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 없다 사람 손 가야 비로소 제값 하는
무수한 연장들 틈새에서 시 쓰는 여자가 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못 팔아야 살지만 못 팔아도 사는 여자
십 년 전 마음에 심은 작심(作心)이라는 볼트 하나
너트로 한 바퀴 더 조여야 하는
사월은 성수기
작업 현장에 연장이 필요하듯
여자에겐 시간이 절실하다
시를 쓰겠다고 한 시간 일찍 나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를
고요 속 새벽이 빨아들인다
뒤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흙집을 개조한 철물점 기와지붕엔
아직도 이끼가 끼어 있어
늘 기역자로 만나야 하는 새소리는
어긋나 포개진 기왓장 틈새에 알 낳고 품었을 그 시간들,
지난 십 년을 생각나게 하는데
용마루 위 일가 이룬 새들의 울음소리에
자꾸만 착해지는 여자
지명 따라 지은 이름 ‘대강 철물점’
간판 너머엔
적당히 보리밭 흔드는 바람이 불고
멋대로 떨어지는 감꽃도 싱싱하지만
개줄 하나 팔고 앉으면 받침 하나 빠지고
물통 하나 팔고 앉으면 단어 하나 달아난다
오늘도
철물처럼 무거운 시
‘시안’ 2009년 봄호 ‘철물점 여자’
충북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홍정순(37·여) 씨를 시인으로 등단케 한 대표작 ‘철물점 여자’다. 홍씨는 이 밖에도 ‘소설(小雪)을 지나다’ ‘파리’ ‘장갑’ ‘사이’가 수상작으로 선정돼 최근 시 전문 계간지 ‘시안’의 제22회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를 쓸 시간이 없어 오전 5시에 가게에 나왔어요. 한가할 줄 알고 ‘몇 줄이라도 쓸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 시간에도 손님들이 오데요.(웃음) 그때의 감정을 시로 담은 것이 ‘철물점 여자’예요.”
단양고교 재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시를 접하게 됐다. 이후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지만 시를 향한 열정만은 고교 시절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시를 쓴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네가 애들이 없냐, 돈을 못 버냐”는 가족들의 걱정이 없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상을 받고 그의 시가 알려지면서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들도 바로 가족이다.
일이 워낙 바빠 시 쓰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공사가 중단되는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의 겨울 비수기가 그나마 한가한 시기. 이때야 비로소 좀 쉬면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시도 쓴다. 이제 봄이 시작돼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가게 일도 하고, 애들도 돌보고, 거기에 시까지 쓰니 저는 멀티걸인가 봐요.(웃음) 낙천적, 긍정적인 사고가 큰 도움이 됐어요. 중압감을 안고 시를 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즐겁게 장사하면서 쓰고 있죠.”
수상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철물점 주인’이라는 말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철물점은 그의 삶의 터전이자, 영감을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는 철물점을 운영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철물, 기물 등 온갖 잡다한 것이 다 있는 ‘만물상’이다. 그러다 보니 홍씨에게는 생활 자체가 시다. 김수영 백석 서정주 시인을 좋아한다는 그는 시에 대한 ‘편식’이 없다.
“난해해서 꺼리는 미래파 시도 읽으려고 해요. 비록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요즘 어떤 시가 나오고 누구의 시가 화제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요.”
고등학생 때의 꿈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는 홍씨는 소박하게 각오를 밝혔다.
“상을 받았다고 변할 것은 없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내야죠. 세 아이의 엄마, 종갓집 맏며느리, 철물점 주인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거예요. 물론 시도 빠질 수 없죠. 제 생활 속에 시는 그대로 녹아 있을 거예요.”
무수한 연장들 틈새에서 시 쓰는 여자가 있다
새벽 여섯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못 팔아야 살지만 못 팔아도 사는 여자
십 년 전 마음에 심은 작심(作心)이라는 볼트 하나
너트로 한 바퀴 더 조여야 하는
사월은 성수기
작업 현장에 연장이 필요하듯
여자에겐 시간이 절실하다
시를 쓰겠다고 한 시간 일찍 나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여자를
고요 속 새벽이 빨아들인다
뒤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흙집을 개조한 철물점 기와지붕엔
아직도 이끼가 끼어 있어
늘 기역자로 만나야 하는 새소리는
어긋나 포개진 기왓장 틈새에 알 낳고 품었을 그 시간들,
지난 십 년을 생각나게 하는데
용마루 위 일가 이룬 새들의 울음소리에
자꾸만 착해지는 여자
지명 따라 지은 이름 ‘대강 철물점’
간판 너머엔
적당히 보리밭 흔드는 바람이 불고
멋대로 떨어지는 감꽃도 싱싱하지만
개줄 하나 팔고 앉으면 받침 하나 빠지고
물통 하나 팔고 앉으면 단어 하나 달아난다
오늘도
철물처럼 무거운 시
‘시안’ 2009년 봄호 ‘철물점 여자’
충북 단양군 대강면 장림리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홍정순(37·여) 씨를 시인으로 등단케 한 대표작 ‘철물점 여자’다. 홍씨는 이 밖에도 ‘소설(小雪)을 지나다’ ‘파리’ ‘장갑’ ‘사이’가 수상작으로 선정돼 최근 시 전문 계간지 ‘시안’의 제22회 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시를 쓸 시간이 없어 오전 5시에 가게에 나왔어요. 한가할 줄 알고 ‘몇 줄이라도 쓸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 시간에도 손님들이 오데요.(웃음) 그때의 감정을 시로 담은 것이 ‘철물점 여자’예요.”
단양고교 재학 시절 문학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레 시를 접하게 됐다. 이후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은 거침없이 흘러갔지만 시를 향한 열정만은 고교 시절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시를 쓴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네가 애들이 없냐, 돈을 못 버냐”는 가족들의 걱정이 없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상을 받고 그의 시가 알려지면서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들도 바로 가족이다.
일이 워낙 바빠 시 쓰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 공사가 중단되는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의 겨울 비수기가 그나마 한가한 시기. 이때야 비로소 좀 쉬면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시도 쓴다. 이제 봄이 시작돼 다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가게 일도 하고, 애들도 돌보고, 거기에 시까지 쓰니 저는 멀티걸인가 봐요.(웃음) 낙천적, 긍정적인 사고가 큰 도움이 됐어요. 중압감을 안고 시를 쓴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즐겁게 장사하면서 쓰고 있죠.”
수상 이후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철물점 주인’이라는 말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철물점은 그의 삶의 터전이자, 영감을 주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 동네에서 하나밖에 없는 철물점을 운영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철물, 기물 등 온갖 잡다한 것이 다 있는 ‘만물상’이다. 그러다 보니 홍씨에게는 생활 자체가 시다. 김수영 백석 서정주 시인을 좋아한다는 그는 시에 대한 ‘편식’이 없다.
“난해해서 꺼리는 미래파 시도 읽으려고 해요. 비록 전부를 알 수는 없지만, 요즘 어떤 시가 나오고 누구의 시가 화제인지 정도는 알고 있어요.”
고등학생 때의 꿈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는 홍씨는 소박하게 각오를 밝혔다.
“상을 받았다고 변할 것은 없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지내야죠. 세 아이의 엄마, 종갓집 맏며느리, 철물점 주인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거예요. 물론 시도 빠질 수 없죠. 제 생활 속에 시는 그대로 녹아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