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22일 제일화재 인사팀 직원들이 신입사원 입사지원서를 분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몇몇 언론은 ‘취업이 너무 힘들어 고급 자격증도 힘을 못 쓴다’는 식의 접근을 하고 있다. 그러나 각 기업체 인사 담당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하다. “유학파, 명문대 인기 과 출신, 고급 자격증 소지자나 토익 만점자는 무조건 받아줘야 하느냐. 그런 것은 결코 인재의 필요충분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한 취업정보업체 컨설턴트는 “언론의 선정적 보도가 많은 취업 준비생들에게 불필요한 두려움과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 지금의 현상은 오히려 ‘진짜 실력’만 있으면 자격증이 없고 명문대 출신이 아니어도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청신호”라고 말했다.
학점 등은 ‘커트라인’ 구실 정도
취업정보업체 ‘스카우트’의 신길자 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토익 600점이 넘으면 영어를 굉장히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상향 평준화된 상태다. 학점도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면 계절학기 등을 통해 평균 B학점 정도로는 관리를 한다. 다시 말해 토익 점수나 학점은 취업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뜻”이라 말했다.
2003년 2월 로레알코리아의 한 남성 인턴사원이 미용실에서 시장조사를 하고 있다.
삼성전자 인사팀 관계자는 “우리 회사의 서류 전형 통과에 필요한 토익 점수 하한선은 이공계가 620점, 인문계가 730점이다. 그것만 넘으면 990점이건 만점이건 합격·불합격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LG전자 인사 담당자도 “이공계는 650점, 인문계는 700점이 하한선이다. 신입사원의 90%가 이공계인데 그들에게 토익 점수 100점 정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공 지식과 학습 능력이 있느냐가 당락을 결정하는 핵심”이라고 밝혔다.
2004년 11월11일 아주대에서 열린 채용박람회 모습.
자격증도 마찬가지다. 우선 이공계 학생들이 주로 취득하는 정보처리기사 등 각종 정보기술(IT) 관련 자격증은 희소가치가 워낙 떨어진 상태라 거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대접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아예 “우리는 자격증 같은 건 보지 않는다”고까지 했다. 때문에 취업전문 컨설턴트들은 “한 가지라도 똑 부러진 자격증, 마이크로소프트나 자바 관련 국제 자격증이나 자신이 응시한 직종에 바로 접목 가능한 자격증 정도만이 어느 정도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충고한다.
그럼에도 각 기업에서 토익 점수 하한선을 두고, 원서에 학점이나 자격증 소지 여부를 적게 하는 것은 ‘성실성’과 ‘취업에 대한 열의’를 가늠하기 위한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토익 점수나 학점이 웬만하다는 것은 그가 대학생활을 열심히 했고, 그래서 대기업에 들어올 기본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서류 통과용일 뿐, 진짜 당락이 결정되는 것은 면접”이라고 말했다. 이는 취재 중 접촉한 여러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공인회계사, 사법시험 합격 같은 ‘고급 자격증’은 어떨까. 한 4대 그룹 인사팀장은 오히려 “왜 그들이 우리가 원하는 인재냐”고 되물었다. 그는 “고급 자격증 소지자가 전문기업이나 로펌이 아닌 일반기업을 찾는다는 것은 점수건 나이건 조직 적응력이건, 뭔가 부족한 점이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4대 그룹 인사담당자도 “자격증 소지자는 실무 경험이 있고 능력이 검증된 경력자가 낫다. 그런 이들을 스카우트하면 될 것을 뭣 때문에 신입으로 뽑느냐”고 했다.
진짜 당락은 면접에서 결정
그는 외국 대학 출신자의 합격률이 의외로 낮은 점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에서 대학에 입학할 자신이 없어 중·고등학교 때 조기유학을 간 친구들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외국 대학 출신이라면 면접 때 오히려 더 깊이, 세게 질문을 던진다. 다른 걸 떠나 ‘도피성 유학생’인 경우 직무 면접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그만큼 실력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많은 취업자들은 여전히, 흔히 ‘스펙(spec, specification을 줄여 쓴 말로 능력이나 학벌, 자격증, 나이, 경력 등을 말한다)’이라는 단어로 통용되는 자격증, 토익 점수 등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1월9일 ‘잡코리아’는 구직자 1605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신입직 구직자의 32.7%는 취업이 안 되는 이유로 ‘어학 실력(자격증 포함) 미달’을 꼽았다.
2004년 8월6일 현대그룹의 신입사원 하계 수련대회.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성이다. ‘스카우트’의 허광영 컨설턴트는 “예를 들어 무료·유료 취업 컨설팅을 부지런히 받는 사람은 취업 성공률이 확실히 높다”고 했다. 각종 취업 성공 사례에 등장하는 이들을 무슨 연예인 보듯 하며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치부하는 학생들일수록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 그는 또 “학교 취업정보실, 기업, 노동부 산하 기관 등 다양한 곳에서 수많은 취업 관련 정보를 쏟아내 놓고 있다”며 “1학년 때부터 취업정보실을 내 집 드나들듯 한 학생은 반드시 취업을 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 중요한 것이 빠른 진로 선택이다. 3학년, 4학년이 돼서 생각하면 늦다. 1학년, 가능하면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의 기간에 어떤 산업군, 어떤 직종, 심지어 어떤 회사에 근무하고 싶은지까지를 미리 고민해두는 것이 좋다.
요즘은 대부분의 기업이 직무에 따라 신입사원을 뽑는다. 범용 인재가 아닌 특화된 인재를 뽑으려는 것이다. 각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면접을 통한 직무 능력 측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1학년, 늦어도 2학년 1학기에는 진로를 확실히 정해 그에 맞는 학습 및 과외활동에 임해야 한다. 마치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의대에 들어가 그에 대한 공부만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1학년 때부터 진로 선택을
다양한 경험과 과외 활동도 중요하다. 그러나 무턱대고, 손에 잡히는 대로 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이 종사할 분야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계가 돼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봉사활동은 일반 기업에선 큰 장점이 아니지만 금융 등 서비스가 중요한 분야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이나 단체에서의 인턴 활동은 가장 효과가 큰 ‘과외활동’이다. 같은 인턴이라도 어디서 했는지에 따라 평가가 확 달라진다. 만약 A급 인턴 경험을 원한다면 먼저 B급, C급 인턴 활동부터 해보는 것이 좋다. A급 인턴 활동에 진입하는 것조차 경험 없이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가 돼 있다면 지방대 출신이라 해도 취업의 기회는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 지방에 대규모 공장이 있는 회사의 인사담당자들은 “지방대 학생 없이 우리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느냐”며 “각 대학 관련학과 상위권 학생들은 대부분 취업이 된다”고 했다. 오히려 서울 학생들이 지방 근무를 무조건 외면해 문제라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