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 국정감사 자료를 전달하기 위해 국회의원실을 찾은 피감기관 직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82.645㎡(25평)의 의원실, 그중 36.7㎡(11.1평)의 보좌진실에는 통로나 책상 가릴 것 없이 각종 자료가 쌓여 있고, 복도 중간중간 놓인 의자에서는 보좌진과 피감기관 직원들 간 “자료가 성의 없다” “왜 의심하느냐?”는 식의 설전이 한창이다. 각 층 화장실 옆에는 보좌관 ‘취침용’으로 주문한 접이식 침대 포장박스가 쌓여 있다. 9월29, 30일 이틀 동안 ‘주간동아’가 방문한 12개 의원실 보좌관 대부분은 “선수끼리 왜 그러냐” “오늘 당장 자료 보내세요”라며 한참을 피감기관 측과 전화통화한 뒤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막 전화를 끊은 보좌관의 말에서는 삭이지 못한 열기가 배어 나왔다.
국회 의원회관 1층 로비 검색대의 한 국회사무처 직원은 “국감 기간 의원회관을 찾는 사람은 평소의 4~5배”라며 “낮밤이 따로 없다. 대부분 피감기관 직원들과 민원인”이라고 말했다.
10월6일부터 25일까지 20일간 열리는 2008년 국정감사는 23~24일 사실상 종결되며, 상임위별 논의를 거쳐 필요 시 24~25일 전 기관에 대한 종합감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矛盾…“찔러라” VS “최대한 늦게 그리고 두루뭉술하게”
“각 중소기업(국회의원) 299개사가 시장(국감)에 최고의 히트상품(이슈 선점)을 내놓기 위해 상품을 만들고 있으니 열이 날 수밖에요.”
국회 손숙미(한나라당) 의원실 천창호 보좌관은 보좌진이 최고의 히트상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피감기관 자료 수집은 통과제의(通過祭儀)라고 말했다. 예리함과 논리성을 뒷받침하고 반론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선 ‘탄탄한 자료’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피감기관은 대부분 개인정보 보호 때문에, 혹은 왜 그런 자료를 줘야 하느냐고 되묻죠. 그때부터 어르고 달래고… 전쟁이 시작되는 거죠.”
천 보좌관은 헌혈을 하면 안 되는 약물 복용자의 헌혈 사례에 관한 자료를 받기 위해 이날 ‘개인정보 보호’를 내세운 적십자사 측과 밀고 당기기를 하고 있었다.
‘주간동아’가 이날 방문한 의원실은 적게는 50여 건, 많게는 400여 건의 자료를 피감기관에 요청했지만 이날까지 제출받은 자료는 20% 정도였다.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름은 이모 씨로 하고… 주민번호는 뒷자리를 지우고… 그럼 상위 부처와 협의해 최대한 빨리 연락을 달라”는 식의 통화내용. 그만큼 피감기관이 자료 제출을 꺼리면서 내건 명분은 개인정보 유출이었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제10조에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경우 상임위 재적인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의원의 A보좌관은 “관례적으로 먼저 자료제출을 요구한 뒤 상임위 의결을 받는데 법대로 할 경우 자료를 분석할 시간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받으려는 자와 주지 않으려는 자 사이의 신경전에서는 가끔 집중하지 않으면 당할 수도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실 B보좌관의 말이다. “고용보험기금과 산재보험기금이 14조원 정도인데 운용실적을 보내달라고 하자 지난해까지의 실적만 보내왔더라고요. 물론 수익을 냈죠. 그런데 올해 실적은 안 보내더라고요. 결재가 안 났다고 하다가도 혼난다, 선수끼리 봐달라 등등 이유도 다양해요. 결국 자료를 받았더니 8월 말까지 3400억원 손실이었어요.” 그는 처음엔 ‘잘 운영됐구나’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순간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떠올라 올해 실적을 받아냈다고 했다. 결국 기금 운용의 문제점도 파헤칠 수 있었다고.
