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공항에서 열리는 서울에어쇼 행사 장면. 서울공항은 대북 관련 작전뿐 아니라 국가 위급 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서울공항 이전을 거론해 공군과 국방부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유는 이 대통령 특유의 ‘기업 프렌들리’ 정신 때문이다. 4월28일 이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가진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에서 “도시는 옮길 수 없지만 군부대는 옮길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롯데그룹이 14년 동안 추진해온 서울 잠실의 112층짜리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비쳤다.
대북 정찰 감시, 안보 핵심 기지
이 대통령은 이상희 국방부 장관이 “제2롯데월드가 건설되면 외국 귀빈을 태운 대형 항공기가 서울공항을 이용할 때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하자 “1년에 한두 번 오는 귀빈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을 이용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까지 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도 같은 태도를 취했으나, 공군을 대리한 국방부의 반대로 제2롯데월드 건설을 더 이상 추진하지 못했었다.
서울공항은 대통령 등 귀빈이 사용할 때만 쓰는 대외명칭이고, 정식 이름은 공군 성남기지다. 공군 인사들은 하나같이 “성남기지는 대통령과 외국 귀빈의 입출국만을 위한 공항이 아니라 공군 작전을 위한 기지다. 또한 국가 비밀에 속하는 아주 중요한 일도 수행한다”고 지적한다. 이 대통령이 서울공항의 가치를 “나나 외국 귀빈은 1년에 한두 번밖에 서울공항을 이용하지 않는다”고 단정한 것에 대해 공군 인사들이 상당한 충격을 받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북핵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지금 한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군부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위성이나 정찰기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국가정보원은 외국에서 발사한 위성의 기능 일부를 임차해 북한 지역을 정찰하고 있다. 그러나 위성은 일정하게 지구 궤도를 돌고 있어 우리가 꼭 보고자 하는 시간에 북한을 살피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한국 공군, 정보사, 통신감청부대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금강정찰기와 백두정찰기다. 두 정찰기는 휴전선 남쪽을 비행하면서 북한 지역을 촬영하고(금강정찰기), 북한에서 나오는 각종 신호를 포착한다(백두정찰기). 이 정찰기들 덕에 한국은 대북 정보를 100% 미국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이렇듯 한국 안보와 정보 자주화의 초석인 백두·금강정찰기가 뜨고 내리는 작전기지가 바로 성남기지다.
금강·백두정찰기는 비행 중 지상기지와 많은 정보를 교환하는데, 이러한 지상기지는 성남기지를 중심으로 건설돼 있다. 따라서 백두·금강정찰기를 다른 기지로 옮긴다면 이 지상기지도 함께 옮겨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성남기지에는 정찰기와 함께 다수의 수송기를 보유한 15혼성비행단이 배치돼 있다. 따라서 성남기지를 폐쇄하면 15혼성비행단은 다른 기지로 이동해야 하는데, 다른 기지는 전투비행단 등이 포진해 있어 이들을 받아줄 수 없다. 이것이 새로운 기지를 만들지 않는 한 성남기지를 폐쇄할 수 없는 이유다.
군은 100년 혹은 5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전쟁에 대비해 운영되는 조직이다. 성남기지의 가치는 이것이 국가 위급사태 시 비로소 빛을 발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군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국가 지도부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다. 개전 초기 국가 지도자나 지도부가 적군의 폭격으로 유고(有故)되거나 무너진다면 한국민과 한국군은 전의를 상실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서울공항 이전을 거론하게 된 첫째 이유는 롯데그룹이 112층 높이로 짓겠다고 한 제2롯데월드 건설에 있다. 서울 송파구와 분당 주민들도 땅값 상승을 기대하며 서울공항 이전에 찬성하고 있다.
또한 성남기지는 미 육군 정찰기를 운용하는 17항공여단 1대대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맺은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성남기지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성남기지를 폐쇄하려면 이 협정부터 바꿔야 한다. 그러나 성남기지를 폐쇄하기 위한 협정 개정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유사시 성남기지는 미국과 관련해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서울 주변 대체기지 마련도 어려워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국 언론은 일제히 한국 교민의 안전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다. 국가는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기에 외국에서 전쟁이 발발하면 군대를 파견하거나 미국 등 우방국의 지원을 받아 자국민을 안전하게 소개(疏開)하는 일부터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국 정부도 이와 똑같은 일을 해야 한다. 현재 서울에는 적잖은 미국인들이 살고 있다. 만약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미군은 대형 수송기를 파견해 미국인들을 자국으로 소개하는데, 이때 수도권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의 집결처가 바로 성남기지다. 미군은 자국민을 소개해야 안심하고 작전을 펼칠 수 있고, 미군이 작전을 펼쳐야 전세를 역전시키기 쉬워진다. 서울 주변에 성남기지를 대체할 새로운 기지가 마련되지 않는 한 미국이 성남기지 폐쇄에 찬성하지 않으리란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 공군 인사는 이렇게 지적했다.
“청와대는 서울 종로구에 있는데, 종로구에서 1년에 몇 번이나 화재가 발생하는가. 2~3년간 화재가 없었다고 해서 종로구에 있는 소방서를 없애라 한다면 그것이 올바른 주장인가. 1979년 김재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저격한 것을 제외하면, 74년 문세광 사건 이후 대통령이 위험에 빠진 적이 없는데도 한국은 거대한 경호처를 운영하고 있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성남기지를 없애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위협이 없으니 경호처를 없애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안보를 버리는 것은 역사에 대한 대통령의 책무를 포기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