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리 설산(梅里 雪山). 티베트 불교의 8대 성산(聖山) 중 하나이며, 티베트어로는 ‘설산의 신’이란 뜻인 카르포 카와(喀瓦格博)로 불리는 산이다. 이 산은 중국 윈난성(雲南省)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무려 6740m에 이른다. 카르포 카와는 아직 아무도 등정한 적이 없는 처녀봉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등반대가 도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중국 윈난성에 속해 있지만, 이 지역은 본래 티베트의 일부였다. 거의 모든 인구가 티베트어를 사용하는 티베트인이며, ‘어떻게 저런 곳에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험한 산지 사이로 듬성듬성 자리한 마을들은 독특한 티베트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이 티베트의 것으로 가득한 순도 100퍼센트의 티베트 마을이다. 이렇게 ‘티베트’를 거듭 언급하는 까닭은 행정구역상의 티베트인 시짱(西藏)자치구가 한족이 티베트인의 인구 수를 넘어서 그들의 고유문화를 잃어가고 있는 반면, 윈난성의 티베트 마을은 여전히 고유의 언어와 가옥, 풍습, 문화 등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서글픈 현실이다.
메이리 설산까지 가기 위한 길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윈난성 수도인 해발 1900m ‘쿤밍(昆明)’까지 간 다음, 12시간 넘게 버스를 달려 해발 3200m ‘쫑띠앤(中甸)’으로 가서, 꼬불꼬불 산길을 5시간이나 달려야 나오는 해발 3500m ‘더친(德欽)’에서 다시 2시간을 미니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의 열매는 달고 시원했다. 쫑띠앤-더친-밍용춘에 이르는 산길은 잘 포장돼 있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고, 당당한 위용의 설산을 끼고 있는 티베트 마을들의 경치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밍용춘(明永村)이라 불리는 메이리 설산의 산자락 마을에는 전체 51가구, 약 300명이 살고 있다. 이렇게 작은 마을이다 보니 이곳에 머무는 여행자들은 촌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여행자라면 티베트어를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순박한 사람들로 가득한 평화로운 산골마을, 짬짬이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의 떡이 늘 커 보이는 것일까? 도시에서 여행 온 나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고 있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나를 부러워한다.
이곳 사람들은 일상에서 모두 티베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티베트 글자는 스님으로 출가한 경험이 있는 남자들만 배우고 있다. 소수민족도 아들딸 구별 없이 두 명까지만 자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대단했다. 밍용춘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대부분의 어린이가 2시간 떨어진 더친으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간혹 7시간 거리인 쫑띠앤의 고등학교까지 통학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마부로 일하는 동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저씨의 두 자녀도 더친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이 좀더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아저씨의 푸념을 듣다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사람 사는 모습은 세상 어디나 다 비슷한가 보다.
신이 내린 풍광, 순박한 사람들 진한 감동
밍용춘은 안개가 빈번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하늘마을’이라고 불린다. 이 하늘마을에는 4월 중순까지 간간이 눈이 내리며, 6000m급 설산들을 1년 내내 마을 뒷산 삼아 감상할 수 있다. 한자리에서 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용한 티베트 사원에서 충분한 휴식을,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하늘에 가까운 이 마을에서 지상 최고의 산책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완만한 산책로를 이룬 마을 길에는 보랏빛 예랑화가 꽃밭을 이루고 있다.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마을 주변 숲들은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한 야생동물의 천국이다.
마을에서 밍용삥촨(明永氷川) 빙하까지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등산화 없이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걷는 것이 귀찮은 여행자라면, 마부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말을 빌려 산바람을 맞으며 올라갈 수도 있다. 이곳의 말은 마을 공동 소유로 가정마다 세 필씩 맡아 기른다. 말에서 얻은 수입은 마을에서 관리해 나눠 갖는다고 한다. 마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어마어마한 빙하들이 보이는데 누구든 압도당할 만큼 장대했다. 마치 남극에 온 기분이랄까?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이 빙하를 볼 수 있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의 핏줄에는 태어날 때부터 불교가 흐른다고 한다. 티베트 문화란 곧 불교 문화라 할 만큼,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는 불교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메이리 설산에는 700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티베트 사원이 있다. 매년 가을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이 사원을 찾는다. 액운을 없애주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티베트인들의 부적이 강렬한 색상을 뽐내며 하늘을 덮을 듯 사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티베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여행자라 해도 이곳을 찾는다면 티베트 사원 특유의 경건함에 매료되고 말 것이다.
장시간 중국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중국인 특유의 거칠고 소란스러운 행동에 조금은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며칠 머물며 순박한 티베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세상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가진 만큼 잃는다고 했던가? 이곳에선 어찌나 마음이 평화롭고 편안하던지. 누군가가 그랬다. “사람의 도시를 벗어나면, 길은 자유로 향한다”고.