C보좌관은 ‘풍선 효과’를 이야기하며 허탈해했다. 한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했는데 산하 협회에서 ‘회유성 청탁’이 들어온 것. 민감한 자료 요구에 곤욕을 치르던 피감기관이 산하 기관에 공을 넘긴 것이다. “‘앞으로 의원 후원금도 많이 내고 의원 편이 돼드리겠다. 의원 지역구에도 우리 협회 회원이 수만명’이라고 하는데 ‘잘못하면 재미없다’는 말투였죠. 의원에게 얘기해 판단하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보좌관은 “피감기관의 직원이 많을 경우 세액공제로 연말정산 때 돌려받을 수 있는 금액인 10만원씩 정치후원비로 내겠다는 ‘딜(거래)’도 받았어요. 직원이 1000명이면 후원금만 1억입니다. 무시 못할 금액이죠”라고 말했다.
피감기관 국회담당 “의욕 앞선 보좌관 때문에 죽을 맛”
국감을 앞두고 환하게 불을 밝힌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왼쪽).박대해 의원 보좌진이 10월1일 국감 자료 수집 점검회의를 하고 있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순간 아연실색. 그들은 “우리와 같은 피감기관 직원인 줄 알았다”며 조금 전 얘기는 잊어달라고 통사정했다. 실명을 거론하지 않겠다고 확약을 하자 잠시 서로의 눈을 쳐다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국정감사 일정 잡힌 게 한 달도 안 됐고 자료 제출은 최근 5일 사이에 몰리다 보니 죽겠더라고요. 그런데 하루 만에 내놓으라 하고, 무조건 달라고 하고…. ‘급한 불부터 끄자’는 생각에 달려왔죠.” “저는 상관을 증인으로 채택한다는 ‘비보(悲報)’가 날아들어 확인하러 왔어요. 만약 증인 채택이 되면 의원들의 질의 내용을 먼저 빼내야 하는데….” 이들은 18대 국회 첫 국감인 데다 초선 의원도 많아 예년보다 요구사항이 많아졌다고 입을 모았다.
피감기관의 국회담당 직원들끼리는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가지면서 의원 및 보좌관들의 성향 파악과 정보를 교환한다고. 평소에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거나 경조사를 챙기면서 국감 시즌을 준비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직원은 “의원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하는 각종 세미나도 대부분 피감기관이 협찬합니다. 피감기관 측에 유리한 내용을 보좌관에게 알려줘 의원입법을 돕기도 하죠.” 그들은 자신을 국회와 피감기관의 ‘윤활유’라고 했다. 요즘처럼 야근이 많을 때는 피자, 통닭 등 야식을 ‘쏘기도’ 한다고. 한 직원은 “야식을 배달해드리겠다고 해도 사양하는 보좌진이 많아 일단 배달시켜 놓고 전화하기도 한다”며 “친해보려는 노력으로 봐달라”고 했다.
물론 일부 보좌진은 국감 즈음 밤늦게 전화해 술값을 대납하라든가, 고급 술집으로 가자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이들은 ‘힘 있는’ 상임위 소속 의원 보좌관들이 주로 ‘심야전화’를 한다고 귀띔했다.
현재 행정부나 기업, 협회 등의 국회담당은 대략 3000명으로 알려져 있으며, 수십 년간 국회담당을 한 직원도 있다고 한다.
국감 준비 의원들의 천태만상
“옆방 영감(보좌진은 의원을 이렇게 부른다) 때문에 얼마 전 그 방 분위기가 영 아니었어요. ‘누구는 어제 신문과 밤 9시 뉴스에 나왔는데 나는 왜 안 나오느냐. 내가 걔(옆방 의원을 지칭)보다 못한 게 뭐냐’고 책임을 추궁한 거죠.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지막 말은 “(국감 끝나면) 확 바꿔버리든지 해야지. 나 원~”이었다고 한다.(사실 해마다 국감 후 보좌진이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 임명과 해고는 간단하다. 국회 사무처에 임명(면직)요청서를 내면 된다.)
