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의 본령은 삶의 현장과 소통하는 것이며, 대상 사건의 영역 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와 애환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 성적 소수자인 피해자의 법률상 지위를 위와 같이 인정함으로써, 이러한 배려가 이제 노경에 들어서는 피해자가 우리와 다름없는 이 사회의 보통사람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자유로이 어울려 자신의 성정체성에 합당한 편안하고 명예로운 여생을 보낼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부산지법 2009. 2.18 선고 2008고합669)
“부부 사이의 성(性)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룸과 동시에 신으로부터 부여받는 성스럽고도 신비로운 선물이다. (…) 그러므로 부부는 상호간의 이해와 협력, 사랑과 존중을 토대로 원만하고 편안한 성생활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 부부의 성은 축복이 된다. (…) 성적 결합이 부부 사이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는 정신과 영혼의 긴밀한 결합이 두 사람의 삶을 받쳐줘야 하며, 그것은 두 인격체의 깊은 사랑과 신뢰에 뿌리를 둬야 한다.” (부산지법 2009. 1.16 선고 2008고합808)
최근 성전환자에 대한 성폭행 및 강간 첫 인정, 부부 강간 첫 인정 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부산지법 형사5부 고종주 부장판사(60·사법시험 22회). 그의 판결문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이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 판사가 이런 판결을 내리는 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한몫했다. 그는 “사실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결국 합리적인 보충을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 판사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시(詩)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출퇴근 때마다 들고 다니는 그의 가방에는 늘 한두 권의 시집이 들어 있다. 그는 “모국어를 절차탁마한 시어들이 아름답다. 좋은 시인들이 많다 보니 읽을 시집도 굉장히 많다”고 할 만큼 시 예찬론자다. 부산대 법대 재학 중 경남 진주의 ‘개천예술제’에서 시로 입선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우리 것이 아닌 사랑’(부산대 출판부)이라는 시집을 펴냈을 정도다.
대부분 판결문 여전히 외계어 수준
사실 판결문 하면 딱딱하고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분명히 한글로 써 있건만 일반인에게는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2005년 타계한 어휘학자 김광해 교수(전 서울대 국어교육과)는 2003년 7월 국립국어연구원이 주최한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 방안 마련을 위한 학술대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판결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법에 대한 자신의 무지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오늘의 판결문이 난해한 까닭은 국어 문장으로서의 완성도가 미진하기 때문”이라며 “국어 판결문이 보여주는 난맥상은 판결문 특유의 문체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판결문도 정확하게만 쓴다면 어렵지 않게 독해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일반인이 판결문에서 감동을 느끼기란 힘들다. 하지만 모든 판결문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어떤 뛰어난 시, 수필보다 더 감동적인 판결문도 있다.
“다수 의견은, 문자를 낭독한 것이지… 법교의 해석인 점과 먼 것이다. 이와 같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모순에 걸리는 원인은 다수 의견이 ‘대법원 판례’를 제한 없이 문자에 얽매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 한 마리의 제비로서는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 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법원 1977. 9.28. 선고 77다1137)
이런 판결문은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사법연수원생 김모(28) 씨는 “감동적인 판결문을 읽을 때면 예비 법조인으로서 마음가짐을 다지게 된다”며 “‘법은 분명 약자를 위해 만든 것’이라는 법제정의 근본 취지를 다시 한 번 떠올렸다”고 말했다.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어떻게 하면 좀더 쉬운 판결문을 쓸 수 있을까’라는 법관의 고민은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로 이어진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바쁜 와중에도 경제학 심리학 정치학 등 인접 학문을 공부하면서 인문학적 지식을 쌓아간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평가를 받는 법원이지만 일부 판사들을 중심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판결문을 쓰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물론 문장이 미사여구로 가득하다고 해서 아름다운 판결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 판결문 안에 담겨 있어야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 역시 2007년 4월2일 군 법무관 출신 신임 법관 42명의 임명식사에서 “법관의 사건에 대한 이해와 논리에 공감하지 않고, 심리 자세에서 우러나는 인격에 감동하지 않은 당사자가 판결에 승복할 리 없다”며 “기록만 보고 작성한 판결문의 논리가 아무리 수려하고 정치(精緻)해도 소송 당사자나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0부 박철 부장판사(52·사법시험 24회)는 ‘아름다운 판결문’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쉬운 어휘와 감성적인 문체로 재판 당사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그의 판결문은 ‘설득의 판결문’으로 불린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판결을 내리면서 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내는 그의 판결문 하나하나가 한 편의 수필과도 같다.
일반인 이해할 논증 있어야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는 찬 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전고법 2006. 11.1. 선고 2006나1846)
그의 판결문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 배려, 공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판결서 글쓰기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이라는 논문에서 “과거에는 법관들이 판결문의 독자가 상급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독자가 당사자, 즉 일반시민이라고 생각이 바뀌게 됐다”며 “판결문에는 상급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함께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적 논증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흔히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문인은 작품으로 말하며,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한다. 법관 스스로는 만족할지 몰라도 국민은 현학적이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판결문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감동이 담긴 판결문으로 말하는 법관. 이것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법관의 모습일 것이다.
