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돈코츠 라멘.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 ‘생라멘집 아지겐’을 차린 일본인 사토 에이지(60) 씨에게 치킨라면에 대해 물어보았다. 도쿄에서 성장하고 요리를 배운 그는 닭뼈 고은 국물에 라면을 넣어 먹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중화요리점에서는 저렴한 면요리로 라면이 소비됐다. 그때는 중화요리를 만들 때 주로 닭뼈 고은 국물을 썼고, 값도 저렴해서 라면 국물로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90년대 들어 생라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닭뼈 국물에 색깔 있는 간장을 넣는 소유라면을 즐기는 도쿄에 돼지뼈 국물을 쓰는 규슈 라면, 된장을 푼 홋카이도 미소라면, 색깔 없는 간장을 넣는 간사이 라면 등이 진출했다. 한동안 군웅할거를 거듭하던 라면 국물 재료는 규슈식의 돼지뼈가 주도하게 됐다고 한다.
한국인 입맛엔 다소 느끼해 … 간식 아닌 한 끼 식사로도 충분
에이지 씨가 내놓는 라멘(일본식 발음)은 돈코츠(豚骨) 라멘이다. 돼지다리뼈를 12시간 넘게 끓인 뒤 냄새를 잡는 생강, 파, 마늘, 양파, 사과 등을 넣어 국물을 만든다. 면은 밀가루 반죽을 해 라멘발 뽑는 기계로 매장에서 직접 뽑는다. 면발은 탄력 있고 쫄깃하며 통통했다.
에이지 씨가 1999년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 처음 ‘생라멘’집을 냈을 때 손님 대부분은 “라면값이 왜 이리 비싸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인스턴트 라면만 아는 한국 사람들에게 밥값에 버금가는 라면값이 생소했던 것이다. 에이지 씨는 6개월 만에 관철동에서 철수해 이촌동에 일본요리 전문점을 내서 터를 잡는다. 그는 2007년 무렵 “이제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 생라면을 알아주는구나”라고 감을 잡은 뒤 올 봄 홍익대 앞에 돈코츠 라멘 전문점을 열게 됐다.
에이지 씨가 끓여낸 라멘은 한국의 라면과 다르다. 일본은 생라멘이 먼저 자리를 잡아 라면 하면 기름에 튀겨내지 않은 생라멘이다. 대신 인스턴트 라면은 소쿠세키(卽席) 라멘이라고 부른다. 면발은 밀가루와 물로 반죽하는 우동과 달리, 알칼리성 간수로 밀가루 반죽을 해 노르스름하다. 우동 면발은 쉽게 끊어지지만 라면 면발은 잘 끊어지지 않는다.
한국 라면에 수프가 중요하다면 일본 생라멘은 국물 맛이 중요하다. 에이지 씨가 만든 라면 국물은 남김없이 들이켤 수 있을 만큼 맛이 부드럽고 풍부했다. 일본 라멘 국물에서 기름기를 빼면 한국의 설렁탕 국물이 된다. 한국인이 느끼하게 여기는 국물 맛에 일본 라멘 맛의 골격이 들어 있다고 한다.
한국 라면은 간식에 가깝지만 일본 라멘은 한 끼 식사가 된다. 에이지 씨는 “자신의 라멘집에 찾아오면 요사이 도쿄의 화려하게 모양만 낸 라멘이 아니라 일본 정통 라멘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