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든 브라운 총리 청소비로 1000만원,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수 주택 구입비로 4000만원, 존 프레스콧 전 부총리 식비로만 600만원, 토니 블레어 전 총리 TV 시청료 20만원….’
영국 의회 지도자들이 이른바 ‘품위유지 비용’으로 지출한 명세들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망신살이 뻗쳤다. 4월 초 영국 하원이 정보공개 감독기구인 정보위원회의 판결을 받아들여 중진급 정치인 14명이 의회에서 타 쓴 각종 수당 명세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영국 의회는 몇 년 전 국회의원들이 청구한 수당 명세를 총액 기준으로 공개한 적은 있지만 개인별 지출 명세가 포함된 자료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현직 국가원수를 포함한 정당 당수, 각료급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타 쓴 수당 지출 명세에는 이처럼 사소한 집수리 비용이나 전기요금 같은 각종 공과금, 심지어 TV 시청료까지 모두 들어 있다. 또 의원 본인뿐 아니라 부인들이 사용한 교통비를 의회가 지원한 명세도 일목요연하게 기재돼 있다.
정보공개 대상에 올라 망신당한 정치인들은 당혹감 속에서도 파문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심했다. 특히 주택 구입 비용으로만 4000만원가량을 보조받은 것으로 드러난 보수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은 “7월부터 보수당 예비내각 의원들부터 자신들이 신청한 수당 명세를 자진 공개하겠다”며 선수를 치고 나왔다. 다른 의원들보다 유독 주택 구입 비용을 많이 지출한 것을 의식한 듯 “보수당 의원들이 당선된 지역의 집값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영국 하원의원들이 이렇게 각종 활동 비용을 청구해 사용한 것이 의회 규정이나 법률을 어긴 것은 아니다. 영국 의회는 런던 이외 지역에 집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의회활동을 위해 필요하다면 임대료 보조를 포함해 일정한도 내에서 원거리 거주 비용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초과비용 수당(Additional Cost Allowance : ACA)을 지급하는 것이다.
정보 공개 여부 놓고 3년 공방 벌이다 의회 백기
이 규정에 따르면 자신의 지역구와 런던 주변에 두 채의 집을 갖게 될 경우 2만2000파운드(약 4400만원) 안에서 주택임대 비용이나 생활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물론 런던지역에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은 이 수당의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다고 모든 의원이 이 금액을 상한선까지 신청해서 타다 쓰는 것은 아니다. 4400만원이라는 수당 한도액은 말 그대로 ‘상한선’을 규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단체들이 “일부 중진의원들이 이를 ‘신청 목표액’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의회는 이 자료의 공개를 둘러싸고 당초 정보공개를 청구한 BBC 측과 3년에 걸쳐 줄다리기를 벌인 것으로 드러나 더욱 빈축을 사고 있다. 공영방송 BBC는 2005년,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와 존 프레스콧 부총리,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과 마이클 하워드 보수당수 등 여야 대표급 정치인 6명이 신청한 초과비용 수당 명세를 공개해달라며 정보공개 신청을 낸 바 있다.
그러나 의회 측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이외 거주지나 거주 형태, 생활 비용 지출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공개될 경우 의정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자발적인 공개를 거부해왔다. 3년 가까이 끌어온 BBC와 의회 간의 논쟁은 최근 정보위원회가 BBC 측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러나 의회 측은 정보위원회의 공개 명령이 나온 뒤에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히는 등 BBC 측과 대립을 계속해왔다. 그러자 BBC와 함께 정보공개 운동을 벌여온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던 의회가 합법적인 정보공개 결정을 거부하기 위해 재심청구 명목으로 또다시 1억원이나 되는 세금을 끌어다 쓰려 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렇게 논란이 가속되자 의회는 결국 재심청구를 포기하고 의원들의 수당 명세를 공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론에 밀려 영국 의회 여야 중진들의 수당 지급 명세가 공개되자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공개는 최근 잇따라 불거졌던 거물급 정치인들의 부패 스캔들과 맞물려 영국 국민 사이에 또 한 번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월 야당인 보수당 원내총무를 지낸 드렉 콘웨이 의원은 대학생인 자신의 아들을 ‘연구원’ 명목으로 고용한 후 2만6000파운드(약 5200만원)의 연봉을 지급했다. 그러나 연구원으로 채용된 아들의 의정활동 기록이 전무하다는 의혹이 지역구에서 제기되자 윤리위원회에서 조사를 벌였고, 결국 콘웨이 의원은 아들에게 편법으로 임금을 지급한 사실을 인정하고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몇 달 뒤엔 국회의원들의 공직 기강에 대한 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하원의장이 독직 논란에 휩싸였다. 마이클 마틴 하원의장의 부인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800만원가량의 택시비를 의정활동비에서 청구한 것이 드러나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것이다.
