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정서적 감정을 잔잔하고도 가볍게 전달하는 것은 ‘춘천, 거기’의 중요한 미덕이다.
작품에는 네 커플이 등장한다. 이들은 대학 때 연극 서클에서 활동했던 멤버 또는 주변인이며, 현재는 여행 계모임을 결성하고 있다. 네 커플 중 선영/명수, 수진/병태, 세진/영민 이 세 커플은 각기 다른 이유로 삼각관계를 형성하며 갈등을 겪고 있다. 그리고 만난 지 며칠 안 되는 주미/응덕은 희극성을 가장 많이 지닌 커플로 발랄한 연애의 현장을 펼쳐 보인다.
선영과 명수는 사귄 지 1년이 됐다. 그러나 이들의 빨래는 한 세탁기 안에 섞여 돌 수 없으며, 두 사람은 커플링을 나눠 낄 수도 없다. 소위 말하는 ‘불륜 관계’이기 때문이다. 선영은 서러움 속에서도 명수를 사랑할 수 있다는 데서 행복을 느꼈지만, 이제는 그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그런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여온 후배와 동침을 하는 것이다. 그 후배 역시 만나는 여자가 있는 상황에서 선영을 갈구하는 중이다.
불륜 등 비제도권 사랑이야기 잔가지처럼 얽혀
불륜의 언저리를 서성이는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으니 바로 선영의 친구인 수진이다. 그녀는 오랜만에 전화해온 결혼한 선배를 그리워하면서 그에 대한 사랑이 반복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모습만 보면 ‘숨이 멎을 듯하다’는 수진의 후배 병태가 있다. 수진의 동생인 세진과 그녀의 남자친구 영민은 이 극에서 가장 시끄러운 연애를 한다. 영민은 세진이 자신과 사귀기 이전, 자신의 친구와 깊은 관계였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한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세진에게 폭력적인 언사를 보여주는 영민. 그는 세진의 과거를 알고 홧김에 바람을 피웠던 전적이 있다. 세진의 친구인 주미는 응덕과 소개팅으로 만나며, 첫 번째 애프터 때 ‘꿈의 궁전’에서 밤을 지낸다.
이 작품은 수진이 희곡을 쓰는 장면에서 시작해 그녀의 작품이 무대에 올라가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인물들 중 일부는 그 작품에 참여하는 멤버다. 관객에게 시점을 제시하는 화자는 수진이다. 명수는 연출을, 주미는 배우를 맡는 등 현실과 희곡이 교차된다. 장면 사이사이 수진의 희곡에 등장하는 일종의 사회자인 ‘소녀’가 시를 읊는다. 각자의 이야기를 전개하던 인물들이 한곳에 모이는 지점은 춘천의 한 펜션. 인물들은 그곳에서 ‘답이 없는’ 상황을 정리하거나 그냥 똑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관계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시작을 예고한다.
이러한 극의 전체 구조가 입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인물들은 연신 서로 배턴을 주고받듯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하지만, 각각의 사랑이야기는 잔가지처럼 얽혀 진행될 뿐 커다란 나무 기둥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도 마찬가지다. 대사 전달이나 불필요한 동작들이 정리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앉아 있는 두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연극의 미덕이다. 그 이유는 ‘정서’의 전달에 있다. 극중 왕년의 소설가인 명수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자아비판을 하는 대사는 사실 이 연극이 추구하는 바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다. “어두우려면 가벼우면서 정서가 있든가, 웃기려면 깊이가 있으면서 의도가 있든가.” 사랑의 달콤함보다 그 이면에 비중을 두고 있는 만큼, 무게를 줄이고 섬세한 대사나 제스처에 강조점을 둔 이유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플롯과 연기 통해 전달할 부분 소녀의 시적 대사 통해 전달
작품이 스스로에 대해 직접 반문하는 부분이 또 있는데, 바로 수진이 자신의 희곡에 등장하는 ‘소녀’에 대해 묻는 장면들이다. 소녀가 정말 이상하냐고 묻자 병태는 “해설자도 아니고 극하고 만나지지도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수진은 다시 “정서적으로도 연결이 안 되냐”고 반문한다. 소녀의 존재는 확실히 어색하긴 하다. 플롯과 연기를 통해 전달할 부분을 소녀의 시적인 대사를 통해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소녀가 읊는 시는 이 작품에 향기를 입힌다.
다른 여자의 남편과 사랑을 하면서 그 남자가 또 다른 여자들을 만날 때는 견디기 힘들어하는 선영, 정작 바람을 피운 것은 자신이면서 여자친구가 과거에 남자를 사귄 것을 용서하지 못하는 영민…. ‘춘천, 거기’는 도덕적 기준 이전에 존재하는, 세상의 제도나 가치 기준 안에 온전하게 재단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반추하게 한다. 이 온전하지 못한 세상에서 지나치게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은 불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6월30일까지 대학로 행복한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의 02-747-2070
지난해 열린 ‘2007 춘천국제마임축제’ 의 야외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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