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언론은 △‘미래지향’ 약속하고 뒤통수 친 일본 정부 △실용외교 한 달 만에 독도에서 ‘뒤통수’ 맞다 △新한일관계 약속 한 달 만에 뒤통수…실용외교 ‘독도 암초’ △‘미래’ 뒤통수 친 日 경고 등의 제목으로 관련 기사를 쏟아냈다.
5월21일 외교부 주중철 일본과장은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안심을 했는데…. 크게 생각하지 못했다”고 실토했다. 일본은 과연 손 내민 한국에 느닷없이 뒤통수를 친 것일까. 외교부는 사흘 만에 ‘일본의 도발’에서 왜 ‘대응 실패’를 인정하게 된 것일까.
문제의 발단이 됐던 5월18일자 요미우리신문 기사를 보자. “문부과학성은 17일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신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를 우리나라(일본) 고유 영토라고 새로이 명기할 방침을 굳혔다(文部科學省は17日, 中校社科の新習指導要領の解書に, 韓と領有を巡っていのある竹島を 「我が固有の領土」として新たに明記する方針を固めた). 지금까지 지도요령과 해설서에는 북방영토에 관한 기술은 있었지만 독도의 기술은 한일관계에 대한 배려 등으로 미뤄져왔다….”
시험문제 출제 참고자료 엄청난 파급력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왼쪽)이 5월19일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일본 정부가 교과서에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명기하려 한다는 보도에 우려를 표시했다. 두 사람의 표정이 잔뜩 굳어있다.
일본의 모든 교과서는 4년마다 검정(檢定)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을 통과하려면 해설서를 봐야 한다. 해설서에 부합되지 않으면 검정 통과는 어렵다. 특히 해설서는 학생들의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 주요한 참고자료라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일본에서는 이미 2005년부터 후소샤와 오사카서적 등 일부 출판사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교과서를 펴냈고, 일부 학교에서 이것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민간 차원의 일”이라거나 “정부 입장은 아니다”라며 논란을 비켜갔다. 하지만 사실상 검정 통과는 ‘일본 정부의 용인’이 없으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이는 그렇다 치고, 해설서에 싣는다는 것은 정부가 주도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이어서 ‘차원’이 다른 문제다.
외교부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주 과장은 “해설서는 선생님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지침이다. 그리고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기술하지 않았던 많은 출판사들도 새로 추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차원이 다른’ 신지도요령과 해설서 문제는 한국 언론의 지적대로 갑자기 불거져나온 것일까. 요미우리신문은 “문부성이 사회과 해설서에 독도 기술을 둘러싸고 2005년 3월 참의원 문교과학위원회에서 당시 나카야마 문부과학상이 ‘다음의 지도요령(2008년 신지도요령)에서는 반드시 확실하게(독도 영유권을) 써야 한다’고 말해 문부성이 검토해왔다(2005年3月の院文科委員で中山成彬文科相(時)が 「次の指導要領ではきちんと書くべきだ」と述べ, 同省で討した緯がある)”고 보도했다. 5월20일자에는 “시마네현 정부도 2005년 이후 독도 문제를 학습지도요령으로 취급할 것을 요구해왔다”고 전했다. 이미 3년 전부터 이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와 검토가 진행됐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일관계를 배려’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011년 초등학교에서, 2012년 중학교에서 전면 실시되는 신지도요령은 이미 3월 문부성 관보를 통해 고시됐다. 독도 영유권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요미우리신문은 그 배경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한일 신시대 합의’ 양국 시각차 뚜렷
“문무성은 당초 2월에 발표하려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2월)과 방일(4월) 등으로 한일관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점을 고려해 실현되지 못했다. 그래서 자민당 내 불만에 대처하고(한일관계를 고려해)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 후에 만드는 해설서에 명기한다는 대응을 취했다(そこで, 文科省は自民の不にえる意味からも, 大統領日後に作成時期を迎えた新解書への明記というをとった).”