시간이 흘러 서울의 딱딱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 요즘, 메이리 설산의 풍경들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내 영혼이 맑고 자유로웠던 그곳에서의 시간들이.
현재 행정구역상으로 중국 윈난성에 속해 있지만, 이 지역은 본래 티베트의 일부였다. 거의 모든 인구가 티베트어를 사용하는 티베트인이며, ‘어떻게 저런 곳에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험한 산지 사이로 듬성듬성 자리한 마을들은 독특한 티베트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것이 티베트의 것으로 가득한 순도 100퍼센트의 티베트 마을이다. 이렇게 ‘티베트’를 거듭 언급하는 까닭은 행정구역상의 티베트인 시짱(西藏)자치구가 한족이 티베트인의 인구 수를 넘어서 그들의 고유문화를 잃어가고 있는 반면, 윈난성의 티베트 마을은 여전히 고유의 언어와 가옥, 풍습, 문화 등을 잘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으면서도 서글픈 현실이다.
메이리 설산까지 가기 위한 길은 그야말로 산 넘어 산이었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윈난성 수도인 해발 1900m ‘쿤밍(昆明)’까지 간 다음, 12시간 넘게 버스를 달려 해발 3200m ‘쫑띠앤(中甸)’으로 가서, 꼬불꼬불 산길을 5시간이나 달려야 나오는 해발 3500m ‘더친(德欽)’에서 다시 2시간을 미니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의 열매는 달고 시원했다. 쫑띠앤-더친-밍용춘에 이르는 산길은 잘 포장돼 있어 생각만큼 힘들지 않았고, 당당한 위용의 설산을 끼고 있는 티베트 마을들의 경치는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밍용춘(明永村)이라 불리는 메이리 설산의 산자락 마을에는 전체 51가구, 약 300명이 살고 있다. 이렇게 작은 마을이다 보니 이곳에 머무는 여행자들은 촌사람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다.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여행자라면 티베트어를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순박한 사람들로 가득한 평화로운 산골마을, 짬짬이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의 떡이 늘 커 보이는 것일까? 도시에서 여행 온 나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스트레스 없이 살고 있는 그들을 부러워하고, 그들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나를 부러워한다.
이곳 사람들은 일상에서 모두 티베트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티베트 글자는 스님으로 출가한 경험이 있는 남자들만 배우고 있다. 소수민족도 아들딸 구별 없이 두 명까지만 자녀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대단했다. 밍용춘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대부분의 어린이가 2시간 떨어진 더친으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간혹 7시간 거리인 쫑띠앤의 고등학교까지 통학하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마부로 일하는 동네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아저씨의 두 자녀도 더친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이들이 좀더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아저씨의 푸념을 듣다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사람 사는 모습은 세상 어디나 다 비슷한가 보다.
신이 내린 풍광, 순박한 사람들 진한 감동
여행자의 안녕을 비는 티베트 고유의 깃발 ‘타르초’.
마을에서 밍용삥촨(明永氷川) 빙하까지는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어 등산화 없이도 쉽게 오를 수 있다. 걷는 것이 귀찮은 여행자라면, 마부에게 약간의 돈을 주고 말을 빌려 산바람을 맞으며 올라갈 수도 있다. 이곳의 말은 마을 공동 소유로 가정마다 세 필씩 맡아 기른다. 말에서 얻은 수입은 마을에서 관리해 나눠 갖는다고 한다. 마을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어마어마한 빙하들이 보이는데 누구든 압도당할 만큼 장대했다. 마치 남극에 온 기분이랄까?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가까이 빙하를 볼 수 있는 지역 중 하나라고 한다.
티베트 사람들의 핏줄에는 태어날 때부터 불교가 흐른다고 한다. 티베트 문화란 곧 불교 문화라 할 만큼, 티베트 사람들의 삶에는 불교가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메이리 설산에는 700년 역사를 가진 유서 깊은 티베트 사원이 있다. 매년 가을마다 많은 순례자들이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이 사원을 찾는다. 액운을 없애주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티베트인들의 부적이 강렬한 색상을 뽐내며 하늘을 덮을 듯 사원을 가득 메우고 있다. 티베트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 여행자라 해도 이곳을 찾는다면 티베트 사원 특유의 경건함에 매료되고 말 것이다.
장시간 중국 여행을 다니면서 나는 중국인 특유의 거칠고 소란스러운 행동에 조금은 지쳐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며칠 머물며 순박한 티베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세상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나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가진 만큼 잃는다고 했던가? 이곳에선 어찌나 마음이 평화롭고 편안하던지. 누군가가 그랬다. “사람의 도시를 벗어나면, 길은 자유로 향한다”고.
시간이 흘러 서울의 딱딱한 사무실에 앉아 있는 요즘, 메이리 설산의 풍경들이 가끔 생각나곤 한다. 내 영혼이 맑고 자유로웠던 그곳에서의 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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