“부부 사이의 성(性)은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룸과 동시에 신으로부터 부여받는 성스럽고도 신비로운 선물이다. (…) 그러므로 부부는 상호간의 이해와 협력, 사랑과 존중을 토대로 원만하고 편안한 성생활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 부부의 성은 축복이 된다. (…) 성적 결합이 부부 사이를 유지하는 중요한 요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보다는 정신과 영혼의 긴밀한 결합이 두 사람의 삶을 받쳐줘야 하며, 그것은 두 인격체의 깊은 사랑과 신뢰에 뿌리를 둬야 한다.” (부산지법 2009. 1.16 선고 2008고합808)
최근 성전환자에 대한 성폭행 및 강간 첫 인정, 부부 강간 첫 인정 등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부산지법 형사5부 고종주 부장판사(60·사법시험 22회). 그의 판결문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이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노력을 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 판사가 이런 판결을 내리는 데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한몫했다. 그는 “사실은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지만 완벽할 수는 없다. 결국 합리적인 보충을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 판사는 인간을 이해하는 데 시(詩)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출퇴근 때마다 들고 다니는 그의 가방에는 늘 한두 권의 시집이 들어 있다. 그는 “모국어를 절차탁마한 시어들이 아름답다. 좋은 시인들이 많다 보니 읽을 시집도 굉장히 많다”고 할 만큼 시 예찬론자다. 부산대 법대 재학 중 경남 진주의 ‘개천예술제’에서 시로 입선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우리 것이 아닌 사랑’(부산대 출판부)이라는 시집을 펴냈을 정도다.
대부분 판결문 여전히 외계어 수준
사실 판결문 하면 딱딱하고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분명히 한글로 써 있건만 일반인에게는 ‘외계어’처럼 느껴진다. 2005년 타계한 어휘학자 김광해 교수(전 서울대 국어교육과)는 2003년 7월 국립국어연구원이 주최한 ‘국민의 글쓰기 능력 향상 방안 마련을 위한 학술대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판결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법에 대한 자신의 무지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 오늘의 판결문이 난해한 까닭은 국어 문장으로서의 완성도가 미진하기 때문”이라며 “국어 판결문이 보여주는 난맥상은 판결문 특유의 문체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판결문도 정확하게만 쓴다면 어렵지 않게 독해가 이뤄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일반인이 판결문에서 감동을 느끼기란 힘들다. 하지만 모든 판결문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어떤 뛰어난 시, 수필보다 더 감동적인 판결문도 있다.
“다수 의견은, 문자를 낭독한 것이지… 법교의 해석인 점과 먼 것이다. 이와 같이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모순에 걸리는 원인은 다수 의견이 ‘대법원 판례’를 제한 없이 문자에 얽매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 한 마리의 제비로서는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 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법원 1977. 9.28. 선고 77다1137)
<b>고종주</b> 부산지법 부장판사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어떻게 하면 좀더 쉬운 판결문을 쓸 수 있을까’라는 법관의 고민은 자연스레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로 이어진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판사는 “바쁜 와중에도 경제학 심리학 정치학 등 인접 학문을 공부하면서 인문학적 지식을 쌓아간다”고 말했다. 보수적인 평가를 받는 법원이지만 일부 판사들을 중심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판결문을 쓰려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물론 문장이 미사여구로 가득하다고 해서 아름다운 판결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 판결문 안에 담겨 있어야 한다. 이용훈 대법원장 역시 2007년 4월2일 군 법무관 출신 신임 법관 42명의 임명식사에서 “법관의 사건에 대한 이해와 논리에 공감하지 않고, 심리 자세에서 우러나는 인격에 감동하지 않은 당사자가 판결에 승복할 리 없다”며 “기록만 보고 작성한 판결문의 논리가 아무리 수려하고 정치(精緻)해도 소송 당사자나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0부 박철 부장판사(52·사법시험 24회)는 ‘아름다운 판결문’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 쉬운 어휘와 감성적인 문체로 재판 당사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그의 판결문은 ‘설득의 판결문’으로 불린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판결을 내리면서 이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내는 그의 판결문 하나하나가 한 편의 수필과도 같다.
<b>박철</b> 서울고법 부장판사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는 찬 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해야 한다고 믿는다.” (대전고법 2006. 11.1. 선고 2006나1846)
그의 판결문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 배려, 공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판결서 글쓰기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이라는 논문에서 “과거에는 법관들이 판결문의 독자가 상급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독자가 당사자, 즉 일반시민이라고 생각이 바뀌게 됐다”며 “판결문에는 상급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함께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적 논증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흔히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문인은 작품으로 말하며, 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고 한다. 법관 스스로는 만족할지 몰라도 국민은 현학적이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판결문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과 감동이 담긴 판결문으로 말하는 법관. 이것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진정한 법관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