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도 수입되고 있는 이탈리아 스파클링 와인 스푸만테 몬테니사 브뤼트.
‘양보다 질’… 소량 명품화 추구
이탈리아 반도 남부와 북부의 와인 생산량이 고르게 증가한 것은 1위 등극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남부 시칠리아는 포도나무 병충해로 고전한 2007년에 비해 생산량이 50%나 증가하는 쾌거를 이뤘다. 수년 전부터 북부 재벌 와이너리들이 시칠리아 땅을 사들여 대농장을 구축하고 품종을 다양화하는 등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시칠리아는 1위인 동북부 베네토 주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내 와인 생산량 2위를 차지했다.
이탈리아는 이렇듯 와인 최대 생산국이지만, 국민들의 와인 소비는 점점 감소하는 추세다. 1970년대 1인당 연간 와인 소비량이 110ℓ였는데, 현재는 45ℓ 정도로 크게 줄었다. 이탈리아 와인 문화의 새 트렌드는 ‘양보다 질’이다. 취할 정도로 많이 마시지 않고, 음식과 궁합이 맞는 와인을 선택해 음미하려는 것. 이런 와인 트렌드에 맞춰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은 ‘소량화, 명품화’를 추구하고 있다. 사실 이번에 1위를 차지하긴 했지만, 이탈리아 와인 생산량은 10년 전보다 30%가량 감소한 수준이다.
와인이 특히 사랑받는 연말연시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불황이 역시 와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산 와인의 최대 수입국이 미국인데, 이미 2008년 1/4분기 수입량이 3.5% 줄어 와인 경기침체를 예고했다. 이탈리아 농업협동조합(Coldiretti)은 세계적 경기불황으로 올해 이탈리아 와인 가격이 20%가량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이탈리아 와이너리들의 새로운 마케팅도 눈길을 끈다. 와인 라벨을 유명 화가의 그림으로 제작해 ‘와인 그 자체가 예술’이란 점을 강조하는가 하면, 고객 스스로가 블렌딩할 포도 품종을 선정하게 해 맞춤형 와인을 생산해주기도 한다. 와인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표기하는 것도 새로 등장한 마케팅이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이탈리아인들이 연말연시 파티 시즌에 와인에 소비하는 비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한 와인 에이전시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최소 50유로(약 9만3000원) 이상을 와인을 사는 데 쓰겠다고 답했다. 200유로 이상을 쓰겠다고 한 이탈리아인도 21%에 달했고, 지난해보다 와인 소비를 줄이겠다는 응답자는 5% 이하에 그쳤다. 이런 ‘와인 사랑’에 대해 한 이탈리아인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돋워주는 게 와인의 매력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파클링 와인 ‘스푸만테’ 인기 상한가
요즘 이탈리아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이탈리아산 스파클링 와인 ‘스푸만테(spumante)’다. 프랑스산 샴페인은 매출 감소로 크게 고전하는 데 비해 스푸만테는 호경기를 누리고 있다. 이번 연말연시에 이탈리아 안팎에서 1억2000만 병의 스푸만테가 팔릴 것으로 추정된다. 연간 총생산량 3억 병 중 40%가 연말연시의 짧은 기간에 소비되는 것이다. 스푸만테를 사랑하는 나라는 영국 스페인 러시아 일본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샴페인보다 가격 대비 품질이 뛰어나다는 평가와 함께 달러화 약세가 스푸만테 수출을 도왔다는 분석이다.
덕분에 스푸만테를 생산하는 와이너리들은 경기침체를 기회로 삼아 수출 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스푸만테를 식사 전 식욕을 돋우는 아페리티보(aperitivo)로, 디저트와 함께, 또 축배용으로 즐겨 마신다.
한편 이탈리아가 와인 생산량 1위 국가로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일자리 복지’ 정책이 한몫했다. 포도 수확철에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과 은퇴한 노인들이 농장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바우처 제도’를 처음 실시해 큰 인기를 모은 것이다. 정부는 불법 노동을 막고 20대와 60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면서 이들의 노동력을 유용하게 쓰자는 취지에서 바우처 제도를 도입했다 . 2008년 이탈리아의 많은 젊은이와 노인들은 아름다운 풍광의 와이너리에서 포도를 수확하는 재미를 누린 뒤 농장주에게 바우처를 받아 우체국에 가서 현금으로 바꿔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