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의 2분법을 기준으로 삼으면 캐나다는 자본주의 서방세계 국가의 하나다. 지금도 캐나다는 크게 봐서 자본주의 체제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웃 미국보다 매우 뚜렷한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그 한 단면이 현재 밴쿠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내버스 전면파업이다.
캐나다 본토의 남서쪽 끝에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밴쿠버가 자리잡고 있다. 밴쿠버와 그 주변 도시들을 합친 광역밴쿠버는 인구가 200만 명쯤으로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권위 있는 도시 평가 기관들이 매기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석차에서 밴쿠버는 늘 1∼2위를 다툰다.
그런 광역밴쿠버의 시내버스들이 4월 1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가 6월 중순 현재 석 달째 운행을 중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밴쿠버의 거리 풍경이나 이곳 사람의 일상은 파업 전이나 별로 다름없이 평온하다. 한국의 대도시에서 모든 시내버스가 한나절쯤만 파업한다면 당장 교통‘대’란이 일어나겠지만 파업 60여 일째인 이곳의 현재 사정은 굳이 말하자면 교통‘소’불편 정도다.
勞, 파트타임 운전사 고용 계획 반발
물론 밴쿠버 사람의 대중교통 의존도는 한국보다 낮은 편이다. 총 탑승 회수 기준으로 하루 평균 약 40만 명이 광역밴쿠버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버스는 중요한 시민의 발이다. 그런데도 이 도시에선 큰 동요가 없다.
광역밴쿠버의 대중교통은 트랜스링크(Trans-Link)라는 한 개의 공영기업이 전담한다. 이 회사는 일반시내버스를 비롯해 경(輕)전철(Skytrain), 통근열차, 장애자 전용버스 등을 각각 맡아 운행하는 6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 일반 시내버스를 맡은 코스트마운튼버스회사(CMBC) 근로자들이 이번에 전면파업을 벌이는 것이다. CMBC는 보유 버스가 1300여 대, 종업원은 운전기사 2600명을 포함해 3800명에 이른다.
장기파업에 이르게 한 노·사 간 쟁점 중 가장 첨예한 부분이 회사측의 파트타임 운전기사 고용 계획이다. 밴쿠버 버스 각 노선의 운행간격은 매우 넓다. 일부 노선을 빼고는 대부분의 버스가 20∼30분, 한 시간 등의 간격으로 띠엄띠엄 운행한다. 하루에 아침 한 차례, 오후 한 차례 합해서 두 차례만 버스가 다니는 노선도 많다(대신 각 정류장에는 정해진 시간을 거의 지켜 버스가 도착한다). 이러다 보니 아침에 잠깐, 오후에 잠깐 근무하고 중간 시간에는 별 중요한 임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근로자들도 많다. 이런 노선에 종일근무가 아닌, 파트타임 운전기사를 투입하겠다는 것이 회사측 계획이다. 회사측은 또 승객수가 적은 일부 노선을 떼어내 민영화(contracting out)하는 방안도 강구중이다. 두 방안 모두에 노조측은 펄쩍 뛰고 있다. 사용자도 근로자도 모두 부지하세월로 타결을 미루는 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정당하다는 입장 때문만은 아니다.
CMBC는 그동안 하루에 30만 달러(1캐나다달러는 약 800원) 꼴로 적자를 내며 회사를 꾸려왔다. 밑빠진 독에 지방정부가 세금으로 거둔 돈을 ‘보조금’의 이름으로 쏟아붓고 있다. 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하면 회사는 하루에 그만한 돈을 버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조도 회사측 고충을 안다. 그러나 고용안정이라는 큰 명분 때문에 쉽사리 주장을 꺾지 않는다. CMBC 운전기사의 평균임금은 시간당 22달러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법정 최저임금이 7달러 60센트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상당히 높은 소득계층에 속한다. 한두 달 임금을 받고 안 받고가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결사항쟁’ 따위의 핏빛 글씨 머리띠를 두르지 않는다.