마이니치신문의 5월18일자 분석도 비슷하다. “현행 지도요령은 북방영토만 (일본 고유 영토로) 언급하고 있다. (신지도요령) 개정에 맞춰 자민당 일부에서 독도도 명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일 정상회담에서 셔틀외교 재개를 합의한 시기여서 (지도요령이 아니라) 해설서에 독도 문제를 기술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문무성은 양국의 화해 분위기와 우익 성향 의원을 모두 감안해 3월 고시된 신지도요령에는 독도 영유권 규정을 넣지 않았지만 6, 7월경 만들어지는 해설서에 넣으려는, 일본 측에선 배려지만 한국 측에서 볼 땐 ‘절묘한 줄타기’를 한 셈이다.
이웅현 도쿄대 박사(정치학)는 “시기가 시기인 만큼 지도요령에 명기하는 것보다 이 대통령 방일 후면 해설서 발표시기가 되니 거기에 맞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 과장은 “처음엔 신지도요령에 포함시킬 것으로 생각했다. 지난해처럼 한일관계가 냉각됐으면 포함시켰을 것이다. (이 대통령 취임 후) 한일관계가 좋아졌고,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우익이 아닌 데다 지도요령에 포함되지 않아 ‘도발 의도가 없구나’라고 생각했다. 보통 상위법(지도요령)이 안 되면 하위법(해설서)에도 안 넣는데….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4·21 한일 정상회담에서 미래지향적 관계에 힘을 모으기로 한 ‘한일 신시대 합의’에 대한 양국의 시각차도 뚜렷하다. “한일 정상회담에선 일본 측 설명에 따르면, 독도의 영유권과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는 의제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竹島(韓名·島)の領有や, 排他的水域(EEZ)の境界問題は議題にならなかったという·4월21일자 마이니치신문).” “한일 정상회담에서 경제 분야와 대북정책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역사 문제를 덮어둔 것은 서로 덕 볼 게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5월20일자 도쿄신문).”
일본 독도 프로그래밍 체크 장기 대책 세워야
일본 극우단체가 4월21일 이명박 대통령이일본경제단체 주최 오찬에 참석한 제국호텔 입구에서, 독도를 자기들의 땅이라며 집회를 벌이자 경찰들이 제지하고 있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해 “우리는 미래지향적 얘기를 하면 독도 영유권 등 영토와 역사 문제까지 일본이 거론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일본은 논외로 생각했다. ‘미래’는 좋지만 독도까지 협의 대상은 아니라고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의 ‘판단 미스’란 것.
물론 내각제인 일본에선 장관이 표를 의식하는 발언을 하는 것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보수층 표’ 때문이라도 독도 문제는 나올 수밖에 없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퇴진 이후 세력 기반이 약화된 보수 우파 성향 정치인들이 정치력 회복의 수단으로 영토 분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도 정부와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따라서 늦어도 7월 해설서 내용이 발표될 때까지 이 문제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결과에 따라선 ‘해설서 후폭풍’도 메가톤급이 될 수 있다. 후쿠다 내각 지지율이 10%대(5월17, 18일 아사히신문 조사)로 하락하면서 ‘무기력한 후쿠다 내각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일본 내 분위기도 후폭풍 위험성을 더하고 있다.
일본 언론 보도에 이례적으로 대사를 불러들여 강력 항의한 우리 정부의 대응도 ‘시계(視界) 제로’의 현시점에서 ‘후폭풍을 미리 막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동북아역사재단 배진수 박사는 “즉각 주한 일본대사를 부른 것과 ‘확정된 게 아니다’라는 답변을 얻어낸 것은 적절한 조치였다. 지금은 지켜봐야 할 때”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진행돼온 문제를 주시하지 못한 것과, 신한일관계를 연다면서도 일본과의 ‘소통 부재’로 인한 혼선 및 장기적 대응방안 부재 등이 계속된다면 이명박 정부의 ‘실용 외교’는 물론, 6자 회담 등 ‘신(新)조선책략’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많다. 이미 2005년 교과서에 독도 영유권 문제가 실리면서 이젠 관례화돼 한국 정부가 문제제기를 해도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기석 서울대 명예교수는 “독도 문제에 대해 장기적인 대처계획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그때그때 대응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자꾸 (일본에 의해) 밀려간다. 일본의 (독도) 프로그래밍을 체크하는 장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정철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일본이 정해놓은 수순을 밟고 있는 듯하다. 이대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올 수도 있다. 지금은 선을 명확히 그을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어쨌든 한일관계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외교 성적표도 7월의 교사용 해설서가 쥐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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