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도직입적이다.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본질을 꿰뚫는다.’ ‘로다운30’의 3집 앨범 ‘B’를 들으며 적은 문장들이다. 이는 블루스와 하드록을 기반으로 하되 힙합과 재즈 요소를 재치 있게 섭렵하는 그들의 행보이기도 하다.
로다운30은 3인조 밴드다. 인디 1세대 밴드인 노이즈가든 시절부터 가장 또렷한 색깔을 내는 기타리스트로 꼽혔던 윤병주를 중심으로 베이시스트 김락건, 최근 합류한 드러머 최병준이 밴드의 현 멤버다.
2008년 뒤늦은 데뷔 앨범 ‘Jaira’를 내놓은 이래 그들은 10여 년 동안 한국 록 신에 나타나고 사라졌던 어떤 유행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의 아류가 생긴 것도 아니다. 로다운30은 그냥 로다운30이었다. 기타와 베이스, 드럼이라는 밴드 사운드의 기본을 견고하게 지키되 흡수할 수 있는 것을 배척하지 않았다. 뚜벅뚜벅 걸어왔다.
2013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 및 ‘최우수 록 음반’ 후보에 올랐던 2집 앨범 ‘1’을 낸 뒤 4년 동안 그들에겐 여러 일이 있었다. 북미 투어를 다녀왔고 새로운 레이블을 만났으며 새로운 드러머가 합류했다. 그사이 인디 신 역시 많은 부침이 있었다. ‘B’에서는 그러나,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명료해졌다.
원숙보다 숙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이다. 음악가의 창작력은 20대에 피어나 30대에 완성된 뒤 40대부터 퇴조한다는 말이 있다. 밴드의 발전은 상업적 성공에 의해 촉진된다는 말도 있다. 맞는 말이다. 대부분에겐 그렇다.
하지만 예외도 있는 법. 로다운30은 자신들이 그런 통념의 바깥에 있음을 세 번째 앨범을 통해 가볍게 증명한다. 과거에 매몰되지 않되 현재에 휩쓸리지 않는 이들에게만 허용되는 결과물이리라.
수록된 총 9곡은 각각의 개성을 갖고 있되 ‘앨범’이라는 개념의 통일성을 잃지 않는다. 다양성은 곡을 구성하는 리프와 멜로디, 리듬의 변주에서 나온다. ‘B’의 기타 리프들은 그 어느 것도 버릴 게 없다.
마치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있는데 한 마디 한 마디 말에 펀치 라인이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그 리프들을 바탕으로 윤병주는 지난 앨범들에 비해 훨씬 귀에 잘 들어오는, 따라 부르고 싶은 보컬 멜로디와 솔로 연주를 얹는다.
화려하되 과시적이지 않고, 절제돼 있되 나아갈 때는 망설임이 없는 연주다. 톤과 그루브를 놓치지 않는 최병준의 드럼과 많은 오버 더빙 없이도 공백을 여백으로 살려내는 김락건의 베이스는 이 앨범의 토대이자 뼈대다. 귀뿐 아니라 몸도 반응하게 만든다.
통일성을 이끄는 건 사운드다. 공격적이되 날카롭지 않고, 안정적이되 예리한 이 앨범의 사운드는 크게 들을 때 빛을 발한다. 록의 뿌리가 몸을 움직이기 위한 댄스뮤직이었음을, 단순한 편곡과 리듬이 때로는 육체와의 화학반응을 이끄는 좀 더 강력한 촉매제임을 일깨운다.
1970년대 그룹사운드를 연상케 하는 ‘그땐 왜’의 통속성, ‘저 빛 속에’의 장대한 사운드 스케이프, ‘그대가 없었다면’의 솔과 사이키델릭의 조화는 그리하여 ‘B’라는 그릇에서 뭉개지지 않고 섞인다. ‘Simple is Best’라는 디자인 격언이 절로 떠오른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그들의 음악에는 시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B’를 통해 더욱 강해진다. 완결된 것 같던 한국 록의 문장에 한 줄이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