버스가 파업에 들어가자 이용객들은 대체 교통수단을 찾았다. 자가용이 있는데도 평소 안 타던 사람은 그 차를 이용하고, 자전거나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 배낭을 메고 두어 시간씩 걸어 직장에 나가는 사람도 있다. 같은 방향 사람끼리 차를 함께 타는 카풀(car pool)이 파업 첫 날부터 지역 신문들과 인터넷 등을 매개로 활발히 이루어진 것도 교통대란을 막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승용차 운행이 많이 늘었지만 이에 따른 교통체증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이곳 도로교통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광역밴쿠버는 면적이 약 1800km2로 서울의 3배 가량인데 인구는 그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밀도가 서울의 15분의 1쯤 되는 것이다.
큰 도시의 시내버스 운행을 전적으로 공기업이 맡고 있는 점, 그 공기업이 내는 엄청난 적자를 정부가(또는 시민이) 군말없이 메워주고 있는 점, 억지인 듯한 주장을 근로자들이 내세울 뿐 아니라 시민이 그들에게 여론의 몰매를 가하지 않고 불편을 참는 점 등에서 캐나다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이념적 뼈대의 하나가 사회주의임이 확인된다.
이 나라 연방하원을 구성하는 정당은 현재의 의석 순으로 자유당, 캐나다연합당, 퀘벡당, NDP, 진보보수당이다. 이 중 퀘벡 독립을 제1의 정강으로 내세우는 일종의 지역당인 퀘벡당을 제외한 4개 정당은 이념 면에서 좌에서 우로 NDP(좌)-자유당(중도)-진보보수당(중도우)-캐나다연합당(극우)의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사회주의를 정강으로 내건 NDP(New Democratic Party)는 캐나다 건국(1867년) 이래 한번도 집권당이 되어 본 적 없이 대체로 제3당의 지위를 지켜왔다. 캐나다 선관위에 따르면 1961년 이래 11차례의 연방 총선에서 NDP의 평균 득표율은 16.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나라 사람의 삶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깊이 뿌리 내린 것은 건국 이래 가장 여러 번 집권한 자유당이 NDP와 이념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자유당이 원내 제1당이 되긴 했으나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NDP와 손잡고 정국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NDP는 또 각 주 정치무대에서는 여러 차례 집권한 적이 있어 그 정강을 실천할 기회를 가졌다.
냉전의 칼 끝 부근에서 오래 살아온 한국인에게 사회주의는 곧 공산주의와 같은 것으로 여기고 억압적 체제를 연상하게 마련이지만 이 나라 시회주의는 공산주의의 혁명적 투쟁을 부인하는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영국의 노동당 등 서유럽 국가의 좌파정당들과 이념의 뿌리가 같다.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났을 때 이 나라 자유당 정부는 당초 해군과 공군만을 UN군의 일원으로 파견하면서 미적거렸으나 당시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CCF(NDP의 전신)의 재촉을 받은 뒤 지상군까지 파견했다. 그만큼 이 나라 사회민주주의 이념은 공산주의의 폭력성을 경계한다.
사회주의는 그 이상적인 목표에도 불구하고 많은 병폐를 낳는다. 캐나다도 이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 면에서 사회주의는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을 근본으로 삼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는 이웃 미국보다 정부의 몸집이 크고, 덩치 값을 하기 위해 민간이 맡아도 될 법한 서비스를 정부가 제공하는 경우가 공영제 버스의 예 외에도 많다. 정부는 자연히 세금을 많이 걷고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의 생산성이 미국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나라에서는 민간부문에서도 시장에서의 경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컨대 안과의사의 처방을 받아 안경점에 안경을 맞추러 간 고객은 1주일 뒤에 만들어 놓을 테니 다시 와 찾아가라는 얘기를 듣기 일쑤다. 서점에 책을 사러 갔으나 그 서점에 재고가 없는 경우 점원은 2주일쯤 뒤에 구해놓을 테니 전화번호를 남기고 가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캐나다로 이민 오고 싶어하는 한국인 중 상당수가 이 나라가 미국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위와 같은 점에서 캐나다는 미국과 많이 다르다. 캐나다에 와서 작은 비즈니스를 벌이는 한국 교민 중 이 나라 사람의 씀씀이가 한국인보다 인색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100% 살리면서 그 병폐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 최선의 체제이겠으나 그것이 안 된다면 둘 중 하나의 목표를 어느 정도 희생하고라도 차선의 배합비율을 찾아야 한다. 캐나다 사람은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로 현재의 배합비율을 선택했다.
