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도 국가 간 영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무역과 우주개발, 사이버 전쟁 시대에도 땅 차지를 위한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하다. 독도 영유권 싸움은 국민 정신력과 국민적 자존심 싸움처럼 보인다.
주간동아 651호는 최근 영토 표기 문제로 불거진 독도 영유권과 관련된 기사를 실었다. 이번에는 특히 영토의 실효적 지배라는 차원에서 보존돼야 할, 우리나라 산악회가 세운 영토푯말을 우리 손으로 철거한 해이해진 국민정신을 비판적 시각에서 다뤘다. 독도 영유권 문제가 터질 때마다 공격의 화살을 일본에게만 날렸던 우리 언론의 시각이 내부로 돌려졌다는 점에서 참신하고 가치 있는 기사였다.
반면 묵비권에 대한 기사는 ‘잘못 사용했다간 괘씸죄로 패가망신한다’는 현실패배적 관점 때문에 씁쓸했다. 묵비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관련된 권리다. 우리나라 검찰, 법원이 이 권리의 취지와 가치를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면, 언론은 이런 한국적 상황에 대해 좀더 과감하게 비판의 화살을 날렸어야 했다.
커버스토리 ‘신(新) 경기도 남자가 사는 법’은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남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기사였다. 서울 집값 때문에 경기도로 밀려난 서울 남성들이 겪는 애환을 그린 것이다. 가슴에 와닿는 생활과 밀착된 심층 기사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시각에서 다룬 나머지 기사의 전체적 분위기는 우울하다. 그리고 관점이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다. 통합적 관점에서 경기도에 사는 여성의 문제도 함께 다뤘다면 경기도 주민의 삶을 다룬 라이프스타일 보고서로도 손색없을 기사였다.
올림픽 관련 특집 기사에서는 역대 금메달리스트들의 현재 삶을 추적했다. 모든 인생사가 그렇듯, 화려한 올림픽 스타들이라고 인생까지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독자들에게 스포츠 스타의 이후 삶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배려한 것으로 보이는 기사였다.
요즘 독자들은 건강 기사에 특히 예민하다. 그런데 클리닉, 건강 관련 기사는 왠지 간접광고나 홍보성 기사 냄새가 난다. 눈길이 확 가는 좋은 건강 기사를 다뤘으면 좋겠다.
연예기사에서는 올림픽 ‘훈남’을 다뤘다. 스포테이너가 된 올림픽 남자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미녀 스포츠 선수의 얼굴이나 몸매에 집중하던 과거 언론의 시각이 독자의 관심과 시대 변화에 따라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주간동아 651호는 최근 영토 표기 문제로 불거진 독도 영유권과 관련된 기사를 실었다. 이번에는 특히 영토의 실효적 지배라는 차원에서 보존돼야 할, 우리나라 산악회가 세운 영토푯말을 우리 손으로 철거한 해이해진 국민정신을 비판적 시각에서 다뤘다. 독도 영유권 문제가 터질 때마다 공격의 화살을 일본에게만 날렸던 우리 언론의 시각이 내부로 돌려졌다는 점에서 참신하고 가치 있는 기사였다.
반면 묵비권에 대한 기사는 ‘잘못 사용했다간 괘씸죄로 패가망신한다’는 현실패배적 관점 때문에 씁쓸했다. 묵비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과 관련된 권리다. 우리나라 검찰, 법원이 이 권리의 취지와 가치를 잘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면, 언론은 이런 한국적 상황에 대해 좀더 과감하게 비판의 화살을 날렸어야 했다.
커버스토리 ‘신(新) 경기도 남자가 사는 법’은 경기도에 살면서 서울의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남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기사였다. 서울 집값 때문에 경기도로 밀려난 서울 남성들이 겪는 애환을 그린 것이다. 가슴에 와닿는 생활과 밀착된 심층 기사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너무나 현실적인 시각에서 다룬 나머지 기사의 전체적 분위기는 우울하다. 그리고 관점이 지나치게 남성 중심적이다. 통합적 관점에서 경기도에 사는 여성의 문제도 함께 다뤘다면 경기도 주민의 삶을 다룬 라이프스타일 보고서로도 손색없을 기사였다.
<b>현택수</b><br> 고려대 교수·사회학
요즘 독자들은 건강 기사에 특히 예민하다. 그런데 클리닉, 건강 관련 기사는 왠지 간접광고나 홍보성 기사 냄새가 난다. 눈길이 확 가는 좋은 건강 기사를 다뤘으면 좋겠다.
연예기사에서는 올림픽 ‘훈남’을 다뤘다. 스포테이너가 된 올림픽 남자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미녀 스포츠 선수의 얼굴이나 몸매에 집중하던 과거 언론의 시각이 독자의 관심과 시대 변화에 따라 많이 변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