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 탓만 하기엔 당장 닥쳐올 젊은 친구들의 등록금 대출 상환금이 가혹했고, 그들이 입을 정신적 내상의 흔적이 깊고도 짙어 보였다. ‘겁먹지 말고 너희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너희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그것이 새삼 말장난 같고 허황된 감상처럼 되어버렸으니 가르친다는 것 자체에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냥 현실적으로 학생 한 명 한 명의 ‘스펙’에 더 신경 써주고, 직업소개서 직원처럼 기업들에 인사나 다니는 게 맞지 않을까. 인문학적 교양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텝스나 자격증 특강 같은 것을 더 많이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한데 그것은 ‘가르침’일까 ‘안내’일까, 대학은 과연 ‘지식’을 주는 곳일까, ‘지성’을 키워주는 곳일까. 그런 생각이 졸업식 일주일 전부터 계속 내 머릿속을 헤집고 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리고 찾아온 졸업식 당일. 행사가 시작되기 한 시간 전에 여자 제자 한 명이 헐레벌떡 나를 찾아왔다. 그 친구는 1학년 2학기 때 학사경고를 맞아 이번에 동기들과 함께 졸업하지 못하는, 속칭 ‘5학년’에 진급하는 학생이었다. 한데 그녀는 동기들과 똑같이 졸업 가운을 입고, 하얀 스카프까지 목에 두르고 있었다.
“선생님,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꼭 좀 들어주셔야 해요, 네?”
그 친구의 말인즉슨,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 당연 당신의 딸이 이번에 졸업할 것이라 알고, 지금 막 올라오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신의 딸을 4년 동안 가르쳐준 선생님을 만나뵙고 인사드리겠다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나더러 가짜 졸업식을 도와달라는 거지?”
“네. 아버지는 제가 이번에 졸업하지 못하는 걸 알면 그 자리에서 쓰러질지도 몰라요.”
나는 좀 난감했다. 그래서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기에 미리 좀 잘하지!”
“에이, 선생님도…. 지난번에 잘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고 보니 나는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시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1학년 2학기 무렵, 강의에는 들어오지 않고 도서관 열람석에 앉아 ‘쓸모없는 지식’만 읽어댔던 그 친구는, 그 시절이 지난 뒤 이전보다 감수성이 한 뼘 정도 더 자랐다. 나는 그것 또한 소중한 것이라고 종종 그 친구와, 그 친구 동기들에게 말해주었다.
말을 그렇게 해버렸으니 어쩌나. 난 할 수 없이 그 친구의 공범이 되어, 꽃무늬 넥타이를 매고 올라온 부모님 앞에 고개를 숙이며 인사말을 건넸다.
“훌륭한 따님을 두셨습니다. 영특하고 성실해서 앞으로 사회생활도 잘할 거예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제자의 아버지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아이고, 다 선상님 덕분이죠. 얘가 매번 장학금을 탄 것도 선상님이 신경 써주신 덕분입니다.”
나는 잠깐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알고 있기론 그 친구는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제자는 황급히 내 시선을 피했고 나는 “하하하, 제가 뭘…” 하며 말끝을 흐렸다.
‘배움 짧은’ 제자 아버지의 교훈
함께 사진 찍고 인사말이나 해주면 끝날 줄 알았던 제자의 가짜 졸업식은, 그러나 부모님의 반강제적인 떠밀림으로 점심식사 자리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선상님께 따슨 밥 한 끼’ 대접하지 않고는 못 가겠다는, 늙은이 두 번 걸음 하게 하려면 마음대로 하시라는, 협박 아닌 협박에 넘어간 것이었다.
그렇게 학교 앞 낙지볶음집에 자리를 잡은 나와 제자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숟가락질을 하기 시작했다. 면구스러움에서 빨리 벗어나는 길은 그것밖에 없는 것 같았으니, ‘와구와구’ 삼켜댔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제자의 어머니는 ‘에구, 우리 선상님 시장하셨나 보네. 여기 밥 한 공기 더 줘요’라고 말해, 나를 다시 한 번 절망에 빠뜨렸다.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난 후, 제자의 아버지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에구, 이놈이 턱, 취직돼야지 선상님 마음도 편하실 터인데…. 아비로서 선상님 뵐 낯이 없네요.”
가뜩이나 소화되지 않던 음식이 명치끝에 턱, 한꺼번에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아닙니다. 제가 면목이 없지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대답했다.
“이놈이 지금은 취직을 못해서 이러고 있지만, 곧 지 밥벌이는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선상님께서도 너무 걱정 마십시오. 지가 배고프면 공사장 식당에라도 취직해야지 어쩌겠습니까?”
제자의 아버지는 남의 집 자식 이야기하듯, 무심한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제가 선상님보다 배움은 짧지만 이 나이까지 살아보니 말입니다, 그게 다 한순간이더라, 이 말씀이지요. 사람 나이가 예순이 되면 가방끈이 기나 짧으나 똑같아지고, 칠순이 되면 돈이 많거나 적거나 다 똑같아지는 법이지요. 그러니 그것들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 이 말씀입니다.”
제자의 아버지는 반주로 나온 소주를 반 병 가까이 혼자 마시면서 얘기했다.
“한데 그게 최고라고 어른들이 얘기하니까 이놈들이 불안해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다 우리 잘못이지요.”
제자의 어머니는 자꾸 제자 아버지의 무릎을 탁탁 치면서 내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제자의 아버지는 꿋꿋하게 할 말을 다 했다.
“얘를 대학에 보낸 건 공부하라고 보낸 거지, 취직하라고 보낸 게 아닙니다. 근데 이놈이 공부를 잘했으니 그러면 된 거 아닙니까?”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할 말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자의 부모님과 헤어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오늘, 죄송했어요….”
제자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네가 장학금을 받아? 그건 또 어떻게 한 거야?”
“그냥 뭐… 알바를 열심히 했죠.”
나는 제자의 마음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아 조금 울적해졌다.
“그래, 이제 어쩔 거야?”
“어쩌긴요? 다음 학기 다니고 졸업해야죠.”
“아니, 내 말은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어쩔 거냐고?”
“계속 시를 써봐야죠. 선생님도 새삼스럽게….”
“시 쓰면 뭘 먹고 살래? 그게 돈이 안 되잖아?”
나는 일부러 화난 척,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제자는 계속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에이, 선생님도. 우리에겐 미니스톱도 있고, 롯데리아도 있고, 김밥천국도 있잖아요. 돈은 거기서 벌면 되죠, 뭐.”
제자는 그렇게 말한 뒤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전화기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또 한 번 생각했다. 대학은 과연 ‘지식’을 가르치는 곳인가, ‘지성’을 가르치는 곳인가. 선생은 가르치는 존재인가, 배우는 존재인가. 나는 정말이지 점점 ‘무지한 스승’이 돼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