캐나다 본토의 남서쪽 끝에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밴쿠버가 자리잡고 있다. 밴쿠버와 그 주변 도시들을 합친 광역밴쿠버는 인구가 200만 명쯤으로 이 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권위 있는 도시 평가 기관들이 매기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석차에서 밴쿠버는 늘 1∼2위를 다툰다.
그런 광역밴쿠버의 시내버스들이 4월 1일부터 전면파업에 들어가 6월 중순 현재 석 달째 운행을 중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밴쿠버의 거리 풍경이나 이곳 사람의 일상은 파업 전이나 별로 다름없이 평온하다. 한국의 대도시에서 모든 시내버스가 한나절쯤만 파업한다면 당장 교통‘대’란이 일어나겠지만 파업 60여 일째인 이곳의 현재 사정은 굳이 말하자면 교통‘소’불편 정도다.
勞, 파트타임 운전사 고용 계획 반발
물론 밴쿠버 사람의 대중교통 의존도는 한국보다 낮은 편이다. 총 탑승 회수 기준으로 하루 평균 약 40만 명이 광역밴쿠버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버스는 중요한 시민의 발이다. 그런데도 이 도시에선 큰 동요가 없다.
광역밴쿠버의 대중교통은 트랜스링크(Trans-Link)라는 한 개의 공영기업이 전담한다. 이 회사는 일반시내버스를 비롯해 경(輕)전철(Skytrain), 통근열차, 장애자 전용버스 등을 각각 맡아 운행하는 6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 중 일반 시내버스를 맡은 코스트마운튼버스회사(CMBC) 근로자들이 이번에 전면파업을 벌이는 것이다. CMBC는 보유 버스가 1300여 대, 종업원은 운전기사 2600명을 포함해 3800명에 이른다.
장기파업에 이르게 한 노·사 간 쟁점 중 가장 첨예한 부분이 회사측의 파트타임 운전기사 고용 계획이다. 밴쿠버 버스 각 노선의 운행간격은 매우 넓다. 일부 노선을 빼고는 대부분의 버스가 20∼30분, 한 시간 등의 간격으로 띠엄띠엄 운행한다. 하루에 아침 한 차례, 오후 한 차례 합해서 두 차례만 버스가 다니는 노선도 많다(대신 각 정류장에는 정해진 시간을 거의 지켜 버스가 도착한다). 이러다 보니 아침에 잠깐, 오후에 잠깐 근무하고 중간 시간에는 별 중요한 임무 없이 시간을 보내는 근로자들도 많다. 이런 노선에 종일근무가 아닌, 파트타임 운전기사를 투입하겠다는 것이 회사측 계획이다. 회사측은 또 승객수가 적은 일부 노선을 떼어내 민영화(contracting out)하는 방안도 강구중이다. 두 방안 모두에 노조측은 펄쩍 뛰고 있다. 사용자도 근로자도 모두 부지하세월로 타결을 미루는 것은 자신들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정당하다는 입장 때문만은 아니다.
CMBC는 그동안 하루에 30만 달러(1캐나다달러는 약 800원) 꼴로 적자를 내며 회사를 꾸려왔다. 밑빠진 독에 지방정부가 세금으로 거둔 돈을 ‘보조금’의 이름으로 쏟아붓고 있다. 버스 운행을 전면 중단하면 회사는 하루에 그만한 돈을 버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조도 회사측 고충을 안다. 그러나 고용안정이라는 큰 명분 때문에 쉽사리 주장을 꺾지 않는다. CMBC 운전기사의 평균임금은 시간당 22달러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법정 최저임금이 7달러 60센트인 점을 감안하면 이들은 상당히 높은 소득계층에 속한다. 한두 달 임금을 받고 안 받고가 이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은 ‘결사항쟁’ 따위의 핏빛 글씨 머리띠를 두르지 않는다.
버스가 파업에 들어가자 이용객들은 대체 교통수단을 찾았다. 자가용이 있는데도 평소 안 타던 사람은 그 차를 이용하고, 자전거나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 배낭을 메고 두어 시간씩 걸어 직장에 나가는 사람도 있다. 같은 방향 사람끼리 차를 함께 타는 카풀(car pool)이 파업 첫 날부터 지역 신문들과 인터넷 등을 매개로 활발히 이루어진 것도 교통대란을 막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승용차 운행이 많이 늘었지만 이에 따른 교통체증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이곳 도로교통에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광역밴쿠버는 면적이 약 1800km2로 서울의 3배 가량인데 인구는 그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밀도가 서울의 15분의 1쯤 되는 것이다.
