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권한과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차르(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처럼 군림해오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2000년 집권 후 최대 위기에 빠졌다.
2월20일 러시아 여론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는 사상 최저 수준인 42%를 기록했다. 2월 초보다 2% 낮아진 수치다. 집권 초부터 줄곧 70%대의 높은 지지도를 유지해오던 푸틴 정부로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이 같은 지지도 하락의 결정적인 원인으로는 푸틴 정부가 올해 초 야심차게 내놓은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지목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잔재로 수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연금생활자와 장애인, 학생, 퇴역군인에서부터 공훈 체육인과 예술인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 국민이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다. 예를 들어 노년층인 연금생활자는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일반인보다 싼값에 이용한다. 약국에서 약을 살 때 약값을 할인받고, 심지어 전기세 등 공공요금과 공연장 입장료를 살 때도 혜택을 받는다.
전국 곳곳에서 노년층 거리 시위
이 같은 광범위한 특혜는 언뜻 완벽한 사회보장의 본보기처럼 보이지만, 국가 재정에는 엄청난 부담이 되어왔다. 이것을 푸틴 정부가 올해 1월1일부터 대폭 줄이거나 없앤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된 푸틴 대통령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아무도 손댈 수 없을 것 같던 사회보장제도에 칼을 들이댔다. 그러나 저항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가장 먼저 노년층의 분노가 폭발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사실 1991년부터 시장경제 개혁이 시작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갑자기 바뀐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절대 빈곤계층으로 전락했다. 소련 시절에는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했던 연금이 루블화 폭락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면서 생계를 꾸리기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지돼오던 각종 사회보장 혜택 덕에 근근이 살아왔는데 이마저 없어진다니…. 10년 넘게 참아온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더욱이 노년층은 야당인 공산당의 주요 지지 계층이다. “다음 선거를 앞두고 푸틴 정부가 노인네들을 다 죽이려고 꾸민 흉계”라는 황당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민심이 돌아서면서 갑자기 “개혁이 싫다”는 개혁 거부증과 “그래도 옛 소련 시절이 나았다”는 향수가 번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ROMIR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7%에 그쳤다. 21%는 ‘차라리 사회주의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푸틴 대통령의 경쟁자인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이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전면 중단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역설적인 사실은 권력 기반을 강화하려는 크렘린의 의도가 오히려 위기를 불러왔다는 점이다. 지난해 집권 2기를 맞아 푸틴 대통령은 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권한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먼저 지방정부 주지사의 주민직선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케 했다. 소련 시절 지방 공산당 제1서기를 중앙당에서 임명했던 체제로 돌아간 것이다. 올해 초 세르게이 다리킨 연해주 주지사가 ‘대통령 임명 주지사 1호’가 됐다. 다음 총선부터는 지역구 의원도 없어져, 450명의 하원의원을 모두 정당별 비례대표로 뽑는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정치인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조치는 국내외에서 ‘민주화 후퇴’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연례 인권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인권 상황이 열악하다고 발표했다. 크렘린이 최대 민간 기업인 유코스 정유사를 강제로 해산하고, 검찰이 총수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을 구속한 사건을 비롯해 언론 탄압과 의회·사법부 무력화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앞서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에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의 민주화 후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신임 국무장관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서방과 가까워지려면 민주화 의지부터 보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은 “전체주의국가인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국내에서도 야당과 인권단체 등의 반발이 심한 것은 물론이다.
사면초가 위기에서 기댈 곳은 ‘경제’뿐
그나마 사면초가에 몰린 푸틴 정권이 기댈 곳은 ‘경제’뿐이다. 러시아는 지난 5년 동안 평균 6∼7%의 성장을 계속해왔다. 물론 푸틴 정부가 잘해서라기보다는 5년 동안 지속된 고유가 덕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 수출 1위를 다투는 러시아는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1년까지 국민총생산(GDP)을 현재의 두 배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2만 달러 공약’과 비슷한 구상이다. 국민들에게 인권과 자유는 약간 제한을 받더라도 잘살게 해줄 테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푸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경제가 뒷받침돼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경제가 불안하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얼마 전 “러시아 경제가 국가 주도형인 데다 부패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푸틴 정권의 위기는 연금생활자의 시위나 민주화 시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잘나가는 듯 보이는 경제가 삐걱거리면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연임만 허용하고 있는 현행 헌법대로라면 2008년 5월에 크렘린에서 나와야 한다. 52년생인 푸틴 대통령이 과연 50대 중반에 순순히 권력을 내놓을까? 물론 푸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한 집권연장 가능성을 부인해왔다. 그런데 최근 푸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세르게이 미로노프 상원의장이 헌법 개정 없이 임기를 4년에서 5년으로 1년 더 연장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크렘린이 3선 개헌 또는 임기 연장 가능성을 놓고 민심과 여론을 떠보려는 의도 아닌가 하는 의혹이 뒤따랐다.
그러나 푸틴 정권의 고민은 지금부터다. 섣불리 정권 연장을 꾀하다가 강력한 역풍을 맞고 좌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월20일 러시아 여론재단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지지도는 사상 최저 수준인 42%를 기록했다. 2월 초보다 2% 낮아진 수치다. 집권 초부터 줄곧 70%대의 높은 지지도를 유지해오던 푸틴 정부로서는 충격적인 결과다. 이 같은 지지도 하락의 결정적인 원인으로는 푸틴 정부가 올해 초 야심차게 내놓은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지목되고 있다.
