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19일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2003년 1월 ‘주간동아’가 기획, 선정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00인’에 오른 민주당 장전형 전 대변인의 이력이다. 온통 상처투성이지만 장 전 대변인은 ‘자랑스런 상처’라며 흐뭇해했다. 그때 그는 “정권 재창출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주간동아가 당시 만난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00인은 하나같이 희망을 노래했다. 그들의 등장은 새로운 파워 엘리트의 등장이자, 주류와 비주류의 자리바꿈을 의미했다. 변혁의 서곡이었다. 그 후 30개월. 마라톤으로 치면 이제 반환점을 도는 시점에 다다랐다. 희망과 기대, 개혁과 혁신의 기치를 내걸고 장도에 올랐던 ‘100인’은 그러나 ‘권력 지도’의 진폭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앞서 언급한 장전형 전 대변인의 경우는 권력의 비정함을 일깨우는 사례로 부족함이 없다. 2004년 3월, 장전형 전 부대변인은 열린우리당(우리당)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전남 강진군수 선거가 있던 그해 9월에도 우리당은 또 한번 장 전 대변인을 고소, 피소 이력을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주었다.
국회의원 27명, 장관 7명 배출 … 6명은 청와대 근무
장 전 대변인은 대선 때 제기된 고소 고발과 관련, 2003년 12월 법원으로부터 선고유예 처분을 받았다. 2005년 7월 현재 5건의 소송에서 벌금형이 확정됐다. 벌금 총액은 2300만원. 약간의 변호사 비용이 밀려 있지만 당의 사정을 아는 그는 내색을 못하고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그는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아들 정연 씨를 ‘인간 육포’에 비유하기도 했다. 당시는 ‘촌철살인’이었지만 승부가 끝난 요즘, 당사자 가슴에 못을 박은 듯해 못내 후회스럽다.
“기회가 되면 이회창 후보에게 ‘인간적으로’ 사과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저마다 엇갈린 길을 걷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00인’은 김원기 의장을 비롯해 의원 27명, 천정배 이창동 김대환 윤영관 등 장관 7명을 배출했다. 청와대에선 현재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김만수 대변인 등 6명이 일하고 있다. 학자 자문그룹 중에서도 상당수 인사들이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낸 뒤 정부와 각종 위원회, 대통령비서실의 주요 직책을 맡았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00인’ 출신으로는 정책의 ‘컨트롤 타워’ 김병준 정책실장을 비롯해 이정우 대통령정책기획위원장,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 등 6명의 ‘위원장’이 배출됐고, 조재희 대통령국정과제비서관, 서동만 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등도 이름을 올렸던 인사다.
2003년 1월2일자(366호)에 실린 주간동아 특집기사.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정책기획비서관으로 일했던 윤석규 씨는 대선 때 정치 개혁추진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았다. 그는 선거 과정을 정치개혁의 장으로 삼겠다는 노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각종 대안을 제시, 노 대통령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대선 후 그는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이 청와대로, 당으로, 정부기관으로 하나 둘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대선 후 소외감을 느꼈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당시 같이 활동하다 자리를 잡은 동지들이 “먼저 사과하라”는 말을 했다는 풍문이 전해졌다. 이에 대해 윤 전 비서관은 “뭘 잘못했는지 알아야 사과할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하등 잘못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윤 전 비서관을 지켜본 100인 가운데 한 인사는 윤 전 비서관의 소외가 측근 간 불화에서 비롯됐음을 시사했다. 금강팀, 부산 인맥, 386, 호남 인맥, 당료, 통추 등 여러 세력의 집합체였던 ‘노무현 사단’은 선거 후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윤 전 비서관은 대선 서너 달 후 후배가 하는 개인회사에 몸을 의탁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원내대표를 할 때 대표 비서실에 잠깐 근무한 것이 대선 후 100인과의 유일한 재회였다. 그는 요즘 노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함께 일했던 386 세력 등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조만간 생업으로 돌아갈 계획인 그는 노무현 정부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노무현 정부와의 연을 후회하며 ‘귀 막고, 눈 감고’ 살기는 김상현 전 민주당 고문도 마찬가지. 그는 7월6일 통화에서 노무현 정부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아 아는 게 없다”고 말했다. 청산유수인 그지만 노 대통령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정치권 최고의 마당발이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방법은 이처럼 소극적이다.
노 대통령과 추미애 전 의원(정치개혁추진본부장)의 갈등과 결별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사건’이었다. 대선 직전 최대의 지원군이었던 정몽준 의원이 이들의 관계를 시샘, 지지를 철회했을 정도로 정치적 ‘금실’이 좋았던 두 인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DJ)’를 놓고 서로 건너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그런 두 인사 사이에 최근 입각설을 매개로 화해설이 나돈다. 그러나 추 전 의원 측은 이런 흐름에 쐐기를 박는다. 한 측근의 설명이다.
“추 전 의원과 가까운 여권 인사가 자꾸 연락을 하는 것 같더라. 10월 재·보궐선거 얘기도 하고. 그러나 삼보일배를 하며 유권자를 찾아가 분당은 명분 없는 짓이라고 호소하던 추 전 의원이 입각하면 그때 행동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 아니냐.”
천용택 전 의원도 ‘정치권’에서 행방불명된 지 오래다. 정치권에서 그의 동선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선 때 병풍 공격 등을 기획 입안한 역할로 본다면 참여정부 출범 후 전면에서 사라진 그는 미스터리 인물이다.