큰 도시의 시내버스 운행을 전적으로 공기업이 맡고 있는 점, 그 공기업이 내는 엄청난 적자를 정부가(또는 시민이) 군말없이 메워주고 있는 점, 억지인 듯한 주장을 근로자들이 내세울 뿐 아니라 시민이 그들에게 여론의 몰매를 가하지 않고 불편을 참는 점 등에서 캐나다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이념적 뼈대의 하나가 사회주의임이 확인된다.
이 나라 연방하원을 구성하는 정당은 현재의 의석 순으로 자유당, 캐나다연합당, 퀘벡당, NDP, 진보보수당이다. 이 중 퀘벡 독립을 제1의 정강으로 내세우는 일종의 지역당인 퀘벡당을 제외한 4개 정당은 이념 면에서 좌에서 우로 NDP(좌)-자유당(중도)-진보보수당(중도우)-캐나다연합당(극우)의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사회주의를 정강으로 내건 NDP(New Democratic Party)는 캐나다 건국(1867년) 이래 한번도 집권당이 되어 본 적 없이 대체로 제3당의 지위를 지켜왔다. 캐나다 선관위에 따르면 1961년 이래 11차례의 연방 총선에서 NDP의 평균 득표율은 16.2%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나라 사람의 삶에 사회주의적 요소가 깊이 뿌리 내린 것은 건국 이래 가장 여러 번 집권한 자유당이 NDP와 이념적으로 가까울 뿐 아니라 자유당이 원내 제1당이 되긴 했으나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을 경우 NDP와 손잡고 정국을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NDP는 또 각 주 정치무대에서는 여러 차례 집권한 적이 있어 그 정강을 실천할 기회를 가졌다.
냉전의 칼 끝 부근에서 오래 살아온 한국인에게 사회주의는 곧 공산주의와 같은 것으로 여기고 억압적 체제를 연상하게 마련이지만 이 나라 시회주의는 공산주의의 혁명적 투쟁을 부인하는 이른바 사회민주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영국의 노동당 등 서유럽 국가의 좌파정당들과 이념의 뿌리가 같다. 1950년 한국에서 전쟁이 났을 때 이 나라 자유당 정부는 당초 해군과 공군만을 UN군의 일원으로 파견하면서 미적거렸으나 당시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CCF(NDP의 전신)의 재촉을 받은 뒤 지상군까지 파견했다. 그만큼 이 나라 사회민주주의 이념은 공산주의의 폭력성을 경계한다.
사회주의는 그 이상적인 목표에도 불구하고 많은 병폐를 낳는다. 캐나다도 이 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 면에서 사회주의는 시장에서의 무한경쟁을 근본으로 삼는 미국식 자본주의보다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는 이웃 미국보다 정부의 몸집이 크고, 덩치 값을 하기 위해 민간이 맡아도 될 법한 서비스를 정부가 제공하는 경우가 공영제 버스의 예 외에도 많다. 정부는 자연히 세금을 많이 걷고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의 생산성이 미국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 나라에서는 민간부문에서도 시장에서의 경쟁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컨대 안과의사의 처방을 받아 안경점에 안경을 맞추러 간 고객은 1주일 뒤에 만들어 놓을 테니 다시 와 찾아가라는 얘기를 듣기 일쑤다. 서점에 책을 사러 갔으나 그 서점에 재고가 없는 경우 점원은 2주일쯤 뒤에 구해놓을 테니 전화번호를 남기고 가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캐나다로 이민 오고 싶어하는 한국인 중 상당수가 이 나라가 미국과 비슷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위와 같은 점에서 캐나다는 미국과 많이 다르다. 캐나다에 와서 작은 비즈니스를 벌이는 한국 교민 중 이 나라 사람의 씀씀이가 한국인보다 인색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이 많다.
자본주의의 효율성을 100% 살리면서 그 병폐를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 최선의 체제이겠으나 그것이 안 된다면 둘 중 하나의 목표를 어느 정도 희생하고라도 차선의 배합비율을 찾아야 한다. 캐나다 사람은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로 현재의 배합비율을 선택했다.