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SG 워너비’의 채동하, 김진호, 김용준(왼쪽부터).
데뷔 1년, 두 번째 앨범을 낸 지 한 달 만에 22만장 판매를 기록한 ‘SG 워너비’의 세 청년 채동하(24), 김용준(21), 김진호(19)는 여전히 ‘가수에 대한 환상’ 같은 걸 갖고 있다고, ‘그래서 즐겁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음반이 음원(인터넷과 모바일 등의 다운로드 콘텐츠) 시장으로 옮겨가 10만장 팔려나가는 음반이 드물어진 요즘, ‘SG 워너비’의 20만장 돌파는 2005년 상반기 가요계의 가장 큰 뉴스가 될 것이다. 음반 판매뿐 아니라 모바일과 인터넷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SG 워너비’의 ‘살다가’ ‘죄와 벌’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5월29일부터는 서울(역도경기장)을 포함한 전국 14개 도시에서 순회 콘서트를 연다.
‘SG 워너비’가 들려주는 성인 취향의 R&B를 들으면 이들이 20대 초반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SG 워너비’가 데뷔 때부터 전략적으로 -소속사의- 매체 노출을 극도로 제한했기 때문에 ‘살다가’ 같은 노래를 들으며 그들의 해사한 얼굴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연습실에서 만난 그들은 TV에서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인다. 학생처럼 눈을 깜박이며 신중하게 질문에 대답하다가도 그들은 틈틈이 장난을 쳤다. 당연히 그런 질문을 무수하게 들었을 것이다.
“용준이의 목소리는 맑은 편이고, 저는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예요. 막내 진호의 목소리가 가장 굵고 늙은 편이죠.”
원래 채동하, 김용준 두 사람으로 출발한 ‘SG 워너비’는 흑인 R&B 보컬을 연상하게 하는 김진호를 영입해 데뷔했고 ‘뭔가 심심했던’ 그들은 세 명이 되면서 훨씬 풍요로워졌다고 했다.
20대 초반, 그러나 이미 사랑과 이별과 슬픔의 밑바닥을 들여다본 것처럼 노래하는 이들에게 ‘남 우일 뻔하여라’ 하는 심정으로 ‘니들이 인생을 알아?’라고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우리 노래가 주로 사랑에 대한 거잖아요. 그런 감정은 주관적인 거죠. 또 보편적인 것이고요. 초등학생도 짝사랑에 가슴 절절하게 아파한다고요.”(채동하)
역시 대답은 20대 초반의 그것이다. 그는 “과잉되기보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노래하는 것이 폭넓은 세대에게 사랑받는 이유”라고 덧붙인다.
2집 앨범 재킷의 사진, 서울 산동네 옥탑방 풍경을 배경으로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찍은 세 청년의 초상화가 ‘SG 워너비’ 이전의 모습과 비슷하냐고 질문했다. 대답이 뜻밖이다. 사실 “‘SG 워너비’의 노래에 더 깊이 담고 싶었던 건 사랑보다 암울한 미래 때문에 좌절하고 절망했던 청춘의 경험”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데뷔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도 했다.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얻은 악바리 근성이 ‘SG 워너비’를 만들었죠.”(채동하)
“여기저기 ‘무대뽀’로 덤빌 수 있던 것도 ‘헝그리’ 정신 덕분인 것 같은데요.”(김용준)
맏형 채동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은 심장 판막증과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늘 아팠던 것뿐”이라고 했다. 그로 인해 집안을 짓누르던 우울한 분위기, 부모의 불화와 이혼, 그토록 원했던 음악 레슨을 받을 수 없었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는 한참 방황했다. 서울예대에 들어가 비슷하게 음악에 미친 친구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행복했다고 했다.
김용준 역시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안양예고 졸업 때까지 차압 딱지가 붙은 집에서 살았고, 노래하기 전까지 ‘정말 오래오래’ 방황했다고 말한다.
두 사람에 비하면 김진호는 비교적 평탄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부터 조용필과 박남정의 바이브레이션을 기가 막히게 흉내낸 ‘애늙은이’로 중학교 때 대학로 무대에 섰다. ‘SG 워너비’ 데뷔 당시 그는 고3이었고, 올봄 졸업했다. 일찌감치 프로 세계에 들어온 셈이다. 그는 “젊기 때문에 앞으로 기대되는 가수란 말을 듣고 싶지는 않다. 데뷔한 이상 프로답게 노래로 인정받겠다”고 했다.
그들은 1년 전 1월 데뷔 앨범을 내고 4월19일 일종의 ‘시사회’라 할 수 있는 ‘쇼케이스’를 통해 얼굴을 처음 공개했다. 같은 날 세계 최고의 힙합 스타 ‘어셔’가 내한했지만, 얼굴을 숨기고 ‘괜찮은’ 음반을 내놓았던 ‘SG 워너비’를 보려는 기자들로 쇼케이스는 성황을 이뤘다. 기자들의 첫 반응은 ‘무지 잘생겼네?’라는 것이었고.
“아, 기억하죠. 비 오는 날이었는데, 미용실 가서 머리도 하고, 옷도 차려입었죠. 얼마나 떨리던지요. 많은 카메라, 기자들 앞에 처음 섰는데 기분 좋았어요.”
중학교 때부터 라이브를 했던 김진호는 이날 처음, 그리고 아직까지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실수를 했다. 땀 때문에 선글라스가 벗겨진 것까진 좋았는데 ‘Timeless’를 부르다 목소리가 꺾이는 일명 ‘삑사리’를 낸 것. 그리고 그냥 넘어갈 것을 “죄송합니다!”라고 해버렸다.
“절 쳐다보는 막내의 당황과 미안함이 담긴 눈빛, 평생 잊지 못하겠죠. 저도 그 순간엔 끝이구나 했는데 사람들에겐 오히려 성실한 인상을 준 거 같아요. 호의적인 평이 나왔으니까요.”
그들이 가장 많이 받은 또 다른 질문은 ‘SG 워너비’란 이름의 정체다.
“하하. 그거 처음엔 우리도 모르고, 매니저도 몰랐다니까요. 기획사 사장님의 작품인데 ‘사이먼과 가펑클 워너비’의 약자예요. 우린 그때까지 사이먼과 가펑클을 잘 몰랐어요.”
그들은 스티비 원더와 에릭 베넷, 마크 앤서니의 영향을 받았고, 서태지의 ‘런닝구’ 겹쳐입기를 따라하며 자란 세대다. 그래서 ‘SG 워너비’의 개성을 분명히 보여준 지금 그들에게 왜 ‘사이먼과 가펑클’이냐고 묻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사이먼과 가펑클’은 존재했고, ‘SG 워너비’도 그들의 노래를 부른다. 그것이 ‘사이먼, 가펑클’과 ‘SG 워너비’의 공통점이다.
“삼성, LG처럼요.”
지금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 그들의 이름이 ‘SG 워너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