마틴 하원의장은 부인과 관련한 개인 비리 의혹 외에도 이번 초과비용 수당 명세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해, 심지어 공개 명단에 올라 있는 정치인들에게까지도 ‘정치불신을 자초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정치인 부패 스캔들 이어 후속타 ‘정치 혐오증’ 심화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대표하는 의회정치의 교과서로 인식돼온 영국 의회가 돈 문제와 관련해 추문에 휩싸인 것은 이번 하원의 정보공개 논란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블레어 정부 아래서 노동당 소속 임명직 상원의원들이 막대한 선거자금을 제공한 대가로 상원의원직에 임명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대대적인 경찰 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블레어 총리까지 직접 조사 대상에 올랐던 이 ‘상원 매관매직’ 스캔들로 인해 영국 의회는 5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세습 및 임명직 상원의원직을 폐지하고 선출직으로 전환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당시 매관매직 파동이 ‘상원 버전’의 정치자금 비리 스캔들이었다면, 이번엔 정치인들의 돈 문제를 둘러싼 ‘하원 버전’의 추문이 터진 셈이다.
그러나 상하원이 한 번씩 추문에 휩싸인 것으로도 영국 의회를 둘러싼 부패 논란이 완전히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10여 명 간판급 의원의 수당 명세를 공개하는 데 그친 영국 의회가 오는 10월, 하원의원 646명 전원의 수당 명세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올 가을,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던 영국 하원의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또 한 번의 ‘굴욕 시리즈’가 예고되고 있다.
영국 의회 지도자들이 이른바 ‘품위유지 비용’으로 지출한 명세들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망신살이 뻗쳤다. 4월 초 영국 하원이 정보공개 감독기구인 정보위원회의 판결을 받아들여 중진급 정치인 14명이 의회에서 타 쓴 각종 수당 명세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영국 의회는 몇 년 전 국회의원들이 청구한 수당 명세를 총액 기준으로 공개한 적은 있지만 개인별 지출 명세가 포함된 자료를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현직 국가원수를 포함한 정당 당수, 각료급 정치인들이 의회에서 타 쓴 수당 지출 명세에는 이처럼 사소한 집수리 비용이나 전기요금 같은 각종 공과금, 심지어 TV 시청료까지 모두 들어 있다. 또 의원 본인뿐 아니라 부인들이 사용한 교통비를 의회가 지원한 명세도 일목요연하게 기재돼 있다.
정보공개 대상에 올라 망신당한 정치인들은 당혹감 속에서도 파문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심했다. 특히 주택 구입 비용으로만 4000만원가량을 보조받은 것으로 드러난 보수당수 데이비드 캐머런은 “7월부터 보수당 예비내각 의원들부터 자신들이 신청한 수당 명세를 자진 공개하겠다”며 선수를 치고 나왔다. 다른 의원들보다 유독 주택 구입 비용을 많이 지출한 것을 의식한 듯 “보수당 의원들이 당선된 지역의 집값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물론 영국 하원의원들이 이렇게 각종 활동 비용을 청구해 사용한 것이 의회 규정이나 법률을 어긴 것은 아니다. 영국 의회는 런던 이외 지역에 집을 갖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의회활동을 위해 필요하다면 임대료 보조를 포함해 일정한도 내에서 원거리 거주 비용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초과비용 수당(Additional Cost Allowance : ACA)을 지급하는 것이다.
