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구슬이 운다’는 뜻을 가진 명옥헌. 단아한 건물 앞에 연못과 배롱나무가 있다.
그는 서정인의 소설이 왜 널리 읽히지 않는가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이며 밀려드는 카드회사의 독촉 전화에도 태연히 남대문 지하상가에서 음반을 수십 장씩 고르는 사람이며, 그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꽤나 피곤하게 하였음에도 지금은 남산 아래에 ‘와지트’라는, 와인과 오디오와 예술이 뒤엉킨 아지트를 건사하는 사람인데, 무엇보다 그 탐미적 감각과 이를 풀어내는 구담(口談)이 주위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할 만큼 매혹적인 사람이다.
단아한 건물 앞에 연못과 배롱나무의 운치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술 한잔 입에 대지 못하는 사람도 와인 맛에 스며들게 되고 귀동냥으로 음반 이름이나 알던 사람도 실제로 그 음악을 들은 것보다 더 깊이 사무치게 되고, 달리 시간 낼 수 없어 천하일미 구경도 못한 사람도 그와 30분 정담 나누면 온 산하의 냉면이며 국밥의 진미를 그윽하게 누릴 수 있다. 백기완 천승세 황석영 방동규 유홍준 등을 일컬어 ‘조선의 구라’ 운운하는 얘기가 재야의 선술집에서 오래 구전되어왔으나 1980년대 이후로 한정한다면 ‘구라’의 1번 타자로 강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한번은 이렇게 짧은 언사를 쓴 적이 있다.
“근 이십여 년을 함께 지내온 오디오와 만오천 장의 음반만이 이제 내 옆에 남았다. 이들이 없는 나의 삶은 생각할 수 없다. 오디오와 LP, 이것이 내 사람의 유일한 존재 증명이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전라남도 담양에 살고 있다. 와호장룡같이 멋있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대숲이 둘러싸고 있는 집에서 난생처음 고요함을 접하는 중이다.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담양에 묻히고 싶다.”
담양은 바로 그런 곳이다. 내가 전적으로 그 감각과 판단을 신뢰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의 언명 때문에라도 나는 담양, 그곳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지막한 소리로, 그러나 묵직하고도 그윽한 소리로 삶의 이면을 성찰해온 시인 나희덕도 방을 얻다라는 시의 앞머리에 이렇게 썼다.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 있는 마당을 보았다.
연배 높은 분들에게는 ‘담양’ 하면 대나무와 죽공예품이 생각나지만,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깊이 읽은 세대에게 담양은 곧 소쇄원을 가리킨다. 계곡 사이로 흐르는 청류(淸流)를 완상하기 위하여 대숲 속에 건물이 들어서고, 그곳의 바위나 나무처럼, 그저 가만히 들어앉은 광풍각과 제월당이 계류와 부드럽게 사무쳐서 자연과 인위의 경계가 매끄럽게 흐려지는 대표적 정원이 바로 소쇄원이다. 홍문관 대사헌으로 있던 소쇄 양산보가 기묘사화(己卯士禍) 때 스승 조광조가 사사되자 모든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와 조성한 공간이다. 1571년 3월25일, 당대의 철학자 고봉 기대승은 무등산을 지나서 소쇄원 환벽당을 지나 서하당에 묵으면서라는 시로써 소쇄원의 스산한 풍취를 그렸다.
瀟灑無塵境 티끌 하나 없는 소쇄원 이곳에서
淸高不染心 청고한 그 마음 때묻지 않았구려.
經營知幾日 이곳을 경영한 지 몇 해나 되었는고
花木自成陰 화목은 저절로 의젓하도다.
撫跡興餘賞 흥겨운 마음으로 옛 자취를 쓰다듬고
懷人費獨吟 주인 회상하며 나 홀로 읊조렸지.
徘徊久佇立 이곳저곳 배회하다 우두커니 서 있으니
庭畔下幽禽 산새들 훨훨 날아 뜰 앞에 앉는구나.
소쇄원의 담장(왼쪽)과 소쇄원 앞 대나무숲.
“밤에는 빛도 소리도 고스란히 살아 있다. 온갖 빛과 온갖 소리가 뒤엉켜 아우성치던 대낮을 보내고 적요만이 가득한 한밤, 가만히 누워 눈과 귀를 열어보면 대낮에 미처 보지 못했던 빛과 대낮에 미처 듣지 못했던 소리가 있다. 그 청아한 빛과 소리 속으로 나의 존재가 한 줄기 가느다란 빛이 되어 날아다닌다. (중략) 풍성할 때보다는 빈곤할 때, 찬란할 때보다는 암울할 때, 대낮보다는 한밤에 우리는 빛과 소리를 새로이 발견한다. 우리가 지켜가야 할 삶의 의미란 결국 작은 것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지엄한 철학을 명옥헌 못가에서 만난다.”
시인 황지우 1990년대 초 명옥헌 인근에 집필실 만들고 詩作
일컬어 명옥헌(鳴玉軒)이라, 낮게 흐른 계류가 연못에서 가볍게 흔들리는 소리를 옛 주인이 ‘옥구슬이 운다’고 표현한 것인데, 이런 곳이라면 누구라도 시인이 되거니와 실제로 1990년대 초에 시인 황지우는 명옥헌 아래 연못가 허름한 농가를 건사하여 집필실로 삼고는 하루 종일 낮은 산과 연못과 달을 보며 지내면서, 물 빠진 연못을 비롯한 시들을 얻었다. 강헌 나희덕 심상대가 그러했듯이 황지우가 명옥헌 연못을 가만히 들여다본 것은, 한가로운 전원의 음풍농월이 아님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紫薇나무가/ 나의 화엄 연못, 지상에 붙들고 있네// 이제는 아름다운 것, 보는 것도 지겹지만/ 화산재처럼 떨어지는 자미꽃들, 내 발등에 남기고/ 공중에 뜬 나의 화엄 연못, 이륙하려 하네// 가장자리를 밝혀 중심을 비추던/ 그 따갑게 환한 그곳; 세상으로부터 잊혀진/ 中心樹, 폭발을 마치고// 난분분한 붉은 재들 흩뿌리는데/ 나는 이 우주 잔치가 어지러워서/ 연못가에 眞露 들고 쓰러져버렸네// 하, 이럴 때 그것이 찾아왔다면/ 하하하 웃으면서 죽어줄 수 있었을 텐데/ 깨어나 보니 진물 난 눈에/ 다섯 그루의 노송과 스물여덟 그루의 자미나무가/ 나의 연못을 떠나버렸네// 한때는 하늘을 종횡무진 갈고 다니며/ 구름 뜯어먹던 물고기들의/ 사라진 水面;/ 물 빠진 연못, 내 비참한 바닥,/ 금이 쩍쩍 난 진흙 우에/ 소주병 놓여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