친노(親盧)의 길도 그리 만만치 않았다. 7월6일 저녁 10시경. 얼마 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정대철 전 대표가 입원 중인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병동 12층 쫛쫛쫛호실. 측근들의 만류로 대화는 하지 못했지만 불 꺼진 병실에서 때이른 잠을 청하는 정 전 대표는 권력의 무상함을 온몸으로 웅변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정 전 대표의 구속을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
안희정, 양길승 씨 등 비리 의혹으로 중도하차
이상수 전 의원 역시 정대철 전 대표와 비슷한 처지.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이 전 의원은 거칠 것 없는 미래가 보장되는 몇 안 되는 인물로 평가됐지만, 대선 때 사무총장으로 대선자금을 만진 것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2004년 8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이 전 의원은 장밋빛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여권이 꼽는 10월 재·보궐선거의 올인 카드로 거론된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비서실장 자리까지 거론된다. 노무현 시대를 연 그에게 마무리를 맡겨야 한다는 여론이 100인 사이에 회자되고 있는 것.
여권은 10월 재·보궐선거에 민감하다. 중·후반 정국 주도권이 이 한판에 걸려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여권 내부에서는 이상수 전 의원 외에 100인의 주축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이강철 대통령시민사회수석도 올인 카드로 거론된다. 특히 이 수석에게 TK(대구·경북) 교두보 확보라는 ‘특명’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도에 따라 이 수석은 조만간 청와대를 나설 계획이다.
6월 중순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 골프장에서 맥주병을 던진 직후 이 수석 측근들은 지역에서 여론조사를 했다. 결과는 ‘맥주병 2개로는 어림없다’는 것. 이런 여론을 근거로 측근들은 이 수석의 대구행을 말린다. 그러나 이 수석의 의지는 굳건하다고 한다. 한 측근의 말이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데 더 큰, 더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면 이 수석이 몸을 던질 것이다.”
김두관 대통령정무특별보좌관(특보)의 수첩에는 요즘 한 달 이상 점심, 저녁 스케줄이 잡혀 있다. 한 측근은 “약속이 많을수록 내년 선거(경남도지사) 승률이 높아진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지난해 총선과 4월 우리당 경선에서 패배한 그에게 노 대통령이 다시 기회를 준 것은 영남 공략이라는 노 대통령의 변함없는 의지가 작용했다. 이 소신에 따라 이강철-김두관 투톱은 발진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김 특보의 발탁을 전후해 노 대통령은 “신세를 지면 반드시 갚는다”는 지적을 받았다. 좋게 보면 의리파고, 다르게 보면 온정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동안 비리 의혹으로 중도하차하는 100인도 나타났다. 이광재 의원과 이기명 전 후원회장, 정찬용 전 인사수석, 양길승 전 대통령제1부속실장 등 ‘100인’의 핵심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의혹의 불길로 뛰어들었다.
100인의 출신은 다양하다. 그런 만큼 반목과 갈등, 알력설이 터져나온다. 6월 염동연 의원이 우리당 상임중앙위원직을 사퇴한 것은 의외였다. 대통령 측근의 부패 가능성을 언급한 이해찬 총리 발언에 반발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당·정·청 갈등 및 당내 노선투쟁 등 내부 파워게임을 견제하려는 다목적 카드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 가운데 하나가 100인 간의 파워게임설이다. 당시 그를 따라다니던 실체 없는 의혹에 대해 염 의원 측은 ‘특정 정파’의 조직적 음해론을 제기했다.
반환점 앞에 선 노 대통령은 싫으나 좋으나 이들 가운데에서 임기 중·후반을 함께할 ‘충성파’를 뽑아야 한다. 이들 가운데 대통령의 레임덕을 온몸으로 막을 ‘제2의 장세동’ ‘제2의 박지원’은 과연 있을까. 노 대통령의 참모들은 상도동, 동교동 같은 뿌리가 없다. 100인 가운데 안희정 씨와 이광재 의원 등이 10년 넘게 정치적 동지 관계를 형성했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이념에 의해 뭉쳤을 뿐 연이 깊지 않다.
문희상 당 의장 등이 임기 말 동맹군으로 거론되지만 지도력에 대한 회의감을 걷어내야 제 구실이 가능한 상태다. 100인 출신 가운데 노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 첫 번째 인사로 꼽히는 인물은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이다. 그는 차기 비서실장으로 거론된다. 윤태영 대통령제1부속실장, 이호철 대통령제도개선비서관, 김만수 대변인 등 386그룹도 대통령과 호흡을 같이할 인물들로 평가된다. 김병준 정책실장,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 등은 모든 역량을 집중, ‘끝까지 함께 갈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가 반환점 앞에 다다른 현재 100인은 저마다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이들 주변에서 대선 당시의 영광과 기쁨은 사라진 지 오래다. 노 대통령 주변은 먹구름이 가득하다. 경제는 갈수록 처지고, 부동산 문제는 노무현 정부의 아킬레스건으로 등장했다. 그 사이로 레임덕 이야기가 줄기차게 흘러다닌다. 대선 당시 찬조연설에 나서 대세를 갈랐던 ‘자갈치 아지매’ 이일순 씨는 청와대에 절박하게 외친다.
“30년 장사에 이렇게 어렵기는 처음이다.
■ 정치 기상도: 2002년 12월19일 밤 민주당사를 찾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감정을 추스른 뒤 곧바로 가시밭길을 동행한 동지들을 향했다. 김원기 고문, 이해찬 기획본부장, 그외 다수 당직자 등등. 그날 주인공은 노 당선자가 아니라 그를 만든 100인의 참모였다.‘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100인’(주간동아 366호 참조)의 오늘은 대체로 ‘맑음’이다. 측근과 젊은 참모는 청와대와 국회에 대거 입성했으며, 자문 교수들은 장관 및 위원장으로 영입돼 나라를 이끌고 있다. 낙하산 시비 끝에 공직에 임명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린 이들의 오늘은 대체로 흐리다. 권력 중심에서 멀어져 절치부심 재기를 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