D보좌관은 “결국 의원을 ‘국감 스타’ 만들려는 보좌관들의 열정에 기름을 붓거나, 반대로 찬물을 끼얹는 사람 모두 의원”이라고 말했다.
이틀간 만난 보좌관들에 따르면 국감을 준비하는 의원들의 스타일도 천양지차. 노골적으로 언론이 좋아하는 ‘섹시한’ 자료를 만들라는 ‘노출형’부터 자료 수집과 언론 보도자료 발송 일자를 하나하나 알려주는 ‘견인형’, 질의서까지 직접 써야 직성이 풀리는 ‘독야청청형’, 언론 노출보다는 정책 중심으로 가자는 ‘정책형’ 등 가지가지란다. 하지만 초선 의원은 대부분 언론을 통해 지명도를 높이려는 마음이 앞서는데, 특히 비례대표일 경우 자신의 전문성을 제대로 알려야 하고 차기 지역구 공천을 위해 여느 의원들보다 신경이 날카롭다고 한다. 다선 의원일수록 국감보다는 지역구에 눈이 쏠리게 마련. E비서관은 “이미 지명도도 있으니 지역구 관리만 하면 된다는 식”이라고 했다. 실제 9월30일 방문한 한 3선 의원실은 보좌진 2명이 비교적 ‘여유롭게’ 국감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감 비효율성도 문제
강용석 의원실의 김현태 보좌관(왼쪽)이 10월1일 비서관,인턴비서들과 야식을 먹으며 국감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F보좌관은 보좌진의 메신저 대화명을 보면‘국감 피로도’를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여름을 넘기면서 ‘해보는 거야’ ‘필승 국감’ 등의 대화명이 주를 이루다가 9월 중순을 지나며 ‘일하고 자고, 일하고 자고’ ‘12시 퇴근 목표’ ‘여의도시계는 국방부시계보다 느리다’ 등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
그는“피로도가 높은 것은 결국 어느 의원이 언론의 관심을 받느냐에 따라 보좌진 성적이 달라지고, 국감 때 잘 뜨는 언론보도 중심으로 준비하는 우리 스스로의 문제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실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2005년 국정감사 이후 △짧은 질의시간 △의원 간 질의 내용 중복 등을 지적하고 비효율적인 국감을 좀더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감 질의시간 동안 의원이 가장 많이 한 말은 “시간이 없으니 짧게 답하세요”였다며 국감의 비효율성을 꼬집기도 했다.
해마다 대안으로 나오는, 상임위 의원끼리 분야를 나눠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집중 국감’ 혹은 ‘상시 국감’은 요원한 걸까.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얼마 전 상임위별 국감 준비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에서 국감 스타가 된 모 의원 사례를 설명하며 ‘한 분야만 파라’고 했어요. 사실 2005년 국감에서 기생충 김치(고경화 의원),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인터넷 민원서류 발급 시스템 해킹 시연(권오을 의원) 등으로 국감 스타가 됐죠. 그게 쉽지 않아요.”
G보좌관은 모든 의원이 협력해서 분야를 나눠 특정 분야에서 심도 깊은 감사를 하는 것은 ‘이상(理想)’일 뿐이라고 했다. 언론이 관심을 두지 않는 분야를 맡을 의원이 누가 있겠느냐는 설명. 결국 의원 개개인의 ‘각개약진’이 계속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국감이 정쟁으로 흘러버리면 국감 준비가‘말짱 도루묵’이 되기 일쑤다.
2008 대한민국 국감, 그 치열했던 준비 속에서는 과연 ‘누구’를 위해 자료 수집하고 국감을 하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해답을 구하려는 의원들과 보좌진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