정보 공개 여부 놓고 3년 공방 벌이다 의회 백기
이 규정에 따르면 자신의 지역구와 런던 주변에 두 채의 집을 갖게 될 경우 2만2000파운드(약 4400만원) 안에서 주택임대 비용이나 생활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물론 런던지역에 지역구를 가진 의원들은 이 수당의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렇다고 모든 의원이 이 금액을 상한선까지 신청해서 타다 쓰는 것은 아니다. 4400만원이라는 수당 한도액은 말 그대로 ‘상한선’을 규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시민단체들이 “일부 중진의원들이 이를 ‘신청 목표액’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꼬집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의회는 이 자료의 공개를 둘러싸고 당초 정보공개를 청구한 BBC 측과 3년에 걸쳐 줄다리기를 벌인 것으로 드러나 더욱 빈축을 사고 있다. 공영방송 BBC는 2005년,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와 존 프레스콧 부총리,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과 마이클 하워드 보수당수 등 여야 대표급 정치인 6명이 신청한 초과비용 수당 명세를 공개해달라며 정보공개 신청을 낸 바 있다.
그러나 의회 측은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이외 거주지나 거주 형태, 생활 비용 지출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공개될 경우 의정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자발적인 공개를 거부해왔다. 3년 가까이 끌어온 BBC와 의회 간의 논쟁은 최근 정보위원회가 BBC 측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일단락됐다.
그러나 의회 측은 정보위원회의 공개 명령이 나온 뒤에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히는 등 BBC 측과 대립을 계속해왔다. 그러자 BBC와 함께 정보공개 운동을 벌여온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던 의회가 합법적인 정보공개 결정을 거부하기 위해 재심청구 명목으로 또다시 1억원이나 되는 세금을 끌어다 쓰려 한다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렇게 논란이 가속되자 의회는 결국 재심청구를 포기하고 의원들의 수당 명세를 공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론에 밀려 영국 의회 여야 중진들의 수당 지급 명세가 공개되자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공개는 최근 잇따라 불거졌던 거물급 정치인들의 부패 스캔들과 맞물려 영국 국민 사이에 또 한 번 정치 혐오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1월 야당인 보수당 원내총무를 지낸 드렉 콘웨이 의원은 대학생인 자신의 아들을 ‘연구원’ 명목으로 고용한 후 2만6000파운드(약 5200만원)의 연봉을 지급했다. 그러나 연구원으로 채용된 아들의 의정활동 기록이 전무하다는 의혹이 지역구에서 제기되자 윤리위원회에서 조사를 벌였고, 결국 콘웨이 의원은 아들에게 편법으로 임금을 지급한 사실을 인정하고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몇 달 뒤엔 국회의원들의 공직 기강에 대한 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 하원의장이 독직 논란에 휩싸였다. 마이클 마틴 하원의장의 부인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800만원가량의 택시비를 의정활동비에서 청구한 것이 드러나 윤리위원회에 회부된 것이다.
마틴 하원의장은 부인과 관련한 개인 비리 의혹 외에도 이번 초과비용 수당 명세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에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해, 심지어 공개 명단에 올라 있는 정치인들에게까지도 ‘정치불신을 자초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정치인 부패 스캔들 이어 후속타 ‘정치 혐오증’ 심화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대표하는 의회정치의 교과서로 인식돼온 영국 의회가 돈 문제와 관련해 추문에 휩싸인 것은 이번 하원의 정보공개 논란만은 아니다. 이미 지난해 블레어 정부 아래서 노동당 소속 임명직 상원의원들이 막대한 선거자금을 제공한 대가로 상원의원직에 임명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대대적인 경찰 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블레어 총리까지 직접 조사 대상에 올랐던 이 ‘상원 매관매직’ 스캔들로 인해 영국 의회는 500년이 넘는 전통을 가진 세습 및 임명직 상원의원직을 폐지하고 선출직으로 전환하는 개혁안을 발표했다. 당시 매관매직 파동이 ‘상원 버전’의 정치자금 비리 스캔들이었다면, 이번엔 정치인들의 돈 문제를 둘러싼 ‘하원 버전’의 추문이 터진 셈이다.
그러나 상하원이 한 번씩 추문에 휩싸인 것으로도 영국 의회를 둘러싼 부패 논란이 완전히 수그러들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10여 명 간판급 의원의 수당 명세를 공개하는 데 그친 영국 의회가 오는 10월, 하원의원 646명 전원의 수당 명세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올 가을,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던 영국 하원의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또 한 번의 ‘굴욕 시리즈’가 예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