민의 장점을 아우른 약으로, 제2형 당뇨병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세 가지의 주된 결함, 즉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 저하, 인슐린 저항성, 간에서의 포도당 과다 생성을 한꺼번에 해결한다.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
당뇨병 치료의 트렌드가 인슐린에서 인크레틴으로 변화하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치료제는 2005년 릴리사(社)가 개발한 인크레틴 유사체 ‘바이에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크레틴 유사체, ‘GLP-1(Glucagon Like Peptide·글루카곤 유사 펩티드) 효현제’라고도 불리는 바이에타는 혈당이 높아졌을 때에만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기전을 통해 저혈당의 위험을 현저히 낮추고,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 베타세포를 복구해 당뇨병의 근본 원인을 치유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바이에타는 자누비아 등의 DPP-4 억제제와 달리, 인체에 인크레틴과 같은 성분의 약물을 직접 주사함으로써 인크레틴이 수행하는 혈당조절과 간에서의 포도당 과잉 생성 억제 작용을 돕는다. 특히 기존의 먹는 치료제나 인슐린 주사제의 잠재적 부작용인 저혈당 쇼크, 심장발작, 고인슐린혈증, 비만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췌장 베타세포의 기능을 되살리는 등 좀더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해 국내외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인크레틴 계열의 당뇨병 치료제는 혈당 감소 효과는 비슷하지만 체중을 증가시키는 인슐린 제제와 달리 지속적인 체중 감량 효과도 거둘 수 있어 미국과 유럽에서 출시될 당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미국당뇨병학회, 유럽당뇨병학회가 생활습관 개선과 메트포민 복용으로 1차 치료 목표로 삼은 혈당 수치를 달성하거나 유지하지 못한 당뇨병 환자들에게 바이에타 같은 GLP-1 효현제 사용을 2차 표준 치료로 권고함으로써 새로운 치료제로 인정받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인크레틴 유사체인 바이에타는 췌장 베타세포가 부족해 인슐린 분비 장애를 겪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인에게 특히 적합한 치료제.
바이에타는 힐러몬스터 도마뱀(Gila monster lizard)의 침에 췌장 기능을 되살리는 호르몬이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개발됐다. 손상되거나 부족한 한국인의 췌장 베타세포를 바이에타가 복원해줄 수 있다는 뜻이다.
힐러몬스터 도마뱀은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의 사막지대에 서식하는 도마뱀으로 1년에 서너 번만 먹이를 먹고, 한 끼니에 자기 체중의 3분의 1에 달하는 먹이를 섭취한다. 이 도마뱀은 먹지 않는 기간에는 에너지를 보전하기 위해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 기능이 쇠퇴했다가 먹을 때가 되면 췌장 기능이 되살아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이에타는 이에 주목, 힐러몬스터 도마뱀의 침 성분에서 ‘엑센딘-4’를 추출한 후 재합성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주성분은 엑세나타이드.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엑센딘-4는 힐러몬스터 도마뱀이 섭취한 영양소를 처리 및 저장하는 작용을 돕고 쇠퇴한 췌장 기능을 되살리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된 바이에타는 펜 타입 주사제로 5mcg와 10mcg 두 종류가 있으며,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후 하루 2차례 환자가 직접 투여하면 된다. 미국은 2005년 4월, 유럽은 2006년 11월 시판을 승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