러시아 국민들은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잔재로 수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 연금생활자와 장애인, 학생, 퇴역군인에서부터 공훈 체육인과 예술인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전 국민이 사회보장제도의 수혜자다. 예를 들어 노년층인 연금생활자는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일반인보다 싼값에 이용한다. 약국에서 약을 살 때 약값을 할인받고, 심지어 전기세 등 공공요금과 공연장 입장료를 살 때도 혜택을 받는다.
전국 곳곳에서 노년층 거리 시위
이 같은 광범위한 특혜는 언뜻 완벽한 사회보장의 본보기처럼 보이지만, 국가 재정에는 엄청난 부담이 되어왔다. 이것을 푸틴 정부가 올해 1월1일부터 대폭 줄이거나 없앤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된 푸틴 대통령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아무도 손댈 수 없을 것 같던 사회보장제도에 칼을 들이댔다. 그러나 저항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가장 먼저 노년층의 분노가 폭발했다. 모스크바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사실 1991년부터 시장경제 개혁이 시작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갑자기 바뀐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절대 빈곤계층으로 전락했다. 소련 시절에는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했던 연금이 루블화 폭락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면서 생계를 꾸리기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유지돼오던 각종 사회보장 혜택 덕에 근근이 살아왔는데 이마저 없어진다니…. 10년 넘게 참아온 울분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더욱이 노년층은 야당인 공산당의 주요 지지 계층이다. “다음 선거를 앞두고 푸틴 정부가 노인네들을 다 죽이려고 꾸민 흉계”라는 황당한 소문까지 나돌았다. 민심이 돌아서면서 갑자기 “개혁이 싫다”는 개혁 거부증과 “그래도 옛 소련 시절이 나았다”는 향수가 번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기관인 ROMIR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의 개혁을 지지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7%에 그쳤다. 21%는 ‘차라리 사회주의 시절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푸틴 대통령의 경쟁자인 유리 루슈코프 모스크바 시장이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전면 중단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역설적인 사실은 권력 기반을 강화하려는 크렘린의 의도가 오히려 위기를 불러왔다는 점이다. 지난해 집권 2기를 맞아 푸틴 대통령은 개혁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이유로 대통령의 권한을 꾸준히 강화해왔다. 먼저 지방정부 주지사의 주민직선제를 폐지하고 대통령이 직접 임명케 했다. 소련 시절 지방 공산당 제1서기를 중앙당에서 임명했던 체제로 돌아간 것이다. 올해 초 세르게이 다리킨 연해주 주지사가 ‘대통령 임명 주지사 1호’가 됐다. 다음 총선부터는 지역구 의원도 없어져, 450명의 하원의원을 모두 정당별 비례대표로 뽑는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 막강한 정치인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조치는 국내외에서 ‘민주화 후퇴’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연례 인권보고서에서 러시아의 인권 상황이 열악하다고 발표했다. 크렘린이 최대 민간 기업인 유코스 정유사를 강제로 해산하고, 검찰이 총수인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회장을 구속한 사건을 비롯해 언론 탄압과 의회·사법부 무력화 등이 집중적으로 거론됐다.
앞서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린 미국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에서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러시아의 민주화 후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신임 국무장관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의 회담에서 “서방과 가까워지려면 민주화 의지부터 보이라”고 핀잔을 주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 등은 “전체주의국가인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국내에서도 야당과 인권단체 등의 반발이 심한 것은 물론이다.
사면초가 위기에서 기댈 곳은 ‘경제’뿐
그나마 사면초가에 몰린 푸틴 정권이 기댈 곳은 ‘경제’뿐이다. 러시아는 지난 5년 동안 평균 6∼7%의 성장을 계속해왔다. 물론 푸틴 정부가 잘해서라기보다는 5년 동안 지속된 고유가 덕분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 수출 1위를 다투는 러시아는 ‘오일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011년까지 국민총생산(GDP)을 현재의 두 배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2만 달러 공약’과 비슷한 구상이다. 국민들에게 인권과 자유는 약간 제한을 받더라도 잘살게 해줄 테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푸틴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은 경제가 뒷받침돼 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경제가 불안하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얼마 전 “러시아 경제가 국가 주도형인 데다 부패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여전히 해결하지 못해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푸틴 정권의 위기는 연금생활자의 시위나 민주화 시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잘나가는 듯 보이는 경제가 삐걱거리면서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푸틴 대통령은 연임만 허용하고 있는 현행 헌법대로라면 2008년 5월에 크렘린에서 나와야 한다. 52년생인 푸틴 대통령이 과연 50대 중반에 순순히 권력을 내놓을까? 물론 푸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한 집권연장 가능성을 부인해왔다. 그런데 최근 푸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세르게이 미로노프 상원의장이 헌법 개정 없이 임기를 4년에서 5년으로 1년 더 연장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크렘린이 3선 개헌 또는 임기 연장 가능성을 놓고 민심과 여론을 떠보려는 의도 아닌가 하는 의혹이 뒤따랐다.
그러나 푸틴 정권의 고민은 지금부터다. 섣불리 정권 연장을 꾀하다가 강력한 역풍을 맞고 좌초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